'여행기'에 해당되는 글 104건

  1. 2005/04/11 4/10, 4/11 Bangkok, Incheon (1)
  2. 2005/04/11 4/10 (2)
  3. 2005/04/10 4/8-4/10 Bangkok
  4. 2005/04/08 4/8 back to Yangon
  5. 2005/04/07 4/7 Bagan
  6. 2005/04/05 4/5 to Bagan (3)
  7. 2005/04/04 4/4 Back to Mandalay
  8. 2005/04/03 4/3 Hsipaw
  9. 2005/04/02 4/2 Mandalay (1)
  10. 2005/04/01 4/1 Bago (2)
  11. 2005/03/30 3/30 Yangon (1)
  12. 2005/03/29 태국에 도착해서.. (3)
  13. 2004/07/13 서울로 돌아와 (1)
  14. 2004/07/10 방콕으로 돌아와 (2)
  15. 2004/07/09 수코타이에서
  16. 2004/07/08 다시 방콕에서
  17. 2004/07/06 방콕에서 (1)
  18. 2004/07/04 크라비에서 (1)
  19. 2004/07/01 피피에서
  20. 2004/06/30 방콕에 내려 (2)
  21. 2004/02/27 신혼여행 #8 (1)
  22. 2004/02/23 신혼여행 #7 (1)
  23. 2004/02/21 신혼여행 #6
  24. 2004/02/20 신혼여행 #5
  25. 2004/02/19 신혼여행 #4 (1)
  26. 2004/02/18 신혼여행 #3
  27. 2004/02/17 신혼여행 #2
  28. 2004/02/16 신혼여행 #1
  29. 2003/06/13 coming for to carry me home (2)
  30. 2003/06/09 ...... (11)

이틀동안 같이 돌아다닌 한국인은 자신이 '맛따라 길따라'라고 밝힌 바 있다. 아, 반갑군. 맛따라 길따라는 말이야, 숙소나 교통은 처절하게 싸구려를 지향해도 음식 만큼은 결코 양보해서는 안되지. 하지만 나를 따라 다니다가 계산서가 500밧, 700밧(18$ 가량?) 씩 나올 때면 표정이 안 쓰럽게 변했다. 나하고 같이 다니면 배낭여행자처럼 할 수는 없어. 라고도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하루에 천밧씩 쓸 예정이거든? 보통은 하루에 200밧으로 식사 두 끼와 숙박비, 느적거리며 여기 저기 버스 타고 돌아다니고, 거기에 150밧 정도를 보태면 적당한 바에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하루 생활비를 한 끼로 썼다. 물론 국수와 길거리 음식도 보이는 족족 꾸준히 먹어 주었다. 하루에 간식 빼고라도 여섯 끼 정도는 먹어줘야 하니까. 그 친구는 원래 방콕에 이틀 정도 있다가 북부로 갈 생각이었는데, 인도에서 굶주리다 온 탓에 태국의 풍부함 음식에 눈을 반짝이다가 결국 방콕에서 일주일 가량을 묵게 되었다 -- 주저앉았다. 머리는 땋아서 파인애플처럼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그가 여행할 어떤 도시도 방콕 같지 않을 것이고 방콕 보다 좋지도 않을 것이다.



새 아침. 8시. 너무 일찍 일어났다. 묵고 있는 도미토리에 아무도 없다. 벌써들 나간건가? 만남의 광장이 좋은 점은 숙박객이 별로 없어 팬티만 입고 복도를 활기차게 돌아다녀도 된다. 저 빨간 바지는 여행 내내 입었던 단 한 벌 뿐인 바지. 저녁마다 빨았다. 빨아도 빨아도 빨간 물은 줄기차게 흘러 나왔다. 인도제나 네팔제나... -_-

카오산을 흐느적거리며 걷고 있는데(더위는 아침이라고 봐주지 않으니까) 왠 시크 교도가 불러 세우며 날더러 다짜고짜 행운아라고 한다. 암 행운아지. 평상시에는 운이 안 따라줘서 안 해도 되는 삽질을 꼭 하게 되는데 죽을 일이 생기면 운이 따라붙는단 말이야? 장수하면서 고생하는 운이라는 것이지. 그러더니 손금을 봐주겠다며, 내 어머니 이름을 알아맞출 수 있단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 난 행운아가 아네요. 당신을 만난 것만 봐도 그래요. 그러고는 히히히 웃어주었다. 그 친구도 히히히 웃는다.

문을 연 가게가 없어 시장통에서 아침 밥을 먹고 인터넷 좀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어젯밤 숙소에 체크인한 미국계 일본인과 그가 온 몸에 새겨 놓은 문신에 관해 노닥거리다가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겨 놓고 월텟행 버스를 탔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월텟의 일 층에서 일식당을 본 것 같아 한 번 방문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여전하다. 태국에서 먹는 초밥은 변함없이 꽝이다. 나를 일본인으로 아는지 중업원들이 무척 어려워 하면서 말 끝마다 일본어를 사용했다. 카드로 결제하려니 안 된다. 어제부터, 이상한 일일세?

에어컨 펑펑 나오는 월텟의 벤치에 앉아 놀았다. pda에 책 몇 권을 담아 왔는데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그 동안 나름대로 바빠서 읽지 못했던 '데프콘'을 읽었다. 숙소에 일본인 둘이 있었는데 자기 전에 그들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고, 데프콘 한-일전 편을 마저 읽기도 했다. 소설에서는 한국이 핵폭탄으로 일으킨 해일에 일본이 침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이 어이없이 아작나서 고개를 갸웃했다. 일주일 가량 인터넷을 못했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그 동안 모르고 있었는데 방콕에서 뉴스 사이트를 돌아보니 중국에서 일본을 비난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상임이사국 엿 될 것 같다. 일본은 왜 저럴까? 얻는 것도 없으면서. 원숭이기 때문일까? 혹시 요즘 일본 여성 여행자들의 얼굴이나 몸매가 영... 그런 것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책 읽으며 빈둥거리다 보니까 어느새 오후 4시. 빅씨로 가서 1kg 가량의 망고스틴을 사고 근처 이탈리안 식당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스파게티 맛이 꽝이다. 먹다 말고 남기고(배도 부르고 해서)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 주문한 루트 비어로 목을 축였다. 요새는 민트 티나 루트 비어 따위 이상한 것들도 시켜 마셨다. 계산하려고 식탁에 그동안 철렁거리던 남은 잔돈 동전을 파고다처럼 쌓아 놓았다. 스카이스크래이퍼, 장관이다. 종업원을 향해 히죽 웃어보였다. 요즘 방콕 사람들은 외국인을 향해 잘 웃지 않는다.

11시 30분 인천행 항공권이지만 방콕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 때문에 일찌감치 서둘러야 한다. 버스를 타고 카오산에 도착하니 6시. 카오산은 지나치게 바글거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카오산에서 맥주 마시고 노닥거린 때가 언제인지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카오산에서 논 적이 없다.



코카콜라 협찬 송크란인가 보다. 펄럭이는 코카콜라 깃발 밑에서 펩시 깡통 차(좌측)가 나타나 공짜로 펩시 콜라를 나눠 준다. 며칠 전부터 하루에 여섯끼씩 먹느라 배가 불러서 콜라 같은 저질 싸구려 탄산음료는 영 손이 가지 않는다.

길 가는데 어떤 여자애가 물을 뿌렸다. 뒤돌아 봤다. 그 표정. 뭔가 말할까 하다가 돌아섰다. 나는 아내에게 충실했다. 그건 짝짓기나 사랑 나부랑이 등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의 문제였다. 게다가 21세기는 신용사회다.

숙소에 맡긴 짐을 찾고 수박쥬스 한 잔 마시고 짐을 챙겨 일어나 복권청 앞에서 59번 버스를 한 시간 가량 기다렸지만 안 온다. 오후 7시 30분. 교통체증을 감안하면 공항에 도착하는 시각은 9시 무렵이 될 텐데... 더 늦으면 땀나는데... 송크란 때문일까? 아침부터 재수가 없나보다 싶어 짐을 들었다. 하는 수 없이 공항 버스를 타기로 했다.

걷는 도중 59번 버스가 막 오고 있다. 반전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허겁지겁 뛰었다. 가까스로 버스에 올랐다. 졸다가 눈을 떠보니 공항에 가까워진 듯. 짐을 챙겨 확인도 안 하고 성급하게 내렸더니 공항까지는 아직 3km 남았다. 에고야... 이런 실수를. 마지막 순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게 되다니.

망고스틴을 넣은 가방이 걱정이다. 쿼런틴에서 걸리지 않을까. 망고스틴 몇 개가 한국의 자연환경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리는 없다. 그 보다는 컨테이너 선저에 담겨오는 이국의 바닷물에 포함된 미생물이나, 검역을 소홀히 한 육가공품, 엄청난 양의 채소들에 함께 딸려오는 작은 생물군이 지역 생태계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 종의 멸절, 먹이 사슬을 구성하는 피라미드의 한쪽 변이 무너지면서 그 종과 연관된 주변 종들이 트럼프로 지은 집처럼 함께 무너져 내려 생태계 전체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가설이 있다 <-- 여러 모로 의구심이 많이 생기는 썰이긴 하나, 주접 떨기보다는 망고스틴 잘 챙기고 여행기나 마무리 짓자. 산처럼 쌓아놓은 망고스틴 피라미드에서 망고스틴을 하나 하나 고를 때마다 심혈을 기울였다. 심지어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망고스틴 고르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꼭지는 연노랑, 잡티 없고 짙은 보라빛의 탱글탱글한 바디라인, 배꼽이 단단한 것들.

공항 대기실에 도착하니 9시 50분. 수속은 10시 30분. 아까 빅씨에서 사온 100밧 짜리 초밥 도시락을 꺼내 흡족하게 배를 채웠다. 어떻게 고급 일식당의, 그때 그때 만들어 배에 얹어 띄우는 초밥 보다 대형 수퍼마켓에서 대충 만들어 파는 초밥이 더 맛있을 수가 있을까. 신기한 일이지. 오늘은 다섯 끼 밖에 안 먹었지만 나머지는 기내식으로 보충하자고 마음먹었다. 대기실 구석에 앉아 ac 아웃렛에 어댑터를 꽂고 노트북을 연결해 이 글을 쓰고 있다.

탑승 수속이 11시 50분으로 밀렸다. 대기실은 갑자기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돗대기 시장 같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송크란 휴일로 한국에 가는 사람들과, 아침부터 송크란 때문에 항공기가 연착하여 밀린 사람들이 몰렸단다. 그래서 전세기가 3대나 동시에 출발한다. (여러 이유 탓에 동남아의 중산층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같다) 어느 나라에 가나 축제는 일정을 틀어지게 만드는 귀신같은 것이다. 축제 때는 이동이나 숙소 구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축제를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을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술 먹은 한국인 아저씨가 옆에서 고성을 지르고 있다. 여행사에 사기 당했다고 소리 지르는 것 같은데, 비행기 한두 시간 연착한 걸 가지고 뭘 그리...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지만 참 열심히도 소리를 지른다.

담배나 한 대 피우려고 흡연실에 들어가니 어떤 한국인이 말을 걸어오며 한국 담배를 권한다. 고맙게 받았다. 화보 촬영차 태국에 왔다는 것이다. 음식 값이 싸다면서 식당에서 한끼 식사로 15만원을 썼단다. 그 시간에 누군가는 미얀마에서 42도 뙤약볕에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45도라는 설도 있다). 방콕 가면 에어컨 펑펑 나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끼에 무려 10$나 하는 음식으로 우아하게 배를 채우자, 뭐 그런 다짐을 하면서. 담배를 다 태우고 나니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왠지 나와는 클래스가 다른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오지만 찾아 빡세게 여행하는 용가리같은 비일상적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비일상적인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미얀마 북부의 외국인 여행자 제한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북부 기점 도시에 도착하면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픽업을 탄다. 픽업으로 30분에서 한 시간 단위로 짧게 이동한다. 무수한 검문소가 있으므로 여행자 티나는 복장을 하지 않는 편이... 해가 지는 오후 6시가 넘을 때까지 제한 지역으로 계속 밀고 들어가서 도시에 도착한다. 외국인 여행자 숙박이 인가된 숙소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미 해가 져서 오도가도 할 형편이 못되고, 미얀마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태국에서 따지렉을 거쳐 육로로 미얀마에 입국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 역은 가능하다. 그리고 미얀마에서 중국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인도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한번쯤 장기여행을 해 봐서 인지 도시에서 도시를 잇는 것이 아닌, 아무도 안 가본 곳을 가는 것이 요즘은 여행 같다고 느끼고 있고, 가끔(그걸 가끔이랄 수 있을까?) 만나는 히피같은 작자들은 나와 달리 그런 비일상적 여행을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인터넷에 블로그 따위를 안 올리고 책도 안 쓴다. 그래서 세상에 알려진 바가 없다. 알려지면 대단한 오지탐험가쯤 되는 오해를 받는다. 이를테면 한비야같은 사람. :) 구설을 통해서만 몇몇 이름과 사연이 알려지고(대개는 어느 나라의 '아무개'가 어떻게 몇 년을 여행했다는 식으로), 우연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 그 도시의 가장 싸구려 숙소의 도미토리가 이상적인데 마치 이들 숙소는 체인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히피 해픈 라인을 연결하여 도시에서 도시로, 점에서 점으로 가늘고 희미하게 이어져 있다. 아마도 내가 그런 여행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던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 싼 숙소만 찾아 가니까. 그들을 통해 다른 여행자들과는 약간 색다르고 상대적으로 '진기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마치 신밧드의 모험처럼. 하지만 그건 남들 얘기고, 해보지 않은 나와는 상관없다. 이런 직업 생활하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여행과 직업생활 중 어떤 것이 더 재미있다고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었다. 그러니 교대로 해 보고 나서 몸이 뜻대로 잘 안 움직일 때 다시 평가해 보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올 때보다 더 형편없었다. 기내식, 서비스, 기타 등등... 무의식적으로 포장도 안 뜯은 모포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아침, 랜딩 후 이어지는 지루한 택싱이 끝나고 인천 공항에 도착. 검역소에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i hvae nothing, nothing to declare. 인천은, 서울은, 한국은 마치 거대한 에어컨 룸 같다.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덜덜 떨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크룽 팁 담배곽에서 마지막 가치를 꺼내 빨았다. 입맛이 쓰다.

내 앞에서 서양인 둘이 어떻게 버스를 타야될 지 몰라 헤메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싱가폴 항공 기장이 그들을 도와준다. 나와 가는 방향이 같다. 602-1.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를 타려니 카드가 되지 않는다. 어제부터 왜 이리 말썽인가. 원화가 하나도 없어 10달러를 내고 7000원짜리 (어이없이 비싼) 버스표를 끊고 잔돈으로 2500원을 거슬러 받았다. 카드 받기를 거부하는 운전사나, 환율을 적당히 때려맞춰 적당히 잔돈을 거슬러주는 두 양반에게 그래도 삿대질을 하고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여긴 모든 것을 협상하고 타협해야 하는 여행지가 아니다. 안되면 안되는 거고 주는대로 받으면 되는거다. 이 곳은 한국이다. 게기면 표 안 팔고 버스 안 태워준다. 무서운 여행지다.

인도네시아에 지진과 해일이 덮치기 바로 전 인도네시아 보르부두르 유적지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휴가 계획은 그랬다. 항공권을 안 끊은 아내의 게으름이 내 생명(?)을 구했고, 그래서 바꾼 여행지가 고생만 죽어라고 한 미얀마였다. 동남아 3대 고대 유적지 중 두번째가 그렇게 끝났다. 동남아(south east asia)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독일인 학자였다. 지리적 편의상 지어진 그 이름보다 나은 것은 정녕 없었을까.

집에 와서 짐을 풀고 잤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깼다. 태국에서 카드 사용하셨죠? 네. 거래를 중단시켰습니다. 동남아에서 말이죠... 그러니까... 불법 도용... 그래서... 안되고... 카드를... 그러므로... 다시... 발급하세요...

이런 망할. 이불 덮고 다시 잠을 청했다. 노트북 배터리는 완전방전되어 고물이 되고 회사에 안부 인사하니 지난 2주 동안 파란만장한 사연이 절절하게 흘러나온다. 나는 내가 없어도 일은 잘 돌아간다고 굳게 믿었다 -- 굽힐 수 없는 사내의 신념으로.

--끝--

총 여행일수: 미얀마(7일), 방콕(4일) = 12일
총 여행비용: 294+490 = 784$

미얀마 여행 경비: 168+26+17+83 = 294$

* 방콕->양곤 항공권 6600밧(168$, 푸켓에어 한달 오픈), 밍글라돈 공항 출국세: 10$

* 숙박비: 양곤(2박, 6+5=11$), 만들래(2박, 6$), 시뽀(1박, 1500짯), 바간(2박, 7$) = 약 26$
* 입장료: 보타따웅(2$), 쉐다곤(5$), 바간(10$) = 17$
* 교통,음식,기타비용: 환전(70$ = 63000chat, 환율 900chat/$), 보유액(12000) = 75000(약 83$)
* 항공권, 공항세를 제외한 일평균 비용: 126/7일 = 18$

태국 여행 경비: 360+104+26 = 490$

* 인천<->방콕 항공권: 세 포함 360000원, 돈무앙 공항 출국세: 500+500 = 1000baht = 26$

* 숙박비: 방콕(4박, 400밧) = 약 10$
* 교통,음식,기타비용: 3600밧 = 약 94$
* 항공권, 공항세를 제외한 일평균 비용: 104/4일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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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여행기/Myanmar 2005/04/11 12:41
아침 8시에 일어났다. 할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씰롬에 괜찮은 식당이 있대서 찾아갔으나 문을 닫았고,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오이시에 들어가 수끼+초밥 부페를 먹었다. 배불리 먹었다. 오이시가 돈 좀 벌더니 예전 같지 않아 입맛을 다셨는데 아직 부페를 하는구나... 그러나 역시 초밥은 맛이 없었다. 배 터지게 먹고 펭귄처럼 걷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월텟 4층에 올라가 벤치에 누워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잤다. -_-

아내는 참 운이 없다. 이세탄 백화점에 들러 두 시간 동안이나 쪽팔림을 무릅쓰고 정성들여 보석을 둘러보고 간신히 25만원짜리 썩 괜찮은 사파이어 목걸이를 골라 포장까지 마치고 계산 하는데, 점원이 실수로 4밧 더 많게 계산해서 그걸 취소하고 다시 카드로 긁으려니까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았다. 한참 시도 해 봤지만 만밧이 조금 넘는 트랜젝션을 두 번 실수한 탓인지, 아니면 한국의 은행이 영업시간을 넘긴 탓인지 거래가 되지 않는다. 점원 말로는 하루 사용 금액을 초과했다고 한다. 글쎄? 내가 한미카드 vip고객인 것으로 아는데? 국제 전화를 걸어야 하는 등, 일이 귀찮게 꼬여서 거래를 취소하다. 한가하게 돌아다니며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사 먹었다.

에어컨이 나오는 대형 백화점 사이를 전전하며 빈둥대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영화를 보기로 했다. '사하라' 영화가 별로 재미 없다.

밤 아홉시 가까이 되어 수쿰빗으로 가서 이런 저런 바를 돌아다녔다. 생음악 하는 술집들은 보통 아홉시 반에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술은 안 마시고 서성이며 분위기 보다가 다른 바로, 또 다른 바로, 여기저기 메뚜기처럼 바 호핑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일본인들 상가 부근의 도쿄 조'스 블루스 바에 들렀는데 분위기 괜찮다. 사약같은 기네스 드라프트를 시켜 먹으면서 흥겨운 음악을 들었다. 아, 방콕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바 안에 있는 사람들 절반이 뮤지션이다. 오늘 잼 세션이 있는 날이라서 악기를 들고 서성이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분위기 매우 훌륭하다. 블루스가 워낙 마초 폼 잡는 음악이라 그런지 집적거리는 게이도 없고 재즈바처럼 음악에는 별 관심없는 찌꺼지들 아니 계집애들도 없고 담배 연기 자욱한 가운데 다들 입 다물고 음악을 듣는다. 연주솜씨가 괜찮다. 분위기가 좋아서 자정을 넘겼다. 너무 늦어버렸다. 거리로 나오니 썰렁하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아쉽다. 엊그제 한국인 젊은 친구 도와준답시고 이틀을 같이 다니는 바람에 밤마다 수쿰빗의 바를 전전하는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방콕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동안 배낭 여행 한답시고 거지처럼 돌아다니느라 방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런데, 나는 왜 맨날 방콕에 올 때마다 처음 방콕에 오는 친구들의 가이드질을 하게 될까. 아무래도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 묵어서 그런 것일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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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하우스 옥상에서. 만달래 맥주 마시고 알딸딸.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정신없이 먹었다. 게스트 하우스 손님들은 8시 정각에 기상해서 개떼처럼 식사를 하러 내려오지만 거의 아무 말도 없이 아침만 먹고 일어나는 지극히 특이한 분위기였다. 배 채우기 바빠서? 아니면 최근 여행자들 추세가 인터넷이나 가이드북으로 인해 충분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서로 할 말이 없어져서?

양곤에 온 후 엽서를 구하려고 돌아다녔지만 품질이 좋으면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싸면 품질이 떨어져서 망설여졌다. 화이트하우스에서 50짯에 한 장 짜리를 15장 구매했다. 아침을 든든이 먹고 숙소를 나와 시장통을 돌아다녔지만 택시 협상이 신통치 않다. 아홉시가 넘었고, 1달러 깎으려고 보낸 시간이 벌써 30분째, 에라 모르겠다. 협상은 그만 하고... 2500짯 주고 택시에 올랐다. 35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 수속을 재빨리 마치고 대합실에 들어가니 썰렁하다.



양곤 밍글라돈 공항 대합실 맞은편 흡연실. 한산.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 동안 남은 돈 1340짯을 어떻게 처분할까 고민했다. 아내를 본받아 엉뚱한 짓을 해보기로 했다. 대합실 윗편의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FEC(Foreign Exchange Currency)만 받는다고 써 있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았던 FEC는 얼마 전에 사라졌다. 메뉴판에는 달러만 받는다고 써 있었다. 매니저를 불러 나한테 지금 1300짯이 있는데 이 2 달러짜리 코카콜라를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순순이 오케이 한다. 700짯 짜리를 1300짯 주고 마셨으니 왠지 스스로가 바보같았지만 최소한 그 걸레같은 지폐 쪼가리들을 처분했다.



돌아오는 727-200편의 좌석은 30여석만 차고 나머지는 비었다. 일제 중고 시내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향해 간다. 내리려면 위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



방콕에 도착하니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버스 정거장까지 비 맞고 간신히 걸어갔다. 미얀마에서 돌아와서 그런지 방콕이 상대적으로 쌀쌀했다.

송크란 축제가 예년같지 않다. 푸켓 해일로 막심한 피해를 입은 태국이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듯한 인상.

만남의 광장에 다시 가니 이번에는 사람이 들어차 있다. 빨랫줄에 걸어놓은 빨래들을 보니 인도에 갔다온 사람인 듯. 대충 씻고 빈둥거리니까 들어온다. 24살, 450만원 짜리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완 월드 티켓을 들고 처음 들른 곳이 인도. 함께 돌아다녔다. 나랑 돌아다니면 안 좋을텐데... 왜냐하면 나는 하루에 천밧씩 사용할 작정으로 방콕에서 나흘 있을 예정이니까. 방콕에 온 기념으로 쌀국수 가게를 소개해 주고 저녁에 함께 수끼를 먹었다.

그랜드 쉐라톤 호텔에 밤 아홉시 사십분쯤 도착. 썩 괜찮은 재즈를 들을 수 있다길래 찾아온 것이다. 스트릭트 드레스 코드 때문에 문전박대 당했다. 젠장. 예상했어야 했다. 인도 갔다온 복장, 미얀마 갔다온 복장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그냥 나가기 뭣해서 옆 자리에 구겨져 않아 두당 235밧 짜리 맥주를 마셨다.

방콕에서는 평생 다시 탈 일이 없을 것 같은 마이크로 버스에 매달려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젊은 친구와 함께 대충 밥을 먹고 빤팁 플라자로 향했다. 그의 도시바 노트북이 부팅이 안 되는데 그걸 계속 들고다니려니 애물단지가 되고, 한국에 보내려니 안에 넣은 것들이 많아 아깝다. usb 외장 cdrom drive를 구하면 windows xp를 다시 깔기만 하는 것으로 복구가 가능하리라 짐작했다. 빤팁 플라자의 여러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usb external cdrom drive를 구하기가 만만찮다. pcmcia cdrom drive로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 usb floppy로 시도했으나 파티션이 ntfs로 포맷되어 있고 리패어 서비스 센터에는 ntfs를 다룰 수 있는 툴이 없다. 외외로군. 간신히 물어물어 usb cdrom drive를 찾았는데 그것도 안 된다. 주인장 말로는 도시바 전용 cdrom drive만 가능할 꺼란다. 벌써 네 시간이 흘렀고 지쳐서 그냥 나왔다.

빅씨의 4층 일식당에서 돈까스를 먹고 평일에도 밀리는 길을 버스 타고 돌아오는 길에 축제 행렬을 만났다. 축제가 시작된 것인지 교통 체증이 보통이 아니다.







즐겨 피우는 크룽 팁의 겉 표지에 이런 사진을 올리다니... 태국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게이다.



역시 게이다.



사타구니 사이가 아직 솟아있는 것을 보면 아직 덜 게이다.



뭔가 할 것 처럼 한참 지껄이더니...



닌자 차림의 두 남자가 무대에 나타나 굉장히 재미없는 퍼펫쇼를 한다.



파아팃 선착장 옆, 무슨 공원에서 바라본 라마 xx 다리



공연, 꽤 재미있었지만 밥 먹으러 갔다.



파아팃 선착장 옆의,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인데, 이름을 잊었다. 방콕에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오늘의 추천 메뉴를 소개해 달라니 뿌 팟뽕 까리와 똠 얌 꿍을 주저없이 권한다. 푸훗. 그 둘과 싱하 두 병, 밥 두 접시 해서 740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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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권 일자 변경은 실패. 버스표를 어제 간신히 예매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좌석이 없다. 복도 중간에 앉았다. 거참 자리 훌륭하다.

이 더위에 버스에 에어컨이 안 나오는 거야 뭐 늘 그랬으니 그렇다치고. 버스에 정말 전형적인 jerk처럼 생긴 젊은 미국인 남녀가 탔다. 여기가 발리섬이라도 되는지 하와이안 꽃무늬 반바지와 난방을 입고 있었다. 분위기가 상당히 안 어울린다. 밤새도록 미국 여자애가 징징대고 옆 자리의 아가는 울어대고 앞 자리 아줌마는 바닥에 드러눕고 차는 타이어가 터져서 새벽에 허허벌판 한 가운데 멎었다. 새로 간 타이어 역시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얼마 못 가서 다시 차를 세운다. 승객들과 운전수가 합심해서 지나가는 버스를 세워 바퀴를 하나 빌려 돌돌 굴려왔다. 터진 두 바퀴는 짐칸에 다시 쑤셔넣고 그 분량의 짐을 객실로 옮겼다. 버스 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일이 다 끝나자 차장이 미안한 지, 그들이 스노우 타월이라 부르는 '물수건'을 공짜로 하나씩 더 나눠준다. 다들 뜬 눈으로 고생 많았다. 잠도 못 자고, 미얀마에서 탄 것 중 최악의 버스다.

양곤에 도착해서 지친 나머지 택시를 타고 술레 파고다 까지 갈까, 삐끼와 간신히 2천에 협상 하고 택시에 짐을 실었다. 얼른 숙소 가서 씻었으면 좋겠다. 옷가지, 짐, 드러난 팔 다리에 온통 땀과 기름과 먼지가 얼룩덜룩 앉았다.

두 미국인은 나와 택시를 쉐어 해서 양곤에 들어가려다 말고 미얀마에 질렸다면서 바로 공항으로 간단다. 가 봤자 비행기 좌석이 당장 안 나와서 한참 기다려야 할텐데... 미얀마에 있는 내내 죽어라고 바나나로 연명하고 값 비싼 코카콜라를 마시면서(스타 콜라 가격의 무려 일곱배다)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 택시 협상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뭐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니 멀뚱히 쳐다봐 주었다. 어쨌든 꽃무늬 티셔츠, 반바지 차람의 럭셔리 배낭 관광객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처음 봤다. 버스 터미널에서 공항까지 천짯이면 충분한데 무려 십 달러를 준다. 가는 길을 지켜봐 줬다. 힘들었는지 표정이 많이 안 좋다. 불쌍한 녀석들...

택시가 손님 더 끌어모으려고 기다리길래, 짐을 내려 터덜터덜 버스 터미널 입구까지 걸었다. 바보같은 택시 삐끼 녀석들, 밤새 고생해서, 2천씩이나 내고 자진해서 봉이 되 주겠다는데 다른 손님 태우려고 욕심을 부리니까 손님을 놓치는 거지. 50짯 주고 물어물어 시내버스에 올랐다.

옆 자리에 미얀마 에너지성에서 근무하는 샨족 출신의 할아버지가 앉았다. 그의 고향은 시뽀였고, 일본에서 컴퓨터 컨트롤 시스템 교육을 받고 캐나다에도 있었지만 정부에 소속된 관리라 다시 미얀마로 돌아왔다. 언젠가 내가 다시 미얀마를 방문하게 되면, 자기는 내년에 은퇴하여 고향에 돌아가니까, 시뽀로 놀러오란다. 40여년을 기술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부럽다. 행상을 짊어지고 나와 함께 버스 타고 열일곱 시간을 달려왔지만 몰골은 그래보여도 아세안 에너지 부문 미팅에 참석하는 엘리트다. 이 나라의 엘리트들은 말년에 쉬지도 못하고 텔렉스 전문 한 통과 동봉한 버스표 한 장 달랑 받고 먼 길을 제발로 찾아와 국제 행사에 참석하나 보다. 그는 자신이 샨족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악수하고 헤어졌다.

단지, 전세계 배낭 여행자 숙소 중 세계 최고의 무료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는 자화자찬을 확인할 겸(디스커버리에도 나온 적이 있는지 요란한 선전 문구가 입구에서부터 새겨져 있다), 화이트 하우스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6달러 짜리 값비싼 8층 독방에 체크인 하고(아무 생각없다. 이 상태로 도미토리에서 도저히...) 샤워하고 8시부터 시작하는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다. 거짓말이 아니다. 돌아다녀 본 어떤 나라도 아침 식사가 이런 성찬인 곳은 없다. 심지어 '식중독 경고'까지 붙어 있었다; 아래와 같은 것은 함께 먹지 말 것, 식중독 걸림: 수박과 계란, 라임과 우유, 망고스틴과 설탕. 아... 그렇구나. 하나 배웠다. 그런데 음식을 그렇게 안 내 놓으면 될 것 아니야?

샤워하고 방 안에 퍼져 있다가 티켓 오피스가 문 열 시간 즈음에 프론트로 내려가 푸켓 에어라인 오피스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왠 여행사를 가르쳐 준다. 사쿠라 빌딩 일층의 sun far라는 곳. 지쳤지만 이놈에 신년 때문에 또 발이 묶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꾸역꾸역 걸어갔다. 직원이 30분 쯤 간신히 전화하고 나서야 티켓 날짜를 '드디어' 바꿨다. 아... 만들래, 바간 때부터 계속 시도했는데 정말 징하다. 이 나라의 전화는 대체...

아까 할아버지 말로는 미얀마의 인터넷 라인은 바간넷 이라는 사설 회사가 아이비스타의 회선을 임대해서 운영한다고 하는데(그의 처제?가 그곳에 근무한다), 다른 데는 안 될지 몰라도 양곤에서는 인터넷이 가능할 꺼라고 말한 기억이 나서 사이버월드라는 인터넷 카페로 찾아갔다. 그는 자신의 대부가 살고 있는 캐나다와 자주 email을 주고 받았는데 얼마전부터 계정을 차단 당했다고 한다. 옆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어서 자세한 얘기를 더 하지는 못했다. 입 조심 해야지.

인터넷 카페에 찾아가 양 손을 비비며 이제 사진을 올릴 수 있겠구나 히히 했는데 왠 걸, ftp 포트를 여전히 막아놨다. 한 장, 한 장 손으로 올리면 되지만 20메가 분량의 백여장 사진을 그렇게 올릴 수는 없고. 터미널 서비스 포트도 막아놨고 메신저 포트도 막혀 있고 dns 연동이 안 되고, 심지어 nslookup조차 막아놨다. 웹질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것도 프록시에 여러 제한을 둬서. 중국도, 이란도, 시리아도,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는데. 이 나라 군부독재 여러분, 정말 대단하십니다요.

미얀마 여행은 끝났다. 짧은 시간 동안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체력이 허덕여 힘들었다. 더워서 많이 둘러 보지 못했고 더 돌아다니다가는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될 것 같아 인레 호수는 가지 않고 양곤으로 돌아왔다. 미얀마에 대한 인상이 참 좋다. 새해와 건기 막바지가 겹치고 물이 몸에 안 맞아 항상 입이 바짝 타 있는 등 여행하기에는 괴로웠지만, 시골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친절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것 외에는, 볼 것은 없는 나라다. 파고다 매니아라면 또 모를까. 기예하고는 '약간' 거리가 있는 무수한 파고다, 파고다, 또 파고다, 부다, 부다, 부다들은 좀...

윌리엄스라는 학자는 미얀마의 역사를 이라와디 강의 흐름에 비유했다. 이라와디 강의 저류는 변화하지 않고 상층부는 흐른다는 것. 그러니까 외세의 침탈과 수난, 모진 식민 역사를 겪어 왔지만 버마 사람들의 문화와 사회는 마치 강바닥의 저류처럼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남아에는 문자화된 역사 기록이 오직 베트남에만 남아있어 서기 이전의 역사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나는 너무나 오랫 동안 동남아를 식민지 침탈의 정치경제적 역사 현장으로만 인식해 왔고, 그러한 내 관점이 동남아를 바라보는 시선을 상당히 왜곡했다고 생각한다. 다음 번 여행에서는 접근 방법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왜 여행 중에 방문하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해 이 지랄을 떨고 있을까. 일부를 제외하고 개인사는 보잘 것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문화와 사회 전통은 그들의 삶이 영위되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따라서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그들을 이해하는 주요한 지침이 된다 -- 이런 대외적 선전 문구 보다는, 그 나라를 좋아하기 위해서다.

시프트, 컨트롤, 영문 o, 숫자 일, 숫자 9 키가 안 먹는 맛이 간 리브레또의 키보드로 몹시 힘들게 타이핑 한, 미얀마에 대한 '문자화된' 내 여행 기록은 여기까지다.

방콕 도착. 할 꺼 다 하셨으니 맛있는 거 먹으며 스킨 케어하고 살 찌우고 놀자. 얼굴이 정말 맛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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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Bagan

여행기/Myanmar 2005/04/07 20:34
아침에 일어나니 벼룩 물린 자리가 예닐곱 군데 생겼다. 미얀마 벼룩은 36.7도의 따뜻한 고기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 중에 영국인 여자와 '데이'를 '다이'라고 발음하는 영국인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인도에 있다 와서 짜이맛을 그리워 했다. 그가 양곤에서 만난 세 한국인 여자들 얘기를 했다. 꼴까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무작정 양곤에 왔는데 가진 것이 카드 뿐이고 수중에 달러가 없어서 애를 먹어 한국 대사관을 찾고 있단다.

미얀마에는 us 달러 외에는 거의 사용하기 힘들다. 어제 만난 오스트라아 친구는 유로당 850짯이라는 환율상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간신히 유로를 짯으로 환전할 수 있었다. 대사관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긴 하지만, 만날 수가 있어야 도와주지. 인터넷은 커녕 전화기에도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간신히 통화할 수 있는 형편이니. 옆에 있는 영국 여자가 참견하길, 큰 호텔에서 비자 카드로 7퍼센트의 수수료를 떼고 현금 지급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자기는 그렇게 했다고. 혹시 시도나 호텔 아뇨? 그렇단다.

항공권 일자 변경이 잘 안되어(전화가 잘 안된다) 열 시까지 시도하다가 전날 예약한 마차 투어를 시작했다. 어쩐지 타운에서 나만 마차 투어하는 외국인 '봉' 같다.

바간은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가 들어섰던 곳이고 왕조를 형성한 지 3대 만에 몽골이 심심해서 침략했다가 멸망했다 -- 몽골 녀석들은 말을 한 번 타면 어떻게 멈추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왔다가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시시했는지 그냥 돌아갔다. 그걸 역사상 중요한 사건으로 여기는 관점과 달리 미시 역사 해석에서는 왕조의 절멸이 북부 미얀마 문명의 절멸을 의미하지는 않고, 미얀마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역사학자들이 즐기는 그 관점에서는 몽골의 침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 3대째 왕의 무리한 파고다 건설 작업에 의해 국부가 바닥난 상황이라 몽골의 침략은 단지 마지막 쐐기를 틀어박은 것이라고 한다. 대다수 파고다는 바고에서 끌고 온 3만여명의 중들이 설계하고 만든 것이다. 지역 전체에는 4천 여개의 파고다가 있었고, 그중 2천개는 지진이나 전란 등으로 무너졌다.

파고다에 관해 일일이 설명하기가 귀찮다. 사실상 이곳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원 외형은 몇 안되었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이고 무지한 관점에서다.

마부는 젊은 친구인데 적당히 일하고 돈을 벌려는 생각인 것 같아 다소 빡세게 굴렸다. 오후 세 시가 넘자 눈에 띄게 지쳐서 음료수 하나 사주고 다독이며 계속 굴렸다. 별 이유는 없었다. 바고에서 늙은 싸이카 운전수는 다섯 시간 넘게 그 앙상한 몸뚱이로 제 다리를 놀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둥 말둥 일해 간신히 돈을 벌었는데 이 녀석은 6천짯이나 되는 돈을 마차를 몰며 편히 다니는데도 날더러 다른 관광객은 그렇게 많은 곳을 둘러보지 않는다 둥, 날도 더운데 두 시쯤 마무리하고 돌아가자는 둥 바간의 무수한 파고다를 향한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지닌 손님을 무시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계약의 무서움도, 돈벌이의 힘겨움도 모르는 스물 네살 짜리 인생에게 다소 살벌하게 구는 것을 보니 나도 많이 늙은 것 같다.

그의 이름은(미얀마 남자는 여자와 달리 성이 없다) 바간 왕조의 두번째 왕의 이름이지만 자기 이름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미얀마인은 출생한 요일에 해당하는 미얀마 글자 자음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갖는다.

파고다의 여러 사이트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가끔, '오빠', '진짜 루비', '구경하고 가세요' 따위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들이 프레젠트를 주고 받은 천원 짜리 지폐를 짯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들은 손으로 만든 작고 보잘 것 없는 선물을 건네주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관광객의 주머니에서 기어이 천원, 오십밧, 십위엔, 백 리알 짜리 지폐를 꺼내게 만들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쳤고, 그들에게 그들이 그린 그림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기도 했다. 상황이 웃겼다. 바간의 환쟁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그림을 그려서 판매하는데, 자기가 그린 그림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크리슈나를 부처라고 하기도 하고, 마라를 천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날도 더운데 돌겠다.

바간의 넓은 사이트에서 만난 미얀마 사람들은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임을 느끼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사람들도 이 지경까지 '무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뽑기에서 아주 나쁜 패를 뽑은 것 같다. 고수들은 이 더위에 집에서 쉬고 있나 보다.

몇몇 사이트에서 본 페인팅은 더 바랄 나위없이 훌륭했다. 작열하는 태양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사원들을 팔짝팔짝 뛰어다닌 보람이 있다.

비록 겉 껍데기는 인도 짝퉁 사원이지만(수학적 엄밀함에 필적하는 대칭성에서 비롯된 아름다움, 복제 손실과 그 문화가 지닌 독자적인 창조적 재해석 등 여러 관점에서) 그런 그림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대개의 그림은 부처의 행적을 묘사한 것인데 면 캔버스에 회반죽을 입히고 벽면에 고착시킨 후 여러 암석에서 추출한 염료와 금가루를 섞은 안료로 그렸다. 십이세기 무렵의 그림인데 열대성 기후에서도 그 화려한 색채를 잃지 않은 것도 있다. 십이세기나 되었는데 사실 그림의 정교함은 좀...

보전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지만(터키의 카파도키아라고... 네스토리우스의 버섯 둥지에서 본 적이 있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페인팅을 생각하면 관광객으로서 판단컨대 가격대 성능비가 양호하다) 관광객들이 마음대로 만지게 하고, 백열등을 비추는 등 관리 상태는 아주 나빴다. 나야 늘 그렇듯이 사진 찍지 말라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대다수 역사 유적지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전등을 비추는 것이 그림을 더 손상시키는 것임에도, 디지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게 하는 것을 대단히 우스꽝스럽게 여긴다.

바간 지역은 워낙 광활해서 둘러보는데 만도 며칠이 걸릴 것 같다. 이 더위에 제대로 둘러보긴 무리일 듯. 마차를 타고 편하게 돌아다니는데도 지친다.

지나가다가 자전거를 타고 사이트를 순회하는 일본계 미국인 여자를 만났는데, 날더러 대뜸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니까 편하고 좋겠어요' 라고 말한다. 그녀의 남편은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자전거를 허리춤에 기대놓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암요. 그 재미죠(yep, that's why i took the horse wagon) 라고 말하고 미소지으며 그녀의 헉헉거리는 자전거를 추월했다. 그녀는 의식있는 훌륭한 남편을 둬서 정.말. 좋겠다. 답사는 역시 말 다리가 아닌 자신의 두 다리로 직접 해야지, 나처럼 마차 타고 드러 누워 한가하게 돌아다니면 안되고 말고. 정말 서양인들의 체력은 끝내주는 것 같다. 자전거야 500짯이면 빌리고 원하는 곳은 어디나 갈 수 있는데, 이 놈에 호스웨건은 6000짯이나 하면서도 드라이버와 어디 가자 어디 가지 말자 신경전을 벌여야 하니 말이다. 아, 덥다. 이번에는 어느 사원으로 다그닥다그닥 느긋하게 달려가 볼까.

거의 모든 한가한 삐끼들은 한결같이 내 목에 두른 손수건을 탐냈다. 한국 천의 품질과 발색의 우수성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지. 물건 볼 줄 아는군. '진짜 루비' 정도면 견줄만 한 거야. 이것하고 같은 빨간색 루비하고 바꾸자니까 손사레를 친다. 손수건을 물에 적셔 목에 두르면 시원하고 신경계의 열폭주도 막아준다. 내 시계도 탐을 냈지만 그에 상응하는 값어치를 지닌 물건은 안 보인다.

어떤 녀석은 불상 머리를 잘라 팔려고 했다. 왜 그러는거야 대체 엉? 한참 캄보디아가 앙코르와트 하나로 먹고 살고, 문화재가 어쩌고 저쩌고 설교를 늘어놓았다. 이 김에 인디아나 정스 짓이나 해볼까. 11세기 무렵의 빨리 한 보따리 가지고 오면 시계와 바꾸겠다고 말했더니 표정들이 진지해진다. 구하지 못할 꺼니까 어떻꼐 잔머리 굴려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모조품을 미리미리 준비해 둘 것이지. 파고다에서 방금 캐낸 것처럼 적당히 박쥐똥 냄새와 썩은 내도 나게 해서. 산스크리트와 빨리어 잘 아는 나이 든 중 하나 꼬셔서. 장삿꾼들이라 장사만 안다. 장사 잘하려면 물건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안 그럼 용팔이처럼 헛소리나 늘어놓고...

물론 미얀마 정부는 안틱의 외부 유출을 막고 있다. 지나가는 관광객 한테 자기들 유물의 가치에 관해 되레 설명을 듣고 있으니 어디 관광지에 가나 장사꾼들이 무시당하는 거다. 뭐 일단 값어치 있는 것들은 일찌감치 벌써 털려 나갔을 것이다. 남은 것들은 쓰레기 뿐. 그러나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평범한 시장통에서 오래된 골동품이 보이듯이 여기도 대외적으로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던 국가였던 터라 잘 뒤지면 뭔가 나오긴 할 것 같다.

투어가 끝나니 오후 6시, 말은 뻗은게 이해가 가는데, 마부도 뻗었다. 소파에 널부러진 그의 손에 돈을 쥐어 주고, 내년에 또 보자니까 질렸다는 듯이 히히 웃고 슬며시 외면한다. 녀석... 마음에 안 든다. 이 놈은 한국인을 좀 더 만나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워낙 아는 것이 없고 제 편한대로 게을러서 추천해주긴 뭣하다.

사진은 많이 안 찍었다.








































































저녁에 누와 레스토랑에 들러 가격대 성능비가 우수한 천짯짜리 미얀마 백반을 주문하는데, 날더러 일본인이냐길래 한국인이라니까 일하는 아가씨들이 꺅꺅 소리를 지르며 난리 법석을 부린다. 조금 있으면 저기 틀어놓은 tv에 한국 드라마가 나온단다. 태국에서 요즘 한창 '불새'라는 드라마를 하는데 혹시 그건가? 그렇잖아도 미얀마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얘기를 나한테 부러 하던데, 날더러 뭘 어쩌라고. tv에서 한국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재빨리 밥 먹고 튀었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냐웅 우 주변 마을과 쉐지곤 파고다를 돌아다녔다. 라기 보다는 길을 잃어 정처없이 헤멨다. 숙소와 레스토랑이 몰려있는 관광지인 냐웅 우 지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미얀마 촌락의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산다. -끝-

오늘도 어제 만났던 일본계 미국인 여성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쉐지곤 파고다를 방문했다. 난ㄴ 일본 여성들에게는 비교적 친절한 편이다. 그런데 어제 나하고 함께 온 오스트리아 외톨이는 어디 짱 박혔길래 관광 안 하고 있는 것일까. 만나서 내가 신경 써서 완성한 밀리터리 캠프 아이디어를 들려주고 어떤지 물어보고 싶은데. 일본 여성에게 남편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숙소에서 쉬고 있단다. 푸훗.

특이하게도 그녀는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삐끼들이 돈 많은 일본인 취급해서 귀찮지 않냐고 물으니 그렇잖아도 괴롭단다. 그럴 땐 한국인 행세를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마흔이 넘은 지금이 처음 동남아를 방문하는 것이다. 일본도 안 가봤다. 남편 참 대단한 사람이다. 여긴 인도에서 굴러다니는 녀석들이나 좋아할만한 곳이지 왠만한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텐데. 학교 교사고 딸이 하나 있고 자기는 남편 말 듣고 따라 왔는데 이렇게 고생스러운 줄 몰랐단다. 잠시 뒷골이 땡겼다. 아내하고 다닐 때 저 아줌마 남편처럼 나도 그랬던 것 같긴 한데, 함께 파고다 경내의 달구어진 돌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다가 버스 시간이 가까워져서 헤어졌다.



Shwezigon paya, 붓다의 치사리를 등에 지고 돌아다니던 코끼리가 '''더위에 지쳐''' 멈춘 자리에 세운 사원.



Shwezigon paya, 아, 이것은 남인도에서 많이 보던 방식. 왠만큼은 건전한데, 한 군데, 반나의 여자들이 승려 밑에서 춤추고 있다. 뭐하자는 걸까. 약올리는건가? 아니면 육보시?



Shwezigon paya, 미로처럼 얽힌 회랑을 따라 걷기. 만만해 보였는데, 십분 가량 걸은 것 같은데, 미로가 끝이 안 난다. 그래서 허들을...



Shwezigon paya, 그럴듯. 설교듣는 분위기 나올 듯.



Shwezigon paya, 동쪽 입구의 긴 회랑을 걷던 중 왼편에 보이던 힌두 사원. 아저씨는 사방을 두리번 거리더니 오줌을 누었다.



쉐지곤 파야 Shwezigon paya, 동쪽 입구의 긴 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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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to Bagan

여행기/Myanmar 2005/04/05 14:32
6시 기상. 숙소 카운터에 가서 티켓을 다시 물었다. 금시초문인 듯 한 말 또 하게 만든다. 어젯밤 다시 이 숙소를 찾아왔지만 도무지 나로서는 숙소 스태프들이 친절한 줄 모르겠다. 남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저 앵무새처럼 '안녕하세요'하는 정도랄까. 그들은 백불 환전해 달라는 내 부탁도 잊어 버렸고, 바간 버스 시간표를 아는 내 앞에서 바간 버스는 하루에 오후 한 편 뿐이라고 우겼고, 아침식사 준다는 말도 안 해서 저번에는 아침을 걸렀고, 체크인 다 마치고 20분 기다리는 동안에도 방 청소가 안 끝났고, 다시 찾아온 손님을 이래저래 귀찮게 하고(두번째 체크인인데 패스포트를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어젯밤 부탁한 티켓을 알아보지 않아 다시 묻게 만들었다. 좋은 숙소란 생글생글 웃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말 붙이는 것보다 손님을 위해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곳을 말한다.

사적인 통화를 하느라 20분이 지나서야 티켓 상황을 알려준다. 자리가 없단다. 입석이라도 괜찮냐고 묻는다. 일종의 감이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오늘 바간 가는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 명 있단다. 그러고는 은방울 자매와 스태프는 그 건을 잊은 채 태평하게 앉아 있어서, 내려오는 여행자들 마다 바간 가냐고 물었다. 이틀 동안 본 친구다. 택시 쉐어 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왔다. 로얄 게스트 하우스가 친절? 그냥 평범한, 그저 그런 숙소다.

택시를 같이 탄 친구는 오스트리아에서 왔다. 내가 구질구질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만난 얘기를 줄곳 장황스럽게 늘어놓는 이유는, 아내가 나는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구질구질한 얘기, 한 이야기 또 하게끔 하는 이야기가 별로 내키지 않아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처음 나누는 말들이 무엇인가. 신변과 하는 일(여행에서 만난 여행자라면 여행 얘기)에 관한 것들이다. 서너번 하다보면 질린다. 어쨌거나 그게 얼마나 재미없고 지겨운 얘기인지(특히 아내는 거의 믿지 않을테지만, 나처럼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증명하려면 좀 더 흥미로운 주제를 제쳐두고 사람들 만난 얘기를 늘어놓겠다. 그러다보면 여행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라는 남들의 개똥철학이 가진 자기모순이 스스로 드러나겠지.

택시 잡으려고 돌아다니다가 택시 삐끼가 하나 접근해서 버스 터미널까지 간다니까 운전수가 2천 달라고 하자 대뜸 하는 말이 i don't like cheating. don't cheat me. 였다. 갑자기 앞날에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 원체 서양 여행자들하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왜 가격 뻔한 걸 가지고... 그 친구가 잠깐 환전하러 간 사이 여러 택시 삐끼들과 환담을 나눠 판단해보니 2천이 적정선 맞다. 20분 남았는데 500짯 주고 싸이카 타고 가기는 시간이 늦고, 택시를 잡았다. i don't like cheating 어쩌구 하기 전에 시계를 보여줘서 입을 막았다. i don't like cheating이라니... 간만에 들어본다. 내가 알기로 치팅을 즐기는 여행자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숙소에서는 좌석이 없다고 했지만 믿는 구석이 있어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돈을 지불했다. 4200짰, 이제 대충 교통비를 감 잡았는데, 시간당 500짯으로 계산하면 소여시간과 도시간 이동 교통비가 얼추 드러난다. 4200짯이면 8시간 거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빙고! 좌석이 있다. 그럼 그렇지. 한 시간 전에 예약해도 자리는 난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좌석을 강제로 양보당했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짐을 버스 상판에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오스트리아 친구와 나란히 일,이번 상석이다. 버스는 30분 후에 출발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 친구는 치앙마이에서 항공권을 끊어 만달래로 곧장 날아왔다. 복식의 특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인도에 다닌 티가 났다. 정말 그랬다. 제일 좋아하는 인도의 도시가 어디냐고 물으니 푸시카르란다. 푸시카르? 버스 여행 하다가 속이 뒤집혀서 푸시카르에서 묵게 되었는데 요양겸 며칠 쉬다보니 3주를 묵었단다. 25루삐짜리 숙소에서. 스물일곱, 독신, 학생. 가족은 아버지와 스페인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하나 뿐이고 빈에서 비즈니스 스쿨을 6년 다녔다. 빠이에서 잘 놀다가 누가 미얀마가 좋다는 소리를 해서 왔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빠이는 완전히 맛이 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태국 동부와 태국 최남단의 괜찮은 처녀지가 아직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기차 운전수였고, 그는 열살때 처음으로 기차를 몰아봤다. 기분 끝내줬겠다. 그래서 기차를 좋아하지만 버스는 영 아니란다. 남인도 얘기를 하다보니 그가 사원에도 제대로 들어가 본 적이 없고 프리스트와 노가리 까 본 적도 없고, 사두와 놀아본 적도 없는 등 다른 많은 서양 여행자들처럼 인도에서 재미있는 것만 쏙 빼고 불쌍하게도 다르질링이나 스리나가르 같은 곳에서 짱박혀 시간 죽이다 보니 깔리가 년인지 놈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인 것 같다. 다른 많은 '전형적인' 여행자처럼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고생담을 줄줄이 엮고 가끔 나이스 플레이스 한둘 쯤 튀어나오는 뭐 그런 것이다.

날더러 종교가 있냐길래 없다니까 놀라워 하는 눈치다. 한국에서는 출생 신고서에 종교를 적지 않냐고 묻는다. 한국에 종교 비슷한 것이 있는데 종교 라기보다는 종교 마케팅과 종교 삐끼와 종교 시장이 있어서 수요자들이 종교 쇼핑을 한다고 대꾸했다.

네가 한국에서 밤 비행기 타고 돌아다니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네온 글로우 크로스를 볼 수 있는데(월리엄 깁슨을 아냐? 알면 상상이 될꺼다. 모른다) 마치 거대한 그레이브 야드를 연상시킬 것이라고, 도시는 그런데, 한국의 모든 산에는 호국 몽크들이 죽치고 있는 템플이 있어서 크리스찬과 몽크가 종교시장에서 경합을 벌이는 중이며 공식적으로는 한국의 종교시장을 크리스찬과 몽크가 7:3으로 나눠 먹고 있는데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해줬다. 종교시장은 그렇지만 그 생활과 문화가 종교와 분리되지 않은 의미에서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의 개신교가 선교 활동이라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활동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에게는 그게 무척 신선했던가 보다. 종교 얘기를 한참 하고 나서야, 중국, 일본, 한국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관한 얘기가 뒤따랐다.

말한 것 중 요점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한국, 일본은 중국은 한 뿌리다. 자기들끼리는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그 문화, 역사가 동아시아권 역사로 통합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앞으로 골치아픈 문제들이 많다. 뭐 그 정도.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 지도 모르는 형편이라 한국이 20세기 신흥공업국가 중에서 매우 큰 생장(성장이 아니다)포텐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약하다는 것도 모른다. 그가 한국이 모더나이즈된 국가라고 할 때 나는 한국이 웨스터나이즈된 국가라고 야유했다. 그는 내심 한국의 생활 수준이 동남아 여러 국가 보다 약간 나은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아는게 그거 밖에 없으면 그거라도 알면 된 거다 굳이 알려줄 필요 없고 서양 사람들한테 한국이 어떻다느니 설명하는 것을 별로 잘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여행을 통해 동양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그 나라 사정을 알게 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한국의 숙소 가격이 얼마냐고 묻길래 미니멈 십불이고 그걸로는 거지같은 방 하나 간신히 구하니까 유스호스텔을 잘 찾아보라고 말해줬다.

십오세가 넘은 사람은 오스트리아에서 직업과 진학 둘 중에 하나를 스스로 선택하는데 대부분 직업을 선택해서 오스트리아 인들 중에서 자기만큼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유럽식 교육의 문제점을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그만큼 영어를 잘 하는 오스트리아 사람을 여러 번 만났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인간은 호모 제록스라서 반복암기, 복제를 통한 학습이 창의력 운운하며 실제로는 그저 스스로 생각하게 하려고 '방치하는' 학습보다는 유효하다고 본다. 창의력의 상당 부분이 섬세한 복제 능력, 따라하기에 좌우된다는 것은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얘기다. 소위 창의력(창조적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좀 더 기술자스럽게 말해)의 습득 시기가 영아 때 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20세 이전까지 단순 암기 학습한 것들이 전면에 등장해 뇌에서 조화로운 양자 폭풍(패턴 일치, 깨달음 등 뭐라고 부르건 간에)을 일으키는 시점은 십육세-이십세 무렵이 맞지 않을까 싶다.

(영아때 사고의 자율성을 통제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그것이 발현될 토양이나 사고 선택의 자유가 현세 이전에 단지 부족했을 뿐일 수도 있다. 한국인이 밀집 사회에서 별고없이 존재하려면 자신의 미친 생각을 합의 가능한 최저-상한 수준으로 노말라이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을 보라. 이제 아무도 한국 사회가 초딩부터 보수 꼴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사회를 박살낼 것 같은 반타협적이고 자기중심적 규준으로부터 균등 조화와 이데올로기의 일치를 목말라 하지 않던가?

내 견해는 그러니까 창의적 사고방식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암기 등의 방식으로 충분한 지식을 습득하고(이 과정이 가장 중요. 영아 시기를 지나면 지식의 흡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지식-수단을 확보하지 않은 채 사고를 전개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봄) 더불어 학습의 방법을 배우는 등의(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자발적인 사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맞지 않냐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그럴듯 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의 자유방만한 유럽식 교육의 문제점에 맞장구를 쳐 준 것이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창의력 교육이나 대안교육이 기존의 강압적이고 전통적인 학습에 비해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다고 여겼다.

흠, 영어나 학습은 그렇다치고,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세계 인식이 없으면 그냥 오스트리아라는 깡촌에 사는 촌뜨기에 불과하다. 그는 여행이 한국인을 만나 한국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지적인 면에서 나같은 한국 여행자를 통해 그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한정적이다. 차라리 한국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읽고 한국에 찾아가서 사회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아야지, 나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한국 상황은 나름대로 즐거운 무협지가 되어 버린다. 학습에 관한 얘기 이후로는 입 안으로 먼지를 삼키며 졸기 바빠서 더 이상 대화에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차가 송아지를 치일 뻔 해서 깨어나 다시 잡담을 늘어 놓았다. 어찌된 일인지 승객이 30퍼센트는 늘어난 것 같아 버스가 미어터질 지경이다. 그가 한국에서 갈만한 곳이 어딘지 추천해 달란다. 한국만의 독특한 관광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외국인을 만나면 떠들어대는 내 십팔번은 백두대간 종주이지만 너무 자주 써먹어서 나 자신이 식상해진 나머지 새로운 아이템을 떠올려 보았다.

요즘 유행하는 템플스테이를 알려주었다. 외국인 여행객 상대하는 여행사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성공할 것 같은데, 절간에서 몽크들과 함께 참선하다가 잠시 딴 생각하거나 조는 머리통에 죽대를 한방씩 날리면 중들도 재밌어 할 것 같다. 제대로 하기 위해, 머리는 민다. 자기가 먹을 나물은 자기가 캐도록 하고 숙소 청소 등속도 '마음 수양'을 위해 본인이 알아서 하게 하면 되니까 절간에도 여러 모로 큰 노력 안 들이고 이익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두번째 테마는(이건 말하지 않았다) 한국 고유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밀리터리 트레이닝 캠프다. 제대해서 놀고 있는 조교들 모아 가슴에 명찰 하나씩 붙여준다. 'license to kick'이라고, 한국 군대의 강도높은 훈련은 주둥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일단 한국의 살벌한 분단 대치 상황을 설명하고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잠시 브리핑한 후, 돈 내고 들어온 여러분은 조인트를 까여도, 불알 한 쪽이 터져도 그 책임을 묻지 않겠으며 여기서 받은 훈련 내용을 절대로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별 이유는 없다. 장사속이다) 피의 각서를 쓰게 한 후 입교시킨다.

훈련은 6주 과정이다. 여행자 훈련생들의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이마데 돋은 식은 땀을 닦게 될 정도로) 살벌한 훈련과 갖은 구타를 통해 그들은, 한국식 군대용어로, 드디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만일 자기 힘 믿고 개기는 혈기 왕성한 놈이나 방법론적 회의에 심취한 녀석이 있으면 그 즉시 조교들 떼거리로 집단구타를 실시한다. 그리고 훈련이 없는 날에는 잔디깎기와 경쟁을 붙여준다.

훈련 일주차, 마리화나에 쩔은 몸을 갱생하고 플라워 파워를 믿는 온갖 히피스러운 정신상태를 고상한 맨정신, 즉 군바리 정신으로 일깨운다. 훈련 2주차, 익숙해질만하면 온갖 트집을 다 잡아 군대란 그저 집에 키우는 강아지처럼 상사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곳임을 똑똑히 깨닫게 만든다. 훈련 3주차 pt열나게 시키고 마지막에 실탄 사격 훈련 5분 실시하고 훈련 4주차에 일주일간 행군을 실시하여 개인주의자에게 동성애, 아 실수, 동지애를 가르치고, 5주차에 야산을 빌려 서바이벌 북진 통일 게임과 일본 원숭이 정벌 게임을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예로운 향토 예비군복을 지급한 후 이틀에 걸쳐 진정한 전역 군인의 행동거지를 지도한다. 이거 의외로 익사이팅하고 도전적이다. 대다수 국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군 경험이 전무하며 한국군의 훈련 강도는 세계적으로 수준이 높다. 장비가 후져 정신력으로 버티다보니... 이 밀리터리 캠프의 단점은 실탄 사격 연습이 가능한가와 이런 걸 즐기는 개마초들에게 묘한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 친구에게는 아시아권 최고의 밤문화를 자랑하는 한국의 나이트 부킹 또는 루어낚씨질을 소개해 줬다. 한국에 놀러온 여행자들이 동아시아 일대를 휩쓸고 있는 영어 학습 열풍에 힘입어 쉽게 강사 자리를 얻고 수많은 현지 여자들을 골라 사귀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등등.

이렇게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여덟 시간에 걸쳐 했다. 내 자신이 지겹다. 이런 얘기나 늘어놓으려고 비싼 돈 들여 여행하겠나. 아내 말대로 나는 사람을 가린다. 귀찮아 한다. 오늘 충분히 했고 아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만은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매우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라면 믿지 않겠지. 가급적 안 만난다. 안 만나고 얘기 안 한다. 그게 내 삶에서 앞으로 주욱 나아갈 방식이다.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오스트리아 촌뜨기는 버스에 내려서 삐끼떼가 몰려오는데도 전혀 기뻐하지 않고 그들을 마다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삐끼 하나 골라잡아 마차에 누워 숙소까지 띵까띵까 가는데 그는 배낭 메고 졸졸 따라온다. 마치 다른데 갈 것 처럼 두리번거리면서. 숙소에 도착해서 안 도와줬다. 협상 안되니까 멍하니 있다가 다른 데 가서 에어컨도 없는 방을 이틀에 십불로 잡았다. 나? 나는 그가 협상하다가 실패한 아가씨더러 예쁘다고 한 마디 해주고 더블룸 에어컨 있고 배쓰 포함해서 이틀에 7불.

이번 여행에서는 가이드북도 안 들고 왔고, 프린트물도 쳐다보지도 않고, 아내가 즐겨하는 방식대로 무작정 가서 알아서 하는 방식을 택했다. 숙소 매니저에게 항공권 날짜를 바꿀 수 있는지 항공권을 맡기고 괜찮은 식당을 물었다. 미얀마식 백반으로 오랫만에 포식했다. 대략 2달러에 고기 커리 한 가지와 열 다섯가지 반찬, 국, 한 솥 분량의 밥이 통째로 나오고 식사가 끝나면 세 가지 디저트를 먹는 코스다. 모든 반찬이 기름에 볶아 기름기가 너무 많고 약간 짜서 반찬을 많이 먹지는 못했다.

숙소에 벼룩이 있는 것 같다. 에어컨을 틀고 나일론으로 된 츄리닝을 입고 잤다. 벼룩은 나일론을 싫어한다. 그나저나 젠장 난 왜 맨날 벼룩에 물리냐...

열시 무렵에 픽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빨래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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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났다. 닭들이 우짖는다. 미얀마 닭들은 마지막 여운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꼬끼요꼬끼요' 대신 '꼬끼요 꼭'하고 잘룩 울음허리를 끊었다. 낮에는 발음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베란다로 붉디 붉은 해가 떠올랐다. 해 뜨는 시각 5:30am, 해지는 시각 6:30pm.



2달러가 안되는 괜찮은 숙소의 아침.

주인 아줌마의 추천으로 옆집에 가서 '꼭이요 꼭' 아침 닭으로 국물을 우려낸 맛있는 샨족 스타일 국수나 먹을까 했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근처 찻집에 앉아 라파이를 시켜 한 잔 들이키고 뜨거운 차를 몇 잔 더 마셔 속을 풀었다. 입술이 하얗게 떠 있다. 숙소 주인장에게 기차 시간을 물으니 'nine thrity maybe'에 출발한다고 알려준다. '아마도 9시 30분'까지는 '최소한 한 시간'쯤 여유가 있어 동네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아름다운 동네 정경. 오른쪽의 쓰레기만 빼고. 아침을 만들어 먹으려고 곳곳에서 피운 장작불 탓에 대기가 뿌옇다. 어쨌든 호빗족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같지 않을까 싶다. 오른쪽 쓰레기만 빼고.



잠에서 깬 사람들이 다운타운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샨 궁전에 갔으나 너무 이른 시각인지 문이 닫혀 있다. 그에게 샨족 역사에 관해 듣고 싶었는데 아쉽다. 샨족은 아마도 중국 서북부에 사는 장족이 이주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샨 궁전만 빼고 사실상 이 동네의 모든 '관광' 포인트를 어제 다 둘러본 것 같다. 트레킹이 있는데 소수민족 구경거리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는 주인장한테 온수 샤워는 필요없다고 떵떵거렸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쌀쌀하다. 공동 샤워장에서 슬그머니 온수 수도꼭지를 돌려보았다. 윽 차거. 태양열 축열로 쌓아놓은 온수는 어젯밤에 벌써 다 식었나 보다. 방값을 지불하고 체크아웃했다. 주인 아줌마는 장사속이라고는 볼 수 없는 목소리로 며칠 더 쉬다가지...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기차역 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개를 끄떡이며 들었다.



아침 시주 행렬에서 본 괴승. 가다가 pda를 숙소에 두고 온 것 같아 철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배낭을 열어 뒤적이고 있었는데, 슬며시 다가와 시주받은 과자 하나 건네주고 쓰읍 웃더니 자기 갈 길을 간다. 중들이 원래 시주받은 거 사바세계의 평민 족속과 나눠먹기도 하던가? 아니, 그건 그렇고, 내 몰골이 뭐가 어쨌길래 자비심이 발동한 거지?

기차역은 정말 징하게 생겨 먹었다. 식당인지 역사무실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공무원'이 앉아 외국인 삥 뜯어먹고 있었다. 오늘 출발하는 외국인이 있냐고 물으니 없단다. 2달러짜리 티켓을 사려다가 마음이 변해 4달러 짜리 티켓을 끊었다. 기차여행을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다. 사연 많다. 인도에 있을 때 라즈다니는 물론 샤탑디 한 번 타보지 못했고 중국에서는 꼬랑내가 진동해서 거의 미쳐버릴 것 같은 3등석 기차만 타고 다녔다. 베트남에서 딱 한 번 타 본 기차는 멀미로 밤새도록 왝왝대는 아줌마가 옆에 앉아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탄 기차는 그나마 컴파트먼트였는데 사막을 가로지르다 보니 자나깨나 먼지를 뒤집어 썼다. 모처럼 분위기 잡고 안데스에서 탄 기차는 파업 때문에 가다가 멎었다.

이쯤 되면 기차에 한이 맺히는 것이 당연해서 기차를 안 타게 된다. 특별히 띠보에서 핑우린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이유는 이 구간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깊은 협곡을 통과하는 코스이고 경치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며, 매번 기차운이 나쁠 수는 없을 꺼라는 확률적 믿음이 있었다. 암 뽑기지. 그래서 띠보를 방문한다기 보다는 기차여행이 여기까지 올라온 목적이다. 그리고 이왕 가는 김에 2달러 더주고 좀 더 안전빵하게 럭셔리 기차 한 번 타보자고 마음 먹은 것이다.

기차는 정확히 나인 써티 펄햅스에 도착해서 텐 섬씽에 출발했다. 와우! 제 시간에 오는 기차라니 신선한 충격이다. 한 시간 밖에 안 늦었다. 만사가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자리를 보니... 2달러 짜리 ordinary class와 내가 끊은 4달러 짜리 first class 좌석 사이에 차이점은 앉는 자리에 쿠션이 하나 더 깔려 있는 것 밖에 없다. 좌석 번호는 일번. first class라서 일반인들이 범접치 못할 뭐 그런 멋진 칸을 상상했는데, 오디너리와 마찬가지로 온 사방에 짐짝들이 꾸깃꾸깃 쑤셔 넣어져 있고 닭장처럼 바글거렸다. 내 자리에 젊은 처자가 앉아 있다. 눈치 주니까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손짓 발짓을 해보니 대충 무슨 뜻인지 알아먹겠다. 멀미가 날 것 같으니 자리를 좀 양보해 줄 수 없겠냐는 것이다. 멀미? 아, 그러라고. 얼마든지.

멀미가 난다는 처자가 왠일인지 스테이션에 도착할 때마다 자꾸 창문을 닫아 달라고 부탁한다. 뭐 부탁이니까 들어주지만 왜 저럴까. 그 처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창문에 유리창이 달린 것이 아니라 숨구멍이 숭숭 뚫린 그냥 철판이다.

다음 역에서 창문을 좀 늦게 닫다가 물벼락을 맞았다. 역 주변에 양동이와 컵을 들고 어슬렁 거리는 꼬마애들이 바글거렸는데, 양동이 물을 손님한테 파는가 보다, 야, 저렇게 물도 한 컵씩 팔다니 여행 오래 하고 볼 일이야, 나름대로 신선하고 여유롭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기차가 슬슬 출발하기 시작하자마자 컵으로 양동이 물을 퍼다가 창문 마다 냅다 뿌려대는 것이다. 일부 힘 좋은 놈들은 양동이 채로 들이 부었다. 호스도 있었다.

그 양동이 물을 뒤집어 썼다. 역마다 있는 그 망할 녀석들이 집요하게 부어대는 통에 옷이 흠뻑 젖고 젖은데 또 젖으니까 옷이 마를 새가 없다. 쫓아가서 알밤이라도 먹여주려고 하니까 말린다. 처음에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페스티벌 이란다. 워터 페스티벌, 낀쏨? 태국식으로 송크란 축제, 그게 앞으로 일주일 후에 시작되는데 이 깡촌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이 난리다. 아니 컨츄리 사이드에서는 축제를 무려 한달 동안 한단다. 그래서 매 스테이션 마다 속수무책으로 물을 뒤집어 쓰고, 축제지, 허,허, 암, 축제니까, 허허 웃었다. 그나저나 내 기차여행은 매 번... 관두자.



정겹고 친근한 보통 시골역 풍경같지?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오른쪽 구석에 물 양동이와 컵을 들고 승객을 바라보는 저 불순한 눈빛이 군중 속에 틈틈이 도사리고 있다. 저 앞에도 한 놈 있다. 이 놈들은 물을 뿌려대고 움직이는 기차를 향해 악귀처럼 낄낄 웃는다.

카메라가 젖어 세상에서 두번째로 깊은 계곡 모습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핑우린에 도착. 기차는 두 시간 연착. 조금 있으면 해가 진다. 픽업이 역 앞에 있다. 픽업을 몇 번 타보니 사람들에 치이는게 끔찍해서 500짯 더 주고 운전수 옆, 앞 좌석에 앉기로 했다. 만달래까지 1500. 짐을 다 싣고 그 비좁아 터진 좌석에 사람들이 꽉 차고 열댓 명쯤 차 난간에 샹들리에에 달린 유리조각처럼 주렁주렁 매달리고 나서야 차가 출발한다.

내 옆에는 군바리가 앉았다. 대학 마치자 마자 하사관으로 들어가서 지금 captain이란다. 자기는 일반 군인과 다르단다. 자꾸 스왓, 스왓, 람보, 코만도 하길래 뭔 소리인가 했더니 특무대(special army force)소속인 것 같다. 인상 참 드러웠지만 화끈하게 자기는 타이놈들을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애 둘 딸린 아버지 답지 않게.

ak47과 m16을 사용한다니 반갑긴 하다. 이들의 정신력은 소총으로 능히 코브라를 하늘에서 떨굴만도 했다. 그런데 특무대가 그런 구질구질한 소총을 사용한단 말인가? 담배를 자꾸 권하고 휴게소에서 쉴 때 음료수도 사준다. 그러더니, 한국은 핵을 가져서 좋겠다는 것이다. 얼떨떨하다. 또, 미군 탱크에 깔려죽은 한국 여중생 얘기를 한다. 자기 같았으면 미국놈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보다 더 분해한다. 나는 그저 평범하고 애국심 강한 바보 군바리인 줄 알았는데, 이 나라엔 대체 얼마나 많은 구두닦기 대학생과 해골 바가지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온 몸에 문신을 새긴 날나리 처럼 생긴 장교들이 있는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하나 더, 한국의 소식은 미얀마로 전해지는데, 한국의 여러 신문에서 아시아 관련 뉴스 중에 컨텐츠가 제대로 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자기 주변 나라 소식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인 셈이다. 언제까지 그러려는지들.

잘 가던 픽업이 멎었다. 운전수가 뒤에 가서 한참 소리를 질러댄다. 승객 중 몇 명이 사라진 것이다. 앞 좌석에 타고 있어서 몰랐는데 장교가 통역해주길, 뒷 손님 중에 한 명이 술을 사들고 타서 컨덕터를 포함한 뒷좌석 손님들이 한 모금씪 병나발을 불었는데(아마 400짰 짜리 지독한 만들래 럼일 것이다) 다들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휴게소에서 술을 잔뜩 사 들고 올라타서 몇 병인가 더 마시고 잠시 엔진 식히는 틈에(여기 차들은 가끔 엔진을 식혀줘야 한다) 숲 속에 짱 박혀 자고 있다가 못 탔단다. 다들 삘리리 맛이 가서 누가 안 타고 누가 탄 건지도 파악이 안된단다.

안타까웠다. 평소 아내는 내가 현지인들과 잘 안 어울린다고 구박을 주고는 했는데, 뒷좌석에서 술이 도는 줄 알았더라면 앞에 타지 않았을텐데... 아무튼 차장은 근무중 술을 마셨다고 운전수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고 향방중인 향토예비군처럼 여기 저기 짱 박힌 사람들을 수거하러 돌아다녔다.

그래서 예정보다 한 시간 반 늦게 만달래 기차역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애 딸린 미얀마 람보는 담배를 한 가치 더 권하고, 손님들은 휘청휘청 말 그대로 그들이 가져온 푸댓자루와 함께 떨어져 내리고, 운전수는 자기가 태운 최초의 외국인을 잊지 않겠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과자도 줬다. 그는 힌두교도라서 도로를 가로지르는 소떼를 전혀 짜증스러워 하지 않았고(요즘은 인도인들도 툭하면 도로를 가로막고 똥을 싸는 성스러운 흰 소에 짜증을 내는 판인데) 그들이 다 건네갈 때까지 차를 멈추고 기다렸다. 그가 말하고 장교가 통역해 주길, 한국이라면 손님들이 술 처먹고 행패 부리지도 않고 시간도 엄수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차가 좀 늦게 오면 술도 안 처먹은 손님이 운전수를 두들겨 팬다고 말해줄까 하다가, 그래도 사람 사는게 어디나 똑같으면 재미없으니까, 한국은 품위있고 교양있는 나라로 남겨두자. 사실 그거 통역하기 힘들다.

다시 로얄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가끔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제발 도착할 때까지 비야 오지 말아라... 너무 늦어 바간행 표를 예약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열블럭쯤 걸어 도착. 얼른 체크인하고 바간행 버스를 예약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티켓 오피스가 문을 닫았단다. 내일 아침 일찍 꼭 좀 부탁한다고 말했다.

탁자 위에 어디서 많이 보던 담배곽이 눈에 띄었다. 디스 플러스, 한국인이세요? 물으니 그렇단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여행자들이 가물에 콩나듯 눈에 띄어 쓸쓸했는데... 5주 동안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대만을 돌아다니는 바쁜 일정이다. 5주라니 부럽다.

하루 종일 거의 물만 마셔 허기가 져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지경이라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빨리 밥 먹고 돌아왔다. 바나나 스플릿은 이번에도 먹지 못했다. 전 세계의 바나나 스플릿을 다 먹어보자는 소박한 꿈이 그 동안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시도였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숙소에서 그가 기다려 주고 있었다. 함께 맥주 한 잔 했다.

별 일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신없는 하루였다. 비틀즈를 듣다가 세상 모르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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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Hsipaw

여행기/Myanmar 2005/04/03 14:27
6시 알람이 울렸다. 십오분쯤 잠자리에서 누워 있었다. 벌떡 일어나 샤워하고 짐을 챙기니 6시 45분. 늦겠다. 남은 옷가지들을 챙겨 얼른 체크아웃하고 버스 티켓 오피스 앞으로 갔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근처 노점 야채상에서 토마토 두 개를 사 먹었다. 여행할 때는 본능적으로 야채나 과일을 찾았다. 밥은 안 먹어도 야채와 과일은 먹어야 한다.

버스 터미널까찌 승객을 실어나르는 픽업 트럭은 7시 십오분 출발. 7시 45분 버스 터미널에 도착. 짐을 꾸리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버스는 여덟시 이십분이 되어서야 출발. 요마 익스프레스, 고속도로를 올라가는 이 버스의 바닥에는 상자들이 가득했다. 온갖 종류의 짐이 다 실리고 사람이 짐짝과 골고루 잘 섞여 빼곡히 들어찬 후에야 버스가 털털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 그러고도 굴러가는 것이 신통하다.

차가 핑우린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더위에 퍼진 차들이 즐비하게 길가에 늘어서 있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 수입한 중고차다. 운전수들은 제각각 물병을 들고 라디에이터에 직접 뿌리거나 공구를 꺼내 엔진을 분해한 후 실린더를 한가하게 걸레로 닦고 있었다!! 이 나라 운전수들은 대체...

좌석이 좁아 역시 편히 자기는 글른 듯. 왠 중이 하나 다가와 미얀마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어릴 적에 출가해서 줄곳 중 생활을 해 왔는데 절간에서 대학을 마쳤단다. 총명하고 잘 생긴 친구라 절간에서 썩히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출가했으면서 왜 자기 여동생과 놀러 다니는 걸까. 날도 더운데.

만나는 미얀마 사람들마다 마치 누추한 집에 초대한 귀한 손님 맞듯이 나를 대하니 좀 불편했다. 중은 멀리 떨어진 좌석에 앉아 있는데도 졸졸 따라다니며 밥 먹을 때나 담배를 피울 때나 충심을 다해 도와주려고 애썼다.

내 옆에도 중이 하나 앉아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몰라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버스를 갈아타야 할 때, 멋모르고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자기 갈 길을 안 가고 내가 버스 탈 때까지 도와줬다. 말은 안 통해도 고마운 작자들이다. 마치 이란에 온 듯한 기분. 대하면 대할 수록 미얀마 사람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자기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사람 불편해 할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눈길을 안떼고 쳐다보고 있다가 '살며시' 도와주고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런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미얀마가 잘 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군부 독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많이 늦어 기회를 얻지 못했고 앞으로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3세계 거북이들이 느릿느릿 움직일 동안 서구세계(서구화된 세계) 토끼들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버스가 해발 천여미터의 핑우린을 지날 무렵 잠시 시원했을 뿐, 얼레벌레 도착한 띠보 역시 어나더 더운타운(hot town)이었다. 별 정보 없이 왔으니 어디로 가야 하나 거리를 휘휘 둘러봐도 마땅히 보이는 것이 없어(그러나 가이드북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길 건너편의 Mr. Kid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갔다. 천오백짯(under 2$) 짜리 방을 보여준다. 얼씨구나 하고 잡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상관없다. 주인장이 지도를 건네주고 이것저것 자세히 설명해준다.



게스트하우스 리노베이션 중 -- 침대 매트리스를 가는 일. 새로 산 그 매트리스에 처음으로 자빠져 누운 놈이다.

차를 일곱시간 탔더니 드러난 피부에 먼지가 앉고 얼굴은 햇빛에 타서 시커멓고 콧구멍에서 검정때가 나왔다. 샤워 할까 하다가 시간이 얼마 없어 자전거를 빌렸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아 2시간에 200짯(하루 종일은 400짯, 아쉽지만).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신나게 달려 두 마을을 방문, 동네방네 기웃거리며 '저 왔어요'하고 인사하고 다녔다. 인도였다면 어떤 꼬마가 날더러 헬로 하고 인사를 할 때 응수라도 한 마디 해 주면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쫓아오면서, 게다가 그 수가 점점 불어나, 헬로 헬로 미친듯이 짹짹거릴 터이지만, 이곳 동남아에서는 그렇지 않다. 다정하고 따뜻하달까. 아내가 이곳에 오지 않은 것은 후회할 만한 것이다. 이렇게 좋은 곳인데...

하늘이 흐려 멋진 선셋을 뷰포인트에서 바라보기는 글른 것 같아 강변으로 내려가 빨래하는 동네 아줌마들과 동네 꼬마들이 물장구 치는 곳에서 옷을 벗고 강에 뛰어들었다. 동남아 치고는 덜 똥물이다, 아니 이 경우에는 맑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께다. 상쾌한 기분으로 병아리들을 괴롭히다가 더운타운으로 돌아왔다.

단 시간에 자갈길을 미친듯이 달렸더니 엉덩이 곳곳이 욱신거린다. 신사용 자전거다. 신사용 자전거로 폭 2-30cm의 자갈이 비쭉비쭉 돋아난 농로를 달렸다. 그 길로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교차하기도 했다. 내가 자전거를 이리도 잘 탔던가? 옷가지에서 물이 두둑두둑 흘러내리고 봉두난발에 히죽히죽 웃으면서...



샤워 하고 저녁 준비중인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맞은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조금 지나면 강변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난다. 다만 그 곳이 공공 쓰레기 투기 장소라서 냄새가 좀 난달까...

마을(이 아니라 엄연히 도시지만)이 참 예쁘다.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까 하다가 내일 아침 기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와 빨래하고 잠시 자리에 앉아 쉬었다. 입고 다니는 옷이 하나 뿐이라 그 점이 좀 아쉽다. 빨고 나니 입을 것이 없어 이 더위에 츄리닝을 입고 있는 꼬라지라니.

츄리닝 입고 다시 동네를 돌아다녔다. 동네 중국 음식점(Mr. Food)에 들러 터민쪼(볶음밥)와 800짯 짜리 만들래 비어 스트롱을 시켰다. 도시에서는 똑같은 맥주 한 병에 천이백짯을 받았다.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켰다. 두 잔째, 알딸딸하다. 볶음밥을 정성 들여 만들었고, 맛도 있었다. 술을 더 먹을까 하다가 여행 초심 생각이 다시 나서 자제했다.

맞은편 식탁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앉았다. 행색을 보아하니 근처 농가 사람인 듯 한데 아내한테 호강 한 번 시켜 주려고 이 중국집에 들러 값비싼 음식을 시켜 먹은 것 같다. 단순히 알딸딸한 내 상상에 불과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미얀마 농민은 한 달에 30 달러를 못 번다. 그들이 시켜먹은 볶음밥 2인분과 여자 앞에 놓인 스타 콜라 한 병은 다 합쳐 0.8$ 가량 된다. 돌아갈 때 보니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없다. 남자가 앞서고 여자가 뒷서서 걸어간다. 내 상상일 따름이지만, 어쨌든 보기 좋다.

전기가 '덜' 들어오는 관계로 별빛이 화창하게 빛나는 거리를 휘적휘적 걸어 숙소로 돌아간다. 생맥주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참았다. 이 동네 정말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돌아다녀 본 도시 중 단연 순박함 만큼은 최고다. 그래서인지 실수 하는게 아닐까 싶다. 며칠 더 있다가도 괜찮은 동네다.

숙소에 도착하니 하나뿐인 외국인 손님인 나를 위해 발전기를 돌려 주셨다. 얼른 할 일을 마무리 짓고(남은 돈 세기, 일기 쓰기) 자리에 누웠다. 재빨리 불을 껏다. 발전기가 슬며시 멎는다. 주인 내외도 이제 자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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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Mandalay

여행기/Myanmar 2005/04/02 21:06


만달래에 다다르기 전 마지막 휴게소.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다. 잠을 거의 못자고 꼬박 밤을 샜다. 일부는 밤새 틀어놓은 비디오 때문이다.

휴게소에 들러 비빔 국수를 먹었다. 우리네 참기름과 유사한 것에 땅콩가루와 양념을 넣고 비벼준다. 그리고 작은 종지에 배추국을 담아 주는데 흔히 휴게소에서 파는 쓰레기 같은 음식치고는 둘 다 맛있다. 지불하려고 하니 잔돈을 사탕으로 준다. 이 녀석이 외국인이라고 몹시 순진한 방법으로 골탕 먹이네. 캔디를 돌려주고 돈으로 받았다.

만달래 도착. 시외버스 터미널이 시 중심 시가지와 4km쯤 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11km인 것 같다. 미얀마 삐끼들은 몇 마디 안해도 알아서 자기가 다 말해준다. 세상에 이런 순박한 삐끼가 어디 있을지. 시내까지 천짯에 갈 수 있단다. 700이면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단가도 모르고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불러대면 대충 감 잡을 수 있겠지... 700에 가겠다는 친구가 나타났다. 500부터 시작할껄...

론지 뒤에 수첩을 차고 있길래 빼서 읽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다. 젊은 아버지다. 아무튼 삐끼와 이렇게 많은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의 수첩 첫 장에는 경구가 2개 국어로 적혀 있고 그 다음 장에 청동 캐스팅에 관한 얘기가 있고, 그 다음부터 그가 공부한 여러 가지 분야의 학습 내용이 적혀 있다. 찬찬히 읽었다. 작은 노트라 35분 가는 동안 다 읽을 수 있었다. 감동했다. 수준의 고저를 떠나 이 친구는 낮에 싸이카 운전수로 밥벌이하고 틈틈이 시간나는 대로 이것 저것 공부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의 영어 발음에 자신이 없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정치 얘기가 나오자 그가 쉿 하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말한다.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그가 미얀마에 살고 있는 나가 라는 원시 종족에 관한 얘기를 해줬다. 나가 종족에는 두 가지 타잎이 있는데 한 쪽은 조상이나 적의 머리를 베는 습속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쪽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갑자기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조사해보자.

로얄 게스트 하우스 앞에 도착. 천짯을 운전수에게 건넸다. 300은 당신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나라에 온 후로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자꾸 감상적이 되는 것 같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날더러 '안녕하세요' 라고 말한다. 설마 이곳을 2주 전에 다녀간 아내가 가르친 것은 아니겠지. 한국인들이 지나가면서 그런 걸 가르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 사방에서 들려오는 '곤니찌와' 만으로도 충분히 지겹다. 5달러 짜리 방을 보여주다가 살며시 아래위로 내 분위기를 살피더니 3달러 짜리 방이 있다고 말한다. 그야 당근 3불이지. 방 상태는 살피지도 않고 얼씨구나 하고 잡았다. 이제 오전 열시 이십분.

띠보(Thibow, Hsipaw)행 버스를 예약하려고 은방울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를 가진 게스트 하우스 주인 자매에게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좌표를 그대로 말한다.

만들래의 거리는 격자형. 가로 도로 넘버와 세로 도로 넘버로 참조. 아주 쉽다. 티켓 오피스에 가기 전에 그 유명한 나일론(닐론) 아이스크림 샵에 들렀다. 300짯 짜리 아이스볼(팥빙수)을 주문했다. 명불허전,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좀더 이것저것 시켜봐야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나나 스플릿을 꼭 먹자.

버스 티켓 오피스에 찾아갔다. 버스 회사 사무실이 안 보인다. 한참 헤메다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이나 일단 하자. 가게에 들어가니 30분당 이천짯을 부른다. 순 날강도네. 6메가 분량의 파일을 올려야 하는데 속도가 나올까? 해보니 너무 느리다. 그만하겠다고 하자 2천짯을 달란다. 에게 3분 사용했는데? 그래도 받겠단다. 하는 수 없이 줬다.

다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티켓 오피스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도저히 티켓 오피스라고 믿어지지 않는 위치에 그것이 간신히 존재했다. 2800짯, 내일 아침 티켓을 예매. 할 일 다 한 기분이 들어 밥이나 먹자는 생각으로 라쇼 레이 식당(Lashio Lay)을 찾아 북쪽으로 올라갔다. 거리가 워낙 orthographical해서 n 블럭 동쪽으로 이동 후 n 블럭 북쪽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은 바로는 이런 도로 설계법이 몇 가지 단점이 있단다. 단점이 뭔지 잊어버렸다. 라쇼레이에서 새우 한 접시와 돼지고기 한 접시, 밥 한 됫박(정말 됫박이다), 카믈라 티를 시켜 먹고 워낙 양이 많아 남겼다. 2550짯 나왔다.

엄청나게 럭셔리한 식사를 한 탓에 죄책감이 들어 만들래 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대략 6km, 오후 1시 20분, 열심히 걸으면 1시간 내 도착할 거리. 걷기 시작했다. 양곤과 달리 만들래 거리에는 그늘이 거의 없다. 40도 땡볕에서 30분을 걷자 온몸이 뜨거워지고 입 안이 타 들어갔다. 그때쯤 객기 그만 부리고 싸이카를 탔어야 하는데 한 30분 더 걷고 나니까 악이 생겼다. 오냐 끝까지 가보자. 6km 걷는데 1시간 30분 걸렸다. 엄청나게 더웠고 더 걷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만들래 언덕의 입구가 나타났다. 오렌지 쥬스 한 잔 사 마시고 잠깐 쉬다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 790여개인지 1600여개의 계단인지 모르겠지만 중간에 가다가 멈췄다. 더 걷다간 쓰러진다. 사원에 누워 30분 동안 잤다. 그리고 물을 끊임없이 마셨다. 탈진하기 바로 직전인 상태였다. 아, 내가 미쳤구나...



'아뵤! 여기야 여기! 내가 죽은 후에 여기서 불교가 열나 뜰꺼야!!' 라고 지존께서 말씀하신 언덕이 바로 만들래 언덕이다. 그는 불법을 설파하기 위해 인도로부터 그 먼 길을 걸어왔고 바로 이 자리에서 만들래라는 도시가 융성하게 될 것을 예언했다. 하지만 동상의 생김새는 그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이 자리에 그대로 뻗어 잤다. 더 이상 올라가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이쯤에서 숙소로 돌아가 닐론 아이스크림에서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나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몸이 나른한 것이 일사병 증세다. 손수건에 물을 적셔 온 몸을 닦고 목덜미에 얹었다. 사원마다 조그만 물항아리가 있다. 나그네가 사원을 방문하면 더위를 식히라고 떠놓은 '구원의 물'이다. 그 물로 버텼다. 한동이는 썼다. 그 물, 사먹는 물보다 시원하고 맛있다. 토기 항아리라 먼지가 잔뜩 낀 물이라도 몇 시간 놓아두면 먼지는 모두 침전되고 항아리 숨구멍을 통해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내용물이 차가와지는 것. 어린 시절 시골에서 이런 물을 마셨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물맛이 달았다.

30분 쉬고 힘없이 계단을 내려왔다. 다섯시 전에는 내려와야 싸이카 삐끼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헬렐레 하고 있는데 삐끼가 다가왔다. 1500짯이면 다운타운까지 데려다 준단다. 500짯. 그건 불가능하단다. 8km나 되는 거리를 500짯에 어떻게 가냐고. 난 그 거리를 걸어왔다. 천짯 부른다. 가라고 힘없이 손짓했다. 그럼 천짯에 만들래 힐 주변의 몇몇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가는 코스는 어떻겠냐고 오히려 삐끼가 제안. 좋다. 3군데 둘러보고 다운타운까지 가는 조건으로 천, 합의. 하지만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 관광이고 나발이고 전혀 기운이 안 난다. 겉모습만 후다닥 보고 얼른 닐론 아이스크림으로 가고 싶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도착하자 마자 닐론 아이스크림에서 300짯 짜리 후루츠 칵테일을 먹고 담배 한대 피우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건기 40도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더위 속에서 걷는 것은 확실히 미친 짓이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자.

숙소에서 샤워를 마치고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나일론 호텔로 갔다. 내 백달러 짜리를 상인들이 거절하기 일쑤였다. 나일론 호텔에서 여러 모로 내 헌드레드 노트를 살피더니 스몰 헤드는 안된단다. 상인한테도 그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스몰 헤드 말고 빅헤드를 달라고. 왜 거두를 선호하는지, 그게 무슨 뜻인가 물어보니, 백달러 노트 신권은 큰 대가리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구권은 작은 대가리란다. 아항... 내게 있는 것들은 모두 스몰 헤드라서 앞으로 애로사항이 꽃필 전망이다. 이런 젠장할. 숙소에 물어보니 역시나, 숙소에서도 바꿔줄 수 없단다.

궁리하다가 길거리에 보이는 싸이카 운전수 중 가장 몰골이 형편없는 작자를 골랐다. 이왕 도와줄 바에는 손님들에게 선택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가엾은 사람을 도와주자 싶었다. 시도나 호텔까지 투웨이로 얼마요? 투 따우잔드. 노 완 따우잔드. 잇츠 파. 완 따우잔드. 타협이 안 되서 그를 보냈다. 내 수중에는 마침 천 짯 밖에 없다. 그가 가다가 말고 돌아와서 오케이 한다.

시도나 호텔은 정말 멀었다. 그러나 난 관광객이 아니고, 그 가격은 (최소한 내 감으로는) 맞다. 호텔 입구에 그를 기다리게 해 놓고 들어갔다. 미얀마 기준에서는 으리으리한 호텔이다. 프론트에서 다짜고짜 도와 달라고 청하고 백달러 노트를 꺼내 작은 돈으로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매니저 눈치를 보는 아가씨가 망설이다가 매니저의 눈짓을 받고 바꾸러 가는 동안 옆에 있던 아가씨가 말을 붙여온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시죠?' 꽥. 왠 난데없는 한국어람. 한국어 배우는 중인데 발음이 안 되서 고민이란다. 참하고 예쁘장한 아가씨다. 국경과 신분을 초월해 사랑을 꽃피울 정도는 되었다. 그 동안 여자애들을 봐도 시큰둥했는데 미얀마에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있을 줄이야... 꼬시면 백퍼센트 넘어온다. 뭐 그런 확신이 들었지만 내게는 훌륭한 아내가 있다. 미련없이 홱 돌아서서 나왔다. 호텔 앞에서 플라타너스 잎사귀처럼 흔들리는 수많은 삐끼들을 마다하고 내 전용 운전사의 싸이카에 올라타고 다시 나일론 호텔 앞으로 왔다.

숙소에서 몇천짯 꺼내와 즉시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나일론 아이스크림으로 들어가 아이스볼을 주문해 먹었다. 아, 정말 맛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가는 크림과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얼음 덩이, 그리고 혓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과즙. 베트남 시장통에서 먹어본 잊을 수 없는 푸룻 아이스크림에 필적했다. 그러고 보니 내 생애 하루에 세 번 들른 음식점은 이 곳이 처음이다.

숙소에 돌아와 노트북으로 음악을 듣다가 그대로 뻗었다. 정말 피곤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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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Bago

여행기/Myanmar 2005/04/01 21:00
여섯시 기상. 숙박비에 포함된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 3장. 커피와 인디아식 밀크티, 짜이의 인스탄트 버전을 맛보다.



담배 한 대 빨면서 밝아오는 아침을 구경.



숲의 도시 양곤의 중심 시가지.

이틀 정신없이 걸어 다녔더니 몸 여기저기서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젯밤에 숙소 점원에게 바고로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물어봤으나 아웅 밍글라 버스 터미널로 가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친절하게 미얀마어로 적어주었다. 중심가 어딘가에서 분명히 바고로 가는 픽업이나 버스가 있을테지만 한시간 반을 고생해서 가는 것보다는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는 것일까... 좀 쉬고, 움직이자.

시청 맞은편에서 43번 버스를 기다렸다. 무수히 많은 43번 버스가 지나갔지만 차장이 아니란다. 원숭이처럼 오는 버스마다 팔짝 팔짝 뛰어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담배 파는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탔다. 어제 열나게 걸어다니던 인야 호수가를 지나 시골 마을 몇 군데를 거쳐 50분을 달려 아웅 밍 갈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삐끼가 친절하게 맞아 주신다. 10시 차가 때마침 있다. 1000짯 주고 올라탔다. 그럼 그렇지. 2500짯이라니 놀랐잖아. 버스는 열 시 정각에 출발했다. 기다리는 15분 동안 땀을 비오듯이 흘렸다. 덥다. 몹시 덥다.

버스가 잠시 정차할 때마다 후끈한 열파가 밀어닥쳤다. 어서 달려서 바람이라도 들어와 주셨으면... 열두 시에 바고에 도착했다. 사이카(자전거 옆에 좌석을 붙인 세발 달린 트릭쇼, 탈 것) 삐끼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내내 삐끼의 어원을 궁리해 봤다. 아무래도 picky 같다.

일단 삐끼의 사이카에 올라 코딱지만한 바고 중심가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바고에서 만달래(mandalay)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알아 보았다. 사기꾼 같이 생긴 친구가 에어컨 버스를 8천 부른다. 넌에어컨 버스는 6천. 하다야 까페에서 물어보니 자리는 없고 4500에 midst seat를 끊을 수 있단다. midst seat가 뭘까 궁금해 하니 aisle에 붙여놓은 좌석을 말하는 것 같다. 누군가 타면 일어서 주고, 누군가 나가면 일어서 주는, 그러니까,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좌석이랄까. 그 좌석은 좀 난감해서 하다야 까페 옆의 노상에서 버스표를 파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좌석이 없단다. 샌프란시스코 호텔로 갔다. 역시 없다. 미야난다 호텔 직원이 슬며시 끼어들며 자기한테 좌석이 있단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가 사기꾼이라고 말한다. 분위기를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삐끼가 자기가 아는 장소가 하나 더 있다며 데려간다. 정부 관리 호텔, 자리 없음. 구둣방 주인, 전화 한참 해 봤으나 역시 자리 없음. 남은 옵션은 하다야 까페에서 4500짯 짜리 표를 사는 것과 10$짜리 엄청나게 비싸고 5시간 더 늦게 도착하는 기차표 정도. 만난 사람 누구도 삐끼와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입술을 씹고 하다야 까페에서 미디스트 좌석을 예약했다. 로봇처럼 말하길, 5.30pm까지 까페로 오란다.

나 때문에 1시간 넘게 자전거를 끌고 땀을 질질 흘리면서 이리저리 함께 돌아다닌 40살 먹은 말라깽이 삐끼를 그냥 보내기도 뭣하고 해서(뭐 그걸 노리고 하는 일이지만), 그와 투어 협상을 했다. 1500에 여섯 군데 사이트를 모두 돌기로 합의봤다. 혹시 10$이나 하는 입장료 안 내고 들어갈 방법은 없는지 물어보니 자기한테 입장료의 반액을 주면 4-5pm 이후 외국인 입장객 감시원들이 퇴근할 때 맞춰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것 봐라? 머리 굴리는데? 그 얘긴 즉슨, 내가 천오백짯만 줘도 시간 잘 맞추면 여섯 군데 다 들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당신한테 5달러 줄 필요가 없지.

그가 강가 까페로 나를 데려갔다. 분위기 괜찮다. 110짯 짜리 음료수 하나 시켜놓고 가격 협상을 하다가, 문득 자선하는 셈치고 이 친구한테 5달러를 주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지도를 그리고, 동선을 따져보면 이 친구가 나를 태우고 40도의 뙤약볕에서 하룻동안 운행하는 거리가 20km 가량 된다. 시간으로 따지면 3시간 반 이상.

입장료 수입은 정부가 챙긴다. 따라서 각 사이트에서 감시하는 사람들도 자기 수입으로 들어오는 일이 아니니 근무시간이 끝나면 외국인이 입장하건 말건 그냥 멀뚱히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이 얘기는 여러 여행 사이트에서 확인한 것이다. 내가 굳이 자선할 이유가 없지만 이 친구의 행실을 보니 사기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겨우 5천원 벌려고, 이 비수기에 열파 속에서 삽질하는 그 친구를 가여워 해서라기 보다는 군부 독재정권에게 고스란히 돈을 갖다 바치는 대신 현지인이 이득을 보게 하는 방법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5달러는 큰 돈이고 만일 내가 5달러를 준다면 그것이 선례가 되어 다음에 오는 여행자들이 5달러씩 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 속으로 생각한 적정가는 2천5백짯이고 제시할 협상가는 2천짯이지만 눈 질끈 감고 5달러로 했다. 마음 속에서 너는 지금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라는 메아리가 들렸다.



먼저 들른 곳은 무슨 monastry(승원). 아마 Kha Khat Wain Khaung일 것이다. 4년 동안 빨리(pali, 원래는 팜트리 껍데기에 산 스크리트어로 새겨진 독경 같은 것)를 열나게 외우는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돗데기 시장같은 분위기지만 삐끼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그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한가하게 지켜보았다. 암기교육의 본산.

그는 40살 먹었고 두 자식을 데리고 있다. 그는 대학을 나왔고 병원에서 안경을 조제하는 일을 하다가 싸이카 모는 것이 수입이 더 좋을 것 같아 업종 전환했다. 사이카 한 대 가격은 15만 짯, 사이카의 라이센스 플레이트를 정부로부터 받으려면 7만짯을 내야 하고, 자기 사이카를 장만하기 위해 월부금을 열심히 붓고 있는 중.

아들은 중학교 다니고 미얀마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며 대학에 입학하고 공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단다. 정부를 몹시 싫어했지만 입 밖에 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버마와 타일랜드의 역사 때문에 그 두 민족은 알게 모르게 일본과 한국처럼 자존심 싸움을 가끔 벌이는 것 같다. 미얀마 군은 육군 밖에 없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는 2차대전 때나 쓰던 소총 뿐이라 타이와 한판 붙으면 작살 나는 쪽은 가난한 미얀마지만, 마치 북한처럼 그저 자존심과 악과 깡이 남았다. 그럴 때는 안 건드리는 것이 이롭다.

미얀마는 불교 국가로 알고 있는데 타이를 침공했을 때 부처 대가리는 왜 베었소? 하니까 그때는 전쟁중이었으니까, 하는 따위의 말을 했다. 아웅산 수지 사건을 그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심지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폭탄 테러범의 이름까지도 알고 있었다.

바고에 한국인 individual traveller는 얼마나 왔소? 하니 일 년에 다섯명 보기 힘들단다. 성수기때 그의 수입은 하루에 5달러 정도씩 삥 뜯어서(유러피안은 사정이 나아서 20달러까지 가능하단다) 한달 250달러 가량. 꽤 수입이 괜찮은 편. 약은 일본 학생들은 투어 단가를 3천짯까지 떨구기도 한단다. 말은 안 했지만 그 가격이 내 생각(2500)에도 적정가 맞다. 물론 태국 여행자는 미얀마에 극히 드물다. 형편이 풀린 태국 학생 배낭 여행자들이 최근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고 보면 역사란게 무섭긴 하다.

과거 미얀마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영국과의 관계는? 그들과의 비즈니스는 국가 차원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관계는 나쁘지 않다. 그런 정치적 멘트야... 그러나 미얀마인들, 특히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in deep inside of mind, i...)... 서구 열강에 의해 식민 시절을 보냈던 모든 동남아 국가들에 관해 유난히 알고 싶은 내용이었다. 내가 평소 특히나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것은, 이 동남아 새끼들은 더위 먹어서 배알이 없나? 였다. 알았으니 됐다.



여기가 어디더라... 마하깔랴니시마(Maha Kalyani Sima). 옛날에 승려들 출가 의식 하는 곳. 누워서 한숨 자기 좋다. 개와 사람들이 누워 자고 있다.



마하깔랴니시마에서 눈 붙이고 있는데 다가와서 히히거리던 아이들. 얼굴에 칠한 것은 단라까 라고,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지만 무슨 나무에서 추출한 가루인데 천연 자외선 차단/보습제 같은 것. 여기 여자들이나 아이들이 칠하고 다니는데 효과가 우수한 것 같다. 미얀마 여자들 피부 곱다.



그래도 명색이 투어 인지라 갈 곳은 빠짐없이 들렀다. 뭔가 설명을 들었는데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보리수 그늘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와 함께 있던 제자들. 미얀마 나름의 시뮬라시옹. 보리수도 심고, 제자들도 잘 배치해 놓고... 저 아이랑 놀았다. 참 순진하다. 발랑 까진 한국의 초딩과 워낙 비교가 되었다. 날 졸졸 따라다니며 부처님 계시니까 신발 벗으라고... 알았다니깐... 응... 벗을께. 됐지?





싸이카로 하는 싸구려 투어인 관계로 바고시 입구의 사면 부처상은 못 보러가고 대신 짝퉁이나마... 아, 진짜 관광사진 찍기 싫다.



쉐구레 파고다 Shwegulay pagoda, 파고다 내부에 64명의 부처상을 모셔놓은 곳.

2시가 좀 넘자 시계에 찍힌 기온이 41도다. 믿어지지 않았다. 바짝 마른 싸이카 운전사는 땀나게 페달을 밟고 있는데 나는 오르막에서 내려 주거나 그가 쉴 시간을 벌어주려고 투어를 늦추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41도라니 이건 좀 심하다 싶어 노점에 자전거를 세우고 그가 좋아하는 스타콜라를 사줬다. 그 맛없는 청량음료를 미얀마 사람들이 자주 먹더라. 나는 얼음에 담가놓은 멜론을 썰어 먹었다. 60짯. 얼음에 담근 멜론을 썰고 설탕과 연유를 뿌려 컵에 내오는데 맛있어서 하나 더 먹었다.

어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이번 미얀마 여행에서는 대체로 초심으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열심히 돌아다니고 식사는 대충 되는 대로 줏어 먹고 숙소는 잠만 잘 수 있으면 된다. 그래야만 했다. 몸이 맛이 간 것은 둘째치고 정신상태가 글러먹어 이런 식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입가에 군침이 도는 그 맛있어 보이는(약간 짤 것이다) 샨 음식이나 버마식 백반을 멀리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싸이카 운전사는 눈에 띄게 지쳐 있었다. 어쩌겠나. 5달러 벌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다시 출발. 태양의 기세는 좀 수그러 들었다. 38도, 약간의 바람과 다양한 흙먼지, 이 정도면 견딜만 하다. 슬슬 '공무원'이 빠져 나갔을 장소로 향하자.



힌타곤 파고다 Hintha Gon pagoda, 무당, 기(gyi)라고 한다. 낫 신앙에서 비롯된 우리나라의 무당과 비슷한 여자. 머리에 아카시아 꽃을 두르고 소매, 주머니 여기 저기, 그리고 입에 지폐를 문 채 퍼쿠션에 맞춰 춤을 추며 쉰 목소리로 실성한 사람처럼 뭔가를 중얼거린다. 한국에서야 제대로 신을 맞았는지 무당질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꼼꼼이 확인하고 칼에서 춤을 추지만, 이 친구들은 워낙 순박해서인지 무당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굳이 확인하지 않는 듯. 하다못해 간단한 차력 시범 정도는 보여줘야지 싶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신통력도 없는 무당을 신뢰할 수 있다고...



힌타곤 파고다, 시원해서 낮잠 자기 딱 좋게 생겼지만 시간 관계상... 싸이카 운전수를 좀 고생시켜 쉴 새 없이 계획에도 없던 곳들을 돌리고 있다. 어쩌겠나. 시작한 투어는 제대로 해야지. 누운 부처상(shwethalyaung budha)은 흘낏 보고 지나쳤다. '크다'는 것 외에 별 감흥이 없다. 대신 그 둘레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힌타공 파고다에서 바라본 쉐모도 파고다.



쉐모도 파고다 Shwemawdaw Pagoda, 오늘의 메인 이벤트. 5pm이 되어 도착. 20분 이내에 다 보고 나와야 하다야 까페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듯. 사진을 재빨리 찍었다.



쉐모도 파고다야 쉐다곤 파고다 만큼이나 유명하니... 이제 만들래에 가서 마하무니 파고다만 보면 짜익티요 삐고는 다 보는 셈인가.



마치 이란의 모스크처럼 이것들은 끊임없이 금칠을 새로 하고 보수한다.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그저 찢어지게 가난할 뿐인 싸이카 운전수는 자기한테 2000달러가 있으면 여기에 파고다를 만들 것이란다. 왜? 그것은 지위, 부, 체면, 명성, 그러니까 그들 사회의 근본적인 계급 구조와 사회 구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니 굶어 죽어도 파고다는 수십만 개를 만들어 놓았지. 백만 달러 정도면 100m 짜리 웅장한 파고다를 만들 수 있단다. 잘들 한다.



그래서 저 새끼 파고다는 기증자들이 돈 되는대로, 쥐꼬리만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전시하는 것이다.
그들 문화를 비아냥거릴 생각은 없다.



쉐모도 파고다 안에서 만난 이 친구, 한참 이야기 하는 중에는 웃기도 잘 웃고 다정하고 재밌었는데, 얼씨구? 사진기를 들이대자 곧바로 근엄해지네? 이래서 종교가 싫다니깐.



투어를 마치고 돈을 건네주니 사색이던 얼굴에 콰광 희망의 번개가 쳤다. 입이 찢어지게 좋아한다. 이 비수기에 단비같은 돈인건가. 돼지같은 군부는 대체 뭘 하고 있는걸까. 벌이가 짭짤해 뵈는 파고다를 중들로부터 빼앗아 보수해서 외화벌이 한 돈으로, 이 나라 저 나라에 자기 딸들을 수출한 돈으로 대체 뭘 하고 있을까. 하다못해 국민이 굶주린다고 찔찔 짜다가 자기 아니면 나라 못 바꾼다고 말년에 머리가 돌아버린 박정희 대통령이라도 닮았으면...

하다야 까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라파이를 시켜 홀짝 홀짝 마셨다. 인디아의 짜이와 그 맛이 백퍼센트 똑같은데 과자 몇 접시가 함께 나왔다. 과자를 집어 먹으면 나중에 합산해서 계산해준다. 하다야 까페 주인은 마치 rpg 게임에 나오는 mob처럼 대사가 기묘하게 정해져 있었다. 재밌다. 좋은 사람 같다.

영어할 줄 아는 미얀마 인한테 필수 생존 미얀마어 세 가지를 배웠다. i want to go to mandalay -- 쩐노 만달래 꽈찬례, please tell me this is mandalay -- 만달래 야오예 뚀바, how much is it -- 배 라울래

그 다음부터는 고독했다. 옆 자리에 아일랜드 여자와 남자가 앉았다. 평소에는 여행자에게 말을 안 붙이는 편인데 여행자가 하도 없다보니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인레 호수로 간단다. 난 아마 안 가게 될 것 같다. 나를 미얀마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제임스 조이스를 안다니까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봤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전공이 조이스였다. 호, 이런 즐거운 우연의 일치가... 그래서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낮에는 구두 수선하다가(이 나라에는 그런 대학생들 천지다) 저녁에 잠깐 시간이 나면 이 책 저 책 읽어본 미얀마의 대학생 정도 되는 신분으로, 그녀는 조이스의 본고장에서 온 조이스를 공부하는 학생쯤 되는 사람으로서, 대화를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인 초식부터 보여줘야 하니까 내가 읽은 조이스의 저서를 얘기했다. 어 포트레이트 오브 영 아티스트, 피네간스 나잇, 율리시즈. 그녀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제외하고 다른 책들은 읽어본 적이 없었나 보다. 게다가 night가 아니라 wake인데 알아채지 못했다. 말을 더듬더듬하더니 그런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는지 눈알을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렸다. 나는 조이스가 왜 미쳤는지 얘기 중이었다. 차가 와서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미얀마가 세계에서 고립된 깡촌오지가 아니라는 점만 알았으면 된 거다.

차에 오르니, 얼씨구? 4500으로 들었는데 5500을 내란다. 무슨 소리냐? 설마 자리라도 있는거냐. 고개를 끄떡인다. 미얀마인들의 보이지 않는 친절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일쑤다. 누군가 나 때문에 midst seat로 옮겨간 것이 뻔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나는 각기 다른 에이전시를 통해 이미 표가 없음을 수 차례 확인했다. 없는 표가 하늘에서 떨어질 일은 없고, 미얀마에서는 차를 잡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지금은 새해를 맞이해 엄청난 인구가 이동중이라 못해도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표를 구할 수 있다. 게다가 내 자리에 있어야 할 물병과 물수건이 없다. 누군가 앉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가져간 것이다. 어쩌면 하다야 까페 주인이 손을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쓴웃음을 짓고 돈을 건넨 후 자리에 앉았다. 차가 좁아 허리가 아프다. 에어컨 버스인데 에어컨 나오는 모양을 보니 기대할 형편은 아닌 것 같고, 사람들이 창문을 열어놓았다. 자리가 불편해 잠이 안 온다. 비디오를 틀어놓으니 차안의 모든 미얀마인들이 그 비디오를 보느라 정신 없다. 차 안에 있는 외국 여행자는 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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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Yangon

여행기/Myanmar 2005/03/30 20:56
이번 여행부터 찍는 사진은 1024x768로 사이즈를 바꿨다. 파일 크기가 3배쯤 늘어나지만 최소한 프린팅이 가능한 수준이 되도록.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뻐근하다. 잘 때 자세가 안 좋았던 듯. 6시에 깨어 세수하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남은 잔돈으로 쥬스를 하나 사 먹고 50밧 지폐는 나중을 위해 남겨 두었다. 쓸모가 있으리라. 59번 에어컨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며 졸았다. 이틀 묵었던 만남의 광장이 마음에 든다. 마치 누가 죽고 누가 경찰에 잡혀가는 등 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갑자기 뜸해진 델리의 나브랑 게스트하우스처럼 묵고 있는 투숙객은 나와 어느 방송사 PD를 비롯한 방송팀 뿐, 남은 객실은 텅 비었다. 만남의 광장이 운하 옆으로 이전해서 아침에 식당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건너편 상인들이 장사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 보며 담배를 피웠다. 방콕에 가게 될 일이 있으면 다시 만남의 광장으로 갈 것이다. 24개의 침대가 텅 비어있는 도미토리를 혼자 쓸 수 있는 기회는 당분한 흔치 않을 테니까.

양곤행 비행기는 대략 1시간 운행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기내식과 음료 서비스가 나왔다. 배 고픈데 잘 되었다. 주는 대로 빼놓지 않고 받아 먹었다. 양곤에 가면 점심 한 끼 안 사먹어도 된다. 푸켓 에어의 737-200 항공기 좌석수는 200여개지만 손님은 30명이 채 안 되었고 배낭을 든 사람이 없는 걸 보니 그나마 나같은 배낭 여행자는 없는 것 같다.



동남아를 꽤 많이 다닌 셈이지만 비행기에서 델타를 본 것은 처음. 양곤에 거의 접근. 버마를 거저 먹은 영국은 이 델타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채고 양곤을 전략 수출입 도시로 키웠다. 그나저나 미얀마의 주요 수출품은 티크목재, 황마, 쌀, 그리고 흥미롭게도, 아편이다.



미얀마의 비옥한 델타. 뭔가를 한창 건설중인 듯. 버마는 영국 식민 시절의 이름인데, 나중에 만나는 미얀마 사람들마다 물어보니 영국에 별다른 적개심을 가진 것 같지 않다. 동남아 대개 국가는 제국주의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은데, 나같은 제 3자가 오히려 더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선교사가 동남아시아로 넘어오면서 친절하게도 이 종족, 저 종족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해 주시는 바람에 종족 간에 잘 지내던 나라들이 불화에 휩쌓이게 된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 북부 카렌족은 여전히 군부독재와 투쟁중이고, 여전히 핍박받으며 도망다닌다. 자기들이 버마족이라고 믿고 있는 미얀마인들의 태반은 몬족이다. 마치 한국에 양반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처럼. 티벳 몽고어족인 미얀마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다. 버마족은 과거 매우 강대한 종족이었고... 이런...

양곤 공항에서 출입국 수속을 대충 마치고 공항 바깥으로 빠져 나오니 삐끼가 달라 붙는다. 양곤 시내까지 택시 3$ 부른다. 협상이나 할까 하다가 마음이 바뀌어 그에게 어디서 버스 탈 수 있냐고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친절하게라... 의외로군. 택시가 글른 것 같으니까 환전하지 않겠냐고 되묻는다. 달러당 얼마? 450짯. 900으로 해 주세요.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동료들과 뭐가 재미있는지 킥킥 웃더니 좋은 여행 되길 빈다고 말한다. 미얀마 첫 인상이 상쾌하다. 생각해보니 시리아가 그랬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물어 20짯 짜리 픽업을 타고(시외버스 터미널처럼 생긴 아담한 공항을 빠져 나와 왼쪽으로 직진, 주욱 가면 픽업들이 서 있는 교차로가 나타남) 잔시(?) 라는 곳으로 가서 내린 다음 버스를 기다려 탔다. 51번 버스 40짯. 둘 다 사람들이 미어터져 몸을 꼼짝할 수가 없다. 아무튼 미얀마 숫자 쓰는 법을 익혀둔 덕택에 버스 번호가 눈에 보인다. 미얀마 알파벳도 좀 알아두고 싶은데 자료를 구하지 못했다.

버스에서 영어를 썩 잘 하는 대학생과 얘기했다. 전공이 경제학인데 한국에 내년에 가게 될 것 같다고 한다. 그의 형은 부산에서 일한다. 한국에서 일하게 되면 어떤 직업을 갖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묻는다.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할 지... 전공이 뭐든 상관없이 동남아에서 풍운의 꿈을 안고 온 대학생들이 별로 적절치 않은 대접을 받으며 공장에서 나사 만드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줄까. 이 지역에서 대학생이면... 그러나 교육수준이나 질은 한국과 상당히 다르다. 물론 그들 역시 많은 것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삽질해서 번 '큰 돈'으로 미얀마에서 부유하게 살아보는 것이 꿈일 테니까. 버스가 신호등에 걸렸을 때 옆 라인에 토니여행사의 짚차가 섰다. 미얀마 여행을 계획할 때 한 번 쯤은 접하게 되는 이름.

대학생의 안내로 술레 파고다에 내려 오끼나와 게스트하우스까지 함께 가면서 그에게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한국에 오게 되면 한번 연락하라고... 오끼나와 게스트하우스는 시설이 꽤 좋은데 가격이 비싸 그냥 나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얀마에 온 한국인은 무슨무슨 호텔에 묵는다고 하더라. 내가 묵으려 하는 곳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좀 싼 편이라고 한다.

기절할 정도로 쌌으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 술레 파고다 바로 앞에 있는 가든 게스트 하우스로 올라갔다. 싼 방은 다 나가고 에어컨 방 밖에 없단다. 6$, 고민하다가 잡았다. 오끼나와에서 5$주고 도미토리에 묵는 것보다는 낫지. 이 숙소에 대한 트래블 게릴라의 평가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5층을 오르락 내리락하기에는 불편하단다. 술레 파고다를 바라보는 끝내주는 전망 얘기는 없었다. 어쩌면 탑들이 지겨워서인지도.



Sule Pagoda, 붓다의 머리카락이 여기 있다는 소문이 있다. 양곤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본 파고다. 한국으로 치면 남대문쯤 되겠지. 앞으로 수천 개의 파고다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양호한 숙소 아닐까 싶다. 물론 2002년에 새로 지은 오끼나와의 럭셔리함과는 비교가 되겠지.

시장통에서 달러당 900에 50$만 환전. 론지를 살까 하다가 3000씩이나 한대서 망설였다. 삐끼와 바고 가는 차가 있냐 없냐로 옥신각신했다. 그의 말로는 2500짯이라는데 바고 까지 고작 한 시간에 2500짯이면 어딘가 가격이 불합리해 보인다. 걸어서 보따타웅 파고다까지 갔다. 2$를 삥 뜯기고(현지인은 무료입장) 낫 사당부터 보았다.



낫(nat, 정령) 신앙의 본거지인 뽀빠산에는 안 갈 생각. 절간의 삼신각과 비슷한데 한국에서는 절간 어느 한구석에 조그맣게 쳐 박혀 있는 것이 이곳에서는 금칠도 하고 대접 받는다. 이놈은 좋은 신령 같다.



어서옵쇼



보따(군인) 타웅(천명)은, 다곤(현재의 양곤)에 살던 두 형제인 Okkla와 Bhallika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곳인 인디아의 부다가야로 찾아가 부처에게 꿀케잌을 바치고 그가 건네준 여덟 가닥의 성스러운 머리카락을 받아 다곤으로 돌아올 때 오칼라파 왕이 천명의 지휘관을 데리고 나와 영접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천명의 군인과 자비의 화신이라...



이 파고다는 내부를 공개하여 부처의 머리카락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부처의 머리카락을 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나도 노력했다. 그런데 저렇게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저렇게 털기 쉬운 성물이라니... 이 김에 인디아나 정스가 되서 털어봐...



정말 성스러운 곳이라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면 입장료와 별개로 1$를 더 내야 한다. 딱히 감시하는 것 같지는 않고 해서 사진기를 들이댔다. 안의 거울처럼 꾸민 여러 방에는 각각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갯벌이 반인 이 해변에서 무려 천 명이나 되는 지휘관이 서서 부처의 머리카락이 당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천명의 군바리와 부발의 묘한 아이러니. 부처는 왜 미얀마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뜯어 줬을까? 팜플렛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부처는 불교가 미얀마에서 융성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부처는 락이 가고 블루스가 왔던 것처럼 미얀마에서 불교가 뜨리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았던 것이다.



2500년이 지난 현재, 해변 도로의 건너편에는 천 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시계를 흘낏 보니 기온이 38.5, 최근 12시간 동안 기압은 안정적. 아까도 꽤 더워서 땀을 많이 흘렸는데 이 더위에 차욱타지 파고다까지 6km를 걷는 것은 몹시 위험한 짓인 것 같아 중간에 택시를 세웠다. 1200짯에 대충 협상하고 올랐다. 아내가 늘상 하는 양상의 호구 조사를 해보니 운전수에게는 1년 7개월된 딸 하나 있고 딸 생각만 하면 입이 찢어지려고 한다. 심도있게 조사해보니 수입은 하루 7000짯 가량, 많을 때는 15000짯 까지 벌었다. 환산하면 8$-20$쯤. 택시는 렌트해서 사용하는 것, 하루 렌트비가 7000짯. 일인당 국민소득이 150$이라는 나라에서 의외로 고소득자였다. 아니면 개방 이후 다른 많은 나라처럼 미얀마 경제가 급속히 팽창하는 중이라던가, 관광객이 늘어났던가. 호구조사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는 영어라고는 숫자가 거의 전부인 기사 양반과 별별 수단을 동원해서 알아낸 것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깨달음도 얻었고 해서,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길이 195m 짜리 부처



이 나라 부처의 피부는 유난히 희다. 그가 미얀마어로 말했다; 아웅 레베 까잇데(아웅 목 아파), 뭐 재밌는 일 없을까?



쫄따구들이 오늘 공양은 잘 했는지... 내가 일어서기만 하면 군부 독재 정권 쯤이야 우습지. 보살들 시켜서 법륜 한 번 땀나게 굴려봐?



저 아저씨는 안 가고 아예 죽치고 살려나 보네. 그냥 눕지 그래... -- 이 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이 집 부처가 하루를 보내는 방법.

차욱따지 파고다를 나와 축축 늘어지는 더위 속에서 걸었다. 쉐다곤 파고다까지 만큼은 걸어볼 심산이다. 지나가던 아이가 앞에서 쳐다보길래 싱긋 웃어주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르는 아이답게 내 얼굴을 한참 노려본다. 한 시간쯤 걸어가니 아까 그 아이가 어떻게 앞서 갔는지 앞에 다시 서 있다. 다시 웃어 주었다. 이번에는 아이도 살짝 웃는다. 낯선 외국인이 미소 지을 때는 함께 미소지으면 된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 연습도 해 보고, 실무에 적용해 본 것이다. 재밌긴 하다.

쉐다곤 파고다 앞에서 파는 150짰 짜리 얼음 넣은 사탕수수 즙 먹고 힘냈다. 쉐다공 파고다에 다 왔다. 5$ 삥뜯길 준비도 했다. 가능한 안 걸려서 안 냈으면 좋겠다. 계단을 오르려니 아이가 따라와서 비닐 봉투를 덥석 손에 쥐어주고 신발을 싸서 들고 가란다. 5짯 주니까 히힛 웃으면서 사라졌다. 5짯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5원 가량? 이들 물가 수준이 아직 감이 안 잡힌다. 수퍼에 들러 대충 가격이라도 알아봤으면 좋겠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소문대로, 어디선가 귀신같이 나타난 젊은 친구가 나를 잡더니 티켓 판매소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외국인은 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친절은 계속되었다. 티켓 안내소의 아가씨들은 미소를 지으며 5000짯이라고 말하고, 꼭 사야할 것 같은 팜플렛은 1000짯 별도라고 말한다. 달러로 내겠다고 했다. 그 편이 계산하면 더 싸니까. 팜플렛을 사양하니 풀이 죽은 것 같다.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혹시 카메라 있으시냐고 묻는다. 카메라는 1$ 더 내야 한다. 없다고 했다.



카메라가 없긴 왜 없어. 있지.



지나가던 카메라 촬영사나 가이드는 내 생일이 금요일이라니까 공교롭게도 붓다의 생일도 금요일이라고 기뻐하며, 오늘 당신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행운이라고 자기들이 더 기뻐한다. 저게 행운의 참 모습이냐? 공사중이라 찬란한 황금빛에 대나무 금이 갔다. 공사는 5월에나 끝난단다. 내가 불만을 토로하자, 삐끼들은 그러나 여전히 당신은 행운아라고 말했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공사가 마무리된 꼭대기의 찬란한 보석들은 볼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신경질이 난 나머지(마누라는 먼저 갔다오고도 공사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가이드와 쉐다공 파고다에 대해 누가 더 많이 아는지 서로서로를 가이드 해주기 시작했다. 그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 뭐가 달라졌는지 구분 안하였다. 나는 그가 겪은 고난 중에 마야(마라)가 특히 그의 심경을 괴롭혔음을 강조하고 틈틈이 미얀마 숫자를 자유자재로 읽을 수도 있음을 과시했다. 그리고 쉐다곤 파고다에 박혀 있는 무수한 보석들이 밤에 조명을 받아 반짝여 봤자, 꼭대기에 달린 다이아몬드의 찬란한 번쩍임 만큼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루비는 피빛으로 붉고 사파이어는 안다만 바다처럼 시퍼런데, 직접 보고 나서 말하라고 한다. 구석에 몰려도 아웅산 수지가 감방에서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주저 앉아서 지나가는 카메라 삐끼들과 한가한 얘기나 나누며 사람들이 절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파고다의 이름에 스웨가 접두어로 붙는 것들이 많다. 스웨는 황금이란 뜻이다. 스웨다곤은 황금 다곤, 다곤은 양곤의 옛 이름. 파고다에 자기 몸무게 만큼의 금을 기부하는 풍속은 미얀마에서는 신소부 여왕때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그녀가 기증한 금은 40kg이었다. 그녀가 기부한 금의 무게가 현재에 살아가는 많은 여성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지, 공주가 만약 80kg의 금을 기부했다면 지금처럼 존경받았을까? 의문이다.



쉐다곤 파고다에서 받은 이미지: 쪼리를 질질 끌고 다니며 담배를 뻑뻑 빨고 있는 승려, 콘크리트 붓다, 부처 머리에 앉아 똥 싸는 참새, 한가한 가족 나들이, 한 줄로 주욱 즐비하게 늘어선 기부함, 라이브 도네이션 현장. 사원에서 기부받은 돈을 즉석해서 회계처리하는 인디아식의 영리함을 이곳에서는 보지 못했다. 인도에서 가장 큰 사원의 회계사에게 물었다. 하루에도 수십만의 사람이 들락거리는데 어떻게 한푼의 에누리도 없이 정확하게 계산이 맞아 떨어지는가? 그야 신께서 도와주시니까. 영적으로나 회계적으로나 한국의 개신교에서도 그 분께서 장부 처리를 도와주고 있을까? 돈을 세고 있는 하나님 모습을 상상했다. 지나가던 독일인이 지겹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부다, 부다, 부다, 어나더 부다...' 부처가 참 많긴 한데, 각 부처마다 보살피는 것이 다른 것 같다. 낫 신앙과 뒤섞인 힌두식 남방불교. 미얀마는 대승 불교에서 소승 불교로 갈아탄 것으로 알고 있다. 인상깊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세계 주요 도심에서 나름대로 진화하기 전의, 닭둘기 조상이 이곳에 대거 서식한다.



저녁 8시쯤 정전. 술레 파고다는 그래도 희미하게 빛났다. 성스러운 전용 발전기가 있는 것 같다. 정전으로 암흑에 휩싸인 도심의 한복판에서 파고다가 surealistic하게 반짝인다. 그야말로 sf였다. 노출보정 +1, 노출시간 0.6초, iso200, 손 삼각대. 아마추어 사진에 더 많은 것을 바래서는 안되겠지. 더 이상의 노력은 포기.

오끼나와 식당에서 1200짯 짜리 오끼나와 특별 수프를 시켜 먹었다. 정전 탓에 촛불을 켜고. 방콕에 있을 때 똠양꿈을 못 먹어 섭섭했는데 여기서 먹게 될 줄이야... 오끼나와 스페셜 스프는 똠양꿈 맛인데 그런 줄 모르고 설탕을 안 넣어 시디 신 라임소다를 곁들여 먹었다.



에어컨 프로텍터. 전압이 242v 이상 치솟으면 에어컨 전원을 off 시키는 것 같다. 인디아에서는 왜 이런 장치를 본 적이 없을까. 60-250v까지 제멋대로 정신없이 변하는 전압에서는 섬세한 일본 기기나, 유럽, 미국의 전자기기들은 가차없이 나가 떨어졌다. 한국의 모 기업의 tv가 인디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60-250v까지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전압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정격의 수 배에 달하는 내압을 지닌 값비싼 컨덴서를 포함한 회로를 전자기기에 장치하면서 부터다. 발전 사정이 좋지 못한 비서구권 제3세계 국가에서 한국 전자기기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훌륭한 현지적응 사례다.

보조제 마켓의 한 노점상에서 손톱깎이를 살 때 상인은 태국제, 중국제, 한국제를 구별했다. 한국제가 가장 비싸다. 주저없이 중국제를 골랐다.



어둠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좋아 날뛰고, 불빛 주변에는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모였다. 덕택에 미얀마의 수도에서 별을 보았다. 쩨주베(고맙다).

인터넷 까페는 아홉시에 문을 닫고 이 글은 언제쯤에나 블로그에 올리게 될지. 노트북에 저장해 둔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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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리닝을 입고 인천 공항에 도착. 아내가 뭐라고 그러더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긴 했다. 수속을 마치니 간신히 비행기에 오를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1시 방콕 도착. 공항을 빠져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20분을 넘게 기다려서야 59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것도 에어컨 버스, 20밧. 버스 가격이 올랐나?

카오산에 도착해 싸구려 숙소들을 돌아다녀봤지만 방이 모두 찼다. 간신히 새로 옮긴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도미토리를 잡고 들어갔다. 한국인이 한명 자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시간당 120밧 하는 맛사지를 두 시간 받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편. 항공권을 컨펌하고 날짜로 모두 11일로 고쳤다. 13일은 죽어도 표가 안 난다. 그놈에 송크란 때문에..

그리고 파아팃 선착장으로 가서 보트를 타고 창 선착장으로, 창 선착장에서 다시 보트를 타고 50여분을 달려 방야이로, 방야이에서 버스를 타고 남 선착장으로, 남 선착장에서 논타부리 선착장으로... 논타부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파 아팃 선착장으로... 이렇고 돌아다니니 5시간 걸렸다. 오늘 테마는 챠오프라야 강을 보트 타고 돌아다니자... 였는데 방야이에 가니 방콕이 수상도시라는 것이 실감났다.



챠오프라야 강



방야이로 가는 길.

숙소로 돌아와 샤워 하고 차이나 타운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차이나타운 갈 때도 보트를 타고 가면 되지만 귀찮아서 버스를 탔더만 교통체증에 걸려 중간에 내려 걸어갔다. 거리에서 파는 50밧 짜리 제비집 수프를 먹고 딤섬을 이것 저것 줏어 먹었다. 오렌지 쥬스를 15밧 주고 샀는데, 이럴수가... 거의 1리터 가량을 갈아서 줬다. 먹다가 속으로 '좆됬다'고 중얼거렸다. 더 이상 다른 것을 먹을 수가 없었으니까...

배도 채웠고 차이나타운에서 걸어서 방람푸까지 왔다. 시계의 나침반도 실험할 겸 운동도 할겸. 방람푸에서 다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8번 버스를 타고 빅토리 모뉴먼트로 갔다. 섹소폰 2층에서 맥주 한 병 시켜놓고 다리를 쉬었다. 연주 솜씨는 그저 그랬다. 아마추어 티를 갓 벗어난...

전승기념탑 주변에서 버스를 타고 어떻게 돌아가야 할 지 난감해서 MRT를 타고 일단 씨암에서 내려 15번 버스를 타고 방람푸로 돌아와 죽 한 그릇 먹었다.

내일은 그렇게 속을 썩이던 미얀마 들어가는 날. 아내는 미얀마에서 10일을 보내고 돌아왔고 볼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버강 유적지는 앙코르 와트, 보르부르드와 다불어 동남아시아 3대 유적지다. 아내나, 동남아를 여행하는 여행자 대부분이 동남아 문화와 역사에 대해 그다지 공부하는 것 같지 않았다. 흠... 미얀마의 선사시대, 고고학적 역사에 관해서 얘기해 봤자 들어줄 사람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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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아내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한결같이 최근 여행자들은 예전만 못하게 질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어 보였다. 뭐 대단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나라 언어나, 문화, 역사조차 공부하지 않고, 중대 결심을 해야 나올 수 있던 소위, '해외여행'을 이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옆집 애가 갔으니 나도 갈 수 있다 분위기. 그리고 머리가 나쁘다는 것. 뒈지게 더운 나라에 와서 뒈지게 덥다고 말하는 바보가 있는 것이 증거? 현지어는 한 마디도 모르고 영어만 사용하는 여행자나 그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기가 살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워낙 교조적인 이야기이고 저마다 개성과 취향이 있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먹지 않거나(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벌레를 먹어야 한다) 오른쪽 차선 통행인데 죽어라고 왼쪽 차선으로 오토바이를 모는 것. 태국 같은 좋은 나라에 와서는, 외국에 나와서 한국음식을 먹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며 자기는 팍치도 잘 먹는다고 하면서 죽어라고 태국음식만 먹어대는 것도 이해가 잘 안가긴 마찬가지다. 이런 예를 보면 질이 떨어지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예전 여행자들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저녁에 땅화생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했다.

오징어에 대한 아내의 불가해한 정열로 인해: 오징어포 17, 생선포 16, 비스켓 스틱 9,
집에서 노상의 불량식품 스러운 수박 쥬스를 만들어 먹으려면 : 연유 18
꿰이띠오 남을 집에서 해 먹자: 쌀국수 3개 단가 6.75, 쁘라놈 소스 17.5, 고추 소스 11, 남 쁠라 18, 고추가루 15.25, 갈릭 파우더 27.5
아내가 월남쌈을 만들어 보겠단다 그래서 : 라이스 페이퍼 59
술먹은 다음날 꿀차? : 꿀 228
그리고 집에서 월남미로 카우 팟을... : 쌀 20

쌀 까지 산 것은 좀 너무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들을 아내와 내 배낭에 나눠서 차곡차곡 쑤셔 넣었다. 남 쁠라를 매번 느억 맘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자주 했다. 남 쁠라는 참치나 멸치 등의 생선을 발효시켜(썩혀) 만든 생선 간장같은 것인데 태국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말하자면 핵심 컴포넌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쁘라놈은 달고 시고 매운 소스인데 남 쁠라와 마찬가지로 식탁에 항상 놓여 있다. 국수 먹을 때 마다 내오는 다섯 가지 소스 중 빠진 것은 고추기름과 고추 식초 절임인데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추 절임에 라임이 살짝 들어가는지 안들어가는지 확실치 않다. 수퍼 마켓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향신료가 있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거리를 거닐다가 그리웠던 카우 카 무(족발덮밥)을 먹었다. 아내는 쌀국수 매니아다. 시공사의 Just Go 태국편을 잠깐 봤는데 대부분 나하고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음식 섹션 하나 만큼은 장관이다.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다. 어디서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국 음식 기행은 할만한 것이다. 이렇게 싸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태국 말고 다른 나라가 있을까 의문이다.

숙소에 들어왔다가 잠깐 나갔다. 빗속을 거닐어 홍익인간 앞에서 봉지 구아바를 샀다. 나보다 앞서 구아바를 산 용감한 한국인들이 이게 대체 무슨 과일인데 맛이 하나도 없냐고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판매상은 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중인데 내가 '알로에 막막'이란 말을 제대로 발음하도록 갖은 애를 썼다. 얌마, 정신차리고 구아바나 제대로 깎아라. 니가 지금 발음이 안 되는거야.

7/11

새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월텟에 들러 몇 가지 쇼핑을 하고 돈이 남으면 영화를 보고 마사지를 하고 수끼를 먹기로 했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일반 버스 대신 에이컨 버스를 타는 바람에 빠두남 시장에서 내렸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의 용산 전자 상가에 해당하는 빤팁 플라자에 들러 일 없이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월텟으로 갔다. 지갑을 몇 개 사려고 들렀지만 백화점이다 보니 흔해빠진 가오리 지갑이 1000밧이 넘어갔다. 50% 할인을 하더라도 500밧 가량?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것이라고 해서 뭔가 남다른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디자인, 평범한 박음질.

원래 가려고 했던 MBK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국에서 뭔가 물건을 살 일이 있으면 마지막에는(본의아니게) 항상 MBK에 들렀다. 적당한 가격에 쓸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으니까. 선물, 기념품은 짜두짝 주말시장과 나라야 판, 이세탄, 센 백화점 따위를 전전했고 생필품을 살 때는 삔까오 다리 건너 있는 이름을 잊어버린 백화점과 짜두짝, 빠두남, 나이럿 시장, 카오산 옆 시장을 배회했다.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형편없는 곳은 언제나 카오산이었다. 카오산에서는 가짜 학생증을 만들거나, 가이드북이나 중고소설을 구매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도착하자마자 팟 타이와 바나나 팬 케잌(로띠)을 먹는 장소였다. 방콕에 가면 매번 숙소를 수쿰윗에 잡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김없이 카오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직 많은 여행자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때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MBK 6층 Thai Corporation 매장에서 코끼리 가죽 지갑을 샀다. 가오리 지갑이나 상어 가죽 지갑은 워낙 흔해빠진 아이템이라 희소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상어 가죽은 비싸다. 코끼리 가죽으로 밀어 붙이자.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선물하기로 했다 -- 휴가를 일주일 갔다오기로 했는데 일주일 더 놀았다. 지갑은 정가 600밧 가량 하는 것이고 잘 깎아봤자 300밧 정도 될 꺼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협상 솜씨는 여전히 눈부셨다. 개당 225밧 가량, 일곱 개를 샀다. 그리고 860밧 짜리 실크 삼각 베게를 600밧에 샀다. 협상이 가능하지만 마침 파는 곳이 거기 뿐이고 기념품 천지인(게다가 상점 점원들의 악어처럼 상큼한 미소) 나라야 판까지 가기는 이 더위에 거리가 멀다.

카오산에서 워낙 싸구려 같은 것들만 봐서인지 이 가게에서 산 것은 의외로 품질이 좋았다.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아내가 가지고 있던 65$ 미화 짜투리를 다 환전해서 간신히 물건들을 구매했다.

거대한 비닐봉투에 삼각 베게를 담고 묵직해진 보조 배낭을 어깨에 맨 채 다시 센트랄 월드 플라자로 향했다. 제철이 아니라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데도 아내는 망고스텐을 먹고 싶단다. 정 먹고 싶으면 빅 씨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빅 씨의 단 한 코너에서 망고스텐을 팔고 있다. 껍질을 보아하니 맛이 간 것 같다. 실패할 것이 뻔해 반 케이지(kg)만 샀다. 그리고 저녁 대신 먹을 이런저런 식품들을 샀다. 바나나빵 6개(13), 초밥 세트(99), 구아바 쥬스(10), 벨프룻 쥬스(10), 드래곤 프룻 반 토막(9). 초밥을 맛 때문에 먹는 것은 아니다.



싸얌에서 월텟 쪽으로 가는 길에서 보는 철사 공예품 판매상. 몇 년이 지났건만 매번 그 자리에 있다.



이세탄 백화점. 이런 사진은 대체 왜...



방콕의 악명높은 교통 체증... 가변 차선... 아니다. 이 구간은 체증이 없다.



Big C 수퍼마켓의 과일 판매대

시간이 너무 지나 초조하다. 카오산에 도착하니 6시 무렵. 서둘러 숙소에 맡겨 놓았던 짐을 찾고 복권청 앞에서 59번 버스를 기다렸다. 남은 돈은 34밧 뿐인데 59번 일반 버스는 올 생각을 안 한다. 돈이 모자라 탈 수 없는 59번 에어컨 버스는 벌써 두 대가 지나갔다. 기다린 지 50분이 지났다. 머칫까지의 교통 체증이 걱정되고 초조해서 하는 수 없이 다음에 오는 에어컨 버스를 탔다.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1034밧, 500밧 짜리 공항세 티켓 두 장을 사면 34밧 밖에 남지 않아 에어컨 버스 비용인 두당 20밧에서 6밧이 모자란다. 아내가 안내양에게 사정하자 옆에 있던 태국인이 10밧을 그냥 준다. 아내가 답례로 10밧 짜리 구아바 쥬스를 그에게 줬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면 가방에 잔뜩 들은 몇 가지 물건을 꺼내 태국인들에게 물건을 주고 모자란 돈을 얻을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한심한 기분이었다. 바로 전에 레몬티만 마시지 않았어도 59번 에어컨 버스에 진작 탈 수 있었을 터인데! 하지만 먹다 얼음만 남은 레몬티 봉지는 초밥을 차갑게 식히는데 쓸모가 있다. 초밥은 차가워야 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카오산 옆 랏담넌 거리. 겁나게 피어오르는 구름.

아내는 짐을 부치고 나는 짐을 들고 비행기에 타기로 했다. 아내 비행기는 10.30pm에 떠나고 내가 타는 비행기는 11.15pm에 떠난다. 통로 옆 의자에 앉아 아까 BigC에서 산 음식들을 꺼내 펼쳐 놓고 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니들 99밧 짜리 럭셔리한 초밥 도시락 먹어봤냐? 주머니에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탑승대기실에 앉아 있다. pda를 꺼내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대기실은 한국인들의 수다로 시끄럽다. 지나가던 한국인이 아는 척 한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이다. 저장해 놓은 mp3를 들으며 이 글을 작성중이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리얼타임 로그는 여기까지다.



공항에 앉아. PDA 속에 담긴 내 여행 기록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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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보딩 패스를 내밀고 문을 나와 셔틀버스를 탔다. 이런 저런 비행기가 창 밖으로 보인다. 예전 숙소에서 봤던 아줌마가 아는 척을 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 버스가 비행기를 향해 공항을 한가하게 운행하고 있을 때 PDA에서 마침 Mascagni,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3:31) 가 흘러 나왔다. 대화를 중단하고 음악을 들었다. 뭔가 사무치는 감정이 일었다. 이런 것이다; 항공권 본전도 제대로 못 뽑고 이 좋은 열대를 떠난다는...

옆 자리에 앉은 한국인 아가씨들은 CA(cabin attendant가 맞다)가 하는 영어를 당체 알아듣지 못했다. 시선이 느껴져 옆을 흘낏 쳐다보니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사람 같다. '줄거리'라고 씌어있는 문서 뭉치를 읽고 있다. 옛날 중국 여행할 때 따리에 짱박혀 뭔가를 쓰고 있다는 작가인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이번 열대에서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황가나 아내에게 부처 얘기를 해 줬다. 옛날에 부처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신이 누린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자는 순수한 마음에서 설교를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물 위를 걷거나 치료기적을 행하거나 하다 못해 공중 제비 돌기 등의 아크로바트 하나 변변히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다 쓸만한 제자 하나 없는 부처가 민심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도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두들이, 바바들이 있었다.

제자가 열댓명은 되야 그나마 한 가닥 하는 성자 축에 끼고 무슨 말을 하건 들어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자기 패거리를 늘리기 위해 제자를 수집(구걸)하고 다녔다. 똘똘한 제자를 거느려야 성자의 후광도 그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다. 팔정도 같은 것은 부처가 만들지도 않았다. 비교적 역사화가 잘 된 예수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똘똘한 제자들이야 말로 성자의 값어치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영성사업의 흥망을 좌지우지하는 키 포인트가 된다.

제자 수집 사업을 열심히 하다보니 오버했다. 그의 밑에 따르는 무리가 한떼거지가 되니까 부처 및 제자 일동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떼거지를 몰고 다니면 패권을 다투는 지역제후나 동종 업종(영성 사업)에 근무하는 바바지들과 불편한 관계가 될 우려가 있으므로 그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부처가 워낙 유명한 성자다 보니 그의 그런 궁상은 잊혀지거나 무시당했다. 내가 그 얘기를 하는 동안 황가는 슈렉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아내는 내가 또 신열에 들떠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NWD theory 같은 것을 차마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서양이 동양을 재평가하고 있다는 류의 얘기들이 즐비했다. 동양의 정신적 문화에 대한 서구의 관심에 관한 얘기다. 까보면 의외로 보잘 것 없는 정신성 나부랑이에 스스로 흡족해 하면서 과학기술에 비딱한 태도를 보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은 아직도 상당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동양에만 특이한 스피리튜얼리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 문화적 차이를 혼동하거나 착각했을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양인들에게 동양인의 정신세계는 서양인들이 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개뻥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렇게도 정신적인 것들에 부정적인 이유는 어렸을 적부터 지나치게 영적인 삶을 살아서 일께다. 마치, 청자라면서 흔해빠진 싸구려 개밥 그릇을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서양인들이 그 개밥그릇을 보고 감탄하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과 기분이 비슷했다. 아무튼 건강한 육신과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제대로 된 회의(skeptism)가 나온다.

아내가 오기 전부터 한 달 동안 고생하고 왔으니 편히 지내라고 먹을만한 식당을 물색했다. 황가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방콕에 있는 동안 사전답사도 하고 여기 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태국에 오기 전부터 내 PDA에는 방콕의 유명한 식당 리스트와 여차하면 호텔에 들어가려고(아마리 워터게이트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호텔 할인 바우처를 발급받을 수 있는 여행사 전화번호 따위를 저장해 두었다. 번번이 한 두 시간씩 일정이 늦어지고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고, 유명 식당 대신 25밧 짜리 국수를 파는 식당이나 노상에서 음식을 해결했다. 아내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스럽게 돈 몇푼에 조잔해지는 내 궁상(?)을 미리 알고(게다가 심하게 영적이라서 욕심이 없기까지 하다) 편한 숙소나 맛있는 음식을 부러 마다했다. 일정은 수시로 변경되었고 쓸만한 레스토랑 리스트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번쯤은 호강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 반편에는 돈을 쳐발라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적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1500밧 짜리 호텔에 들어간 다음 카드 결제액수를 보고 신경질을 낼 꺼라고 부러 짐작했다. D-flawless나 스바로프스키, fossil 매장을 쓰레기 봉투같은 짐을 질질 끌면서 빈티나게 돌아다닐 때 비교적 값싼 다이아몬드나 괜찮은 시계를 사주고 싶었다. 단가 100$ 내외면 심하게 동양적인 내 영혼이나 아내의 불가해하고 이니그마틱한 영혼이 동시에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보잉 777-200 이 떴다. 보잉 777의 엔진은 ETOPS 롤스 로이스 엔진(Extended-range twin-engine operations)이다. 777은 사연 많은 비행기다. 시시한 기내식. 하지만 시시한 비행기. 다섯 시간 비행 후 오전 6:40분 인천공항에 도착. 이미그레이션을 광속으로 빠져나왔다.

아내가 먼저 도착해서 어라이벌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6800원 짜리 602번 버스를 타고 신촌역에서 내렸다. 비가 추절추절 내리고 있다. 집에 돌아와 배낭을 풀어 헤치고 방콕의 수퍼에서 산 각종 '생필품들'을 정리한 다음 오후 7시까지 내리 잤다.

깨어나서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냉장고에 드래곤 프룻과 밤이 있다. 배낭여행자는 세관에서도 검역에서도 잡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집이 불에 타 없어진 '파이트 클럽'적인 당황스러운 상황을 상상했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지금까지 쓴 태국 휴가 기록을 살펴봤다. 잘못 적어놓거나 모호한 것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실수한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여행 기간: 13일 (6.29 ~ 7.11)
항공료: 309000원 (세금 포함)
2주간 여행 경비: 420000원. 일평균 32300원(28$).
쇼핑(여행경비와 겹침): 3000 baht -> 8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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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기상. 아내가 느적거려(쉬러 왔으니까... 란다) 9시쯤 체크아웃. 내가 짐 싸는 속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2-3분이면 숙소 사방에 널부러져 있는 짐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배낭에 쑤셔넣을 수 있다. 배낭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을 다년간 연구한 결산이다. 짐이 없기도 했다. 티셔츠 하나, 런닝 하나, 새로산 반바지, 팬티 두 장, 양말 두 켤레가 옷가지의 전부.

숙소 주인장이 카오산까지 바로 가는 여행사 버스는 없단다. 버스 터미널까지 픽업해줄테니 10분만 기다리란다. 아침을 먹기로 했다. 은근히 걱정되었다. 방콕에 오후 다섯시쯤 떨어지면 교통체증 때문에 머칫에서 방람푸까지 가는데 두 시간은 걸릴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빨리 버스를 타는 것이 바람직했다.

종업원들이 밤이나 낮이나 묵고있는 손님을 대하면 생글생글 웃어서 괴기스럽다. 밥 먹으면서 숙소에 있던 코엘료의 eleven minutes를 잠깐 읽었다. 주인이 책이 마음에 들면 가져가란다. 도로 내려놨다. 꿈을 꾸게 한다는 코엘료의 소설은 다음에 읽자. 지금은 노트북에 있는 아즈망가를 마저 봐야 한다.

주인이 차로 데려다 주면서 TR 게스트 하우스에 식당이 생긴 다음 부터는 아침에 공짜로 주던 티가 없어졌고 대신 버스 터미널까지 프리 픽업을 투 웨이로 해준다며 가이드북에 꼭 그 내용을 업데이트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한국인 여행자들 중 일부는 자기 숙소에 묵으면 말 한 마디 없이 앉아 있다가 그냥 간다고 한다. 여행 중 묵게 되는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은 보통 정보 수집의 1차 소스다. 그 다음은 삐끼. 그런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지 못하면 가이드북에 코박고 있어야 할텐데? 영어의 장벽이 그리 심할까? 믿기지 않는다. 그들은 과묵한 사람들이거나 나처럼 늘상 뻔한 대화가 귀찮고 지겨워서 안 하고 자력갱생하는 타잎일 것이다.

터미널에서 티켓을 끊으려니 250b란다. 올 때 2등 에어컨 버스를 200밧 준 기억이 나서 카운터에 물었더니 정부버스가 200밧, 자기들 wintour의 사설 버스는 1등 버스이고 요금이 250밧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999 또는 99번 창구에서 판매하는 정부 버스는 가격에 비해 서비스가 떨어지는 편이라서 내심 꺼리는 편. 두 말 없이 wintour의 1등 에어컨 버스를 끊었다. 빵과 우유, 음료를 두 번쯤 나눠준다. 티켓에 붙어있는 식권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고양이 머리띠를 한 안내양은 유니폼으로 입는 치마 폭에 다리가 걸려 뒤뚱뒤뚱 펭귄처럼 걸었다. 안내양은 손님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그들이 사용한 컵을 모아 휴게소 뒤켠에서 씻는다. 체크 포인트나 검문소를 만날 때마다 쪼르르 달려나가 사인을 받고 일지를 기록한다. 새로운 손님이 타면 자리를 안내해 준다. 손님들이 음료나 담요를 요구하면 갖다 준다. 안내군도 있다. 안내군은 노는 것 같다.



장거리 버스가 잠시 정차하는 휴게소. 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2년 전에 비해 눈부시게 발전했다. 눈부시게!

지루한 버스 여행 동안 노트북을 꺼내고 pda를 꺼내고 그동안의 일정을 정리했다. sony에 번들로 포함된 intellisync는 업그레이드를 안해서인지 outlook과 싱크할 때 엔트리를 자꾸 잃어버렸다. 그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일전에 메모리 스틱이 날아갔을 때 하드리셋을 한 후 싱크를 하니 최근 2주 간의 엔트리가 하나도 싱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소니는 역시 소니스럽다. 하여튼 일정을 다시 입력했다.

6시간 걸린다던 버스는 방콕에 다 이르러 갑작스러운 교통체증 때문에 한 시간 가량 서행했다. 알고보니 교통 경찰 ten birds이 멀쩡한 도로를 막아놓았다. 어느 나라나 경찰 ten birds이 문제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단속하던 경찰을 봤다. 과속은 아니고,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했고 머플러를 개조한 것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녀석을 잡아 세웠다. 면허증도 제대로 제시한다.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도무지 무슨 꼬투리로 멀쩡히 잘 가던 오토바이를 세웠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옆에 있던 황가가 '쯧쯔... 반바지로군'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건가? 잡힌 놈만 유달리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착하니 5시. 끔찍스러운 교통체증 때문에 3번 버스를 타고 짜두짝 공원까지 가는데만 1시간이 걸렸다. 방람푸까지 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 지 알 수 없다. 갈길이 멀다. 물론 이런 상황도 예상했다. 차야 가던말던 한가히 뵈는 아내와 달리 나는 '언제나' 대안이 있었다. 미련없이 머칫 역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BTS로 갈아 타고 Chit Lom으로 갔다. 여섯 정거장 밖에 안되는데 표값이 35밧이다. 서민이 이런걸 타고 다닐 수 있을까? 시민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한달에 400달러를 버는 나라에서. 벌이는 그렇지만 먹을 것이 워낙 많아 굶어죽는 거지는 절대 없다는 것이 태국의 '자랑거리'다.

방을 잡기 전에 먼저 아내에게 약속했던 대로, 야마네에 들러 김초밥과 오에코돈, 짬뽕을 먹고 오이시에서 80밧 짜리 초밥 세트와 35밧 짜리 날치알이 들은 삼각김밥을 샀다. 교통체증이 심화되기 전에 월텟 앞에서 2번 버스를 탔다. 복권청에서 내려 볼수록 정 떨어지게 생긴 카오산 로드를 횡단해 사원 뒷편 길로 이동. 러브호텔로 지역 주민들에게 명망높은 쑥바삿 게스트하우스에 투숙. 400밧, double, with bath, a/c, tv.

쑥바삿 게스트 하우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인터넷 가게에서 한 시간에 35밧 짜리 인터넷을 했다. 어제, 그제 쓴 로그를 올렸다.

오후 10시. 땅에 복수라도 하듯이 미친듯이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세븐일레븐에 들러 맥주와 오징어, 물을 사왔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피해 사방팔방에서 바퀴벌레처럼 튀어나와 우왕좌왕 거리를 헤메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나는 '홀로' 우산을 쓴 채 그 모양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발바닥이 빗물에 잠긴다. 반바지 섶이 젖어든다. 우산을 뚫고 들어온 빗방울이 물안개를 이룬다. 비맞은 생쥐들이 처마 밑에서 벌벌 떨고 있다. 내 우산과 나를 쳐다본다. 거리는 텅 비었다.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숙소로 돌아와 아내와 건배.

빨래하고 샤워했다. 11시가 넘었다.

7/10

9시 기상. 바깥의 습기는 60%가 넘지만 통유리로 막아놓은 방에서 에어컨을 밤새 틀어 놓으니 방이 몹시 건조하다. 아내가 홍익인간에 들러 아는 척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아내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만남의 광장을 싫어한다면 나는 홍익인간을 꺼렸다. 별 이유는 없다. 만나는 장기여행자마다 만남의 광장이나 홍익인간 얘기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홍익인간은... 특별히 아는 사람이 아닌 한 노골적인 푸대접 때문인 듯. 장기여행자들 대개가 아는 사람이 많아서 한 사람 들어오면 떼거지로 우르르 몰려들어 좁은 일층 식당을 점령한 채 나갈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쨌든 일 없으면 안 가고 안에서 개기지 않는 것이 타지에서 고생하는 교민을 돕는 길인 듯 싶다.

아내가 벌써 여러 번 한국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전화카드를 구입하란다. 아내더러 인터넷 까페에서 인터넷으로 전화하라니 자주 끊긴다며 전화를 찾아 이리저리 카오산을 돌아다녔다. 걷다가 지칠 무렵 분당 15밧 하는 인터넷 전화를 걸었다. 통화 품질이 깨끗하고 전화도 잘 걸렸다. 15밧이면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다.

땅화생 백화점 가는 길에 있는 국수집에서 25밧 짜리 꿰이띠오 남을 먹었다. 파쑤멘 거리에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위만맥 맨션으로 향했다. 47밧. 50밧을 내고 아내는 3밧을 거슬러 주지 않는다고 기사와 실갱이를 벌였다. 우수리는 보통 기사에게 그냥 주는 것이고 태국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말해줬다. 방콕 시내의 택시가 모두 미터로 바뀐 다음 sur-(over-) charge는 없어졌다. 방콕에 무수히 들렀지만 아내는 그런 세세한 것들을 잘 몰랐다. 카오산의 어딘가 숙소에 짱박힌 채 어디 돌아다닐 생각도 안 하고 식당과 숙소 사이를 전전하며 아는 사람들 만나는 장소 정도로 알고 있으니까 관광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내와 여행할 때 한번도 택시를 탄 적이 없다. 오늘 그 사실을 알았다. 택시란 3인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들이 버스에 투자하는 돈을 다 합친 가격의 3배 이내일 때라야 내키진 않지만 탈만 하다고 본다. 위만맥 멘션까지 가는 버스비가 4밧이니까 둘이 합치면 8밧, 택시비가 50밧이니 무려 6배나 되는 가격이다. 50밧이면 쌀국수(25) 두 그릇 또는 꼬치(10) 다섯 개, 또는 계란(5)을 얹은 팟타이(15) 한 접시 먹고 고명을 얹은 밥 한 접시(20) 먹고 수박 쥬스 한 봉지(15) 마실 돈이다.

위만맥 멘션의 입장료는 100밧, 뭐 그리 대단한 볼꺼리가 있다고 이다지도 비쌀까 싶었는데 12군데의 전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 이거 의외로 보람차네? 열한시 부터 두 시까지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Royal Carriage Building, Suan Hong Residential hall, HRH(his royal highness) Princess Orathai Thep Kanya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Arunwadi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Puang Soi Sa-ang Residential Hall 등 특히 공주들 방을 집중적으로 방문했다. 공주들은 하나같이 못 생겼다. 현재의 국왕이 재즈에 미쳐 있다는 얘긴 오래 전에 들은 바 있고, 그가 찍은 그저 그런 사진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Suan Hong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Puang Soi Sa-ang Residential Hall. 공주집. 인형, 오래된 시계들.

오늘의 주요 관람꺼리인 Vimanmek mansion을 구경했다. 라마 5세가 기거하던 곳인데 들어가기 전에 짐 맡기는 곳에서 20밧을 삥 뜯겼다. 다른 곳은 돈 안내고 짐을 무료로 보관해 주는데 유독 비만맥 맨션에서만 돈을 받으니 확실히 이건 삥이 맞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짐을 다른 곳에 보관해 두는 건데! 10밧 짜리 동전 두개를 바꿔 코인락커에 짐을 넣은 후 잠그려는데 안 잠긴다. 직원을 불러 안 잠긴다고 말하니 동전을 넣지 않은 것 아니냐, 다른 동전을 넣은 것 아니냐며 되레 의심한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해결할 생각을 않길래 버럭 화를 냈다. 무슨 도둑놈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더니 우리 짐을 무료로 맡길 수 있는 곳에 맡기는 것이 아닌가. 나쁜...



티크목으로 만든 건물 중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인 Vimanmek Mansion을 방문한 중학생들. 300개의 창문, 200개의 문.

1시 15분 영문 안내를 받으며 맨션을 돌아다녔다. 안내원이 한쪽 구석을 가르키며 여기는 2차대전 중 일본이 폭탄을 떨구어 파손된 부분입니다 라고 말하니 어떤 노인네가 'fuck japan'이라고 중얼거렸다. 안내원: 여기 일본사람 없지요?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맞아요 fuck japan이에요. 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보내온 썩 괜찮은 청자가 온전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었다. 눈여겨 보면 볼만한 것들이 꽤 많지만 후다닥 해치우려는지 머물 시간을 안 준다. 설명을 들으면서 다니려니 영 지겨웠다. 위만맥 맨션은 라마 5세가 5년만 살고 주욱 잊혀져 있다가 현재 국왕의 왕비가 82년에 리노베이션해서 박물관으로 열어놓은 것.

두 개의 운하에는 똥물이 흐르고 있지만 두씻 정원은 시원한 열대를 보여줬다. 맨션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도 그럴듯 했다. 그 기분에 왕 노릇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밧 내고 뙤약볕 아래서 여기저기 땀을 펑펑 흘리며 구경하는 왕궁 보다는 두씻 정원과 맨션이 훨씬 나았다. 왕궁은 일반에 공개된 장소가 별로 없어 사실상 볼꺼리가 없는 곳이다.

오후 두 시부터 위만맥 맨션 옆 스테이지에서 타이 전통 춤 공연을 했다.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다. 여기저기서 한 부분씩 훌쩍 떼어내 맥락없는 내용을, 약간 솜씨가 떨어지는 것 같은 춤꾼들이 공연한다. 이들 공연중 볼만한 것은 라마야나인데 오래되어서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다섯이나 여섯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아내에게는 라마야나 얘기를 몇 차례 해줬지만 관심없어 보였다. 라마는 나쁜 놈이라고 몇 번쯤 말했던 것 같다. 고생스럽게 구한 아내가 악마와 놀아났다고 그녀를 버린 놈이다. 그녀가 불 속에 뛰어들어 자신의 순결을 증명했지만 라마는 끝끝내 아내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인도놈들은 마음에 안드는 아내를 태워 죽이거나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열녀가 되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불에 태웠는데도 타 죽지 않고 살아 남아야 '정품 인증' 마누라다. 옛날옛날에 자기 마누라를 마녀로 고발해 태워 죽인 유럽인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몹시 궁금해지는군.



라마와 시타. 기쁨의 춤.



그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보낸 나날(라마야나의 앞부분? 또는 시타를 구한 뒷부분?). 나도 내가 왜, 어떻게, 어째서 이들의 춤이 라마야나의 한 장면 임을 추측도 아니고 확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재주부리는 얘는 하누만 같다.



두씻 정원의 한가운데 쯤 있는 거대한 나무. 매력적.

abhisek dusit throne hall을 구경했다. 대관식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안을 꽉 채운 것은 공예품들 뿐이었다. 하지만 수공예품의 손기술 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 저런 물건을 시장통에서 구할 수는 없겠지 싶다. 그런데, 이란의 보물들을 구경한 다음 부터는 왠간한 보석들은 시시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어 건축 양식으로부터 확연한 영향을 받은 것 같은 Abhisek Dusit throne hall의 입구.

어느 건물에 들어가나 건물을 지키는 사람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지, 물건을 훔쳐가는지 감시했다. 사진은 기회가 되면 찍었다. 반도 채 보지 못했지만 오후 3시가 넘었고 배도 고프고 지쳐서 궁전 옆에 임시로 가설한 건물에 들어선 오이시에서 초밥(65)과 샐러드(40)를 사 먹고 방람푸로 돌아가는 택시(41)를 탔다.

꼬치를 먹고 싶은데 아직 때가 일러 꼬치구이가 노변에 보이지 않아 계란을 넣은 팟타이(20; 비싸네?)를 사 먹고 구아바(10)과 수박(10)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구아바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별 맛이 없다는 이유로), 비타민의 황제, 열대과일 중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뛰어난 과일이다. 구아바 3개는 지각있는 여성의 하루 두 끼 식사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정도다. 태국 여성들의 건강한 피부는 구아바가 책임지고 있다. 구아바는 그렇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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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일어났다. 죽과 쌀국수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썽태우를 타고(10b) 므앙까오(수코타이 역사공원)로 갔다. 자전거를 빌리고(하루 20b) 아내를 뒷자석에 태워 공원 입구로 향했다.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입장권(150b)을 샀다. 그리고 역사공원을 동에서 서로 관통해 성벽을 지나 Wat Si Thone 까지 달렸다. 별 것 없다.

자전거 체인이 빠져 애를 먹었다. 어느 도시에서건 자전거 탈 때 마다 한 번씩은 체인이 빠졌다. 지나가던 서양 소년이 체인을 다시 달도록 도와줬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한가로운 농촌을 유람했다. 150밧이나 주고 왔으니 뭔가 봐야겠기에 다시 역사공원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더 이상 살이 안 탈 꺼라고 생각했는데 살이 조금씩 더 타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왠 태국인이 한국인 여성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줄 알았단다. (뭐야? 부러운거야?) 수코타이 역사공원이 원래 생긴 모양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말레이지아의 타이핑처럼 노동자들을 동원해 대단위 인공 호수를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얕은 인공호수는 대량의 물을 증발시키면서 다소간 더위를 식혀주었다. 돌은 여전히 뜨겁다. 시원하게 생긴 나무그늘에 앉아 워터멜론 쥬스를 쪽쪽 빨아먹으며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뙤약볕 아래 걸어다니면서 유적지를 관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종종 그런 사람들이 보였다. 가엾다. 땀흘리며 빌빌 거리는 가엾음이다.

람캉행 대왕의 동상을 얼핏 보고 지나갔다. 더워서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얼굴은 봐줘야 할 것 같았다. 태국어를 만든 왕이다. 동서로 엄청나게 영토를 넓힌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같은 놈팽이는 별로 대단한 인간 취급을 안 하지만 글자를 만든 선행을 한 왕이라면야...

오후 1시쯤 돌아가기로 했다. 입구의 가게에서 얼어 붙은 수박쥬스를 급히 마시다가 골이 띵하더니 줄곳 두통이 달라 붙었다. 숙소에 돌아가기 전에 인터넷 가게에 들렀다. 두 가게 모두 windows 98이라 메모리 카드 리더의 usb storage 가 잡히지 않았다. 캐논의 생각없는 엔지니어들은 WIA(windows image acqusition) 드라이버와 twain만을 지원했다. removable drive를 지원하지 않아 메모리카드에 텍스트 파일이나 실행 파일 따위에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수 년 전에 싼 맛(9900원)에 구매한 메모리 카드 리더기를 이번 여행에 들고 왔다. 하여튼 windows 98 용의 usbstor.inf 파일만 있으면 쉽사리 해결될 문제인데 아쉽게 되었다. 다른 곳에 가보니 usb 포트가 없다. usb 포트가 있는 곳을 부러 알려준다며 방금 나온 가게를 손짓했다. 아내는 메신저질을 하면서 재밌는 방식을 사용했다. 메신저에서 한글 입력이 안 되니까 내 블로그 페이지를 열어 놓고 거기 코멘트의 텍스트 창에 한글로 문장을 입력한 다음 메신저 대화창에 컷앤 페이스트 했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싶다.

점심 먹으러 시장통으로 갔다. 그린 커리와 밥을 시켰는데 평범한 덮밥이 나왔다. 어째 커리와 밥을 합쳐 20 밧 밖에 안 하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다. 양이 안 찬다. 가판에서 태국식 팬케익을 사 먹었다. 7밧이다. 이 동네 사람들이 참 착하고 순한 것 같다. 관광객 상대로 도무지 사기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처 사원(wat rajthanee)에서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중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두통이 심해서 숙소로 돌아와 타이레놀을 삼키고 잤다.

동네를 둘러봐도 마땅히 식사할 만한 곳이 없어 숙소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타이 커리와 밥(60b), 야채볶음과 밥(60b), 수박쥬스(20b), 싱하(35b)을 주문했다. 레드 커리가 나왔다. 커리(깽인데, 까리라고도 하는 것 같다)는 갖가지 향신료와 야채, 코코넛 밀크를 넣고 끓인 것이다. 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똠얌꿍보다 어떤 면에서는 맛있고 여러 향신료 때문에 시큼하면서도 담백하고 또한 깊고 은근한 매운맛이 난다 -- 태국 음식은 본질적으로 맵다. 깽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을 꺼라고 확신하지만 대부분 여행자들은 볶음밥과 쌀국수만 죽어라고 먹었다.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깽의 징그러운 첫인상 때문인지 잘 안 먹는 것 같다. 편의상 색깔로 나누어 레드, 그린, 옐로우 커리가 있고 해산물이나 닭고기, 소고기 따위를 넣는다. 벌써 두끼를 먹은 숙소의 음식 솜씨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추천해도 되겠다.

주인장이 밥 먹는 동안 tv를 틀어주었다. YTN이 나와서 화들짝 놀랐다. 주 5일 근무제에 관한 토론 방송이 나오는 중이다. 뭐 다른 것은 모르겠고 일한 만큼만 임금을 지급했으면 좋겠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이 글을 작성중. 대체 왜 이렇게 시시콜콜한 여행기를 작성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주인장이 게스트북을 들고와 82년생 아가씨가 혼자 와서 외로워 하고 있다며 방 번호를 가르쳐준다. 맥주 다 마실 때까지 안 오면 방으로 들어갈란다.

누군가 방문을 발로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니 아까 그 한국인 아가씨다. 방에 놀러오라고 했다. 여행 처음 하고 한 달 일정이고 치앙라이, 치앙마이, 치앙센 등을 다녀왔고 북쪽에서 방콕까지 슬슬 내려가는 중이고 18명이나 되는 엄청난 떼거지와 함께 트래킹을 했고(그중 15명이 한국인) 캄보디아와 푸켓 등에 갈 예정이란다. 오늘이 생일이라 케잌을 들고 왔는데 잘 안 먹어서 내가 세 조각 중 두 조각을 먹었다. 아내는 남은 과일을 다 줬다.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그러고보니 우리 부부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여행중 눈이 맞아 사랑의 행각을 벌이는 커플이라고 알아두면 될 듯 싶다.

아내가 pda에 있는 여자들 이름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옛 여자친구 전화번호를 보더니 연락할 필요 없으니 지워버리겠단다. 놔두라고 했다. pda에는 6년 동안의 지난 기록이 있다. 언제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여행했으며 누구와 술을 마셨나 따위. 최근 1년 동안은 거의 아무 것도 적지 않았다. 결혼, 신혼여행, 이번 여행 기록 정도 밖에. 지난 1년은 지지난 1년에 비해 사건이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을 흔히 생활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생활, 죽을 때까지 하게 될 일.

일찍 잔다. 더 볼 것이 없고 심심해서 내일 아침 일찍 방콕에 내려가 식도락이나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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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 Si Thone.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공부한 고승이 남쪽 망고숲 옆의 Si Thone에 살았다는 말이 왓 파마무앙에 적혀 있다. 남은 것은 무의미한 폐허 뿐.




호수 공원.



눈 감고 걷는다.



갖가지 '양식'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700년 전의 석조 유적.



비정상적인 손가락 길이. 비정상적인 귀의 길이. 머리에 난 뿔 등등,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고, 거대로봇류 처럼 생겼다. 악당에 대한 자비심으로 그들을 지옥에 보내주는 마징가 제트같은 거대 로봇.



특이하게 생긴 입술. 열반의 끝없는 기쁨 때문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쯤 감은 눈으로 반은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고 그 반은 사바세계를 보고 있다. 늘어진 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으며... 부처 머리에 난 뿔은 깨달은 자만이 누리는 크나큰 기쁨, 완전히 열린 차크라를... 맞나? 열반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흡족한 나머지 눈을 게슴츠레 감은 채 입가에 미소를 짓는 상태와 비슷해 뵌다.



피사의 사탑? 동남아 열대 문명의 건축은 왠일인지 다 이 모양이다.



부처가 즐거워 보인다.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 유적지에는 거대로봇이 많았다. 부처들끼리 벌떡 일어나 한판 붙어 폐허가 된 것은 아닐까. 슈로대(슈퍼로봇 대전)



호박



Wat Mahathat. 스님 한 분이 단체사진을 찍고 짐을 챙겨 나가는 중.



제단에서 향을 피우고 절 했다.



폐허를 배경으로 한 골프 코스는 없는 것일까? 부처님 머리에 맞을 지도 모르겠군.



금색 매니큐어, 푸른 눈물. 지긋이 감은 눈.



매부리코, 달관.



악마들을 무찌르러 금방이라도 출격할 것만 같은... 손 길이.



SD 몽크



어딘가 모르게 크메르 양식을 생각나게 하는... 벽돌을 굽지 않아서인지 습기를 먹어 눌려 탑들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반반해 보이는 것들은 '완벽하게' 시멘트로 복구한 것.





등 돌린 부처



등과 힙 라인의 저 섹시함이란...



부처의 팔 다리에는 근육이 없다. 그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



Wat Mahathat의 스투파.



유적 공원에서 Wat Mahathat만 봐도 전체 유적지의 절반은 본 것 같다.



표정만 봐도 흐뭇한걸.



반석을 받치고 있는 도깨비



반석 밑에 거꾸로 매달린 도마뱀



해골을 든 인간?



골프 코스로 정말... 딱이다.



Wat Sasi.



우유 먹다가 흘렸나?



필라가 제각각.



새집. 가짜 새까지..



구운 거위 모양의 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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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쇼핑하러 간다길래 싸얌 스퀘어에서 황가와 헤어졌다. 앞에 보이는 건물에 커다랗게 적혀있는 MBK가 무슨 뜻일까. 선경을 SK라고 하고, 럭키 골드스타를 LG라고 하듯이 아마도 마분콩을 MBK라고 하다가, 마분콩이란 이름은 SK나 LG처럼 자연소멸할 것 같다. 더워서 움직이기 귀찮아 MBK에서 oishi에 들러 품질에 비해 심하게 비싼 뎀뿌라 라멘(89)을 먹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일식이 먹고 싶다.

태국 전역은 바겐세일 중이다. 의류 매장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690밧 하는 반바지를 50% 세일가인 345밧에 샀다. 디자인은 꽝이지만 품질은 만족스럽다. 닷새째 수영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짓을 이제 그만 하게 된 것이다.

MBK의 SF Cinema City에서 스파이더맨 2(100b)를 봤다. 그저 더위에 바깥에 나가기 싫다. 그래피컬한 스파이더맨의 움직임이 재미있고 동전 빨래방에서 유니폼을 빠는 '영웅'의 일상사가 재미있다. 여하튼 영화의 분위기를 망치고 '영웅'이란 것들을 궁상 떨게 만드는 것들은 항상 여성이다. 그놈에 궁상은 끝이 없다.



불 지르고 왼쪽으로 튀어라?



석쇠에 남녀를 가지런히 올려 구운 후 오른쪽으로 서빙

저녁은 뭘 먹을까. 일식집에서 초밥을 먹자고 결심을 굳히고 Big C 4층의 Yamane에서 오코노미야키(59b)와 마키모노모리(130b)을 시켜 먹었다. 마요네즈를 잔뜩 처바른 오코노미야키는 영 꽝이고 김초밥 맛은 평범했지만 간만에 찰밥을 먹으니 위장이 즐겁다. 그러나 잘 만든 인디카종 쌀밥 맛과 향기좋고 단맛이 강한 자포니카 쌀밥의 맛에 굳이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문화 때문이지. 중국의 일부 지역, 한국, 일본만이 자포니카 종을 소비하는 별종들이다. 태국식 찰밥의 이름이 카우 니여우란 것이 갑자기 생각났고 라오스와 태국 북부에서도 먹었다. 손가락으로 돌돌 뭉쳐 먹는 찰밥의 맛이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월텟 앞에서 미어터지는 2번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9시다. 일반 시내버스 요금은 0.5밧씩 올라 각각 4밧(주야간), 5.5밧(심야)씩 했다. 에어컨 버스의 가격은 올랐다가 내렸다. 황가는 쇼핑한다고 젓가락 몇 개를 사고 7시에 돌아 왔는데 내가 방 열쇠를 가지고 있어 샤워를 못하고 있었다.

숙소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낄낄거리면서 어제 하다만 여행 얘기를 계속 했다. 젊은이들 셋이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지아, 싱가폴을 25일 동안 주파한다는 말에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말레이지아에서의 정글 트래킹과 산악 트래킹은 사나이의 피를 끓어 오르게 하지만, 말레이지아를 루트에서 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충고하면서 뒤가 캥겨 멈칫멈칫 했다. 여행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나같은 사람들 몇 명에 둘러 싸여 미주알 고주알 경쟁적으로 자기가 아는 만큼만 늘어놓는 '경험담'을 들어 좋을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여행일진대 가이드북에 나오는 도시 중에서도 특히 그곳을 지나간 경험이 있어 어디를 가고 어디를 빼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보면 사서 고생하는 여행의 '진미'를 제대로 맛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험자의 그런 말을 듣고 여행을 하다 보면 늘상 뻔한 코스 밖에 안 나온다. 25일 일정 중 거의 10일을 차 안에서 보내게 되는 가엾은 상황이라도 애당초 계획했던 일정대로 해볼만한 가치는 있다. 낯선 도시에서 헤메고, 졸다가 엉뚱한 장소에서 내리고, 연속적인 실패로 좌절하고, 피치못할 사고로 일정을 드라마틱하게 변경하게 될 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못한 나머지는 관광과 다를 것이 없다고 봤다. 모험심이 별로 없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문학에서 상상력을 기대하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남들 안가는 별난 도시의 시시함과 진부함을 진중히 견디며 문명의 결절점인 도시의 내재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 말이야 그럴듯 하지만 난 피곤해서 그렇게 안 한다.

오전 0시, 아내를 마중나갈 시각. 동대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행객 말을 들어보니 동대문은 오후 10시 30분쯤 문을 닫는단다. 어쩌다 그렇게 된걸까. 카오산이 변하긴 했지만 오전 두 시까지 안 변하는 것 하나 쯤은 남아 있었으면 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사원 옆길의 장황한 노상 주점도 사라졌다. 길거리에서 칼부림하고 웩웩 거리며 지나가는 취객들이 못마땅한 나머지 사원에서 철거를 요구했을 지도 모른다. 동대문 역시 취객들의 소란이 귀찮아서 일찌감치 건전하게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대문이 일찍 문을 닫아 하는 수 없이 옆 술집에 앉아 땀냄새, 몸냄새 풀풀 풍기는 서양인들 틈에 끼어 한가하게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술을 많이 마신 듯 혀가 꼬부라졌다. 서양인들이 불교 얘기를 하는 것은 언제 들어도 신기했다.

황가와 싱하 한 병(90b) 시켜놓고 히주그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나타나 자리에 앉았다. 어? 새벽 2시쯤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열시 좀 넘어 도착했는데 승객이 거의 없어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자마자 짐도 바로 찾을 수 있었고 그대로 택시 잡고(200b) 카오산에 왔단다. 그 좋은 59번 버스 놔두고 값비싼 택시는 왜 혼자 타는지, 게다가 150밧에 올 수 있는데... 등등 조잔하게 궁시렁거렸다.

황가에게 줄 선물로 석류즙을 인도에서 사왔다. 아침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여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고, 에스트로겐과 유사하다던지 그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떠들어 댔다. 아침 방송의 주부들을 상대로 하는 건강 코너는 순 구라 같아 보였다. 궁금해서 여기저기 뒤져보니 석류즙이 여성 성인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입증된 적이 없다. 희안한 민간 전승 대로라면 지네나 고양이 먹고 허리가 튼실해졌다는 말도 주부들에게는 먹혀 들어간다는 뜻이겠지. 이 나라의 주부'님'들은 과학적 사고방식과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을 지도 모른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궁금하지 않은건가?

아내에게 쌀국수를 먹이고 시원한 수박 쥬스를 사주고(그래, 이 맛이야! 라고 감탄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까 화기애애하게 떠들던 무리는 사라졌다. 방 안에서 잡담을 늘어놓다가 야심한데 떠든다고 빈축을 사고 오전 두 시쯤 잠들었다. 팟뽕 갔다 돌아온 옆방 아가씨들이 그때쯤 방에 돌아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과 방 사이가 베니어 판이라 온갖 소리가 다 전도되니까 아내가 왜 이런 방을 잡았냐고 궁시렁 거렸다. 필리핀에서의 '허니문' 첫날밤도 베니어판으로 지은 방에서 잤는데 새삼스럽게 뭘... 에어컨 펑펑 잘 나오고 사위가 조용하고 창문과 발코니까지 달린 방을 카오산에서 300밧에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던가?

7/7

황가는 아침 일찍 공항으로 떠났다. 문을 두들기지 않았고, 일어나기에는 좀 피곤했다. 황가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맘 뿐이다. 일주일 내내 나같은 놈하고 같이 다니느라 된통 걸어다니기만 했다. 택시는 딱 한 번 탔는데, 아가씨들 둘이 있어서 일행이 넷이라 쉐어하니 두당 10밧 정도 밖에 안 나올 것 같아 눈 딱 감고 잡았다. 개중 하일라이트는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숨 막히는 더위에서 길이 1.6km짜리 빠통 비치를 네 번 왕복한 후 저녁에 다시 세번 왕복한 다음 몇 시간 못자고 아침에 일어나 섬에 들어가 한 시간 반을 길을 잃고 헤메다가 간신히 숙소를 잡고 퍼진 일이다. 밥도 안 먹이고 온 사방으로 걸어다녔다.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회의가 깃든다. 어쨌건 미안한 맘 뿐이라(히히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 돌아가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사야겠다.

아홉시 조금 넘어 일어나니 할 일이 없다. 그저 방콕을 탈출해야 만사가 지겨워지는 이 망할 방콕병에서 벗어날 것만 같아 어젯밤 그렇게 좋다는 수코타이로 가기로 했다. 가이드북에는 오전 중에 차편이 하나 정도 나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가이드북을 믿지 않았다.

숙소에서 나오는 길에 아내가 이틀 전에 숙소에서 나와 함께 얘기하던 아저씨를 아는 척 한다. 3년 전 베트남에서 만났단다. 베트남?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아내의 기억력은 종종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는 하노이에서 아내에게 고추장을 줬고 아내는 라오스의 방비엥에서 나를 만났다. 방비엥에서 전날 술을 먹고 완전히 뻗어있던 나를 깨워 시장에서 사온 찰밥에 그가 준 고추장을 비벼 줬다. 꿀맛이었다. 우리 셋은 고추장으로 연달아 맺어진 인연인 셈이다. 고추장에 비빈 밥이 영 맛이 없었다면 한국에서 아내를 다시 안 만났을 것이고 혼인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가 준 맛있는 고추장 때문이다. 그는 오늘 라오스에 간단다. 길지 않은 대화 였지만 이런 사정이 꽤 재미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콘송 머칫 마이(북부 터미널, 이런 단어가 갑자기 메모리에서 팝업되는 것도 놀랍다. 대체 이런 기억들은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것일까) 행 버스 번호를 물었다. 3번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 28번인지 29번 창구에서 수코타이 행 2등 에어컨 버스표를 샀다. 7시간 30분이 걸린다. 터미널에 가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왔는데 버스표가 있었다. 수코타이가 안되면 아유타야나 깐차나부리, 또는 롭부리, 정 안 되면 치앙마이나 치앙라이로 갈 생각이었다. 이런 '낙천적인'(될대로 되라) 사고방식은 여행이 내게 가져다 준 부작용이자, 덧없는 즐거움이다.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차에 올랐다.

오후 열두시 출발. 태국어로 화장실이 헝남이란 것마저 떠올랐다. 급하면 뭔가 머리속에서 하나씩 떠올랐다. 정말 신묘하다. 아내와 나는 버스 뒷좌석에 불량(?) 청소년처럼 편한 자세로 널부러져 쉴새없이 떠들었다. 오후 7시 30분 수코타이 터미널 도착.

대충 협상하고 좀 많이 준다 싶은 기분으로 쌈러를 타고 20밧에 숙소로 찍어준 TR 게스트하우스까지 갔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깐차나부리나 아유타야를 말리면서까지 추천한 도시에다가 숙소까지 꼭 거기 가보라고 찍어 주던데, 생글생글 웃는 아가씨나 체크인이 끝나기 무섭게 지도 한 장 펼쳐놓고 수코타이 시내와 유적지를 일일이 설명하는 친절한 주인 아저씨 덕택에 인상이 좋다. 방도 널찍하고 그럭저럭 훌륭했다. 전화하면 버스 터미널에서 픽업까지 해준다던데... 그 점을 잊고 있었다.

짐을 풀고 곧장 밥 먹으러 나갔다. 호텔 식당에 들러 79밧 짜리 부페 수끼 2인분과 싱하 큰 병(65b)을 시켜 먹었다. 재료가 많지 않아 약간 맛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아내는 오랫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서인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참 잘 먹는다. 비가 살살 와서 우산을 쓰고 과일시장에 들러 sallaca(0.5kg, 15b)와 람부탄(1kg, 40b)을 샀다. 망고스틴은 보이지 않았다. 부직포같은 껍데기를 벗기면 시큼한 알맹이가 들어있는 살랏(sallaca)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먹어보는 열대과일이다.

사람들 표정이 순하고, 도시가 작아 마음에 든다. 오랫만에 유적지를 볼 생각을 하니 두근거리기도 했다. 오래전에 여행중 태국 역사를 공부할 때 얼핏 기억하고 있는 수코타이는 아마도 태국의 최초 왕조였던 것 같다. 태국에 와서 유적지를 구경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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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여행기/Thailand 2004/07/06 16:26
7/5

그래서는 안되는데, 일찍 일어났다. 배편은 오후 1:30에 있고 일어난 시각은 7:00am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노트북 가지고 장난치다가 클리에에 꽂아두었던 렉사 128MB 메모리 스틱을 망가뜨렸다. 포맷을 해야겠는데 인식이 안되니 똥줄이 탔다. 포기했다. 방콕 가서 고치자. 소니는 역시 소니스럽다.

피피섬의 세븐 일레븐 앞에서 만난 친구는 가슴에 한자 세 글자를 문신으로 새겨 놓았다. 그게 무슨 글자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놀랍게도 서양인스럽지 않게 선, 의, 애를 제대로 설명한다. 뭐하는 친구일까 의문은 생기지 않았다. 한눈에 태국에서 굴러먹은 히피... 라고 나왔다.

배에 올랐다. 그는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배 꼭대기 '선텐하는 서양인들'을 교묘하게 피한 좋은 자리, 말하자면, 여행 노하우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석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리는 뜬금없이 브라흐마에 관해 얘기했다. 브라흐마는 힌두교에서 가장 인기없는(을) 신인데 우주를 만든 것 외에 그가 딱히 한 일이 없다. 우주를 만든 행위조차 별로 감동적이거나 영웅적이지 않았다. 한무더기의 쓰레기를 생산한 것이 기뻐해야 할 일이라도 되나? 히피가 내 의견에 공감해줘서 기뻤다. 그는 개구리같은 자세로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눈알을 이리저리 히번뜩이고 있었다.

'다빈치 코드' 상권을 다 읽었다. 베스트셀러용으로 제작한 소설인듯 싶은데 내용이 3류스럽고 번역은 꽤나 버벅거렸는데,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비슷한 역자들을 생각해보니 비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모르겠으면 차라리 영어 병기를 해 놔라.

크라비의 선착장은 기억하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니다. 선착장이 시 외곽에 위치해 있는데 그 위치가 어디인지 몰라 난감하다. 배에서 뒤늦게 나오는 바람에 썽태우는 이미 떠난 상태고 배에서 내린 찌꺼지들을 어딘가로 날라주고 왕창 뜯어먹을 심산으로 보이는 몇 안되는 삐끼들이 가격 담합을 끝낸 후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크라비 타운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니, 여기가 대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다. 어... 여기가 어딜까. 택시에 30밧을 주면서 내심 속이 쓰렸지만 크라비타운으로 들어섰다.

300밧 짜리 여행자 버스를 거절한 채 버스 터미널에서 에어컨 2등 버스를 황가에게 경험시켜 주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어컨 2등 버스는 일반버스보다 한 등급 위로, 고장이 극히 적고 길 한 가운데서 연료가 떨어져 세워야 하는 일반버스처럼 차가 퍼지거나 뒤에서 밀어야 할 일이 없어 보이는 고급 버스다. 여행사에서 예약하면 300밧에 카오산까지 갈 수 있음에도, 380여밧을 주고 게다가 방콕의 남부 터미널에서 시내 버스를 타야 카오산에 도착하는 귀찮은 코스를 선택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 동안 별로 관광지스럽지 않은 순박함이 아직은 조금쯤 남아있는 크라비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타운의 어떤 인터넷 까페에서 주인장에게 마우스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손봐 주었다. 그래서 out of time. 썽태우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나서야 황가가 내일모레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말하자면 크라비에 오래전부터 하루쯤은 묵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푸켓이나 파타야와는 달리 이곳에는 그나마 순진한 사람들이 살았고 인사라도 할라치면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르는 여자애들도 있었다. 그 재미에 여행하는데 말이다.

섬에 있는 동안 섬 개미들이 내 몸을 물어뜯어 알러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미산이 침투해 부풀어 오른 조그만 몽우리가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개미에게 물리면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다. 옛날에 섬에 있을때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녀석이 말하길, 가끔 sweet body가 있는데 개미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꼬인다는... 달콤해? 약을 사먹어야 겠는데, 크라비 타운에서 이러저런 이유로 시간을 지체하다보니 약국 찾아갈 시간이 없다. 어쨌건 가지고 있던 약을 몇 알 삼켰고 그래서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크라비 타운에서 방콕으로. 열두시간 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도착, 30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에 도착. '정글뉴스'를 찾아 파아팃 거리 건너편으로... 새벽의 카오산은 굴러 다니는 송장도 안 보이고 의외로 얌전했다. 죽집이 사라져서 기분이 비참했다. 서양인 둘이 밤새 술을 쳐먹고 비틀거리다가 건널목에서 말을 걸어온다. 한국의 붐붐걸들은 리얼리 썩스라고 말한다. 동감이라 고개를 끄떡이다. 한국의 여자들이 외국인들에게 따먹히든 말든 어린 시절에 느끼던 분노와 증오심은 사라졌다.

정글 뉴스 게스트하우스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키가 바깥에 있으니 문을 열고 들어와 쉬고 있으란다. 주변은 주택가로 조용하다. 여덟시 조금 넘어 체크인.

짐을 내려놓고 카오산으로. 해가 떠오르면서 갓 생긴 시장통이 활기를 더해간다. 하지만 옷 가게들은 아직 문을 덜 열어 바지를 살 수 없다. 빠통 해변의 토니 리조트에 혁대를 두고 왔다. 반바지는 혁대가 없으면 지퍼가 자꾸 열리고 그렇잖아도 다 낡아 더 입고 다닐 수 없어 버렸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작은 바지 빼고는 입을 옷이 없어 그후 하루종일 시내에서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녔다. 수영복 만이 내가 가진 유일하게 제대로 된 옷인 셈.

약국에서 zirtec을 사고 인터넷을 한 시간쯤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황가의 피부에서 발진이 생겨 지르텍을 먹였다. 샤워하고 '다빈치 코드'를 마저 읽었다. so what? 소설에 묻고 싶은 질문이다. 왠 얼간이가 이것저것 억지로 짜맞춰 써놓은 시시껄렁한 소설 같아 뵌다. 퍼즐 대부분이 따분하기 그지 없는 것들. so what? 베르베르의 '뇌'에게도 묻고 싶은 질문이다. 잘 쓰지도 못하고, 재미 없는 소설인데 베르베르가 썼기 때문에 잘 팔리는 것일까?

한두 시간 쯤 자고 일어나 15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 가는 길에 길이 막혀 버스에서 내렸다. 마침 내린 곳이 Jim Tomson's house 앞이었다. 내린 김에 들렀다. 짐 톰슨은 실크 수입상인데 어느날 행방불명되었다. 미수금을 갚지 않으려고 토낀 것은 아닐까 싶다. 그에 관한 몇가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별 관심없다.

아내에게 주려고 코끼리 그림이 있는 480밧 짜리 연분홍색 실크 스카프를 샀다. 썩 괜찮은 제품들이 눈에 띄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정작 관광해야 할 톰슨의 집은 입장료가 100밧 씩이나 해서 들어가지 않았다.

피피에서 제비집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황가가 제비집과 샥스핀을 먹고 싶단다. 별 맛이 없음을 미리 경고했다. 걸어서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싸얌까지 갔다. 싸얌의 한 중국식 레스토랑(scala restaurant)에서 무려 800밧이나 하는 샥스핀과 500밧에 종지 하나 달랑 나오는 제비집을 시켜 먹었다. 맛있냐고 물으니 맛있단다. 내가 먹어본 샥스핀 중 지느러미의 양이 가장 많았다. 게살과 계란, 녹말가루로 적당히 얼버무려 양을 늘려놓지도 않았다. 제비집은 그저 그랬다. 제비집이 쥐꼬리 만큼 밖에 없다. 후루룩 쩝쩝 먹어치우고 한끼 식사로 1300밧이라는 거금을 카드로 긁었다. 그다지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황가가 말했다. 다음 식당은 어디에요? 그래 오늘, 내일은 맛따라 길따라 하기로 했다. 뿌 팟뽕 까리(fried crab with curry)를 먹여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롬까지 슬슬 걸어갔다. 뿌 팟뽕 까리를 방콕에서 가장 맛있게 한다는 somboon seafood는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밖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한 시간 동안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노점상에서 만들어준 10밧 짜리 차갑고 맛있는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솜씨가 예술이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빵 속에 넣어 팔고 있다. 고소한 바베큐 냄새가 거리에 진동했다. 그런것들을 먹고 싶지만 뿌 팟뽕 가리를 먹기 위해 한 시간을 넘게 걸어왔으니, 참자. 최고급 식당 중 하나인 부사라쿰이 근처에 있다. 그곳에 수영복 입고 입장이 가능할지 늘 궁금했다.

실롬까지 가는 길에 소니 간판이 보여 무작정 들어가 메모리를 포맷해 달라고 부탁했다. 클리에에서 정상적으로 인식한다. 기쁘다. 거리에서 이것저것 사 먹었다. 거리음식이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 주고 먹는 음식들보다 항상 맛있었다.

오후 4시를 3분 남겨놓고 솜분식당에 들어갔다. 뿌 팟뽕 까리 두 접시와 작은 밥, 그리고 맥주를 시켜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게를 즐겼다. 이런 저런 기회 때문에 먹어봤지만 이렇게 살이 토실한 게는 처음 봤다. 커리가 너무 진해 게 맛을 압도하지도 않았고 양념과 잘 어울렸다. 생각해보니 상하이 게 요리 스타일이다. 기름이 워낙 많아 끝맛은 약간 느끼한 편. 황가가 말하길, 여자들이 좋아하겠다고. 너가 여자 마음을 알아? 라고 쏘아 붙였다. 절대 모를껄 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알지 라고 생각했다.

15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 로드까지 가는데 1시간 20분이 걸렸다. 태국이 경제난으로 위기에 처한 후 서민들이 신분과시용으로 구매했던 자가용을 다 팔아버려 교통체증이 완화되었다던데, 경제 사정이 나아져서 이 사람들이 다시 신분 과시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숙소로 돌아와 한국인 여행객들과 얘기를 하며 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69년생 아저씨는 날더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는 타잎인 듯 하여 생섬(럼주)를 권하지 않았다고 미안해했다. 그가 제대로 본 것이다. 사람보다는 생섬에 관심이 더 많았다.

게스트하우스 복도에서 연주씨가 남긴 메시지를 보았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열두 시가 조금 넘어 잠들었다.

7/6


아침에 에어컨 룸으로 방을 옮겼다. 황가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자기와 여행 다닐 때는 죽어라고 팬룸만 가더니 중얼중얼... 내 방은 2층 W2, 보라색 침대시트, 큼지막한 창틀, 베란다, 시원한 에어컨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겁먹은 고양이가 베란다의 귀퉁이에서 얼굴만 살며시 내민 채 쳐다보고 있었다. 푸른 눈.

511번 에어컨 버스를 타고 수쿰윗으로 향했다. 날도 더운데 움직이는 일이 귀찮다. 방콕병 증세가 나타난 것 같다.

수쿰윗 쏘이 23을 주욱 올라가면 유명한 베트남 식당인 Le Dalat이 나온다. 그 맞은 편이 Baan Kanita, 2001년, 2003년 태국 요리 부문 베스트로 선정된 식당. 길 하나 건너 쏘이 24에는 명성이 하늘을 찌를 것 같긴 하지만 쥐꼬리만한 음식이 나오는 레몬 그라스가 있다. 레몬 그라스를 가느니 골목 귀퉁이의 꼬치집에서 꼬치를 200개 사 먹고 만다. 세트 메뉴 가격은 2년전 그대로 380밧이었다. 맥주 한 병에 잘 먹고 배를 채웠다. 보기 드문 종류의 소박하지만 기품있고 은근한 맛, 그래서 다시 찾은 곳이지만 태국 음식하면 이 집 음식이 떠올랐다.

TAT 부스에 대고 영어를 정말 유창하게 늘어놓는 아가씨에게 이 근처(쏘이 23)에서 가장 좋은(best) 타이 마사지 가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니 타임 스퀘어 지하를 가르쳐 준다. 타임 스퀘어 지하에 있는 맛사지 가게의 이름은 'best thai massage'였다. -_-;

황가가 오일 맛사지를 받는 동안 나는 이층의 한국인 사장님이 만든듯한 인터넷 까페에 앉아 이렇게 로그를 작성중. 이제 나가자. 나가서 바지를 사자. 수영복을 입고 며칠째 벌건 대낮의 시내를 활보했다. 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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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한 시에 잤다가, 새벽에 잠깐 깨어 여명이 끼어든 새벽을 관람했다. 전깃불 덕택에 원시적인 새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침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얼굴만 문대고 어리벙벙한 상태로 숙소에서 일하는 친구를 따라 450밧 짜리 스노클링 투어를 신청했다. 항구 앞에서 사람들이 모이자 커다란 녹색 배를 타고 피피 레를 향해 배가 나아갔다. 피피 돈과 피피 레 사이에서 강한 해류가 흘렀다. 조류라고 해야할지 해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배가 치솟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기도 했다. 앞으로 고꾸라졌다가 고물이 치켜 올라가기도 했다. 상석에 앉아 있었던 관계로 거진 바이킹 놀이기구에 가까왔다.

사진기나 현금은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장비를 챙겨 입수. 이번 스노클링은 '빵'과 함께 했다. 빵을 부숴서 뿌리니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 들었다. 어, 정말 재미있다. 빵을 자꾸만 뿌려 내 주변은 온통 물고기떼로 가득 찼다. 봉투 안에서 빵을 떼어 내려니 더 이상 빵이 없다. 대신 소세지가 잡혔다. 물고기들이 소세지를 좋아할까? 좋아한다. 훨씬 좋아했다. 백 빵 보다 소세지 하나가 더 낫다. 소세지를 흔들며 물고기를 희롱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소세지 하나로 한 30분을 잘 놀았다. 소세지가 1/3 토막 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손 바닥으로 소세지를 잡고 살짝 손바닥을 펼쳐 물고기떼가 미친듯이 몰려들 때 재빨리 손가락을 오무려 소세지를 감췄다. 이거 정말 재미있다. 물고기는 지능이 낮은 탓인지 그렇게 놀려대는 데도 쉴 새 없이 몰려 들고 흩어졌다. 물고기떼는 마치 삐끼들처럼 행동했다.

스노클링 한 번, 밥을 먹고, 다시 두 번 더, 각각 한 시간씩 하니 기진맥진했다. 황가는 겁을 집어먹고 스노클링을 하다가 말았다. 입수하자 마자 10-20m 깊이여서 혈압이 솟구치고 팔다리가 뻣뻣해 진단다. 배 위에는 여러 국적의 여자들이 비슷한 이유로 우아하게 썬텐을 하고 있었다. 스노클링은 깡으로 하는 거야. 말했다. 내가 두번째 스노클링을 할 때는 함께하는 여행자가 없었다. 롱 테일 보트에서 뱃사공과 함께 바다에 나가 그냥 막무가내로 떨구고 (살아서) 헤엄쳐 돌아오는 것이었다. 수영은 전혀 할 줄 몰랐고 라이프 자켓이라고 준 것은 어설픈 스티로폼이었다. 어쨌거나 살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 다음부터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캐러비언 씨에서의 스노클링은 개중 가장 멋졌고 가장 무서웠다. 1-2미터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파도의 골과 용마루 사이를 왕복하면서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내팽개쳐지고 수도 없이 튜브로 물이 들어왔고, 목구멍으로 쓰디쓴 바닷물을 넘겼다. 라이프 자켓을 벗으면 무서워서 못할 것이다. 그 이후로 절대로 라이프 자켓을 벗지 않았을 뿐더러 핀을 벗어 던지는 등의 만용도 부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의 한계를 안다.

배 갑판에 누워 살이 타들고 가고 있을 때 황가에게 도가 사람들이 단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해 얘기해줬다. 어제는 부처 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태국이나 필리핀의 무인도로 가는 왕복 배편을 만들고 현지 여자들을 몇명 사들여 섬에다 풀어놓은 다음 사냥해서 잡아 먹는 계모임에 관한 얘기도 했다.

네번째 스노클링은 하지 않았다. 조류가 거세 사람들이 이리저리 떠내려갔다. 그렇잖아도 지쳤는데 그 조류에서 버틸 재간은 없었다. 스노클링 투어는 오전 열 시에 시작해서 오후 네 시에 끝났다. 세 시간쯤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섯 시간이나 했고, 밥도 주고 물은 무제한 공짜였고, 과일 쪼가리도 몇 개 준다. fin을 빌리려면 별도로 50밧을 내야 할 꺼라고 생각했는데 그 비용도 투어 비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450밧에 여섯 시간을 잘 놀았으면 괜찮은 투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선실로 몰아놓고 우리가 투어를 할 동안 비디오를 찍던 친구가 찍었던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DV로 찍은 것으로 화질이 생생하고 스노클링 하면서도 미처 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말미잘, 산호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들, 바닷속에서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여러 생물체들이 그야말로 총천연색으로 하늘거리는 멋진 비디오였다. 500밧에 cd로 떠 준단다. 필요없다. 내가 나오는 장면은 고작 두 컷 뿐이었고 소세지를 든 채 대마왕처럼 물고기떼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기가 막히게 멋진 모습은 누락되었다.



물 빠진 해변

시장통에서 40밧 짜리 쇠고기 국수를 먹고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입구에서 어제 방을 안내해준 직원이 불러 세웠다. 오늘 방값을 지불하란다. 어제 이틀치 600밧 다 줬잖아? 아니란다. 600밧은 하루치 방값이란다. 무슨 소리냐, 너가 어제 방 하나에 300밧이라서 여기 온 거잖아. 코 피피에서 방 안에 냉장고, 온수를 제공하고, 해변에서 이렇게 가까운 숙소가 300밧 짜리는 없고, 두당 300밧이란다. 어제 분명히 너가 그렇게 말해서 따라온 거지 안 그랬으면 내가 미쳤다고 따라오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영수증을 보여줬다. 영수증에는 어제 하루치 방값 600밧을 지불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가 얼굴을 쳐다 봤다. 황가는 숙소를 잡아본 적이 없다. 지불할 때 확인을 안 한 것이다. 직원의 말이 괘씸해서 더 따져볼까 하다가 600밧 더 주고 그냥 숙소로 걸어갔다.

여행사에 들러 200밧 짜리 크라비행 배편을 예약했다. 해변을 가로질러 뷰 포인트로 올라갔다. 해가 지는 모습이나 구경하자 싶어서 였다. 다들 올라가는 계단으로 안 가고 반대쪽 로달람 비치 쪽으로 난 비스듬한 산등성이를 기어 올라갔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사진을 다 찍은 태국인들이 먼저 내려가고, 그 다음으로 사진을 다 찍고 볼일을 마친 일본인들이 내려갔다. 지평선에 떠 있는 구름의 형태로 보건대 오늘 '끝내주는' 석양을 구경하기는 다 글렀다고 생각한 우리도 해가 지기 5분 전에 내려왔다. '로맨틱' 운운하며 끝내 남아 있는 떨거지들도 있었다. 석양은 필리핀의 보라카이가 드라마틱하고 멋졌다. 아무래도 보라카이가 석양 만큼은 최고같다.





내려오는 길에 '활달하게' 뛰어가는 무슬림 아가씨가 있었다. 어쩌다가 말을 해 보니 난생 처음 보는 '타이 무슬림'이었다. 타이 무슬림 여자는 남자와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나 보다, 무척 신기했다.

다시 시장통에 들렀다. 황가에게 해변의 해산물 요리를 사주기는 커녕 시장통에서 밥 사다가 숙소에서 먹는 궁상을 차마 더 하기에는 미안한 나머지 혹시나 해서 수년 전 추억의 맛집에 들렀다. 음식은 여전히 맛있다. 주인은 여전히 친절했고 그 친절한 주인은 여전히 날 보고 '곤니찌와'라고 말했다. 바나나 쉐이크 25밧 짜리 2개, 코코넛 밀크로 만든 커리 50밧, 플레인 라이스 10밧, 카오 팟 까이 40밧 이렇게 해서 135밧을 지불했다. 주인은 15밧을 덜 계산했다. 오래오래 추억의 맛집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8시 30분. 냉장고에는 물병만 다섯개가 있었다. 샤워하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쉬었다. 살은 끔찍하게도 많이 탔다. 더 뭔가를 하기에는 지친 하루다.

'다빈치 코드'를 읽기 시작. 나는 책 한 권 들고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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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에서

여행기/Thailand 2004/07/01 18:43
7/2

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의 젊은 아저씨 말을 믿어 무궁한 옵션을 스스로 제약한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토니 리조트 맞은편에는 아침 포함 400밧 짜리 숙소가 있었다. 선라이즈 직원이 말한, 싸다는 해산물 가게에서 오징어 두 마리, 새우 네 마리, 생선 한 마리, 카우 팟 둘, 맥주 한 병을 먹고 무려 900밧을 냈다. 사실 직원이 말 못한 사실도 더 있었는데 푸켓에 가면 먹을만한 음식이 솜찟 국수라는 것. 그가 일러준 무에 타이 경기장은 옛날에 사라졌고 한국 식당 주인에게 물어서 찾아간 무에타이 경기장도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 타이거 바에서 한 숨 돌릴 때까지 주 도로를 두 번 왕복했는데, 약 한 시간 반 동안 거리를 헤멘 셈이고 그 동안 쏟아지는 비를 피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겨 다녔다. 아무튼 그 '잘난' 배낭여행자 주제에 그저 좀 귀찮다는 이유로 '관광사 직원' 말을 듣고 있었으니 잘될 일이 없었다.

토니 리조트에 바우처를 주고 방을 잡을 때 아침 식사 티켓을 주지 않아, 왠지 이상해서 방으로 돌아갈 때 프론트에 아침을 언제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티켓을 슬며시 준다. 피곤에 지쳐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잔 하고 곧바로 골아 떨어졌다. 밤 열시쯤, 빠통 비치의 끝내주는 나이트라이프는 완전 무시한 채 잠이 든 것이다. 황가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사실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봉쑈, 게이바, 사이몬 쑈, 이런 것들은 이제 졸업한 것이다. 선라이즈 직원 말에 따르면(그는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낮췄다) 아가씨는 1500밧이란다. 어? 방콕은 2000밧인데? 글쎄다. 예전에 왔을 때도 빠통 비치에 괜찮은 계집은 통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방콕의 나나 플라자가 나은 것 같다. 콧구멍이 돼지처럼 벌렁 제껴지고 바싹 마르고 새까맣고 조그만 남부 아가씨들보다는 방콕 북부를 비롯한 태국 전역에서 제발로 온 예쁜 아가씨들이 많으니까. 북부 유럽 놈들은 바통의 그런 아가씨들에 환장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네들의 미적 기준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저렇게 못생긴 여자를 옆에 끼고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방안의 알람 시계는 고장난 상태였고 두 번이나 부탁했던 모닝콜은 울리지 않았다. 픽업 봉고가 온다는 바로 그 시각이라 허겁지겁 짐을 꾸렸다. 기껏 얻어온 티켓으로 아침을 챙겨먹기는 커녕, 세수도 하지 못하고 봉고에 올랐으니 그 시각이 7시 30분. 봉고는 5분 동안 지체했다. 그 와중에도 리조트 직원들은 방 키를 들고 냉장고에서 뭐 먹고 계산을 덜 한 것이 있나 뒤지러 방으로 올라갔다. 바쁘다 바뻐.

봉고 안에는 한국인 부부 둘과 중국인 부부가 타고 있었다. 한 팀은 푸켓에 온 적이 있거나 어디서 얻은 정보(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가 아닐까?)를 다른 부부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스노클링 투어 하면 '정가'가 600밧이니까 알아서 잘 깎아보라고 정성어린 충고를 해 준다. 나도 한 마디 할까 하다가 괜히 친한 척 할까봐, 잘 알지도 못하는 피피섬에 관해 이것 저것 물을까봐 관뒀다; 스노클링 투어는 정가가 450밧이고 점심, 물, 과일 포함이고, 큰 배로 가는 편이 작은 배로 가서 작열하는 햇살 아래 고생하는 것보다 낫다 라고.

파도가 거칠어서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배멀미로 고생하거나 토할 것만 같은 상황을 꾹 참고 버티고 있었다. 의외로 거친 파도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파도가 높아 피피 레는 갈 수 없다고 한다. 거친 파도 위에 먹구름이 삽시간에 드리우고 폭우가 쏟아졌다.

돌아가는 길의 파도는 조류를 거슬러 가기 때문에 더 거칠텐데 사람들이 견딜 수 있을까? 황가에게 크라비로 가자고 말했지만 그도 배멀미 탓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지 나중에... 라고 말한다.



피피 섬의 톤사이 만에 이르자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이 고깃배들이 왜 여기있나 싶어 의아했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다.

피피섬에 다다르자 마자 황가를 scv처럼 섬 이곳저곳으로 보내 숙소값을 알아보라고 하고 나는 세븐 일레븐 옆에 앉아 삐끼들과 노가리를 깠다. 황가가 가이드북에서 찝은 숙소는 짚시2 게스트 하우스였다. 싸긴 싼데 벌레가 우글거릴 것 같고 내부가 어두울 것만 같다. 손톱깍기를 꺼내 발톱을 깎으면서 숙소 가격을 흥정했다. 어찌된 일인지 황가는 한 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적어도 숙소 열곳은 둘러 보라고 했더니 정말 그러나 보다. 한가하게 앉아 있다가 온수가 나오고 냉장고가 있는 안다만 리조트를 300에 합의했고 그 정도면 적당하다 싶었는데 황가는 여전히 안 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돌아온 SCV는 섬을 한 바퀴 돌다가 길을 잃고 헤멨단다. 어쨌거나 짐을 픽업해서 핫 야오의 숙소로 향했다. 숙소가 그럴듯 했다. 아니 이런 숙소를 300밧에 얻어 내심 뛸듯이 기뻤다. 황가를 괜히 고생시키지 말고 그냥 앉아 있다가 가격을 물어보고 올껄 그랬구나 싶다. 난 정말 나쁜 놈인 것 같다.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 모기가 없다는 증거일까?



숙소에서 해변까지 걸어서 15초 가량 걸렸다. 경험한 가장 해변이 가까웠던 숙소는 97년 꼬 따오에서 잡았던 이름모를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바로 앞이 바다였다. 그후 그런 숙소는 다시 보지 못했다.

식당을 찾아 다녔다. 내 기억에 피피호텔 뒷편에 로칼리 식당이 있다. 찾다 지칠 무렵 나타났다. 어제 900밧 씩이나 주고도 한심한 식사를 한 탓에 다운시프트 웰빙 트래블 한답시고 스마트 애스인 척 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120밧에 카우 팟 꿈, 카우 팟 까이 각각 한 접시, 팟씨우 한 접시를 먹었다. 새우가 매우 싱싱했다. 섬이라 물가가 비싸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 끼 40밧 짜리 식사는 어쩔 수 없는 가격이다. 물론 남 깽 쁠라우(얼음물)는 공짜였다. 푸켓 사람들이 돈에 미쳐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뭍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과일을 좀 샀다. 황가는 어제 람부탄과 망고, 그리고 뭔가 열대과일을 먹었다. 오늘은 어제 빠통 해변에서 태운 피부가 땡긴다고 해서 엄청나게 비싼 애프터 선 로션과 선 블럭 크림을 샀다.

할 일이 없어 해변에 누워 있다가 비를 맞거나 고양이와 놀다가 비를 맞거나 숙소 의자에 앉아 오는 비를 쳐다 보았다. 황가는 책을 읽다가 자거나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빠져 잤다.



지나가던 고양이를 불러 놀았다. '야옹'이라고 말하면 '야옹'이라고 대꾸했다. 애꾸 고양이도 있었는데 그 놈은 눈을 잃은 후 정신 상태가 이상해진 탓인지 '야옹'이라고 말하면 묵묵무답이다.



숙소에 고양이들을 재웠다. 검은 놈은 나이가 어려 어리석다.



해변에 룽기를 깔고 누워 '칼의 노래'를 읽었다.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해변에 먹구름이 밀려 왔다. 곧 광기어린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후 3시가 지나자 썰물 때문에 톤사이 만의 물이 만 바깥쪽 저 멀리로 밀려갔다. 그제서야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깃배들이 왜 그곳에 정박해 있나, 이유를 알았다.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바닷물을 따라 만 입구까지 걸었다. 해변의 모래가 찰져 발바닥에 달라붙는다. 한 시간쯤 걷다가 조개를 잡는 아가씨들과 노닥거렸다. 옷이 바닷물에 흠뻑 젖었다.

오후 6시까지 책을 마저 다 읽고 저녁 꺼리를 준비하려고 해변에서 일어섰다. 시장통에서 10밧 짜리 밥을 둘 사고 10밧 짜리 반찬을 둘 사고 Took BBQ에서 새우 꼬치와 닭똥집 튀김을 각각 2개씩 90밧에, 내일 스노클링할 때 쓸 10밧 짜리 고기 먹이(빵 찌꺼기)를 제과점에서 사고 세븐 일레븐에서 50밧 짜리 창 맥주와 85밧 짜리 메콩 위스키를 샀다. 뭘 사건 비싸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냉장고에 넣어둔 코코넛을 20밧에 팔았다. 섬 여기 저기 그저 매달린 채 할 일 없이 익어가는 그것들이 이제는 돈을 받고 판매되는 상품이 된 것이다. 워낙 자연적인 수순인지라 안타깝지 않았다. '칼의 노래'를 빌어서 표현하면, (나는 자본주의의) 그 공허함을 견딜 수 없다.

프론트에 부탁해서 숟가락을 얻었다. 왠지 장기여행자스러운 이런 궁상이 황가에게 미안스러웠다. 하지만 어제 식으로 돈을 펑펑 쓰게 되면 일주일에 이삼십만원은 우습게 깨질 것이다. 웰빙 여행의 공허함을 견딜 수 없다.

밥은 몹시 맛있었다. 비단 20밧에 한끼를 해결했다는 담백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원한 코코넛 수액을 반쯤 먹어 없애고 그 자리에 메콩을 반쯤 부었다. 옛날에 고씨가 그렇게 만들어서 참 희안한 칵테일이다 싶었는데, 정말 그렇게 마시는 놈들이 있었다. 해적들은 럼을 코코넛과 섞어 마셨다. 수상쩍은 맛 때문에 다 비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알딸딸했다. 해변에 누워 있다보니 밀물이 밀려와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고양이들이 식사를 함께 했다. 메콩 코코넛 칵테일을 빨대로 빨아 먹었더니 몹시 알딸딸했다.

이 소상한 일지는 이순신이 난중일지를 적던 그 시절의 정밀함에 필적했다. 그러나 내가 적는 이 한푼 어치도 안 되는 보잘것 없는 사실들의 기록은, 베어버릴 적도, 수사의 공허함도, 죽음을 향해 진군하는 삶의 덤덤한 묘사하고도 하등 관계되지 않았다. 김훈의 '칼의 노래', 그의 문장 스타일을 하나하나씩 깨우쳐 갈수록, 그의 글에서 푹력에 버금가는 상상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도 함께 깨우쳐 갔다. 그의 글에 상을 준 심사위원들은 그의 글을 젊다고 표현했다. 그렇게나 잘 만든 음식에서 나는 지랄스러운 청춘을 느끼지 못했다.

밥 먹고 해변에서 밀물이 발바닥을 희롱할 때까지 누워 궁상을 떨었다. 시간의 느림, 정지를 가끔씩 체험했는데 이번에도 그것이 보였다. 신체와 마음의 시간이 느려지면 사물의 상대적인 속도가 빨라지는데, 그럴 때면 달의 움직임이 보였다. 달이 움직인다. 지금쯤 꼬 팡안에서는 LSD를 빨면서 미쳐 돌아가지 않을까? 지금쯤 치앙마이 트래킹의 한 지점에 머문 여행자들을 아편으로 꼬드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달이 달 같지 않고 바다가 바다같지 않고 해변이 해변같지 않은 무의미한 사진.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돌아오니 열시가 넘었다. 열시 반부터 불쑈를 숙소 바로 앞의 히피 바에서 한다던데 별로 구경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봉 양쪽에 불을 붙이고 빙글빙글 돌리는 묘기인데 그런 걸 봐서 뭘 하나, 지겹기만 하지. 바에 들러 술을 마시려다가 황가를 내버려두고 가는 것도 왠지 꺼림직스러워 관뒀다. 바와 몇몇 가게를 제외하고 섬의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참, 평화로운 하루였다. 이 맛에 섬에 들어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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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비닐 봉투에 담은 쥬스를 들고 입가에 Krong Tip을 물고 카오산 거리를 돌아다니던 것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다른 많은 것들은 바뀌었다.

황가는 어디로 가야할 지 갈팡질팡 했다. 처음에는 라오스 일주를 계획했으나 시간이 없어 포기, 그 다음에는 북부 트레킹과 남부 섬 일정을 계획했지만 편히 쉴 곳을 간절히 원하는 직장인에게는 맞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푸켓을 거쳐 꼬 피피에 들러 며칠 푸욱 쉬다 오는 일정으로 다시 잡았다. 나야 뭐 아무데나 가도 상관없다. 여기가 거기같고 저기가 여기 같았다. 아무데나 가서 아무렇게나 돈을 쓰다 보면 날짜란 흘러가게 마련 아니었던가.

비행기를 탈 때 짐 무게를 달아보니 5kg이 나왔다. 배낭 무게만 해도 1-2kg은 나갈텐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다. 티켓은 타이항공 것이지만 아시아나 부스 옆에서 출입국 신고서를 레이저 프린터로 깔끔하게 출력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식으로 태국음식이 나왔고 간만에 먹은 탓인지 먹자 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갔다. 태국의 첫 맛은 늘 설사였다. 태국 음식에 사용되는 향신료 때문이 아닐까 싶다.

28만원짜리 항공권은 97년도에나 나올법한 가격인데다 방학이 겹쳐 기내에는 외국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입국서류는 말 그대로 20초도 안되 다 채워 넣었다. 지루한 비행 후 돈 무앙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서둘러 입국 수속을 마쳤다. 이력이 생긴 탓인지 저절로, 퍼스트클래스보다 늦게 나오고도 퍼스트 클래스 보다 일찍 나왔다. ATM에서 카드로 3000밧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는 현금(달라)를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공항 오른쪽으로 주욱 가서 5밧 짜리 59번 버스를 탔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엄청나게 많은 한국인들 중 59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으로 가는 작자들은 나와 황가, 이름모를 한국인 한 명 뿐이었다. 혹시 그들은 그 버스가 24시간 운행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나저나 그들이 한결같이 들고 다니는 '헬로 태국' 분홍색 책은 2년 전의 것이고 정보 대부분이 out of date된 것들이다. 인세 문제로 저자가 더 이상 책을 업데이트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이라면 한국 출판사는 변함없이 한심해 보였다.

버스는 후덥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광포하게 한 시간을 달려 민주 기념탑, 복권청 맞은편에서 내렸다. 카오산으로 걸어갔다. 카오산 거리는 2년 새에 많이 바뀌었다. 마치... 바뀐 인사동 같았다.

숙소 찾기를 황가에게 맡겼다. 홍익여행사는 자리를 옮겼고 만남의 광장도 자리를 옮겼다. 사원 뒤로 돌아 홍익인간 골목으로 들어가 peachy guest house에서 직원을 깨워 160밧 짜리 팬 더블룸을 잡으니 새벽 2시 10분. 그나마 그 동네에서 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땅히 술 한 잔 할 곳이 없어 닭꼬치 셋과 맥주 두 병을 사들고 숙소로 다시 돌아와 샤워하고 마셨다. 눈을 붙일 때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이다.



Peachy Guesthouse. 팬이 잘 안돌았지만 자는 중에는 그리 덥지 않았다.


6/30

몇 시간 자지도 못한 채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어나 항공기 날짜를 바꾸러 홍익 여행사에 들렀다. 홍익여행사에는 한국인들이 바글거렸다. 저 줄을 기다리려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직접 타이항공에 전화를 걸어 항공권 일자를 바꾸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타이항공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TAT에 들러 지도를 얻고 타이항공까지 걸어갔다.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홍익여행사에서 이전에 이집트 다합에서 만난 적이 있는 한국인 아가씨를 만났다. 그녀는 최근에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고 경찰서에서 몇 시간을 보냈으며 태국 방송에도 나왔다고 한다. 여전히 사건사고를 몰고 다녔다. 만나고 다시 만나고 또 만나고 카오산 같은 곳에서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 여행자들의 운명 같은 것일까? 아무래도 비슷한 고생을 한 동병상련의 감정 탓일께다. 다른 한국인들과는 사실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욕을 먹던 만남의 광장이 없어진 탓에 사람 만나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식당을 하고 있는 홍익인간에 앉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물어보며 죽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영업방해다. 그래서 그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홍익인간 역시 한국인이 적었을 당시에는 재밌는 곳이었을 것이다. 만남의 광장 사장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나 들어와 다다미방에 누워 만화책을 읽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던 것을 참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기 뛰는 여행자들이 잘난척하며 영웅담? 고생담?을 늘어놓으며 여자애들에게 껄떡대는 모습이나 노련한 경험?으로 그들에게 약간의 은혜를 베풀고 날로 먹으려는 수작질을 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닐진대, 만남의 광장 사장만이 유달리 자기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예쁜 아가씨들에게 껄떡댄다고 볼 수도 없었고 여행 나와 제대로 마음 단속 하지 못하는 여자애들에게 똑같은 책임전가를 한다는 것을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 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쨌던 구설수는 참 무서운 것이다. 수년 전 악당처럼 생긴 만남의 광장 사장이 참담한 표정으로 내게 묻던 일이 생각났다. 여기 있는 컴퓨터 전부가 바이러스 먹어서 인터넷은 못해. 누가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30번 버스를 타고 콘송 사이따이(남부터미널; 이름을 잊은 줄 알았는데 용케 기억하고 있었다)에 들러 푸켓행 VIP 24석 버스를 755밧 주고 예약했다. 이렇게 비싼 버스는 처음 타 본다. 예전에 푸켓에 갈 때는, 아니 태국의 어디를 가던 창문을 열고 다니며 온갖 지점에서 서는 일반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세수를 하면서 코를 풀면 콧구멍에서 검정색 땟국물이 나왔다. 일반 버스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타는 버스라서 여행자들이 잘 타지 않았는데 뒷자석에 대자로 누워 잠자기 좋았다. 가끔은 탑승한 현지인들이 위스키를 권해 주기도 했고 야심한 밤에 기어 올라와 흔들어 깨우는 잡상인들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이가 드니 그런 짓은 다시 못 하겠다.

다시 511번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이동. 수쿰윗의 반 카니타에 가서 태국 궁중식을 먹어보려 했지만 오후 두 시가 넘어 포기했다. 가게 문을 닫았을 것이다. 대신 월텟의 MK restaurant에서 오랫만에 수끼를 먹었다.



World Trade Center는 World Plaza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맞은편에 Gaysorn 백화점이 공사를 마치고 새로 개장했다. 센과 이세탄 백화점 앞에는 밤이면 밴드 연주를 하며 맥주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노천식당이 생겼다. 지나가는 태국인 중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고 그들은 2년 전에 볼 때보다 얼굴 표정이 굳어 있었다. 급속한 문명화의 부작용일께다. :)

카오산으로 돌아와 tanning oil과 mosquito repelant를 구입하고 한 시간쯤 인터넷을 했다. 홍익 여행사에 맡긴 짐을 찾아 남부 터미널에 가서 버스에 올랐다. 난생 처음으로 태국에서 VIP 버스를 타 본다. 상당히 넓은 좌석이고 항공기보다 편한 리클라이닝 시트다. 들어가자 마자 빵 세트와 우유, 물 따위를 나눠주었다.



남부터미널로 가는 도중 시내 버스 안에서. 왼쪽의 서 있는 작자는 차장. 버스에 차장과 운전수 체계로 운영하는 것이 운전수 혼자 돈 받고 운전도 하는 한국식 시스템보다 나아 보인다. 비록 비용은 더 들겠지만 운전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새벽 한 시쯤 버스가 멎고 VIP 전용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감격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VIP 버스구나 싶었다. 버스에서는 비디오로 Torque를 틀어주었다. 뒤척이면서 자다가 깨보니 푸켓에 도착했다. 7:30pm 출발해서 6:30am 도착.

7/1

어젯밤 인터넷으로 뒤져 알아낸 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황가는 까말라 비치에 가길 원했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마땅한 정보가 없어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방은 3일치 예약이 꽉 찼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게스트하우스의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이도 배낭여행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저렴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까말라 비치에 fantasea가 있다는 것 정도? 빠통 해변의 지도 위에 갈만한 곳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푸켓에는 볼꺼리가 없어 비치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글쎄다. 볼 것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수년 전에 푸켓타운에 묵을 때는 150밧에 혼자서 샤워가 달린 더블룸을 잡았다. 아마 그때 숙소에서 베트남 상이용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숙소를 푸켓타운에 잡아두면 그곳을 기지삼아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 좋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비치에서 아무리 싼 숙소라도 400-500밧 이상이 나온다. 그가 권해준 토니 리조트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니었고 무려 1100밧이나 했다. 황가의 의향을 물으니 서슴없이 그곳에 묵잔다. 직원이 바우쳐를 뽑아올 동안 이번에도 역시 관광이 되는구나 탄식했다. 푸켓타운에 볼꺼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푸켓타운의 시장이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중국 화교 및 이슬람의 영향, 씨 짚시들, 거기에 포르투갈 양식의 건물 등등을 나름대로 흥미롭게 관찰할 수도 있을텐데... 싸게하려면 얼마든지 싸게 할 수도... 모르겠다.

선라이즈 사장님이 우리를 국수집 까지 태워 주셨다. 25밧 짜리 바미 남을 시켜 먹었다. 상당히 훌륭한 맛이다. 라농 거리에서 빠통 비치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옆에 앉아있던 할마시가 친절하게도 버스는 두당 15밧이라고 가르쳐준다. 썽태우는 20밧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시내에서 중국인들처럼 중국식 아침을 먹을 수도 있고 딤섬도 먹을 수 있다는 것, 시장통에서 밥과 반찬을 사먹던,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버스가 빠통 비치에 접근해 가는 동안 집채만한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좆됐다' 라고 중얼거렸다. 피부를 올리브 빛으로 태우려는 열망으로 이곳에 온 황가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숙소는 상당히 좋아보였다. 짐을 풀고 샤워하고 빨래를 하니 피곤이 몰려왔다.





간단히 짐을 챙겨 해변에 나갔다. 의자 하나 빌리는데 50밧, 태닝 오일을 몸에 바르고 누웠다. 하늘이 수시로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가끔 비가 오기도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피부를 태웠다. 갑자기 비가 와서 해변을 떠났다. 첫번째 ATM에서 돈을 뽑는데 실패, 그 옆의 것에서는 다행히 돈을 뽑을 수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져 숙소로 황급히 대피했다. 비는 한 시간 내내 미친듯이 내리다가 말끔하게 개었다. 지구 온난화에 발맞춰 태국의 우기도 점점 지랄스러워 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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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당(북경)에서 짬짜면(짬뽕과 짜장면)과 우동을 먹었다. 김치와 깍두기, 단무지와 양파 등이 밑반찬으로 나와 그럴듯 했는데 세 음식 모두 뭔가 맛이 좀... 어쨌든 듬뿍 들어 있는 야채와 '정상적인' 면발로 배를 채웠다.

간혹 한국인 남자가 필리핀인 여자의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http://phillove.co.kr에 가면 필리핀의 나이트라이프에 관한 많은 양의 정보를 구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바에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다. 아내가 옆에 있으니까...

아침 일찍 일어났다. 식비는 100페소 이상씩 펑펑 쓰면서도 마지막까지 4페소 짜리 지프니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네 번 씩이나 패스포트를 꺼내 검사 받고 줄을 서서 짐 검사를 두 번씩이나 했다. 시간이 많이 걸려 비행기 떠날 시간이 다 되어 탑승 승객을 찾는 final call 방송을 들으면서 비행기에 탔다. 그런 와중에도 짐 검사를 한 줄로 하더라. 비효율. 오랫만에 보잉의 7xx 시리즈가 아닌 에어버스 비행기를 타본다.

Manila -- air 2hrs --> Taipei -- bus 1hrs --> Hsinjoo -- train 15min --> Hsinfong

타이뻬이에서 42km 떨어진 창카이섹 국제 공항에 도착. 어리벙벙하다. 중국 여행의 경험이 생각나 왠지 숨이 막혀 왔다. 사전 지식 없이 공항에 올 때까지 가이드북도 안 읽었으니까. 공항->시내, 시내에서의 숙소, 3일 간의 일정을 잡고 있는 동안 아내가 유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장난 전화기를 붙들고 헤메고 있었다. 간신히 통화에 성공, 하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대만인의 도움으로 공항 버스를 탔다. 15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승객들이 내렸다. 어리벙벙하게 따라 내렸다. 갈아타야 한단다. 가는 길 내내 즐비하게 늘어선 공장을 보았다. 신쭈우(新竹)에 내렸다. gps로 포인트를 찍어 보았다. 여차하면 타이뻬이로 돌아가야 하니까. 신쭈 근처에는 컴퓨터 생산 공장이 있다. 사이언스 파크도 눈에 띄었다.

내리고 나자 다시 황당.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도시. 물어물어 택시를 타고 간만에 들어보는 그 정겹고 이가 갈리는 이름, 후어처짠(기차역)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한 달 남짓 있는 동안 후어처짠을 4성에 맞춰 발음하느라 고생했다. 발음이 안 좋아 대다수 중국인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신쭈에서 신퐁(新豊) 행 전철을 잡으면서 다시 헤멨다. 2시간 반 동안 정신없이 이동한 끝에 천주당(성당)에 도착했다. 천주당 입구에 김대건 신부가 갓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 신부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제관에서 머물도록 허락해 주셨다.

마치 도교 사원 처럼 생긴 중국식 천주교당에서 미사에 참가했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유 신부님에게는 실례된 말씀이지만, 마치 사이비 종교의 제례를 닮은 다소 희안한 미사를 구경했다. 수녀 중에 젊은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유신부님이 자신의 월급의 1/5에 해당하는 돈을 경비에 보타 쓰라며 불쑥 건네 주신다. 아내는 안 받으려고 한사코 사양 했지만 난 누가 뭔가를 주면 거절하지 않는 타입이다. 평소에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편이다.

대만에서의 첫 식사는 샤부샤부 였다. 대만식 김치를 넣었다는데 얼추 김치찌게 비슷한 맛이 났다. 듣자하니, 신쭈와 신퐁에는 한국에서 반도체 도면을 빼돌려(산업 스파이) 그것을 대만에 팔아버린 한국인 기술자들이 모여 산다고 하더라. 밤에는 파푸아 뉴기니에서 오신 이 신부님과 합석해 술 먹고 노래를 불렀다. 이 신부님이 사람을 20여명이나 죽인 살인마에게 영세를 줬던 어처구니 없는 사연을 얘기해 주셨다. 신부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수용 신부와 수출용 신부. 아무래도 수출용 신부님들이 훨씬 재밌다. 하하하. 58이라 불리는 끝내주는 고량주와 여러 종류의 맥주를 섞어 마셨다. 새벽 5시쯤 파장.


대만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샤브샤브 가게. 이곳은 김칫국물이 육수였다!

-*-

아내가 아홉시에 깨웠다. 어젯밤 술을 섞어 마셔 술이 안 깬다. 얼른 씻고 나왔다. 아랫배가 찌부두둥해 가게에서 우육면 비슷한 것을 시켜 먹었다. 머리가 아파 전철에서 줄곳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을 마시는 건데...

기룽까지 2 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갔다. 그동안 아까 먹은 느끼한 국수 때문에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꾹 참고 있었다. 기룽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토하니 속이 시원하다. 두통약(아세트아미노펜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브루펜인 듯. 아내의 말로는 아세트아미노펜을 주성분으로 하는 타이레놀보다 브루펜 계열이 부작용이 적고 좋단다)을 사다 먹느라 1시간을 소비했다. 좀 진정이 되는가 싶더니만, 이번에는 아내가 보리 음료를 마신 후 피부가 견딜 수 없이 가렵단다. 다시 약국을 찾아 돌아다니며 안티 히스타민 약을 샀다. 늘상 보아오던 zirtec(하이드로클로라이드)이었다. 우리 둘은 약 먹은 병아리처럼 골골 대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버스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비정성시를 찍은 골목길이 있는 그 도시에 가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정을 포기하고 근처 중산 공원으로 향했다. 약기운이 퍼지기 시작한 아내는 중산공원 꼭대기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진통제 때문에 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 그나마 3일 밖에 안되는 일정 중 하루를 이동하고 술 마시느라 보내고 그 다음날은 전날 숙취와 희안한 알러지 때문에 날려보내는구나 싶었다.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은 절에 들러 시주하고 사이좋게 기대 졸다가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은 것이 없다. 벌써 오후 3시다. 거리에서 음식을 사먹으며 기운을 좀 차렸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아내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지룽의 명물은 구경도 해 보지 못하고 터미널로 돌아왔다.

터미널에서 신퐁행 버스가 눈에 띄었다.별 생각없이 차표를 구입해서 시내버스(?)에 올랐다. 2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로 가는 버스가 시내버스라는 점이 이상하긴 했지만 대만이 워낙 작은 동네고, 금액이 얼추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고, 우리 부부는 맛이 간 상태였다.

버스에서 졸다가 깨어보니 보여서는 안 될 해안선이 보였다. 머리 속의 자석은 버스가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지시했다. 우리는 서쪽으로 가야 한다. 어쨌거나 바다가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 졸았다. 깨어보니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버스가 멎은 채 우리만 남았다. 운전기사 아저씨와 손짓 발짓으로 얘기해 보니 우리는 신쭈 근방의 신퐁에 온 것이 아니라 지룽 근교의 신퐁이라는 똑 같은 이름의, 한창 건설이 진행중인 신 도시에 온 것이었다. 얼레벌레 엉뚱한 표를 사고 엉뚱한 버스를 탄 것이다.


여기가 대체 어딜까... 말도 안 통하고... 무작정 버스를 기다리며.

잠이 다 깼다. 정신 차리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하루 일정을 망친 것도 모자라서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다니... 아내는 환불 받아야 한다며 버스 터미널 매표소로 가서 아저씨들한테 따졌다. 일단 한 번 산 표는 환불이 안된다고 말하지만 아내가 우기면 안 되는 일이 왠일인지 잘 되는 경향이 있었다. 240위엔(8400원) 주고 산 표를 시내 버스 두 번 타고 아내의 말에 따르면 '약간 손해를 보면서' 150원(5250원)을 환불 받았다.

배가 고파 이것 저것 사 먹으면서 전철에 올라 또다시 꾸벅꾸벅 졸면서 신퐁에 도착하니 밤 아홉시 무렵이다. 배가 고프던 차에 신부님이 남은 해물탕과 밥을 주셨다. 밥 먹고 잠깐 중국인의 구린 정신 세계에 관해 얘기하다가 잠들었다. 어제, 오늘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 허전하다.

-*-

아침 일찍 일어나 신부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타이뻬이로 향했다. 오늘은 기필코 일정대로 하자고 다짐했다. 먼저 온천에 들러 온천을 한다, 그리고 나서 장제스가 중국 본토에서 날라온 70만점의 유물이 있다는 고궁 박물관 National Palace Museum에서 공들여 중국 문화의 진수를 맛본다. 그리고 쇼핑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비교적 쉽게 타이뻬이 근교의 온천을 찾아갔다. 간판이 모두 한문 일색이라는 점을 빼면 타이뻬이가 마치 서울 같아 보였다. 10:20분 도착했는데 온천이 잠시 문을 닫았다가 12:00pm부터 다시 문을 연단다. 1시간 반을 공중에 날리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밥을 먹고 근처를 떠돌며 시간을 보내다가 노천탕이 문을 열자 마자 들어갔다. 유황 냄새가 코끝을 징하게 달군다. 필리핀에서 검게 태운 살 껍질이 사정없이 벗겨졌다. 온천이 뜨거워 1분 이상은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어 정말 시원하다.



계획대로 고궁 박물관으로 향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 버스 정류장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탔다. 오디오 가이드를 구할 수 없어(기계를 이미 모두 대여 중) 아쉽지만 별다른 설명을 들어 보지 못한 채 유물을 관람해야 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예전에 책에서 본 중국 최고의 보물들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1,2,3층을 뒤져 보았다. 문가에 놓인 어느 팜플렛을 뒤적이다가 전시물 중 아주 귀한 것들은(특히 서화류) 10월에서 11월 사이에만 공개한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3시간 이상은 구경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던 고궁 박물관 관람은 2시간이 채 안 되어 끝났다. 딱히 볼만한 것들이 없었다. 전시 상태가 훌륭하지만 중국의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들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몇몇 물품들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전에 봤던 그 많은 보물들은 다 어디 쳐박혀 있는건가. 2004 taiwan touch your heart라면서 타이완이 관광진흥책을 펴고 있었다. 가슴을 그렇게 건드려대니 가슴이 아플 수 밖에. 고생해서 왔는데 화가 치밀고 입가에 욕설이 슬며시 맴돌았다. 이런 잡동사니를 보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3일 내내 닭짓 하다가 고작 이걸 보려고... 뭐 그런 것이었다.


찍으면 안되는데, 찍었다. 서화는 찍지 말란다.

아내가 급하게 서둘러 타이뻬이 시내로 돌아오자 마자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는 안 막힐 때 1시간 가량 걸린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40분 가량 걸렸다. 볼 때마다 희안한 생각이 드는 가이드북이었다. 이 책은 배낭여행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대부분 중고급 호텔을 숙소로 소개해 놓았고 관광 포인트의 지도가 부실했다. 교통편은 그걸 정보라고 적어놓은 것인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만한 정보량을 축적한 한국인이 쓴 가이드북이란 점이 존경스러워 저자 부분을 살펴 보았다. 어... 그런데, 이거 일본 가이드 북 번역하고 어니홍이란 사람이 감수한 것이잖아? 살 때 미처 보지 못했다. 악, 하고 말았다.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선물을 샀다. 필리핀에서도 사고 대만에서도 샀다. 술만 다섯 병을 샀다. 이것 저것 합치면 대략 200$ 가량이 선물 값으로 나간 것 같다. 950$을 환전해 들고다니면서 그중 720$을 썼다. 선물값 200$을 빼면 520$ 가량을 순수 경비로 사용한 셈이고 그중 200$이 필리핀에서 비행기를 2번 타는데 든 비용이다. 그럼 대략 320$ 가량을 10일 동안 쓴 셈이 되나? 계산을 제대로 안 해 봐서 정확하지 않지만, 큰 비용을 들이지는 않았다.

열흘 동안 비행기를 여섯 번 탔다. 잘한 짓은 아니다.

일정이 짧아 제대로 구경조차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여행 준비를 소홀히 한 것은 그 동안의 짬밥 때문에 생긴 자만심 탓이리라. 여행 기간이 짧으면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여행 계획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

타이완에서 세계 최고의 철도 코스 중에 하나인 아리산 철도를 못 타본 것이나 요리 한 접시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대만은 여행하기 참 편한 나라다. 중국처럼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것도 아니고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어 별 고생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인 것 같다. 언제 한 번 다시 가 보고 싶다.

9:30분쯤 한국에 도착. 인천 국제 공항에 비행기 타고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착륙하고 나서 한참 동안 비행기를 자동차처럼 굴려 게이트로 향하는 과정이 몹시 지루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 앞으로 걸어가다가 눈보라를 만났다. 황당했다. 오뎅국을 만들어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잤다. 소주가 쓰다.

대만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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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cay -- boat 15min --> Caticlan -- air 1hrs --> Manila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북 루손, 마닐라 북부의 Angeles(앙헬레스)는 미국 주둔 시대의 대규모 공창으로 명성을 날렸다. 여전하다. 북 루손의 더 북쪽으로 세계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 불리우는 rice terrace로 유명한 Banaue가 있다. 북 루손과 남 루손은 육로로 연결된다. South Luson에는 원뿔형의 mayon 화산이 있다. 남 루손 끝단에서 서쪽으로 Visayas 주의 섬들이 늘어서 있는데 Cebu 섬의 세부는 태국의 푸켓에 버금가는 필리핀의 주요 관광지다. 세부섬 옆의 Bohol 섬에는 괴상하게 생긴 Chocolate Hills가 있다. 세부섬 남쪽에 있는 거대한 Mindanao 섬에는 수많은 이슬람이 살고 있고 분쟁이 잦아 관광지로는 부적합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슬람에 대한 이런 기분나쁜 평가를 무시하면 아무도 안 가는 민다나오 섬이야 말로 가볼만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세부섬 북서쪽의 Panay섬 북단 끝에 위치한 Boracay 섬은 한국인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Panay 섬 서쪽으로 Palawan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던데, 어떤 작자의 말로는 한국의 해상 국립 공원과 태국의 코 피피 섬 부근을 합쳐놓은 듯한 곳이란다. 우리 여행의 첫번째 타겟이었지만 워낙 깡촌이라 카드가 안되고 교통편이 부실해서 안 갔다. 팔라완 섬에서 동쪽으로, 그러니까 파나이 섬 북쪽으로 Mindoro 섬이 있다. Puerto Galera를 중심으로 보라카이에 버금간다는 White beach와 나잇 라이프의 중심지인 Sabang beach가 있는데 마닐라에서 가까워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들, 또는 한국인들이 보라카이의 관광지스러움을 피해 가는 곳이다. 그곳도 가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가지 못했다. 그외에도 필리핀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인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끝내주게 멋있는 개인 소유의 섬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아내나 나는 섬 생활에 별다른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보라카이 섬에서의 며칠은 특히나 지겨웠다. 식사의 가격대 성능비가 형편없고 해변에 나가면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밤에는 바에서 틀어대는 음악으로 소란 스러웠다. 마침 그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한 일이지만 해변에 누워 별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전등빛이 사방을 밝혔다. 일부는 보라카이 섬이 주변 섬들과 가까워 충분한 고립감을 체험하기 힘든 탓도 있었다.

보라카이 섬을 빠져 나왔다.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향했다.



전날 asiatravel.com 사이트를 통해 Atrium hotel을 정가의 25%에 예약했는데 컨펌을 받지 못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토요일, 일요일이었다. 아트리움 호텔에서 저렴하게 마닐라만의 전설적인 석양을 볼 수 있다. 전설적인 석양은 마닐라의 고질적인 매연 -- 대기중 부유물질 -- 때문에 생긴 것이다. 아트리움 호텔의 위치가 좋았고 가격대 성능비가 썩 괜찮았다. 아쉽지만, Malate 지구에서 아트리움 호텔보다 더 비싸고 시설은 후진 Adriatico 호텔을 대신 잡았다. 대략 26$ 짜리, 지금까지 잡은 숙소 중 가장 비싼 것이다.

마닐라에 도착하자 마자 호텔 맞은편의 hot pot 식당에 들어갔다. 신선로나 일본의 샤브샤브, 말레이의 hot pot은 재료가 조금 다를 뿐 기원이 같은 음식이다. 한국식 샤브샤브와 신선하고 맛있는 어묵을 넣는 말레이의 핫 폿을 좋아했다. 중국것은 기름기가 너무 많고, 일본 것은 맹숭맹숭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원래 계획은 곤지를 먹으려던 것이지만 식당 분위기를 보니 hot pot을 먹어야만 할 것 같다. 샥스핀으로 만든 딤섬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입이 쩍 벌어지는 800페소 짜리 식사를 했다.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넣어 깔끔하고 담백한 맛은 없었지만 간만에 매운 소스를 만들어 건더기를 찍어 먹으니 땀이 나고 머리가 핑 돌았다.

너무 많이 먹어 움직이기 거북한 아내를 숙소에 남겨두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다가 리잘 공원과 마닐라 박물관을 찾아갔다. 문을 닫았다. 중국 정원에 앉아 쉬다가 부산에 자주 갔다는 필리핀 아저씨를 만나 한 동안 얘기했다. 밤에 거리에 나다니지 말란다. 필리핀의 밤 거리가 약간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위험하다고 느낄 사람도 아니었다. 한국 여성 여행자들은 여행지에서 만큼은 위험에 대한 자각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어쩌면 동행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들이 혼자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걸어보기는 한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내에게 밤거리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아내는 필경 날더러 겁쟁이라고 할 것이다 -- 겁쟁이 소리를 들어도 기분 상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운동 때문에 광장이 시끄러웠다. 피노이들이 '글로리아'라고 부르는 현 대통령(글로리아 아로요일 것이다)을 밀어내고 선거에서 '에디'를 대통령으로 밀잔다. 광장에는 '에디 형제'의 사진이 그려진 노란 티셔츠, 수건, 모자를 입고 쓰고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에디 측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것인 줄 알고, 평소 에디 만이 필리핀을 구할 애국자라고 생각했기에 한 장 얻으려 했는데 티셔츠 한 장이 100페소란다. 그럼 저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돈 내고 티셔츠를 샀단 말인가? 대단하군. 민중 봉기로 부패한 정부를 단죄한 실력 있는 국민들이다. 선거 운동을 축제처럼 재밌게 한다. 부럽다.


브라더 에디의 선거 유세.

Robinson Place의 2층, 3층, 4층 한쪽 wing의 대부분은 음식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 한다고 들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임은 알겠지만 건물의 3개 층을 오직 음식점만으로 채워 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내는 들짐승 고기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해물만 애타게 찾아 다녔다. 그 많은 '저렴한' 식당들 앞에서 환희의 탄성을 내지르기도 전에 7일째 질리게 먹은 해물을 또 먹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아내가 해산물을 잔뜩 넣은 베트남 쌀국수를 그저 그리운 마음에 먹는 동안, 나는 중국식 패스트푸드점인 초우 킹에 들러 그동안 먹고 싶었던 곤지(피노이들은 고또 goto라고 불렀다)를 먹었다. 이름이 King's Gongee. 쌀죽에 잘게 썰은 생강과 파를 넣고 고소하기 짝이 없는 양곱창을 몇 점 넣었다. 별도의 접시에 나온 튀김을 하얀 쌀죽에 얹고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었다. 정말 맛있다. 깔끔하고 담백하다. 감동했다. 중국식 만두도 하나 시켜 먹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살사 소스와 치즈를 잔뜩 바른 나쵸스를 또 먹고 노점에서 샥스핀 딤섬(피노이식으로는 샤오마이)을 한 접시 주문해 먹었다. 마지막으로 차갑고 신선한 두유(라지만 설탕을 넣은 두부 국물)를 한 잔 들이켜 식사를 깨끗이 마무리하려다가 배가 불러서 먹지 못했다. 그렇게 배불리 먹어도 100페소(2$)가 안 되었다. 웰빙 한답시고 음식점에서 500-800 페소씩 주고 먹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보라카이 섬에서 먹은 음식들 때문에 이틀 동안 가벼운 설사를 했다. 보라카이 섬에서 채소, 과일, 육류 할 것 없이 모두 철이 지난 재료를 사용한 것인지 먹고 나서 속이 안 좋았다. 따뜻하고 담백한 곤지가 설사를 한방에 날려 버렸다.

피곤해서 저녁 나절 부터 정신없이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났다. 목이 말라 음료수라도 사 먹으려고 호텔을 나왔다. 여자들 서넛이 졸졸 붙어 다니며 한국어를 포함해 4개 국어로 사랑 한 번 하자고 중얼거렸다. 심지어 호모도 한 마리 붙어서 호텔까지 따라왔다. 경비원이 막아서지 않았다면(어느 가게에나 경비원이 있었다) 방까지 쫓아올 기세였다.

책을 몇 권 노트북에 들고 갔지만 읽지 않았다. 지금 읽는답시고 노트북에 넣어 둔 것은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 브라이언 버드의 '환자와의 대화', 임휘명의 '머리가 좋아지는 음식물 나빠지는 음식물' 등등. 진도가 참 안 나간다.

2004/2/23

아침부터 마닐라 만에 비가 내렸다. 그 유명한(글로리아 마리스 만큼은 안 유명할 지도 모르겠다) 합창 찻집에서 곤지와 국수로 간단히 요기했다. 항공권을 리컨펌하고(할 필요는 없지만 길 가는 도중에 항공사가 보여서 화장실에 갈 겸 들른 것) Kalesa라 불리우는 마차를 타고 Fort Santiago로 향했다. 가격을 몰라 마부와 적당히 협상하다가 30페소를 줬다. 2km 정도의 짧은 거리였으나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으니 비용 만큼의 효용은 있었다.

산띠아고 성은 스페냐드가 파시그강과 마닐라 만 사이의 전략적 요지에 지은 곳이다. 스페냐드에 저항하던 의사(Physicist면 의사 맞지 않나?)이자 작가인 호세 리잘 Jose Rizal이 처형 당하기 전까지 구금되어 있던 장소였다. 그는 자신의 감방으로부터 걸어서 Intramuros를 지나 Rizal Park의 한 장소에서 처형 당했다. 길이 몹시 길어서 뙤약볕 아래를 걸으며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그의 처형은 애국의 거센 태풍을 일으켰다. 피노이들은 그를 Our hero, Sir Rizal 이라고 꼬박꼬박 경칭했다. 어렸을 적에 안중근 '선생'과 윤봉길 '선생'이 리잘과 마찬가지로 의사(doctor)인 줄 알았다.

일본군 점령 당시 산띠아고 요새는 포로 수용소로 쓰였다. 필리핀 애국자들(게릴라들)을 정기적으로 도살하던 장소였다. 총알이 아까워 스시칼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1945년 마닐라 대 공습 당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많은 수의 포로와 민간인을 죽였다. 미국인의 공습 역시 무고한 민간인을 무수히 죽였고 인트라무로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퇴각하던 일본군과 미국군의 십자포화로 10만여명에 달하는 필리핀 민간인들이 죽었다. 상당히 지랄같은 경우였다(하지만 마닐라 공습은 한국의 6.25 전란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닐라 대 공습(raid)이라고 하지 않고 마닐라 전투(battle of Manila)라고 불렀다. 인트라무로스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다. 마닐라 시가지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닐 스티븐슨의 소설에서처럼 나는 gps를 가지고 산띠아고 요새와 인트라무로스를 돌아다녔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비를 맞았다. 리잘이 사형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따라 산띠아고 요새를 빠져나와 인트라무로스로 향했다.


호세 리잘이 처형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동판으로 땅에 새겨 놓았다. 엄숙한 역사 앞에서 숙연해야 한다. 장난치지 말고.

Manila Metropolitan Cathedral에도 역사가 있었다. 1571년 처음 지어진 후 태풍에 날아가고, 화재로 소실되고, 세 번의 지진에 차례차례 파괴되었다. 1945년 1월 마닐라 대 공습 때도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역사를 머금은 성당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필리핀 시민들의 신심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저성장, 저개발, 또는 마르코스의 독재로 인해 성당 지을 돈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여튼 1945년의 마닐라 대 공습(또는 전투) 때문에 마닐라는 볼 것 없는 도시가 되었다. 마닐라는 there is nilad라는 뜻. nilad는 망그로브. 가이드북에 보면 다 나오는데 어떤 친구의 필리핀 여행기에는 마닐라를 색다른 뜻으로 적어 놓았다.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LRT를 타고 가다가 EDSA 역에서 MRT로 갈아타고 Ayala 역에서 내려 SM 몰의 기념품 상가에서 기념품을 샀다. 필리핀에서 살만한 기념품은 조개로 만든 것들, 야자 섬유로 만든 전등갓 등의 수공예품과 자연산 진주인데 다른 열대 국가들처럼 손기술이 한국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인 것 같다. 한국의 자개상감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 적어도 필리핀의 자개 제품 중에 한국것과 경쟁할 만한 것들은 없어 보였다. 조개 제품을 자꾸 사들이면 환경주의자들에게 욕을 먹을 것 같다. 조개제품을 자꾸 사면(수요가 생기면) 바닷 속에서 잘 살고 있던 조개를 자꾸 따서 조개들을 죽인다고 한다. 마치 환경주의자들이 밍크 코트나 여우 코트를 입은 사람을 싫어하듯이, 사람 가죽을 벗겨 책 표지로 써서 일부 몰지각한 장서가들을 기쁘게 하면 증오심에 불타는 환경주의자들의 눈초리를 접하게 될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 어메이징 쇼를 보러 갈까... 하다가 남장 여자들이 춤추는 쇼인 것 같고, 20$씩이나 해서 관뒀다. pc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쓰게 해 달라고 우겨보고, 맥주 한 병 마셔야겠다.

런닝 바람에 수영복을 입고 쪼리를 질질 끌면서(마치 현지인처럼) 노트북을 들고 pc방에 왔다. -- 이 정도면 마닐라의 밤거리가 얼마나 안전한지 입증한 것 같은데? pc방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 같다.


나머지 사진들: 필리핀 사진 2, 필리핀 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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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코코망가스 식당을 찾아갔다. 피자를 제대로 만들긴 하지만 14가지 토핑을 얹어준다던데, 맛이 가고 기름이 질질 흐르는 참치를 포함해 토핑 수가 일곱 가지 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피자가 찌꺼지 음식으로 만드는 것이라지만 다 시들은 피망 따위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용서가 안된다. 297 페소 짜리 미디엄 사이즈 피자를 거의 혼자서 꾸역꾸역 먹었다. 보라카이 해변 중심에 독일인이 운영하는 steak house라는 집이 유명하다던데 갈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스테이션 2 피어 근처에 앉아 한국인들이 내리는 모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젊은 필리핀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5시간 동안 1200 페소에 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서 한국인 가이드에 관한 얘기를 또 들었다. fun diving 원래 단가가 50$, 라이센스가 있으면 25$ 가량인데 한국인 가이드를 통하면 100$ 이란다. 아웃트리거 보트 1시간 타는데 10$ 받는 것을 두당 20$씩 따로 받는단다. 그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한국인 가이드와 한국인 업소가 그들의 일을 빼앗아 가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정말 그런지 궁금해서 아내가 한국인 다이빙 업소에서 바삐 뛰어 나오는 직원에게 가격을 물어 봤다. fun diving 2시간에 100$란다. 다음은 독일인이 하는, 나이트록스 장비를 제대로 갖춘, 꽤 괜찮은 다이빙 샵에 들어가 물어봤다. 50$를 불렀다. 글쎄다... 태국의 한국인 다이빙 샾은 그런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데...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다이빙 강사를 모셔 오기가 무지 힘든 관계로 단가를 두 배 받아야 하는가 보다. 한국인 관광 가이드나 한국인 다이빙 샵이나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150 페소 주고 트라이시클 타고 Luho 산에 올라갔다. 전망이 끝내준다는 곳인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트라이시클을 타거나 물건을 살 때나, 필리핀 사람들이 기본적인 바가지 이외에 별다른 사기를 안 치고 독한 면이 없어서 대하기가 편했다. 오직 이 동네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들은 한국인 업소, 한국인 가이드 뿐인가 보다.



가랑비가 살살 와서 하루종일 빈둥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저 그것 밖에 하지 않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다. 필피피노 컵라면을 먹다가 워낙 맛이 없어서 버리고 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사다가 먹었다. 섬에서 별로 먹을만한 것이 없다. 어젯밤에 부페를 먹을 때는 해산물이 신선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채소나 과일을 사도 신선한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 뿐더러 가격 마저 비싸다. 이제 그만 섬을 나가고 싶다.

아내는 살이 쪄서인지 사진 찍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아내가 나온 사진은 지웠다.

보라카이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나이트에도 안 가고, 밤에 바에 앉아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칵테일 한 잔 기울여 보지도 못했다. 시시하다. 수퍼 가서 맥주나 사 들고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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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았다. 크게 쓸모가 있다기 보다는 값싸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안되기 때문에 들어두는 것이 바람직했다. 여행중 인터넷으로 들 수도 있지만 저번에 8개월 짜리 여행할 때도 귀찮아서 안 들었다. 동부화재던가? 3개월 짜리가 3만원. 남미 여행 중에는 들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보통 연수 명목으로 보험을 들지 않고 3개월 짜리 여행자 보험을 들고 나중에 재가입하는 식이었다.

어젯밤에 진통제를 먹고 잤다.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피부가 당기고 화끈거려서 저녁 9시 이후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거리를 걸었는데, 어제 탄 부위에 햇살이 닿으니 욱신욱신 거렸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신혼 부부 중에 새까맣게 탄 피부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은 보지 못했다. 아웃트리거의 오른쪽 날개에 엎어져 낚시줄을 드리우고 바닷속을 뚜러지게 쳐다보고 있었던 30분, 오후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에 숯불 그릴에 올려놓은 꼬치구이처럼 피부가 익었다.

상당히 비싸 보이는 리젠시 호텔 레스토랑에서 로미와 국수, 달랑 다섯 개 나오는 참치 초밥을 시켜 먹었는데 먹은 양에 비해 터무니 없는 가격(600페소)을 불렀다. 음식 먹을 때마다 일로일로와 자꾸 비교가 된다.

난 필리피노의 영어를 잘 알아 듣는 편인데 아내는 잘 알아듣질 못했다. 발음... 때문이라고 하지만 c,t를 강하게 발음하고, 엑센트가 거의 없이 줄줄 이어 붙어 가지만 그네들 발음에 딱히 문제는 없다고 본다. 가게에서 가끔 그들은 스패니시 숫자를 사용했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 '뜨레인따' 라고 말했다. 마치 라틴 아메리카의 어떤 나라를 여행하는 것처럼 반자동적으로 30페소를 꺼냈다.

미용실 아가씨는 날더러 가이드냐고 묻는다.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은 보통 한국인 관광객을 이끌고 오는 가이드라고 한다. 가이드들이 단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시장에 데리고 온 한국인 관광객의 등을 쳐먹고 산다고 말했다. 옆 아줌마도 지리한 예를 들어가며 맞장구를 쳤다. 이틀 내내 한국인 가이드의 바가지에 관한 얘기를 듣다보니 그들이 순 사기꾼 같아 보였다.

일주일 전쯤 어느 게시판에서 필리핀 정보를 수집하던 차에(필리핀 여행 정보가 별로 없다) 한 배낭 여행자가 보라카이 섬의 한국인 관광 가이드의 횡포를 언급하자, 자기는 가이드라며 2개월 동안 필리핀에 관해 고시공부 하듯 두문불출하며 빡세게 공부하고 나름대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이가, 섭섭했는지 일부 가이드들의 행태를 대다수의 '좋은' 가이드에게 같은 혐의를 뒤집어 씌우지 말아 달라고 적어 놓았다. 유명한 여행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쟁이고, 좋은 가이드도 있고 나쁜 가이드도 있으니 이런 걸로 논쟁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정도로 보통 결론이 난다. 웃겼다.

그의 말마따나 몇 푼 벌지도 못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오직 보람과 자부심만 가지고 일할 정도로 생각있는 친구라면 관광 가이드 일을 그만두고 주변의 가이드들 역시 그만 두라고 권유하거나, 그 배낭 여행자 편을 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작 2개월 공부한 걸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한 나라의 문화와 정서, 언어를 이해하는데 2개월 고시공부로 될까? 글쎄올시다.

아내는 가이드 일을 잠시 했다. 가이드가 아니라 길잡이라고 불렀다. 교통과 숙박편을 원래 가격 그대로 거래를 성사시켜 주면서 함께 다니다가 여행객들이 그 나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면 서약서를 쓰고 '독립' 시켰다. 앞으로 벌어지는 일에 관해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다. 그들은 참, 별로 돈 안 들이고 재밌게 여행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퍽 바람직한 시스템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즐거워 하고 길잡이 일이 끝나면 받는 약간의 보수로 자신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 희안한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는 한국인 관광 가이드와 다르기 때문에 아내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길잡이라고 불렀고 어디 가서도 떳떳했다. 그들은 길잡이 이전에 여행자였고 여행의 고충을 이해하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여행자들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다.

태국이나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관광 가이드와 그 점이 달랐다. 가이드는 관광객을 이끌어 숙소를 잡아주고 그들 대신 투어를 예약하고 협상하는 일을 하면서 커미션을 받는다. 그들은 커미션이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았다. 아까 글을 쓰는 작자들이 흔히 자신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대다수의 좋은 가이드'라고 말하거나, 남에게 자신의 퍼포먼스를 입증하기 위해 가격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의 말은 신뢰할 수 없다. 가격은 얼마든지 검증받을 수 있고 정당한 커미션과 깨끗한 거래는 누구나 환영한다. 그리고 그 가격은 혼자 하는 배낭 여행자보다 싸야 맞다.

게시물을 쓴 그 배낭여행자가 자기는 배낭 여행(요즘은 자유 여행이라고 하드만) 중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40$에 했는데 한국인 가이드를 끼면 80-100$로 펄쩍 뛴다고 했다. 가격은 단순 비례가 아니다. 인원수가 늘면 현저하게 단가가 떨어진다. 참고로 그 배낭여행자와 달리 우리는 20$ 가량에 했다. 가격이 워낙 낮아 길에서 호객하던 뱃사공 마저도 그 가격에는 맞출 수 없다고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관광 가이드란, 인원수를 무기 삼아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두당 15$에 성사시키는 사람이지 호핑 투어의 단가가 80$라며 두당 60$의 삥을 뜯어 현지인 여행사와 한국의 여행사와 자신이 나눠 먹으며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간단할 수 있음에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에 가이드는 필리핀 현지인, 한국인 관광객, 여행자들에게 십자포화를 당하는 일이 당연했다. 가이드는 없어지는 것이 바람직했다. 밤마다 술 퍼먹으러 돌아다니고, 사고나 치고, 여자를 찾아 혈안이 되어 있지만 스스로 사귀는 것은 못하는 한국인 남자들 때문에 인간에 관해 메스꺼움을 느끼면서 과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수요가 있으니 관광 가이드질도 할 만한 것이겠지. 한국이란 나라는 3면이 바다고 그나마 땅덩이가 붙어있는 북쪽은 갈 수 없는 나라다. 섬이다. 땅덩이가 붙어 있는 인접국이 없으니 해외여행의 기회가 드물고 그것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것이나 외국인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반대 급부로, 그래서 외국에 나가야 한다.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나라에 혼자 가서 사기 당하고 삥 뜯기고 상처 입고 두들겨 맞으면서(심했나?) 돌아다녀 봐야 한다. 가이드 없이, 겁 먹지 말고.

5일째 해산물만 먹었더니 슬슬 해산물 식단이 질리기 시작한다. 필리핀 먹거리 중에는 투포투포, 이하우이하우, 라푸라푸 등 재밌는 이름이 많다. 말레이 음식처럼 코코넛 밀크를 사용하기도 하고 스패니시의 영향 때문에 많은 양의 음식을 내놓았다. 해산물 요리는 중국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먹는 국수는 뭘 먹어도 꽝이었다. 아내와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며 각 나라의 맛있던 음식을 떠올렸다.

필리피노 퀴진은 극단적으로 야채를 적게 사용한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설마 했는데 고기가 담긴 접시에 야채라고는 오이 한 조각 뿐인 식이다. 먹을만한 과일이 별로 안 보여 열대과일이 풍성한 이 좋은 나라까지 와서 수퍼에서 후르츠 칵테일 통조림을 사먹을 때는 비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저녁은 야채를 잔뜩 진열해 놓은 부페 식당에 들어가 고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야채를 왕창 먹었다. 웨이터가 음료수를 마시라고 권했지만 사양했다. 음료수 마시면 배가 금방 차서 몇 접시 먹지 못하니까. 둘이서 여섯 접시를 비웠다.

옆방에 묵고 있는 필리피노 연인이 작업 중이라 야자잎으로 엮어 놓은 숙소 전체가 좌우로 흔들렸다.

숙소 벤치에 앉아 산들 바람에 맥주를 들이키며 노트북에 들어있는 John Cusac 주연의 High Fidelity를 보았다. 아내는 재미가 없는지 일찍 잠이 들었다. 야자잎으로 만든 숙소에는 개미가 우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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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이 소란스럽게 울었다. 게으른 장기 배낭 여행자 답지 않게 오늘도 아침 7시 30분에 어리벙벙 깨어났다. island hopping 하는 날이다. 알란과 선장을 만나 시장통에서 생선(120p)과 오징어 반 킬로그램(65p), 굴 1kg(20p), 조개 1kg(25p) 따위를 샀다. 양파와 양념, 숯 등등도 잊지 않고 샀다.

장기 배낭 여행자 답게 옷은 다국적이었다. 이집트 다합에서 산 얇고 긴 여성용 바지와 터키 이스탄불에서 산 팬티, 영등포에서 산 수영복, 필리핀의 보라카이 시장통에서 3달러 쯤 주고 산 빨간색 러닝 셔츠, 스님이 줬다는 소림사 티셔츠 따위를 챙겼다. 일반 배낭 여행자들은 열대에서 짧은 팔에 반바지, 샌들을 신고 다니지만(한국인의 표준 복장이랄까?) 우리는 긴팔 바지와 긴 팔 셔츠와 운동화나 쪼리를 질질 끌면서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녔다. 꾀죄죄하고 초라하고 허름해 보이긴 하지만 그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번 투어 동안은 줄곳 젖을 예정이라서 투 피스(수영복, 티셔츠)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살 타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아웃트리거 보트를 타고(이거 참 재밌다) 보라카이 섬 남단을 지나 크리스탈 섬과 크로커다일 섬을 둘러갔다. 알란은 우리가 만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로지른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주장했다. 파도가 높아서 신혼여행 코스로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죽여줬다. 선장은 올해 1월에 열린 아웃트리거 보트 대회에서 7위를 했다. 그가 피우는 담배는 hope였고 말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척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트의 평균 시속은 어림잡아 40kmh 가량이었다. gps를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바다에서야 말로 gps가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데 말이다. 모터 보트보다 빠른 속도였고 달아놓은 돛대 만으로 그 정도의 속도가 난다는 것이 놀라웠다. 로맨틱하지 않냐며, 알란이 또 말하길, 이 배를 타고 한국까지 갈 수도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나는 시속 40kmh로 주욱 달리면 한국까지 직선 거리로 대충 70일쯤 걸린다고 말해 찬물을 끼얹었다. 수치는 나의 사랑스러운 벗이다. 알란은 지지 않고 고기 잡으면서 가면 된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동남아에는 인간을 잡아 귀중품을 빼앗고 고기밥으로 바다에 던져 버리는 해적이 판을 친다. 리얼리티 역시 나의 오랜 벗이다.



만조 때 였고, 까띠끌란과 보라카이 섬 사이에 형성된 작은 해협으로 강한 조류가 흘러 바람을 안고 가는 동안 큰 파도가 몰아쳐 여러 차례 물 보라를 뒤집어 썼다. 아내는 바닷물 샤워를 할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나는 배의 균형을 잡으려고 오른쪽과 왼쪽 윙으로 아슬아슬하게, 바삐, 움직였다. 여차하면 추락이고 뼈도 못추릴 것 같은 파도에 조류였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 낄낄거렸다.

몽키 아일랜드에 멈췄다. 선장이 시장에서 사온 해산물을 요리하는 동안 우리는 스노클링을 했다. 알란이 아내의 손을 잡고 바다 쪽으로 나가는 동안 나는 멕시코의 무헤레스 섬에서 공짜로 얻은 스노클과 돗수 있는 선글라스 겸용 수영 안경을 끼고 코를 노출 시킨 채 느적느적 그들 뒤를 따라갔다. 고글이 코를 가리지 않아 생각만큼 헤엄치기가 쉽지 않아 콧속으로 바닷물이 자꾸 들어갔다. 핀이 있으면 좀 더 속도를 내서 해변에서 상당히 떨어져있는 몽키 섬까지 왕복할 수 있을 테지만 파도가 높아 여의치 않았다.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해파리에게 물렸단다. 그들은 돌아갔고 나도 그들이 있던 자리까지 헤엄쳐 가다가 해파리에 쏘였다. 다리가 굳었다. 잠시 쉬면서 산호초 사이에서 뛰노는 물고기들을 구경하며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쉬었다. 물고기가 참 많다. 아침에 빵 사오는 것을 잊어버려 물고기들을 내 손으로 유인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스노클링 할 때마다 번번이 잊어버렸다.

만조라서 먼 바다에 있던 해파리들이 가까운 해변까지 떠밀려 왔던 것이다. 아내는 해파리에 쏘여 아마도 난생 처음으로 근육 경직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해파리는 거미처럼, 평소 작은 고기들을 독으로 마비시켜 싱싱하게 살려둔 채 소화기로 빨아들여 천천히 녹여 먹어 치우는 것 같다. 말하자면, 자기 소화기로 빨아 먹을 수 없는 커다란 인간에게 독을 허비하는 바보짓을 한 것이다. 그들은 왜 여름이면 한국의 동해안에 바글거리는 인간을 먹어치우기 위해 거대하게 진화 하지 않는 것일까? 가오리나 오징어는 뭔가 깨달았는지 금새 커졌더만.

해파리 때문에 더 이상 스노클링은 어려울 것 같아 선장이 불을 피우고 생선을 굽고 있는 자리에 갔다. 보기 보다 엄청나게 큰 생선이다. 그들은 오징어의 내장을 빼지 않고 그릴에 그대로 올려 구웠다. 먹물이 뚝뚝 떨어진다. 다소 원시적이랄까. 간장 소스처럼 보이는 것에 하얀 소스를 넣고 거기에 레몬즙을 타고 양파를 잘게 썰어 맛깔스러운 소스를 만들었다. 선장이 현지인에게 밥을 사 왔다. 넓은 바나나 잎에 구운 해산물과 소스에 버무린 약간의 야채, 그리고 밥을 얹고 동굴 곁 자리로 옮겼다. 코코넛 나무 자른 것을 의자 삼아 앉아 식사했다. 선장, 알란, 나, 아내, 그리고 개 두 마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알란이 따온 코코넛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배 터지게 먹고 음식을 남겼다. 다시 출발. 아까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파도가 사방에서 밀려왔다. 보트는 공중에 떴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아내는 무서웠는지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나는 그저 너무 기뻤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코티지 열쇠가 사라졌다. 얼씨구?

보라카이 섬의 북부 해변에 도착했다. 인적없는 해변은 우리가 묵고 있던 화이트 비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멋졌다. 그 멋진 해변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올 때 CF 메모리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가 정말 멋진 곳일까?

몰디브와 사모아 제도의 몇몇 섬들의 해변을 가보지 못해 어떤 해변이 세계 최고라고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태국의 꼬 따오에서 롱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꼬 낭유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꼬 낭유안은 지금까지 여행하며 돌아다녀 본 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아내의 손을 잡고 해변에 앉아 발가락 주위로 모여드는 물고기를 구경하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신혼 여행 때 해야 한다는 장래 계획을 잡아보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우리도 어젯밤에 장래 계획에 관해 고민한 후 결론을 내렸다; 왠만하면 잘 먹고 잘 살자. -끝-

마지막으로 닻을 내리고 바다 한 가운데서 낚시를 했다. 아내는 고기 한 마리를 잡고 해파리 한테 다시 쏘였다. 나는 그 망할 해파리 두 마리만 낚시줄에 달라 붙어 있엇다. 여지 없이 쏘였고, 선장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보라카이 스테이션 3 피어로 돌아왔다. 2시 30분. 다섯 시간 반 동안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피부를 태웠다.

아내가 새카맣게 탄 피부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다. 약국에서 약(care for sun burn)을 샀다. 글리세린과 비타민 A, 비타민 D가 들어있는, 근본적으로 보습제에 약간의 피부 영양 성분을 함유한 것이다. 알란의 말에 따르면 피부가 타면 시장에서 식초를 사서 문지르는 것이 좋단다. 음. 냄새 나잖아. 옷집으로 원피스를 사러 들어갔다. 아가씨들이 실실 웃어 낯 뜨거워서 허겁지겁 원피스를 사서 나왔다. 언제든지 빤스는 빨아서 널어줄 수 있지만 원피스를 사 가지고 오라는 등등의 민망한 짓은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사진은 찍지 못했다. 특히 파도가 좋았다.


Boracay, Island hopping tour를 마치고 코티지에 돌아오자 마자 찍은 사진.

숙소로 돌아오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섬은 섬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숙소 앞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아쉽게도 숙소에 해먹이 달려 있지 않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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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ilo -- bus 4hrs --> Kalibo -- minivan 2hrs --> Caticlan -- boat 15min --> Borcay

나는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 아내는 7개월 전에 마지막 해외 여행을 마쳤다. 다시 말해, 게스트 하우스의 욕실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궁상스럽게 팬티와 양말을 빨아본 것이 적어도 7개월 전이 마지막이다.

호텔에서 '공짜'로 준다는 아침 식사를 챙겨먹기 위해 일어났다. 새소리가 들린다. 또 아침 7시다. 이러다가 아침형 인간들과 친구 되겠다. 해산물을 간절히 기대했지만 쓸데없는 날짐승, 들짐승 류 따위가 나온 부페식 이침 식사는 실망스러웠다.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 하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에어컨 버스는 10시 20분에 있고 논 에이컨 버스는 15분 마다 있단다. 두 말 할 것 없이 논 에어컨 버스에 탔다. 값싸고 신선한 시골 공기를 흠뻑 마실 수 있고 서는 정류장 마다 떼거리로 버스에 올라와 물건을 파는 행상들이 있어 여러 모로 이익이다. 시골 버스의 또다른 장점은 서스펜션/쿠션이 상당히 안 좋아 심하게 덜컹이는 관계로 고급 버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전신 운동이 골고루 되고 내장도 함께 흔들려 소화 촉진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에어컨 버스 같은 고급 버스를 타면 쿠션이 너무 좋아 자세가 고정되어 졸다가 목이 아프다거나 허리가 결리고 배가 더부룩해 지는 등 건강에 안 좋다고 본다. 건강을 생각하는 시대이니 만큼 이제는 시골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이다.

네 시간 동안 평균 50kmh의 속도로 달려 칼리보에 도착했다. 칼리보는 예상했던 대로 썰렁한 도시였다. 물어물어 까띠끌란행 미니밴을 찾았다. 사람들이 다 차야 출발한단다. 시간이 남고 승객이 더 생기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아 보여 아내를 놔두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다가 초우 킹의 쇼 윈도우에 달싹 붙어 상당히 맛있어 보이는 곤지(congee)를 군침을 흘리며 쳐다 보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처럼 필리핀에도 중국음식점이 많았다. 언젠가는 저 곤지를 꼭 먹고 말겠다. 미니밴 터미널로 돌아오니 운전수, 차장, 승객들이 모두 바깥으로 나와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까띠끌란 항에는 한국인들이 우글거렸다. 배표가 17.5페소인데 항구 이용료가 20페소라니 웃기잖아? 닐 스티븐슨의 크립토노미콘에서나 보던 아우트리거 보트(out-trigger boat)를 탔다. 모터가 달려 있다. 여기저기서 전라도 사투리가 들렸다. 20분쯤 뱃전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섬에 도착했다. 이런 저런 코티지, 팬션, 게스트 하우스를 둘러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시장 뒷편에 있는 코티지를 잡았다. nipa hut이라고 불리우는 야자잎으로 얽기섥기 엮어 만든 오두막을 하룻밤 400페소에 잡았다.

보라카이 해변이 세계 최고라고? 이런 저런 여건을 보건해 보라카이가 태국 해변에 비하면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2km에 달하는 하얀 모래 해변은 인상적이었다. 하얀 모래 해변은 아마도 산호가 바스러져서 생긴 것일께다. 대낮에 해변을 돌아다니면 눈이 아플 것만 같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물어 값싸게 해산물을 잔뜩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알아두었다. 시장통에 있었다.


Boracay,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한숨 돌린 후 해변에서...

해변에서 빈둥거리다가 arlan이란 18살 짜리 꼬마와 모래로 장난치면서 협상을 시작했다. 2-30분쯤 떠들면서 어르고 구워 삶아서 3시간에 1000페소 짜리를 5시간에 1200페소(22$ 가량)에 합의했다. 세 가지가 다른 패키지와 달랐다. 1. 내일 아침에 알란을 데리고 시장에 나가 해산물을 현지인 가격으로 사 준다. 2. 고여사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3. 우리 둘과 캡틴, 보조 딱 4명만 배에 타고 간다. 가이드가 붙어있는 한국 관광객의 경우 80-100$ 주고 열댓 명이 떼거지로 하는, 소위 Island hopping이란 것이다.

알란은 한국인 가이드가 엄청난 커미션을 챙긴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관광객이 없으면 보라카이는 망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보라카이에는 맨 한국인들만 보였다. 특이하게도 어느 여행지를 가나 바퀴벌레처럼 꾀죄죄한 몰골로 돌아다니는 일본인 여행자들이 필리핀에서 만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피노이들한테 일본 식민지 시절의 증오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 돈 이면 안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해산물 식당을 못 찾아 상하이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나마 싸고 맛있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상하이 레스토랑의 식사는 한심했다. 일로일로에서 워낙 잘 먹은 탓에 이런 평범한 배낭여행자의 식사가 이제는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더 이상 가난하고 꾀죄죄한 배낭 여행자가 아니란 말이다, 지난 날의 고생을 딛고 다시금 새롭게 태어나 두 사람이 하루 평균 40-50$씩 쓰는 21세기형 웰빙 배낭 여행자란 말이다.

해변에 밀려온 뗏목이 보였다. 아내를 태워 바다로 밀었다. 멀리 떠나 보내고 제 2의 인생을 살아보자는 계획이었다. :)

보라카이 해변 북쪽에는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가게가 여럿 보였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리조트 등의 비싼 숙소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1박에 100$ 이상씩 하는 호텔 수준의... 아내가 저런 숙소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아 다행이다.

워낙 생각없이 온 탓에 준비한 것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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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전 6시 반에 일어났다. 피곤한지 택시를 잡고 싶어하는 눈치지만, 난 별 일 없으면 택시를 타지 않았다. 건강을 생각해서 걸어야지. 한 시간쯤 거리를 헤멨다. 어제 오랫만에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물먹은 솜뭉치처럼 몸이 무겁다.

오전 7시 10분, 근처 공사장에서 인력시장이 열렸다. 고양이들이 웅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어제 LRT(light rail transit)를 탈 때는 몰랐는데, LRT 차량 앞쪽은 여성 전용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필리핀에서 '헐리우드가 놀란 blockbuster' 쉬리를 개봉했다. 동남아 국가 중에서는 상당히 늦은 축에 속할 것이다.

국내선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돈이 아까와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건강을 위해서다. 터미널에는 많은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있었다. 가슴에 여행사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자기들이 가게될 까띠끌란과 보라카이가 궁금하지 않을까? 필리핀의 애국지사가 누군지, 필리핀이 어째서 특이한 저성장 구조를 가지고 있고 관광 사업에 목숨을 거는지, 그들의 지난한 역사를 반영하는, 영어와 스패니시가 뒤죽박죽 섞인 따갈로그에 관해서도, 복잡한 인종 구성을 가지게 된 배경도 아는 바가 없겠지. 25만년 전 얘기니까. 하다못해 나를 향한 사랑 뿐, 거의 아무 것에도 관심없는 내 아내도 그쯤은 기본적으로 안다. 어리고 값싼 술집 여자들과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 이외에 그들에게 필리핀은 뭘까? 게을러 터진 나무늘보같은 사람들이 사는 그저그런 저개발 열대 국가?

한국이 동남아의 모든 국가에서 왕따 당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길 희망한다. 나라 밖에서 사고 치지 말고, 한국과 동남아시아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럴 여지는 충분하다.

iloilo 행 비행기를 탔다. 두당 43$, 1시간 운행. 싯 벨트를 끌르자마자 스튜어디스가 마이크를 잡더니 자리에 앉은 승객들 더러 나와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한다. 두어 사람이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정말 노래를 불렀다. 어, 관광버스 같은데?

택시는 대충 무시하고 물어물어 지프니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탁월한 방향감각에 힘입어 제대로 찾아가서 20$ 짜리 호텔을 잡았다. 파나이 주의 프로빈셜 오피스가 있는 일로일로의 중간급 호텔 중에서는 최상급이다. 에어컨, 케이블 tv, 냉장고, 그리고 아침 포함. 여행 중에 이런 호텔에 묵어본 적이 없었다.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돌아 다니다가 두고 두고 핀잔 듣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신혼 여행'이니까.

시내 중심가에서 불이 났다. 강한 북풍 때문에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주민들 틈에 끼어 전망 좋은 곳에서 30분쯤 불구경을 했다. 남의 재산이 활활 타 들어가는 불구경은 역시 지역 주민과 함께 봐야 제맛이다.


일로일로, 강한 북풍으로 불이 삽시간에 번졌지만 20분 만에 진화되었다.

박물관에 갔다. 전시한 것들은 구석기 시대부터 근세의 원주민, 식민 시대 좌초한 배에서 '출토'한 중국 도자기 등등 보잘 것 없었다. 한국에서부터 필리핀의 고대사에 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32도의 뙤약볕 아래서 어려운 걸음 해 주셨는데 전시 수준이 신석기 수준이었다. 우리는 심지어 아이들이 그린 창의력이 철철 넘치는 그림을 보기도 했다.

일로일로는 별 볼 일 없는 도시다. 알고 있었다. 옆에 붙어 있는 마다가스카르같이 생긴 섬에는 별 볼 일이 있지만 MTB를 빌려 산악길을 달려야 재미가 나는 섬이라 아내에게는 상관없는 섬이었고 그래서 나한테도 상관이 없어졌다.

그럼 일로일로에 왜 왔을까? 일로일로에는 영어 연수를 받으러 오는 한국인들이 많다. 일로일로는 1200만의 인구가 바글거리는 마닐라처럼 지저분하고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대도시와 달리 소박한 지방 도시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일로일로는 파나이 섬의 가장 큰 도시다. 다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얘기다. 그저 일로일로를 묘사하는 가이드북에서 seafood paradise라는 것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마치 형광펜으로 밑줄이라도 그어 놓은 것처럼 상당히 환하게 눈에 띄었다.

그랬다. 8.4$ 짜리 값비싼 식사를 하고 나서 여행 중 드물게 성공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24개의 엄청나게 신선한 굴이 단돈 40페소(880원) 였다. 믿어지지 않는 가격이다. 8.4$ 짜리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의 식사를 했지만, 웨이터에게 1. 광둥 스타일의 해산물 수프, 2. 한 접시 가득한 spicy drunken shrimp, 3. 전복, 버섯, 오징어, 새우 등의 재료를 듬뿍 넣어 굴 소스로 조리한 mixed seafood, 4. 평범한 fried rice 한 접시, 5. plain steamed rice 한 접시, 6. 신선한 pineapple juice를 주문했다.



사람들이 친절했다. 일로일로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 오직 우리 같은, 음, 맛따라 길따라나 오는 곳이 아닐까 싶다. 아쉽게도 하루 밖에 머물지 않는다.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 high speed internet이라지만 초당 3.2kB/sec 짜리였다. 인터넷 사용에 대비해 뭔가 적절한 준비를 해 오지 않았다. 따라서 이 여행기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인터넷에 올릴 수 있게 될 것 같다.

수퍼에서 맥주를 샀다. 호텔의 텅텅 빈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 시간쯤 급속 냉동했다. 작전 시각은 6시 40분. 비극의 '아폴로 13'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일로일로의 또다른 특산물은 '끝내주게 맛있는 세계 최고의' 망고다. 망고 수확철은 4월이다. 우리는 '끝내주게 맛있지만' 덜 익어 떫은 망고 두 개와 피넛, 피스타치오를 안주 삼아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산 미구엘 필센과 산 미구엘 라이트를 마셨다. 산 미구엘 라이트는 독일산 맥주의 공세에서 산 미겔의 매출이 떨어지자 2년전 등장해 필리핀을 휩쓴 맥주다. 마치 맥시코의 테카테 같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맥주라기 보다는 청량음료에 가까웠다. 330ml 짜리 캔이 18페소(대략 400원)다. 알딸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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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 subway 1hrs --> Kimpo Domestic Airport -- shuttle bus 30min -->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 air 2hrs --> Taipei -- air 2hrs --> Manila

전날 밤 짐을 싸뒀다. 큰 배낭 하나, 작은 배낭 하나, 힙쌕 하나, 10.95kg. 버릴만한 옷들을 입고 챙겨 가져갔다. '신혼 여행'을 앞 둔 우리의 결심: 이번에는 빈티 내지 말자. 다운시프트 웰빙하자.

아침 7시에 일어나니 피곤하다. 걷고, 뛰고, 지하철을 옮겨 타고, 버스를 타는 등 가장 저렴하게 공항으로 갈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비행기 출발 40분 전에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 사람들이 많이 밀려 보딩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늘 있는 일이니까 늦는 것 정도로는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싸구려 항공권이라 오고갈 때 트랜짓을 했다. 좋다. 2만원을 더 주고 돌아오는 편을 트랜짓에서 스탑오버로 변경했다. 왕복 항공권으로 필리핀과 대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신경 썼더라면 38만원 미만의 항공권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신혼 여행'이니까 돈에 연연하지 말자.

서울->타이뻬이 2시간, 1시간 트랜짓 대기, 타이뻬이->마닐라 2시간, 4시간 비행에 기내식을 두 번이나 줘서 흡족했다. 누군가의 경험에 따르면 필리핀 사람들(pinoy)이 워낙 굼떠서 조금이라도 이미그레이션에 늦게 도착하면 처리 시간이 두어 시간씩 걸린다는 말을 듣고 인천 공항에서 발권할 때 앞자리를 달라고 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뛰다시피 걸었는데, 왠걸, 순식간에 처리되어 맥이 빠졌다.

인천공항을 빠져나갈 때 아내의 패스포트에 문제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인적 사항이 기록된 여권의 첫 장이 떨어져 나갔다. 까다로운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 잘못 걸리면 본국으로 송환될 우려가 있다. 위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첫 페이지가 손상되어 고생하던 외국인 여행자를 본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조하기 간편한 여권을 만든 이들이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다. 자기 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에 불합리하게 억류되면 왜 그런 지역에 가서 사서 고생하느냐고 팔짱을 끼고 호통을 치는 바로 그 외교통상부였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서 사람이 잡혔다고 치자. 미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여행자들은 갖은 수를 다 써서 여행자들을 귀환시키는데 한국 외교통상부는 감방에 갇혀 3개월이 흐르고 나서야 뭔가 조처를 취하는 식이다. 가끔은 여행자들을 통해 라면 배달도 시킨다. 외교통상부 덕택에 한국인 여행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해결하는데 익숙한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고 해 두자. 때로는 이렇게 지독한 인간들을 만들어 주시는 외교통상부가 고맙다. 요즘은 서사모아 제도의 이름모를 무인도 한 귀퉁이에 떨구어 놓아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을 지나가다가 강력접착제를 샀다. 숙소를 잡고 나서 짐을 풀자 마자 여권을 정말 튼튼하게 붙였다. 외교통상부 덕택이다.

인천 공항, 타이뻬이 공항, LRT 스테이션, 필리핀 도메스틱 에어포트 등을 거치는 동안 기내 반입이 금지된 칼을 배낭 속에 넣어 두었다가 인스펙션에 걸려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그 동안 갈고 닦은 탁월한 솜씨 덕택이다.


대만, 타이뻬이 공항, 트랜짓 대기 시간 동안 가이드북을 읽는 아내

필리핀의 첫 인상: 꼬모에스타라는 인삿말이 있고 우노,도스,트레스,꽈뜨로,씽꼬라는 숫자가 있다. 거리 이름과 사람 이름은 에스파뇰이고 거지 마저도 영어를 알아 듣고 말했다. 일부 거지는 '한국돈 만원 오케이' 라고 당당하게 외치기도 했다. 메스티소와 인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비슷하게 살이 쪘고 무표정한 것 마저도 비슷했다. 바둑판 모양의 거리는 깨끗했다. 거지들이 개, 고양이와 함께 땅바닥에서 굴러 다니며 자더라도 쳥결에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마닐라에서의 첫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150페소(3300원)짜리 간장 소스에 볶은 굴 요리를 포함한 세 가지 요리를 시키고 시원한 산 미구엘 맥주를 곁들였다. 케이블 방송에서 '겨울연가(?)' 따갈로그 더빙판을 보면서... 90페소쯤 슬쩍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지만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거리를 헤메다가 간신히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아직 거리 개념이 잘 안 잡힌다. 거리 구조도 스페인식 바둑판이었다. 단지 필리핀 인들은 n blocks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다. 무조건 over there이란다.

밤 10시. 식당을 나와 걸었다. 아니 숙소를 못 찾아 헤멨다. 구걸하는 사람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나자빠져 자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전에는 별 일 없어 보이던 가게들이 모두 bar로 변한 것만 같다. 필리핀에는 두 종류의 바가 존재했다. 웨스턴 바와 girlie bar라는, 여자가 나오는 나가요 분위기의 술집. 바 앞에 여자들이 앉아 초롱초롱 눈알을 빛내고 있었다.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지만 뜻대로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숙소에 돌아오자 마자 나가 떨어졌다. 피곤하다.

아내는 자기 사진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아 식음을 전폐한 채 다이어트에 몰두해 있다. 세 접시를 깨끗이 먹어 치우고 침대에 누워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는 특이한 다이어트였다.

벽은 얇고 창문은 안 닫히고 복도의 불빛이 환하게 12$짜리 게스트 하우스를 비춰주었다. 피곤한 관계로 첫날밤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묻지마 첫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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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크루즈, 멕시코 시티, 엘에이, 도쿄, 지나친 도시들은 모두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왔다. LA에서 공항으로 갈 때는 심지어 Big Blue bus를 탔다.

멕시코 시티에서 엘에이로 갈 때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티켓을 발급한 로이드 아에로 볼리비아노 항공사에서는 자기들이 발급한 티켓이지만 항공사가 달라 연결편을 제공할 수 없다나? 세관을 통과해서 멕시코에 재 입국하여 다시 출국해서 짐 검사를 받고 비행기를 타라고. 흐음... 엿 먹어라. 한 시간쯤 델타 항공사와 나 자신에게 피차 기억하지 않았으면 싶을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 뜨기 바로 전에 보딩 패스를 손에 넣었다. 종이에 손으로 갈겨 쓴 것이었다. 산간오지에서 막 떠나려는 버스를 잡아 타는 분위기였다.

네 번의 항공기 이동에서 이번에 실험해 본 것은 과연 작은 가방에 칼을 넣고 공항 검색을 통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해냈다. 네 번의 검색 중에 걸리지 않았다. 테크닉은 간단했다. gps 리시버에 스카치 테잎으로 감아 붙이고 가방에 넣은 후 가방을 x-ray 검색대에 수직 방향으로 세워놓은 것이다. 그렇게 하면 칼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 대사관에 칼을 들고 들어간 이후 두번 째 쾌거였다. 미국 대사관에 칼을 들고 들어갔다라... 어째 말이 좀 으스스하군.

공항 면세점을 기웃거리며 살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맛이 간 디지탈 카메라를 대체할 만한 것을 사려고... 그러려면 일단 한국의 웹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격 정보를 알아봐야 한다. 면세점 가격이 더 비싸다. 그러다가 내가 호스팅을 하는 x-y.net이 시만텍 사이트 프로텍트 프로그램에서 블랙 리스트에 올라온 곳임을 알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갈 수가 없다. hotmail도 마찬가지였다. x-y.net에 perl 모듈을 좀 설치해 달라고 했더니 친절하게 돌아온 답장이, 귀하 한 분을 위해서 설치해 줄 수가 없다나... 돌아가는 대로 모종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LA에서 산타 모니카 비치에 하룻밤 묵었다. 하느라 했지만 그날 연결편은 오버부킹 된 상태였다. 계획에 없었으므로, 계획이 없었으므로 숙소 부터 찾아야 했다. 비지터 센터의 귀가 맛이 간 할머니에게 산타 모니카의 지도와 버젯 어코모데이션 리스트를 구한다고 얘기했다. 버젯 어커모데이션이 50불 부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헐리우드의 한인이 경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가는건데... 해변의 벤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리스트를 훌터 보았다. 잔디밭에는 노숙자들이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노숙할까? 비가 온다. 젠장할. 유스 호스텔이 하나 있다. 도미토리 31불. 5불 짜리 햄버거와 7.5불 짜리 영화티켓과 9불 짜리 점보 팝콘과 반스앤 노블스에서 산 두 권의 sf 등등등을 합쳐 70불을 하루 만에 날렸다. 산타 모니카 피어에서 멸치를 미끼로 쓰는 낚시꾼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지만 잡는 것들이 시원치 않았다. 말로만 듣던 운동화 따위가 잡혔다. 거의 하루 종일 반스앤 노블스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렉 이건의 singleton은 참 싱겁고 영양가 없는 단편이었다.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하니 10시, 도착하자 마자 전화는 딱 두 통 했다. 둘 다 받지 않았다. 얼씨구.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열쇠가 없다. 담을 넘었다. 냉장고 속에는 온갖 것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냄비가 없어서 프라이팬에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젓가락이 없어서 철사 옷걸이를 적당히 끊어 젓가락으로 사용했다. 그릇을 씻으려니 세제가 없다.

새벽 5시에 애니메트릭스라는 진부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워낙 진부해서 잠이 온 것 같다. 시차적응에 도움이 되는 영화같다.

방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더 망가졌으면 더 망가졌지. 컴퓨터의 os를 새로 설치하고 pda를 되살렸다. 평소처럼 핸드폰을 뒷 주머니에 꼽고 머리방에 갔다. '언니'가 나를 기억했다. 파나미안 신성일 스타일은 그렇게 해서 잘려 나갔다. 샤워할 때 보니 여기 저기 벼룩에 물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벼룩에 뜯긴 자국이 사라질 때 쯤이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겠지.

배낭을 탈탈 털어 모든 옷을 빨았다. Tuesday Island라고 적혀 있는 웃도리는 가끔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 여행자들의 호기심꺼리였다. 모르겠는데? 라고 대답하다가 서 사모아 북부에 있는 작은 바위섬인데 일년 중 절반은 수중에 잠겨 있다 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걸 믿는 녀석도 있었고 그래서 로빈슨 크로소의 프라이데이 아일랜드의 배경이 되었으며 신밧드가 고래라고 착각한 섬도 그 섬이라고 말했다. 그 얘기가 새끼에 새끼를 거듭쳐서 언젠가 미국이 핵폭탄 실험을 한 장소가 되었다가 원주민들이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공물을 바치던 섬이 되었다가 약 300년 전에 드디어 풀 한 포기가 돋아나기 시작했고 꽃게로 뒤덮여 있기도 하고 바닷새가 태평양을 횡단하다가 쉬러 잠시 들르는 섬이기도 하고 펭귄도 있고(멕시코의 빠라까스를 방문한 후 추가) 해적들이 섬의 모습을 보고 달려 가다가 암초에 걸려 무수한 배가 침몰했던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동대문 짝퉁 긴팔 웃도리에 새겨진 Tuesday Island라는 신비로운 장소가 탄생했다. 사실 그 Tuesday Island 라는 브랜드는 Thursday Island의 카피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목요일 섬은 어디냐고? 목요일 섬은 목요일 섬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다. 세상에는 몇몇 모험심이 강한 뱃사람들의 기억에서만 희미하게 존재하는 전설 속의 무인도가 일곱 개 있는데... 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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