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피천에 가고 싶어서 6월부터 기회를 엿봤지만 번번이 취소했다. 비 안 오는 주말에 가려고 계획을 짰는데, 주말마다 비가 왔다. 2개월 동안 그 모양이다가 8월 휴가철이 겹치면서 가고 싶어도 차에서 보낼 시간이 무서워 접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 혼자 가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가기로 했다. 혼자 가면 가볍다.

8월 14일 이사하는 집 공사가 나흘 일정으로 잡혀 있어 며칠 동안 거처가 없다. 수완좋은 아내가 거처를 마련했지만 내친 김에 여행이나 가자고  마음 먹었다. 아침에 잔금을 치르고 점심에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퇴근시간대에 자전거 끌고 지하철 타는 것은 양심없는 짓이고, 그렇다고 자전거 타고 사무실에서 동서울 터미널까지 가려니 초장부터 이 더위에 땀으로 샤워하고 버스에서 땀냄새 풀풀 풍기기 뭣하다.

그래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16:40, 사무실에서 자전거를 챙겨 지하철을 타고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환승역인 신도림역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7호선 지하철을 갈아탔다. 뚝섬유원지역에서 내려 동서울 터미널까지 자전거를 몰았다. 휴가철 막바지에 무더위가 겹쳐 피서가려는 사람들로 터미널이 징그럽게 버글버글하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18:56 차를 탔다. 버스는 삼척을 거쳐 울진으로 내려갔다.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드는 관광객들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23:26 울진 도착. 자전거를 몰고 텅 빈 국도를 따라 강 건너편의 찜질방으로 찾아갔다. 왕피천 찜질방은 문을 닫았다. 한숨 한 번 쉬고, 다시 읍내로 돌아와 5년 전에 묵었던 명성 찜질방으로 향했다. 울진 친환경 농업 엑스포 기간 중이라 사람들이 많다. 배개 하나 달랑 베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여행자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행정보를 교환하지 않을 뿐, 찜질방이 어떤 면에서는 유스호스텔이나 도미토리보다 낫다. 찜질방이 한국식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장기간 해외여행을 해보지 않아 날개가 부러진 기분이다.

7시 무렵 깨어 샤워하고 자전거를 점검했다. 저번 주말에 약 5시간에 걸쳐 물세척하고 기름칠한 보람이 있어 구동부에서 소리가 별로 나지 않는다. 잘 정비된 자전거는 주행 중 타이어 스레드가 아스팔트에 접지하면서 나는 찰진 고무 마찰음 밖에 나지 않는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정비가 썩 잘 되어 있어 만족스럽다. 반면 술과 스트레스로 찌든 몸은 그렇지 않다.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아침으로 먹고 읍내를 배회하며 트래킹 때 먹을 점심꺼리를 장만했다. 버스 터미널 부근을 지나가다 보니 왠 중국집이 아침 영업을 하는 것 같다. 괴이한데? 조그마한 읍내를 두어 바퀴 돌다가 아무래도 트래킹 중에 배낭이 젖을 것 같아 수퍼에 다시 들러 비닐 봉투를 얻었다. 인근에서 야영하던 사람들이 아침꺼리를 장만하러  자다 깬 얼굴로 수퍼 안을 좀비처럼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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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 출발. 읍내를 벗어나 망양 해수욕장 방면으로 달렸다. 안개가 짙게 깔려 강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다. 망양 해수욕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해도 안 난 아침인데 멸 킬로미터 달리지 않고도 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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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정으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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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중 제 1경으로 칭송받는 망양정. 현판은 대체 어디 갔을까? 아저씨들이 망양정 앞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잘라내고 있었다. 무더위에 이런데서 술 마시고 놀던 선비들이 어쩐지 가엾어 보였다. 바위에 제 이름과 싯귀를 새기는 등 자연 파괴를 일삼으며 계곡에 발 담그고 시원하게 노는게 낫지 않나?
 
안개 속에 가려진 망양 해수욕장과 별 볼 일 없는 망양정을 지나쳐 산포리 쪽으로 남행. 동해안 위쪽과 달리 인적이 드물어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간혹 민박 집과 이 나라의 금수강산을 사정없이 조져놓는데 열을 올리는 펜션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 수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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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 옆으로 동해안에서 늘 보던 철조망. 길이 조용하고 아름답다. 자전거 하이킹하기에 딱이다.

해변을 따라 있는 캠핑장에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해병제대 군인들이 독도 수호를 다짐하며 울진 앞바다에서 독도까지 특수영법을 사용해 릴레이 수영한다고 한다. 광복절 뉴스에 나오겠군. 저녁때 찜질방에서 아홉시 뉴스를 보니 정말 노해병들이 독도에서 만세를 부르는 뉴스가 나왔다.

산포리 앞바다(옆바다?) 구경을 잘 하고 나서 우회전해 진복리 부근의 울진학생 야영장 옆으로 난 농로를 따라 올라갔다. 특이하게도 흔히보던 다람쥐, 뱀 등의 로드킬과 달리 박쥐가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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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음리 근처. 보호수 팻말이 붙어있는 멋진 나무 아래 벤치.

큰길 교차로 부근에는 어김없이 길 안내하는 천막이 있다. 울진에서 열리는 친환경농업 엑스포를 안내하는 것 같다. 울진에서 준비를 참 잘해놓은 것 같다. 구름을 헤집고 해가 멀끔히 얼굴을 내밀어서 고갯마루에서 한숨 돌리고 팔 토시를 착용했다.

자전거 탈 때 입는 져지 대신  수영복에 얼마 전에 옥션에서 5천원 주고 구입한 파란 등산복 티셔츠를 걸치고 자전거를 탔다. 쿨맥스 등산복이라 잘 마른다. 수영복은 여차하면 바다나 계곡에 뛰어들 목적으로 입었다. 워낙 편한 복장이라 이러다가 버릇되겠는데? 폼은 안 난다. 그런데, 폼이 밥 먹여주나? 난 아저씨란 말이다.

굳이 GPS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쉽게 성류굴 가는 길을 찾았다.  강변을 휘돌아 성류굴 입구에 다다랐다. 입장료 3천원, 자전거는 굳이 열쇠를 채우지 않고 매표소 앞에 세워두고 메고 있던 배낭은 사물함에 맡기고 좁은 굴 입구로 향했다. 굴에 들어서자 마자 서늘한 냉기가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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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유굴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는 온습도계를 보니 온도는 16.7도, 습도가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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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내장 같아 보이는데? 어우 징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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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유굴을 볼 때마다 단테의 신곡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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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H.R. 기거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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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폿 조명을 받고 있는 종유석. 세계 어디서나 나무든 돌이든 남근이나 여근 모양이면 이렇듯이...

성류굴을 나와 농로를 따라 왕피천을 따라갔다. 저수지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울창한 숲 사이로 콸콸 흐르는 물 소리가 들린다. 간혹 좁은 길을 따라 내 자전거를 추월하는 자가용들이 지나갔다. 150m까지 올랐지만 내리막길에서 신나게 내려가긴 좀 무서웠다. 속도를 줄여 구산리 구고동에 다다랐다. 해는 쨍쨍 내리쬐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3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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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천동까지 자전거를 몰고 가서 왕피천 트래킹을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날이 워낙 더워서 한시라도 빨리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 자전거를 대충 세워두고 자물쇠는 채우지 않은 채(이런 데서 누가 자전거를 훔쳐가겠나?) 왕피천에 발을 담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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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이 거칠고 매우 빠르다. 언덕에서 볼 때는 별로 깊어 보이지 않았는데 개울에 들어가보니 허리춤까지 물이 찬다. 물살이 빨라 거의 둥둥 떠내려가다시피 하류로 흘러갔다. 간신히 중심잡고 건너편 기슭에 다다랐다. 날이 더워 부러 개울에 뛰어든 탓에 이미 온 몸이 젖고 배낭도 젖었다. 개울 트래킹이니까 일단 담그고 시작해야 속이 편하다. 비닐봉투에 넣은 배낭의 내용물을 꺼내 밀폐 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출발.

어제 아침에 회사갈 때 깜빡 잊고 등산 샌달 대신 운동화를 신고 왔다. 몹시 후회된다. 바위가 뾰족뾰족해 신발을 벗을 수는 없고, 발과 신발과의 마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양말도 벗을 수가 없다. 그냥 이대로 개울을 따라 죽 올라가야 한다.


동영상으로 보는 것과 달리 물속에서 중심잡기가 몹시 힘들다. 신발은 죽죽 미끄러지고 물살에도 죽죽 밀린다. 건너편으로 건너려면 두어명이 한 조가 되어 자일을 끌어야 할 판. 동영상 마지막 부근에서는 물이 허리까지 잠겼다. 이건 도저히... 한가하게 동영상 찍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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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쯤 걸어 올라서 상천동 근처의 보에 다다랐다. 오는 동안 두어번 미끄러졌다. 시원하게 물 먹었다. 보 저쪽 편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천막을 친 채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물살 탓에 끄트머리가 붕괴된 저 보를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다.  평화로운 사진과 달리 무척 으시시하다. 용소까지는 절반 정도 남았다. 차라리 자전거를 몰고 상천동까지 왔더라면 좋았을 껄 그랬나? 이 더위에 직사광선 아래 땀을 비오듯 쏟으면서 자전거 타긴 뭣하고...  그래 이쯤에서 포기하자.

내려오는 길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온통 젖었다. 뭐 사실 여기까지 오는 길의 절반은 물 속에 푹 잠기다시피 했으니까. 오후 한 시. 점심을 먹으려고 배낭을 열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등산객 한 팀이 올라오는 중. 한 아저씨가 돌아오는 길이냐며, 용소까지 거리를 묻는다. GPS를 흘낏 보니 4km 가량. '여기서 한시간 반 정도 걸으면 용소까지 가고 넉넉 잡아 세시간 반이면 속사마을까지 갈 수 있는데, 여기서 30분 거리에 보가 하나 있어요. 자일은 챙겨오셨어요?' 챙겨왔단다. 이 팀을 따라갈까 하다가.. 돌아올 때 쯤이면 오후 3시가 될텐데, 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해져서(아침 8시부터 5시간 동안 자전거 타고 걷고 해서 많이 지쳤다) 역시 관두기로.

점심 먹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다시 개울을 따라 구고동으로 돌아왔다. 오후 2시. 33.7도. 구고동 다리 밑에 젖은 짐을 펴 놓고 산들바람이 부는 다리 밑 그늘로 기어들어가 누웠다.  오후 3시 무렵 깨었다.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많이 지쳤다. 이런 저질 체력 같으니라고.

짐을 바리바리 배낭에 쌌다. 배낭은 작년에 지리산 갈 때 산 38리터 짜리인데 3일 산행하기엔 공간이 넉넉치 않아 결국 지리산행 때는 써보지 못했다. 등판이 망사라 자전거 탈 때는 땀이 배이지 않아 아주 좋았다. 계획했던 용소까지 가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잊어버리자.

오던 길을 거슬러 성류굴 맞은편의 울진 종합 운동장까지 자전거를 신나게 몰았다. 자전거를 모는 내내 울진읍민들이 부러웠다. 읍내에서 조금만 나가면 왕피천이나 불영계곡같은 멋진 계곡이 있고, 읍내를 관통하는 왕피천도 무척 맑아 물놀이 하기 좋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데 딱히 할 일도 없어 친환경 농업 엑스포나 구경하러 갔다. 그 행사 때문에 조성한 넓은 엑스포 공원이 왕피천변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입장료가 무려 12000원이나 한다. 대체 뭐가 이리 비싼가 싶어 팜플렛을 뒤적여 보니, 입장권이 성류굴 무료관람, 불영사 관람 할인권, 백암/덕구온천 할인권, 민물고기 생태체험관 할인권, 엑스포 행사장내 아쿠아리움 무료 관람, 입체영화 무료 관람등을 포함하고 있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껄!

어젯밤 뉴스에서 친환경 농업 엑스포 관람자가 백만명을 돌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보니 과연 그럴만 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즐기기에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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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에서 본 시계꽃. 꽃잎이 뒤집혀 있고 시침, 분침, 초침 따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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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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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왕돌초라 불리우는 대륙붕 부근의 돌 섬에 조성된 생태계에서 산다. 왕돌초가 열대바다의 산호초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남획에 의해 고갈된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남해바다에 다량의 인공어초를 설치했는데 성과가 성공적이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울진에도 인공어초를 설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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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털게, 대게, 왕게들이 바다 밑에 이렇게 떼지어 사는구나. 먹음직스럽다기 보단 징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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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중인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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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공원 앞 왕피천. 건너편은 아침에 안개가 자욱했던 망양 해수욕장.

오후 6시. 대략 2시간쯤 엑스포 구경을 했다. '국제' 라는 접두어를 붙이기는 민망하지만, 행사 기획을 참 잘 했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백만명 관람도 이해가 간다. 지치고 다리가 아파서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쭈쭈바를 빨아먹었다. 예전에는 자전거 탈 때 설레임을 자주 먹었는데 가격이 1500원으로 올라 먹기 부담스러워 그 대신 800원짜리 빠삐코를 자주 먹었다.

벤치에 놓고왔던 모자를 되찾고 충전을 위해 맡겼던 휴대폰을 되찾았다. 8시 무렵 저녁 행사가 있어(8월 16일이 폐회) 재입장용 스탬프를 팔목에 찍고 울진 시내로 자전거를 몰았다. 주말이라 자전거 가게가 문을 닫아 자전거에 바람을 넣을 데가 마땅치 않다. 아무래도 이대로 끌고 다녀야겠다.

읍내의 만나삼계탕에서 8500원짜리 삼계탕을 시켰다. 양해를 구하고 엑스포에서 산 5천원짜리 오미자와인을 삼계탕에 곁들여 먹었다.  오후 7시. 다시 엑스포 행사장으로 갔다. 행사장은 파장 분위기다. 잘못 알았다. 7시 시작해서 8시 끝나는데 8시에 시작하는 줄 알았다.마지막 행사는 불꽃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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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공연장에서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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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구경한 것은 처음. 왕피천에서 불꽃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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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어제 묵었던 동명 찜질방 대신 강 건너 명성 찜질방으로 향했다. 엑스포 때문에 사람들이 워낙 몰려 읍내의 모든 숙소가 찼고 찜질방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릴테니 신발을 잘 챙기란다. 들어와서 30분이 채 안된 열시 반 무렵이 되자 돗대기시장처럼 붐볐다. 새벽까지 잘 자다가 깼다. 다시 잠들었다.

아침 7시 조금 넘어 일어났다.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을 나왔다. 어제 삼계탕을 든든히 먹었더니 아침 먹긴 뭣하고 바로 출발. 5년 전 동해에서 울진까지 자전거 타고 올 때가 딱 이맘때였다. 날씨도 비슷하다. 한낮에 섭씨 34도. 코스는 동일.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나 확인하고 싶어서 왕피천 트래킹과 울진-동해 자전거 주행을 패키지로 묶어서 여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히죽히죽 웃었다. 이번에는 잘 될 것이다.

7번 국도를 따라 죽변으로 출발했다. 아직 더위가 들개처럼 몰려오기 전, 햇볕은 갓나고 공기는 선선하다. 해변을 신나게 달려 죽변에 다다렀다. 뭐 그래도 땀 나는 건 마찬가지다.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삼각김밥을 사 먹고 한 숨 돌린 후 죽변항을 돌아 '폭풍속으로' 세트장으로 향했다. 죽변항에 곰치국으로 아침먹을 만한 곳이 있었는데 바보같이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어서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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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속으로'란 드라마의 촬영지. 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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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지 옆 빽빽한 대나무 숲과 옥빛 바다.

죽변항을 출발해 원자력 전시관 방면으로 향했다. 다음 지도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녹지로 나타난다. 그쪽으로 길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나, 원자력발전소를 가로지르는 길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다시 되돌아와서 7번 국도와 나란히 이어지는 길을 따라 원자력 전시관에 다다랐다. 잠깐 쉬다가 다시 출발. 다음 목적지는 호산리.

길고 지루한 업힐이 이어지는 동안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땀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호산리에 다다르기 전 문닫은 하늘휴게소를 지나 자유수호의 탑 바로 직전에 공터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고갯마루까지 올라오니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오르막길 내내 힘들어서 기어비는 거의 1:3, 1:2에서 오락가락했다.

호산리에 다다라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도착해보니 10:46 밖에 안 되었다. 그래도 늦으면 밥을 못 먹을테니(5년 전에는 노변에 밥 먹을 곳이 없어서 무척 황당했다) 아직 음식점이 준비가 안 되었단다. 하는 수 없이 물만 얻었다.

오르막길 막바지에서 내려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 노곡 삼거리 앞. 맞은편 차선에서 내려오는 나를 미쳐 보지 못하고 좌회전하다가 자전거와 충돌했다.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만약 피했다면 내려오는 속도 때문에 삼거리 맞은편의 펜스에 자전거를 박고 절벽으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대신 브레이크를 잡고 좌회전하던 자동차 우측 범퍼를 그대로 박았다.

자전거 속도가 급격히 줄면서 정지했다. 몸이 붕 떠서 반 이상 회전할 때까지 핸들바를 놓지 않았다. 적절하다 싶은 타이밍에 핸들바를 놓고 왼팔을 안쪽으로 휘둘러 공중에서 몸을 돌린 후 왼쪽 어깨부터 아스팔트에 착지했다. 그리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니까 액션대역처럼 무척 멋지게 2m 짜리 공중제비를 돈 다음 아스팔트에 떨어진 것이다.

자동차를 몰던 아줌마는 넋이 나가서 횡설수설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가 다시 쓰러졌다. 차문이 열리면서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허겁지겁 뛰어온다. 자전거 위치를 확인했다. 범퍼에 부딛혔던 자전거는 내 앞쪽으로 멀리 튕겨 나가 있었다. 아저씨가 나를 일으켜 세우면서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운동신경이 좋아서 크게 안 다친 것 같군요.' 그러게 말이다. 자전거 타고 사고에 대비해 벽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며 미친놈처럼 치킨런 연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두개골 검사. 집 전화번호를 떠올려 보았다. 기억 안 난다. 아참, 원래 집 전화번호를 기억 못했지. 파이를 12자리까지 외워보았다. 된다. 왼쪽 어깨가 욱씬거렸다. 감각은 다 느껴진다. 무척 더운 날씨고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볼이 간지럽다. 등골은 여전히 서늘하고. 아줌마 운전수는 안절부절하고 있고 아저씨가 나를 부축해 앉혔다. 괜찮아요? 글쎄요. 그점에 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편입니다.

앉아서 사고 경위를 따졌다. 그쪽이 잘못을 인정했다. 아줌마는 당사자인 나보다 정신없어 보인다. 명함을 받고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차 번호를 적었다. 사고 지점을 waypoint로 찍어 두었다. 자전거는 별 탈 없다. 브레이크 와이어가 이탈했고 한쪽 패달이 약간 찌그러졌다. 생각보다 브레이크가 잘 먹은 것 같다. 그래서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다. 살아서 다행이다. 병원에 가자고 아저씨가 말한다. 살았으니까 일단 자전거를 몰고 싶다. 필요하면 연락할테니 먼저 가라고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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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지점. 도로변에 멍하니 앉아 아까 식당에서 얻어온 물을 마셨다. 나중에 돌아와서 GPS 로그를 분석해보니 저 내리막길에서 내려올 때 속도가 44kmh였고 브레이크를 잡아서 속도가 37kmh로 떨어졌다. GPS의 기록 시차를 고려하면 임펙트 순간의 속도는 대략 20~30kmh 쯤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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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및 비정상

삼척까지 35km 남짓 남았다. 어깨가 뻐근하지만 아드레날린 펌프 덕택에 자전거 주행은 비교적 수월했다. 임원을 지나 5년 전에도 쉬었다 갔던 신남 해수욕장 부근에 다다랐다. 예전에 없던 해신당 공원이란게 생겼다. 해신당이 남근 숭배인 것 같다. 날이 무척 더워서 햇볕에 쏘다니긴 좀 그렇고 파라솔 아래에서 800원짜리 빠삐코를 사먹고 다시 출발했다. 배가 슬슬 고파온다.

용화해수욕장을 지나 고갯마루의 작은 공원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그늘 아래 벤치에 누웠다. 옆에서 전라도에서 온 아저씨들이 회를 먹고 있다. 날더러 좀 먹어보겠냐고 묻는다. 대답하려고 일어서다가 갈비뼈가 결렸다. 아프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아까 병원 가잘때 갈 껄 그랬나? 아니다. 오기다. 공원 위쪽에 설렁탕 집이 보였다. 식당에 밥이 떨어져서 막국수를 먹었다. 식사가 나올 때까지 근 한 시간을 기다렸다. 주인장은 싱글벙글한다. 밥이 떨어질 정도로 오늘 영업이 잘 되었단다. 하루 장사를 점심 한 때로 다 했다나?

근덕면에 바다로 흘러가는 개울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이 망할 더위에 지쳐 나가 떨어질 것 같아 시원하고 맑은 개울에 몸을 담그고 싶다. 어제처럼 오늘 복장도 여차하면 물속에 뛰어들려고 수영복과 등산복 차림이다. 개울에 수풀이 우거졌고 수초와 녹색말이 보인다. 아... 5년이 지나는 동안 그 맑았던 물이 이렇게 흐려졌구나. 김이 새서 개울을 지나쳤다. 가다보니 '재동유원지'란 팻말이 보였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첨벙이고 있다. 빙고.

개울 한 가운데를 깊이 파서 위쪽과 아래쪽에 여울을 만들어 물을 고엿다. 그렇게 해서 천연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자맥질 몇 번 하니 살 것 같다. 아까 사고날 때 왼쪽 팔굽 위와 어깨에 상처가 생겼다. 팔 토시에 피가 배었다. 개울물에 상처를 담궈두면 감염이 염려되어 천원 내고 샤워장에서 샤워하고 먼지묻은 옷들을 빨았다. 잔돈으로 빠삐코를 사 먹었다. 아내가 전화했지만 사고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 더위에 뭐하는 뻘짓이냐며 어서 돌아오란다. 이 더위가 아니면 안된다. 동해까진 가야겠다.

갈빗대를 비롯해 왼쪽 어깨가 많이 쑤신다.  아무래도 삼척에 들러 진료를 받아야겠다. 지나가다가 경찰서가 보여 삼척에서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사고처리에 관해 물어보니 당사자간 합의가 안되면 그때해도 늦지 않단다. 보험사에 연락해 진료 청구를 하라고 사고낸 아줌마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안 받는다. 일단 삼척의료원(삼척병원)까지 가보자.

상맹방 해수욕장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말고 구 7번 국도로 들어가는 길을 찾느라 헤멨다. 겨국 못찾고 자동차 전용도로로 들어가려고 그 입구에 가보니 자전거 여행자가 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자전거 여행을 해 보자 해서 경상남도에서부터 죽 올라오는 길이란다. 함께 자동차 전용도로를 올라가 터널을 통과했다. 안 따라오길래 뒤를 돌아보니 자전거를 세웠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펑크가 났단다. 타이어가 참 얇다. 벌써 펑크가 두번 났단다. 능숙학게 펑크를 때운다. 옆에서 도와줬다. 수리 중에 제주도에 꼭 가보라고, 해안도로 일주도 보람있긴 하지만... 성산에서 성판악까지 올라가 서귀포로 내려간 다음 시계 방향으로 해안도로 일주하는 코스를 알려줬다.

어깨가 많이 쑤셔서 먼저 출발했다. 삼척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 진료 접수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는 이상이 없단다. 이런 젠장 근육통인거야? 뼈라도 하나 부러져야 여행경비나 뽑아낼텐데... 사실 사고처리하던가 합의해서 합의금 뜯어낼 수는 있겠지만 양심상 그런 짓은 못 하겠다. 병원에서 한 시간을 보내니 벌써 4시 30분. 동해까지 가려니 왠지 김이 새서 관뒀다. 5년 전에 비해 체력은 훨씬 좋아졌다. 사고만 아니었으면 아마 오늘 강릉까지 갔을 것 같다.

삼척을 빙글빙글 돌며 구경했다. 삼척도 많이 변했다. 동굴 엑스포 타운이란 것이 생겼다. 삼척이 동굴의 도시란다. 낮에 먹은 맛없는 관광지 막국수로는 배가 차지도 않아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와 팥빙수로 배를 채웠다.

18시 동서울행 버스를 탔다. 차가 많이 밀려 서울에 도착하니 23시. 시내주행을 조금 하다가 중랑천 자전거도로로 접어들어 공릉까지 갔다.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마누라가 기다리는 임시 거처에 도착했다. 아이를 재우고 맥주를 마셨다. 올해 동해안 자전거 여행도 제대로 끝나지 않았다. 기분이 묘하다.

사고낸 아줌마와 연락이 닿아 진료비와 약값을 받았다. 망가진 패달 값을 받을까 하다가 그냥 수리해서 쓰기로 했다. 미안하고 고맙다며 바닷가에 놀러오란다. 시내 자전거 주행과 마찬가지로 자전거 여행도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다. 살아서 집에 돌아와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아내와 아이가 자는 모습을 봐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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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2 ~ 2009/06/14 사이 서산에서 군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다.

금요일 저녁 출발. 서산가는 막차가 19:45. 사무실에서 17:30에 나와 집에 들러 후다닥 준비하고 반포의 센트럴 터미널까지 자전거를 몰고 갔다. 늦을까봐 30kmh대로 자전거를 몰았다.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서인지 터미널에 도착할 즈음에는 다리가 뻑뻑했다. 저녁 삼아 라면을 후루룩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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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2009-6-16 해지기 바로 전.

21:20분 일반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옆자리 아줌마가 삼각김밥을 하나 나눠준다. 사양했다. 서산에 도착하니 23:30. 저녁때 먹은 라면 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배가 고파 시내에서 찜질방으로 가는 길에 치킨에 맥주 한 잔 할만한 곳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보석 사우나 찜질방에 자전거를 놔두고 찜질방 옆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 마셨다. 담배도 한 대 피웠다. 그 와중에 주머니에서 지갑을 떨궜다. 영수증 챙기려고 주머니 뒤지다가 알았다. 하마터면 지갑을 잃어버릴 뻔 했다. 자전거를 잘 갈무리 해두고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날이 흐릴 꺼라더니 쨍쨍하기만 하다. 8:00에 일어나 대충 샤워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9:00에 출발. 원래 계획은 평택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평택부터 안면도를 거쳐 군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었는데 거의 쉬지 않고 160km를 달려야 해서 부담스러워 서산 출발로 정했다. 태안이나 당진에서 숙박하지 않은 것은 서산에서 안면도 쪽으로 가는 길목에 굴밥집이 몰려 있어서다. 안면도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나가서 밥을 먹을 생각이다. 흔히 말하는 island price에 뭘 사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젯밤에 오랫만에 무리해서 달려서인지 다리가 묵직한게 불안하다.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22km를 달려 서산 A-B지구 방조제를 건넜다. 아침부터 가방을 맨 등짝에 땀이 흥건하다. 방조제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식당들이 보인다. 당암리굴밥집에서 굴해장국을 시켰다. 반찬 예닐곱가지와 콩나물 해장국에 굴을 잔뜩 넣어 주고, 공기밥이 아닌 돌솥밥을 지어 주는데 꽤 맛있다. 꼭 전라도 음식 먹는 기분.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만 원짜리 굴영양돌솥밥을 시켜먹을 껄 그랬나?

그런데 어제 서산에 온 후로 가게나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조선족이었다. 중국에서 보던 조선족과는 달리 한국의 식당에서 보는 조선족에 대한 인상이 좋은 편이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당암리굴밥집 식당 주인에게 음식이 맛있다고, 가게 이름을 널리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리지? 사진 한 장 안 찍었는데. 웹질해서 찾았다. 남면 당암리 1-1. 041-674-1446. 영양굴밥 10000원, 굴해장국 6000원. 생각대로 역시 이미 알려진 맛집이다.

갓길이 별로 없는 649번 지방도를 따라 달렸다. 대부분 평지라 견딜만했다. 서산에서 AB방조제까지 고개가 셋 있는데 고저차가 50m 가량이라 우아한 주행이 가능하다. 볼만한 것은 없다. 길을 따라가다가 청살모 로드킬은 무려 다섯 번이나 봤다. 승용차가 논길 옆 진창에 코를 쳐박고 있는 모습도 봤다. 그러고보니 변산반도 자전거 여행 때도 승용차가 박혀 있는 걸 본 것 같다. 차체가 망가지거나,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게 혹시 길조인가?

649번 지방도를 타다가 77번 국도와 만나 우회전해서 안면 대교를 건넜다. 도로가 널찍하고 갓길도 잘 되어 있어 주행이 편하다. 백사장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길로 난 해안도로를 타고 갔다. 다리를 건너면서 오른편으로 바다가 어렴풋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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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 해수욕장에 들러 해변을 거닐며 잠시 쉬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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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모래사장에 간간이 사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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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진 진흙처럼 고운 뻘모래 위로 조개들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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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충들의 꿈지럭거리며 뻘에 새겨놓은 그들만의 나스카라인. 그래! 얘들아 내가 지켜보고 있단다.

아직 해수욕장 개장 전이라 사람은 거의 없지만 해수욕장 앞 매점에서는 관광지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지 뭔가를 사서 나온 아저씨가 물건값이 어처구니가 없다며 일행에게 투덜거린다. 안면대교가 있건 없건 안면도는 섬이니까. 관광지 섬의 경제 시스템은 좀 유별나니까. 발에 물을 묻히긴 이른 시각이라 꽃지 해수욕장까지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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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벗어나 해수욕장을 잇는 비포장길을 신나게 달렸다. 그늘이 적당히 드리워져 별로 덥지 않다. 오른편으로 바다를 보며 달리니 상쾌하다. 도요 해수욕장과 밧개 해수욕장을 지나 해발 50m짜리 저 앞에 보이는 야트막한 고개를 넘자 방포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딱히 쉴만한 그늘이 없어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잠깐 쉬고 방포항으로 갔다. 방포항에는 조개, 굴 따위를 따는 무수한 사람들이 해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안면도 꽃 축제가 끝난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꽃 축제장 철책 너머로  꽃이 잔뜩 피어 있다. 지나가는 시민을 위해 꽃축제장을 그냥 열어 놓으면 안되나? 돈은 벌만큼 벌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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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 해수욕장. 역시 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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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항 뻘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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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 해수욕장 말단에 있는 롯데 오션캐슬에 도착. 해변에 내려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아직은 물이 차가워서인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햇살은 따갑고 서풍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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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한테 보여주면 좋아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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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캐슬의 해변가 흔들의자에 앉아 잠깐 쉬면서 해변을 구경했다. 대천행 배편 시각을 알아보려고 영목항 페리 터미널에 전화했다. 요점은, 배편이 14:20에 있으며 주말에는 사람들이 몰려서 선착순으로 배표를 주는데, 언제 마감될지 모른다. 전화예약은 안된단다. 얼마나 일찍 가야 배표를 구할 수 있냐고 물으니, 그건 자기도 모르니 알아서 하란다. 친절도 하시다. 어영 부영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자전거를 몰다보니 지금 시각은 12:00, 영목항까지 남은 거리는 20km 가량. 1시간 반 동안 달리면 13:30에 도착하는데, 배표를 구할 수 있을까?

젓산으로 묵직한 다리를 끌고(거의 한 달 반 동안 자전거를 안 탔다. 타봤자 아이 짐칸 안장에 태우고 찬찬히 몬 것이 고작이니 다리에 알이 배기는 건 시간 문제다) 하는 수 없이 영목항까지 달리기로 했다. 끝없는 팬션들을 지나치며 영목항에 도착하니 13:35이다. 허겁지겁 배표를 구하려고 들어가보니, 왠걸, 널널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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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 출발 예정인 영목-대천간 페리는 14:40쯤 출발. 한 시간쯤 멍하니 부두에 앉아 오가는 고깃배를 구경하며 배를 기다렸다. 안면도에서 사먹은 것은 7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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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끼떼처럼 관광유람선을 졸졸 따라가며 새우깡을 기대하는 갈매기들.

영목항 올 때까지 64.5km를 달렸는데 다리가 뻣뻣해서 군산까지 달릴 수 있을지 걱정된다. 배 안에 누워 30분쯤 자다가 깨어보니 대천항에 거의 다다랐다. 15:40분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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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항. 어 밋밋해.

대천항 앞에 있는 GS25 편의점에서는 도시락을 팔지 않았다. 대천항을 빠져 나오자마자 나타난 고개를 넘었다. 대천 해수욕장 앞 분수공원의 편의점에서도 도시락을 팔지 않았다. 해수욕장 구경을 하다가 해변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몰았다. 배가 고파서 힘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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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 해수욕장. 노변에 레게바, 고고바만 있으면 파타야 같겠는 걸?

대천 해수욕장 거의 끝나는 지점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먹으려 했더니 무수한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왠 외국인이 이렇게 많지? 롯데리아 아래에 있는 패밀리마트에서 제육덮밥 도시락과 포도쥬스를 3천원에 샀다. 전자렌지에 도시락을 데우고 있는데 옆에서 물건을 사는 외국인이 종업원이 예쁘다며 수작을 건다. 종업원은 영어를 모르는 척 한다.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왠지 처량하다. 편의점 도시락을 처음 먹어 보는데, 딱 그 가격에 걸맞는 품질이다. 경기불황 탓에 도시락이 인기라는데, 이게 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거지? 경기불황이면 입맛도 떨어지나? 밥은 썩 품질이 좋은데 반찬이라고 붙어있는 제육과 볶은 김치는 여름 날씨에 상하지 않게 하려고 별별 걸 집어넣은 듯한 괴이한 맛. 아, 다시 먹으라면 못 먹겠다.

밥 먹고 16:10 쯤 군산을 향해 출발했다. 군산까지 대략 70km인데, 1시간에 20km씩 꾸준히 달리면 해지기 전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지? 대충 관광이나 하면서 천천히 달리려고 했는데...

날이 더워 가방을 등에 메고 있자니 땀이 흥건히 배어서 가방을 짐칸에 묶었다. 아침부터 별로 안 한가하게 달리기만 한 탓에 김이 새서 사진 찍기도 귀찮아졌다. 무작정 달리자. 죽도를 지나치고 독산 해수욕장도 들르지 않고 지나쳤다.

외국 여기저기를 다닌 탓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원없이 즐겼던 동해의 질 좋은 모래 해변 탓인지,저번 변산반도 때와 마찬가지로 안면도의 해변은 그저 그랬다. 돈 주고 그런 허름한(?) 곳에 가서 섬이랍시고 주야로 일 없이 돈을 뜯긴다는 것이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머리로 이해는 한다. 낭만과 꿈과 환상이 머리 속에만 머무는 관념이 아니라 시장에서 실거래되는 상품이니까.

그나마 자연 환경(?)이 해수욕장 같아 보이는 것은 대천 해수욕장 정도였다. 아무래도 워낙 좋은 해변만 봐서인지 다른 것들은 성에 안 찬다. 하지만 여름에 대천 해수욕장을 찾는 것은 미어터지는 인파 때문에 대략 정신나간 일처럼 보인다. 노련한 상인들이 어떻게든 등을 벗겨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관광지다 보니 오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곳이다. 차라리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태국 해변에 가서 맛있는 음식과 저렴한 맥주를 편하게 즐기겠다.

장안 해수욕장과 춘장대 해수욕장을 들러가는 루트를 짰지만 해수욕장에 실망감이 커서 더 봐서 뭐하겠냐 싶어 가던 길을 돌아 논밭을 가로지르는 비포장길을 따라 갔다. 차라리 이 길이 훨씬 났다. 엉망진창으로 난개발해 놓은 관광지의 팬션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별 특색없는 해산물 식당들을 안 봐도 되니까. 시골주민이 뻔히 쳐다보면 연쇄살인범처럼 히죽 웃어주며 지나칠 수 있으니까. 서해안에 와서 해산물을 안 먹은 것을 후회하냐고? 천만에~

주욱 해안도로를 따라 갔다. 서풍이 계속 불어 자전거 주행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관광지가 끝나자 주행이 한결 즐거웠다.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오른편에 해변을 끼고 소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평탄한 일차선 도로가 아름답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사먹을 가게 하나 안 보였다.  서천을 지나 장항에 이르자 이제 거의 다 왔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배가 고프다. 물은 다 떨어졌다.

장항은 입구부터 시내까지 줄곳 황량했다. 장항항에서는 포장마차를 열어 해산물을 싸게 파는 모양이다. 장항항을 지나쳤다. 들러서 하다못해 갑오징어 안주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군산에 가서 저녁으로 우렁쌈밥을 먹고, 군산 해변에 즐비할 것만 같은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기울이자고 마음 먹었다.

금강하구둑을 건널 때 쯤엔 파김치가 되었다. 대천항서부터 62km를 달렸다. 오늘 아침부터 133km를 달렸다.  금강하구둑을 건너, 탐조대 부근의 우렁쌈밥 식당(강촌마을식당이던가?)에 도착한 시각이 19:35분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혼자 먹기 미안한 식당이지만 일인분을 주문해도 한 상 가득 차려준다. 쌈야채에 밥과 우렁쌈장을 얹고 꽁치 한 점 얹어 쌈을 해먹으니 목구멍으로 한없이 술술 넘어간다. 정신없이 먹었다. 우렁무침에 우렁쌈장과 우렁된장찌게에 꽁치를 준다. 가끔 서울서도 이렇게 맛있는 꽁치를 먹을 때가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런 걸 매일 먹고 사니까 심성도 고울 것 같다. 식당은 많이 허름하지만 밑반찬 하나하나도 빠지지 않고 맛있다.

배불리 먹고 식당을 나오니 20:10분. 어두컴컴한 해안도로를 따라 시내로 슬슬 주행했다. 내일 안면도 가기 전에 쇼핑을 해야 해서 emart에 들렀다. 내가 사는 동네의 emart는 날도둑놈들 같은데(타깃 고객층을 정해 그들의 가격민감도가 높은 일부 품목만 싸게 팔고 나머지는 비싸게 팔아먹는 수작질로 emart의 구매합산액이 재래시장은 커녕, 동네 수퍼만도 못할 때가 많다. 따라서 난 꼭 필요한 공산품 구매나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대형할인점에 가지 않는 편)  군산 emart는 정말 할인을 한다. 막 장보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다. 물건을 들고 계산대에서 봉투 구입을 망설이니까 종이봉투를 드릴께요 하면서 알아서 건네준다. 종이봉투는 무료란다. 아, 그러고보니 대형 할인마트에서 종이봉투는 무료로 제공하게 되어 있는데, 말하지 않으면 주지 않고 종이봉투 무료라는 것을 선전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네 대형할인마트는 딱 재수없고 계산 빠른 서울놈들 답게 장사를 너무 얍삽하게 잘 한다.

군산 시가지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주행계획 짠다고 군산 시가 지도를 이틀쯤 뚜러지게 노려본 탓인지 밤 늦은 시각임에도 어디가 어디인지 대뜸 알아먹겠다. 하지만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는다.

회 한 접시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을까 싶어 해망동의 횟집타운으로 향했다. 21:30이 넘어서인지 횟집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그 유명한 군산횟집만 광휘를 흩날리고 있었다. 횟집 들어가긴 뭣하고... 간단히 회 한 접시 먹을만한데가 없을까? 하지만 군산횟집과 몇몇 횟집을 제외하고 해망동 해변도로는 불이 꺼진 채 을씨년하다. 다시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시내 중심가의 젊은이 거리에도 어디 노변에 앉아 맥주 한 잔 하기 적당한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릴없이 시내를 배회하다가 피곤하기도 해서 (벌써 주행거리가 160km를 넘었다) 찜질방을 찾았다. 패밀리 스파는 망했는지 불이 꺼져 있어 금강레저타운으로 향했다. 찜질방을 찾아둔 후, 편의점에서 500ml짜리 캔맥주 한 병을 사서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냥 장항에서 갑오징어에 소주 한 잔 할 껄 그랬나? 그러면 맛있는 우렁쌈장은 영영 못 먹게 되는 거구나.

찜질방이 워낙 시끄러워 12시쯤 잠에서 깼다. 장소를 바꿔 사우나 수면실에 가서 잠자리를 청했다. 어떤 아저씨가 한 시간 반 내내 기침을 한다. 다시 잠에서 깨어 이번에는 찜질방 수면실로 갔다. 애들이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하고 떠들어서 새벽녁까지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애들한테 꽥 소리도 질러봤지만 한창 날뛸 나이인 개구장이들에게 소용이 있을리 없고. 대체 수면실을 시끄러운 게임실 옆에 만들어놓는 미친 센스는 어느 머리에서 나온 거야?

아침에 눈을 떠보니 8:30. 잔 것 같지가 않아 몸이 찌뿌둥하다. 잠을 설친 탓에 8:00 배를 타고 선유도 가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기운을 북돋을 겸, 아침이나 잘 먹자고 어젯밤에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본 횟집타운 입구에 있는 해장국집(시원복집 이던가?)으로 갔다. 원래는 해장국 거리에 있는 일해옥에서 진한 전주식 콩나물 해장국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이왕 먹을 꺼 좀 더 잘 먹어보자 싶어 부러 갔다. 목표는 매생이굴순두부, 가끔 매생이국을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매생이를 사다가 집에서 끓여 먹으면 번번이 실패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뜨거운 매생이국을 호호 불어 먹다보니 이상하다. 국을 헤집어 보았다. 눈 씻고 봐도 굴이 없다. 주인 아줌마에게 말하니,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안하고 굴을 물에 삶아 탁자에 놓고 간다. 매생이국에 그걸 부어 먹는데 굴 맛이 하나도 안 난다. 어제 아침 서산에서 먹은 굴해장국은 꽤 맛있었는데... 같은 냉동 굴이라도 이렇게 다르다니... 이건 뭐...
그래도 꾸역꾸역 배는 채웠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공단의 너른 길을 따라 군산항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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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짓고 있는 듯한 군산 산업단지의 어떤 공장. 군산 관광 팜플렛에는 군산 산업단지도 어엿한 관광지로 나온다. 산업시찰단 말고 일반인도 공장 견학이 가능하다는 뜻일까? 당면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여자들이야 공장 가면 구질구질한 환경에 먼지나 억수로 날리며 볼 것 없다고들 하지만, 거대한 기계가 무시무시한 파워로 작동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진 않았다.

10:20분에 쾌속페리표를 끊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아저씨들이 자전거에 관심을 보였다. 서산에서부터 주욱 내려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내 자전거가 값비싼 것인 줄 안다. 여기저기 고장나서 손을 봐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징징 앵앵 비명을 지르는 유사 MTB인데.

11:55 안면도 도착. 호객하는 삐끼를 보자 흐뭇하다. 마치 인도에 온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쫄쫄이 바지 입고 자전거 타고 와서 그런 것 같다. 관심을 안 보여주니 조금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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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명사십리도 옛말이다. 지나가는 카트에 귀동냥을 해 보니, 이 모래는 관광철을 앞두고 2주 전에 퍼다 놓은 것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 뿐만이 아니라 이 것이 바로 대한한국 모든 해변의 현실입니다' 라고 말한다. 동해안도 그렇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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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해수욕장. 어우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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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과 망주봉. 매년 수백톤의 모래가 유실되는 플로리다 해안도 모래를 해변에 퍼 나르는데,  상당한 예산을 쏟아붓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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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하는 모양을 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등대. 그럴듯한데? 이왕 이렇게 만들었으면 관광객들 사진찍기 좋게 손바닥 직교 방향으로 방파제를 조금 연장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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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물이 얼마나 빠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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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다리 위에서 바라본 정경. 낚시배다. 어떤 아줌마가 '고기 많이 잡았어요?' 하고 소리치니까, '안 가르쳐주지!' 라고 말한다. 흘낏 지나가다 어떤 낚시꾼 아저씨의 휴대폰 통화내용을 들었다. '우럭이 그냥 막 잡혀!!!'.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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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 가는 길에 바라본 망주봉과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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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풍광이 썩 괜찮지만, 썰물 때라 바닷물은 똥물 수준. 도저히 다리 담구고 물장구치면서 놀 엄두가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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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왜 찍었지? 갈매기야 뭐라고 말 좀 해다오. 

선유도는 아름답지만 멀리 볼 때나 그렇고... 해변은 별로...

큰 섬이라 그런지 한전에서 발전기를 설치해 놓았다. 해수 담수화 시설도 있다. 이왕이면 태양광 발전 플랜트도 만들어 놓으면 좋을 껄. 고군산군도에서 새만금 방파제까지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다. 곧 있으면 새만금 방조제와 붙어있는 신시도에서 무녀도/선유도 사이를 왕복하는 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안면도나 선유도에 와서 느낀 점은, 두 섬이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옵션이 되기에도 멋쩍을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섬들이다 정도? 또는, 이런데 와서 별 잔 정이 느껴지지 않는(타협 불가능한) 바가지에 시달리느니, 사활을 걸고 관광 사업에 매달려 바가지를 조직적으로 뿌리 뽑은 제주도에 가는게 낫다.

두 섬에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장사꾼들의 악명이 특히 높았다. 나야 삐끼 천지인 곳들을 워낙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 것에는 가치 중립적이다. 장사꾼의 악명은 이유없이 확대 과장되는 것이 보통이고 사람들이 제 돈 들여 부러 관광지를 찾아와서 갈망하는 것은 좋은 서비스와 사람 냄새나는 친절과 환대인데, 그 환상이 깨지면 악다구니만 남는 것이지 싶다.

섬 사람들 인심이 박해진 것이 어디 섬사람들이 원래 악당이라서 그랬겠는가 하겠지만 이건 마치 '경제학 콘서트'에서 중고차 시장에 왜 좋은 차가 안 나오는지 설명하던 부분과 같아 보인다 -- 시설이나 서비스가 가격에 비해 현저하게 질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아니 미친듯이) 섬을 찾아오기 때문에 공급과 정보를 쥔 측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서비스와 제품으로 이윤을 최대화하려고 시도한다.

수요가 줄어도 이 현상은 거듭 반복된다. 예를 들자면, 성수기에는 수요가 충분해 얼마든지 관광객을 뜯어 먹고, 비수기에는 비수기니까 관광객 한 명을 끝까지 정성스럽게 삥 뜯어 먹는다. 비수기에 숙소 가격은 떨어지지만 음식료 및 서비스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가격은 그대로고 음식료/서비스의 품질만 오락가락한다. 내키는 대로 해주면 그만이니까. 정보와 서비스의 공급을 쥔 쪽은 이쪽이니까. 서비스 프로바이더로서 점점 노련해진 섬 주민들이 간혹 생색이라도 내면 수요자는 양질의 서비스에 기뻐 날뛰지만 사실은 조삼모사다. 비용이 결국 같으니까. 선유도의 민박집은 어느 집이나 '수퍼, 낚시배 출항, 자전거 대여, 그런데 바지락 캐는 호미는 공짜' 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마음을 다잡는(옥죄는) 완스톱 토탈 솔루션인데 섬 주민이 노련해졌다는 증거라고  본다.

선유도와 안면도는 그 점에서 조금 다르다. 가격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숙박시설이 있는 선유도와 달리 안면도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고 길도 뻥뻥 잘 뚫린 비교적 큰 섬이라 차를 몰고 얼마든지 섬에 들락거릴 수 있으므로 공급자가 '토탈솔루션'으로 정보의 독과점을 통해 가격협상력의 우위를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팬션만 죽어라고 발달했다. 언제든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려면 숙박시설의 품질을 높이는 수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 싶다.

선유도가 자전거 타기 좋은 섬이라고? 아니, 선유도에서 자전거 하이킹은 꼭 해볼만한 액티비티라고? 글쎄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두 발로 걸어서 세 섬을 오락가락하기 불편하니까 자전거 대여가 사업이 된 것이다. 수요가 공급을 견인한 것이지 공급이 친환경 어쩌구로 계획적으로 자전거를 미리 도입한 것 같지 않다. 자전거 도로나 자전거 통행에 필요한 편의시설의 질이 낮은 것이 그 반증이다. 해수욕장 부근을 제외하고, 울퉁불퉁 대충 만들다 만 콘크리트 도로에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이 잡목숲으로 가려져 있다. 아래 동영상 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안전 펜스는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 잡목숲을 잘라내고 길가로 나무숲 터널을 만들어 놓으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전거 하이킹 코스가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땡볕이 내리쬐는 밋밋한 시골길이 되어 버렸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관광 산업이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부질없는 환상과 타협하지 말고, 적당한 가격에 질 좋은 풍광과 풍광을 더더욱 감칠맛나게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즐기기 위해 , 쓸모있는 정보를 얻어 나은 대안을 찾던가,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할 것이다. 난 너무너무 현명해서 가끔은 즐거운 관광이란 대의명분을 잊고 멍청해진 나머지 이런 섬에서 식사 한 끼, 맥주 한 잔 조차 하지 않은 채 무더위에 수도승처럼 자전거 타고 뺑뺑이를 돈다.

섬에서 서비스를 사지 않으니 마음 편하고 좋다. 시시한 서울 강변로 달리는 것보다 배경을 바꿔 바다를 보며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게 즐겁고 기쁘다. 만족스럽다.

여기저기 자전거로 돌아다니다가 더 돌아다녀봤자 볕만 따갑고 재미는 없을 것 같아 대장도의 장자봉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왠지 전망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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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봉 오르는 길. 전망이 그럴듯하다. 나는 회 먹고 하룻밤 즐겁게 보내러 온 것이 아니라,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며 이런 것을 보고 싶어 왔다. 어디 가서 이런 걸 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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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메바위는 나무숲에 가려 잘 안 보이고...  멀리 모래 퍼다 부은 해변이 어렴풋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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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봉 정상에서 바라본 장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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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기타등등 고군산군도. 아... 시원스럽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르니 힘들다. 등산객들이 꽤 많다.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이다. 전망은 아주 좋다. 선유도의 모든 산에 올라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주말은 다 끝나가고 나는 아침 배를 놓쳤다.

어제 군산시내 Emart에서 구입한 빵과 오미자주, 쵸코바 따위를 점심으로 먹었다. 선유도에 들어와서도 워낙 현명한(?) 소비자이다 보니 풍광은 즐겨도 선유도에서 뭘 사먹을 생각은 없었다. 샤니 런치팩 블루베리&밀크는 emart 가격이 980원 밖에 안하는데 열량이 무려 330kcal나 된다. 국순당에서 나온 오미자주도 맛이 그럴듯 하다. 바닷바람을 쐬면서 정상에서 아름다운 섬 풍경을 바라보며 호젓하게 점심을 먹고 약주를 곁들이니 살짝 알딸딸한게 꽤 기분이 좋다. 정상에 올라온 사람들과 기분좋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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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샤니 런치팩 블루베리&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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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당 명작 오미자 포터블 버전(75ml). 14도로 그리 달지 않으면서 맛있다. 양이 딱 포도주 반 잔 분량인데, 오미자 와인이라 불러주마. 집에 잔뜩 쌓아놓고 하루에 한 병씩 가볍게 마시고 싶다. 별 안주가 필요없다.

점심 먹고 느긋하게 산을 내려왔다.  볕이 강하지만 해풍 덕에 크게 더운줄 모르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바람이 안 부는 곳은 무척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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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줄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관광카트. 삐끼 아저씨 말에 따르면 선유도의 70%가 산악이라서 자전거 몰고 다니기는 힘들고(헛소리!) 오토바이도 좋긴 하지만(시간당 3만원? ), 카트를 타면 관광 안내를 받으며 즐겁게 섬을 돌아다닐 수 있단다.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를 걸어서 다니기는 힘들고, 적어도 자전거(시간당 3천원)나 오토바이는 타야할 듯. 선유도 및 인근 섬을 다합쳐 도로 길이는 약 22km.

14:40 선착장으로 돌아와 돌아가는 배편을 알아봤다. 15:30 옥도페리가 출발한다. 날 더운데 자전거 몰고 돌아다니려니 지친다. 표 산 다음 남는 시간에 무녀도 둘러보려던 것은 관뒀다. 가봤자 서해 똥썰물 밖에, 별 것 없을 것 같다. 군산항 배편을 구입한 다음 근처 수퍼에서 8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뭍 수퍼보다 백원 비싸고 할인마트보다 55% 비싸다.

앉아서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주말에는 관광유람선 타고 오는 것이 정기배편을 타고 오락가락하는 것보다 나아보인다. 군산에서 떠나는 관광유람선은 군산항이 아니라 군산회타운 근처의 유람선 선착장에서 오고가는 것 같은데(지나가다 얼핏 보았다) 단체 손님만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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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선착장 주변은 온통 이런 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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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근처에서 조개/바지락을 낚아 끌고 오는 몹시 실용적으로 보이는 배. 어마어마한 조개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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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는 더 실용적인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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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페리에서 바라본 낚시꾼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한국의 바닷가에서 낚시꾼은 ubiquitous한 존재인데, 도저히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곳에서조차 종종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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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산업단지에서 맥없이 돌고 있는 풍력 발전기. 참 기운 없어 보인다.

GPS 전지가 거의 닳았다. OSM에서 작업하려고 페리 루트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GPS를 계속 켜 두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바람 맞으며 선상 난간에 기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새만금 방파제가 보인다. 요즘은 군산시와 인근 시가 새만금 간척지를 두고 땅따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17:00 군산항 도착. 스트래칭 하다가 무릎이 뱃전에 부딫혀 까졌다. 피 봤다.

바람을 등지고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해망굴을 통과. 일제시대에 뚫은 터널인 듯. 대마도에서 보곳하던 종류다. 해망굴 옆으로 월명공원 입구가 있었다. 올라갈까 하다가 관뒀다. 일단 배가 고파서 밥부터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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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굴 맞은 편 미장원.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미장원을 운영하셨을까? 미장원 안에서 할머니가 마늘을 까고 있다. 손으로 쓴 글씨가 힘있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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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굴. 일제시대때 일본군이 판 땅굴. 장항에서 해변도로를 따라 군산까지 오면서 느낀 거지만 군산항이 항구로서 정말 끝내주는 것 같다. 항구가 너무 끝내줘서 일제의 수탈 사업에 조금도 차질이 없었을 것 같다.

근처 편의점에서 AA 2개들이 건전지를 구입해 GPS에 갈아 넣었다. 무려 2550원이나 한다. 어쩔 수 없이 전지를 사야 했지만, 환경에 좋지 않은데다 비싸서, 건전지 사 쓰는 것은 어느 모로 봐도 바보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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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에서 76000원에 판매하는 이런 풍력 발전기를 자전거에 달 수는 있는데, 값도 비쌀 뿐더러 실용적일지 의문. 사진을 무단 복제하면 안되지만 장사에 도움되는 것이니 이해해 주겠지 -- 옥션에서 '풍력발전기'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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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rt 건너편 철로변에 늘어선 집들. 집 맞은편은 화장실이라고 하더라. 야밤에는 나름 스릴 넘치는 볼일이 될 지도. 남들 사는 모습 찍는게 미안하다. 레바논에 있을 때 건물에 난 총탄 자국을 호들갑을 떨며 구경하는 관광객과 달리 사진 찍는 것을 다소 불편하게 여겼다. 사진 폭력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강조'된 풍광도 좋아하지 않았다. 블로그 사진으로 보는 음식 사진에 대개의 경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차라리 공기중에 촐싹거리며 나풀거리는 언어를 믿고 말지. 풍광이 충분히 아름다우면 빛으로 환상을 빚어내지 않아도, 보기에 썩 좋다.

군산 오기 전에 군산에 가면 간장게장 백반을 30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호기심이 동해 부러 찾아본 집이 청기와아구찜집이다. 자전거로 그 지점을 찍고 찾아갔다. 일요일이라 군산 시내가 한가하다. 옷집이 몰려있는 시내 중심가에만 젊은이들이 돌아다녔다. 올해 유행한다는 치마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자애들도 눈에 띄었다. 지역 사회 인프라 확충은 별로라도 옷 유행만큼은 어느 지방 도시나 거의 광속이지 싶다.

주택가에 위치한 청기와아구찜집 근처에는 생선구이 파는 고궁식당과, 진미식당을 비롯한 군산 3대 백반집이 모여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기와아구찜집에 들어가서 혼자 3000원짜리 게장백반을 시켜 먹는게 미안하지만, 일인분이라도 서비스가 잘 나오면 정말 괜찮은 집인 거다. 3천원 짜리 치고는 많이 푸짐하지만 간장게장은 그저 그랬다. 되려 된장국이 맛있다. 게장에 밥 비벼먹고 된장국을 뜨는둥 마는둥 하며 적당히 먹고 나왔다.

버스 시간이 여유가 있어 일제 시대에 지어진 건물 몇 개를 구경했다. 마음 같아서는 해망굴이든 히로쓰 저택이든 구군산세관이든 다 밀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비록 집 없는 설움, 나라 없는 설움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나를 비롯한 후세가 영혼을 잃었던 일제 시대를 기억하기 위해 그것들은 보전되어야 마땅하다.

저녁을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다.  군산회타운 근처의 유명 식당인 쌍화반점에 들러 짬뽕을 주문했다. 면발이 여늬 중국집과 다르다. 잔맛없이 생생하달까? 다른 해산물은 일체 없고 야채와 싱싱하고 쫄깃한 바지락만으로 낸 빨간 국물맛도 특이하다. 조미료가 없다. 무척 담백한 맛이 난다. 별로 맵지도 짜지도 않은 짬뽕이 마음에 든다. 다 먹고 보니 바지락이 산을 이뤘다. 짬뽕이 아니라 매운 바지락 쫄깃 칼국수랄까. 썩 괜찮은 식사였다.

아이 줄 앙금빵이나 사갈까 싶어 60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다는, 유명 빵집인 이성당에 들렀으나 일요일이라서인지 문을 닫았다. 시내를 빈둥거리며 자전거를 몰고 돌아다니다가 고속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표를 샀다.

19.40 출발. 천안 근처와 기흥 부근에서 잠시 막히고 3시간이 걸려 서울에 도착. 22:40분 자전거 몰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아득해서 자전거를 들고 지하철에 올랐다. 승객들이 많으면 자전거를 지하철에 싣기가 죄스러웠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23:20, 아내에게 미리 전화해 치킨과 생맥주를 시켜놓았다. 샤워하고 그것들을 먹고 마셨다.

군산에 가면, 군산맛집이란 곳에 들러 서울에서 보통보다 조금 잘 하고 저렴한 식당에서 먹는 것 보다는, 차라리 횟집에 들러 화끈하고 배 터지게 먹는게 나아 보인다 -- 혼자 주행하다 보니 제대로 된 횟집에서 먹기는 뭣하다. 8층짜리 휘황찬란한 군산횟집의 일 층 전체가 광활한 수족관이었다. 그렇게 큰 수족관이 있는 식당은 처음 봤다. 그래서 '군산횟집'이구나. 그래서 군산에는 군산횟집이 있는 거구나. 회타운의 실비집은 아마 '다찌집'인 것 같다. 그런데도 가보고 싶은데 혼자라는게 이럴 때 참 아쉽다.

GPS에 최근 작업한 지도를 넣고 다녔는데 쓸모없는 행정구역 이름이 너무 잘 보이고 쓸모있을 POI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개선이 필요하다. 등고선과 도로 데이터는 잘 맞았다. draw order가 잘못 되어 지형도가 다 나타난 다음에야 도로와 경로가 보인 것이 아쉽다.

주행 데이터:

집->센트럴터미널: 22km
서산->찜질방: 4km
찜질방->안면도 입구 굴밥집: 22.5km
굴밥집->안면도 영목항: 42km
대천항->군산: 62.4km
군산시내: 16.3km
안면도: 15.5km
군산시내: 20.5km
총 216.3km.

주행경로 중 어려운 곳이 없다. 고저차는 50m 이내이고(거의 평지), 북->남으로 이동 중 꾸준한 서풍 때문에 바람의 영향이 적었다. 대부분 갓길이 별로 없는 1차선 국도를 주행했다. 지방도  구간 대부분에서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아 비록 갓길이 적어도 교통 흐름에 크게 방해되지 않았을 것이다(희망사항).

트랙로그 및 일정/비용
선유도 여행계획.xls

여행 일정 및 비용

선유도.g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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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는 서해-남해-동해로 이어지는 한 달 가량의 자전거 여행 중 지나치게 될 코스였다. 원래 계획은 한 달 짜리 자전거 여행이었다가 일주일 단위로 끊어 각각 서해, 남해, 동해로 나누었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어 어쩌다 보니 변산반도만 떼어내 1박 2일 코스로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지난 3년의 이력이다. 잊어버리자.

17:30 집에서 출발. 내일 날씨가 맑단다. 18:45 강남 터미널 도착. 부안행 표를 끊었다. 버스는 천안을 조금 지나서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멎었다. 고속도로 갓길에 세운 버스를 살려보려고 갖은 애를 쓰던 기사 아저씨는 용케 시동을 다시 거는데 성공했다.

부안에 도착하니 11시 20분. 날이 쌀쌀해서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GPS를 켜고 뉴부안 찜질방에 갔으나 내부 공사 중, 5월 10일 이후 재개장한단다. 건강나라 찜질방으로 갔다. 작은 찜질방에 사람들이 꽤 북적인다. 여기저기서 경상도 사투리가 들린다. 전라도에서 전라도 사투리나, 서울 사투리가 아닌 경상도 사투리를 듣다니 무척 신기하다.

자리를 잠시 비워 담배 한 대 피우러 갔다 온 사이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했다. 자리가 없어 여기 저기 헤메다가 불편하게 잠들었다. 보통 새벽 2-3시에 잠들곤 하는데 12시부터 자려니 적응 안된다. 1시쯤 잠들었다. 8시에 깼다. 기분나쁜 꿈을 꾸었다. 샤워하고 찜질방을 나왔다. 전날 밤 살짝 비가 와서 체인이 떡졌다. 날이 흐리다. 오늘은 OSM 지도+지형도를 GPS에 넣어 처음으로 주행하게 된 날이다. 도로 윤곽이 희미해서 OSM으로 가민용 지도를 만들 때 신경 좀 써야겠다.

아담한 부안 시내의 할인 마트에서 빵과 우유를 샀다. 370kcal, 170kcal. 사실 빵, 우유 대신 백합죽을 먹을 생각이지만 가는 길에 백합죽 전문이라는 계화회관이 안 보이면 이걸로 점심까지 버틸 생각이다. 빵과 우유를 마트앞 벤치에서 먹어치우고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 부안 시내를 빠져 나갔다. 해가 안 떠서 날이 차갑다.

변산반도를 애두르는 30번 국도만 따라가면 된다. 길이 무척 쉽다. 부안 경찰서를 지나자 계화회관이 보였다. 빙고. 백합죽을 시켰다. 7000원 짜리 죽은 꽤 맛있지만 양은 좀 적은 편. 맛이 썩 좋았는데 맞은편의 경상도 가족은 '이건 약이야' 하면서 감탄한다. 나도 대충 만족하고 패달을 밞아 새만금으로 향했다.

부안

지나가다 민가 사진 한 장 찍었다. 폐가인지 사람이 사는지 잘 모르겠다.

지나가다 삐삐 인형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소방서 옆 가게에서 성인용품을 판매한다는 전단지가 전봇대마다 붙어 있었다. 일없는 겨울밤 놀고 있을 농촌 총각을 겨냥한 타깃 마케팅일까? 친환경 에너지 생산단지 인지가 새만금 뻘 근처에 건설되는 것 같다. 내가 알기로 군산에 소위 친환경 에너지 설비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

길이 참 편하다. GPS의 지형도를 봐도 고도차가 거의 없는 꾸준한 평지가 해변까지 이어진다. 새만금 전시관에 이르기 전 언덕에 오르니 새만금이 잘 보이는 곳이 있다. 어젯밤 찜질방에서 본 경상도 가족에게 새만금에 관해 아는 것도 많은 내가 침튀기며 설명해 줬다. 그 가족은 어젯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자리를 차지한 가족이었다.

새만금

이제 썩어가는 갯벌에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백합에게 안녕을 고해야 한다.  이미 막은 뻘을 다시 살리기 위해 수조원이 투입된 공사를 되돌리기엔 늦었다 -- 이건 내 관점이다. 뼈저린 실수겠지만 새만금 방조제를 쌓을 당시엔 정치가나 일반 대중이나 생존에 바빠 장래 생태계가 어찌어찌될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땅을 메워서 농지와 택지를 만든다는 그 계획이 꽤 그럴싸해 보였을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

전날밤 전주 뉴스에서 새만금 방파제 안쪽의 선박 소유주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새만금 전시관에서 방조제 공사가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공사였는지 떠벌리는 비디오를 보았고 장래 그곳에 해양 레저와 친환경 어쩌구가 들어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방조제 길이 일반에게 공개되었을까? 모르겠다. 아직 군산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변산 해수욕장

고개를 몇 개 넘자 변산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아직 해가 안 떠 썰렁하다. 요즘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잘 맞는 편이라 그걸 믿는다. 백합 껍데기가 모래밭에서 군데군데 보였다.

변산 해수욕장

바닷가에서 캔맥주 쳐먹고 빈 병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일까? 내 동포, 내 형제, 내 이웃이다. 그러니 주워서 버리고 갖은 욕설이나 마저 하자.

변산 해수욕장을 지나 30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고사포 해수욕장으로 빠지는 해안 도로로 방향을 바꿨다(우회전했다).  고사포 해수욕장을 지나쳤다. 고갯마루에 오르자 하섬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바로 나타났다.
하섬

하섬. 썰물 때면 육지와 섬이 연결된다. 물 때가 안 맞아 오늘 조개 따기는 글렀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이곳 해안에서 물이 빠지는 깊이가 대략 50cm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바다처럼 보이는 저 곳을 걸어서 건너갈 수도 있겠다.

30번 국도

해변을 따라 고저차 30~40m 내외의 고개가 연이어 이어지는 해안 도로다. 변산반도를 반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는 터라 해안 도로의 우측 차선이 바다와 맞닿아 풍광이 좋다. 해가 뜨지 않아 덥지도 않고 기분좋은 측풍(시속 3~4m 가량의 서풍)이 불어와 땀이 거의 안 나와 라이딩이 무척 상쾌하다. GPS의 기압계를 보면 날씨는 점점 좋아질 것이다.

적벽강

하섬을 지나고 얼마 안가 적벽강에 이르렀다.
적벽강

사암, 세일로 보인다. 이암도 있는 것 같다. 산화철 때문에 색깔이 다른 부분. 단애가 별로 특이해 보이지 않지만 그 깊이가 상당하다.
적벽강

아직 물이 덜 차올라 저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적벽강

바닥. 설마 퇴적암 뿐일까? 밑에는 아무래도 화강암이 있을 것 같은데.
적벽강

책처럼 켜켜이 쌓인 층. 망치로 두들기면 부서진다. 언제 형성된 것인지 알고 싶은데, 쓸만한 안내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가 못 찾은 것일께다. 이거 애들 교육용으로 아주 좋은데. 어디가서 이런 규모로 보기 힘든 지층이기도 하고....

젹벽강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적벽강이 있는 곳은 자갈 해변으로, 떨어져 나간 셰일 덩어리가 조석에 의해 닳고 닳아 얇고 귀여운 판석을 만드는데, 각기 다른 퇴적층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색색이 조약돌을 이룬다. 해가 뜨거우면 바닷가에 들어가 물장구나 치면 좋으련만...

적벽강을 뒤로 하고 채석강으로 향했다.

채석강

채석강도 적벽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스러지기 쉬운 셰일과 이암 따위의 켜켜이 쌓인 퇴적 층이 해식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마모되면서 해수욕장에는 조그맣고 반질반질한 조약돌들이 널렸다.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 판석으로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원탑을 쌓았다.

채석강: 적조

채석강에서 뜬금없이 적조를 보았다.

채석강

고개를 쳐들자 나타난 습곡. 요르단의 알 카즈네에서 더 멋지고 알록달록한 것들을 봐서인지(안데스에서도 마찬가지) 멋있어야 할 이것이 좀 시큰퉁... 하지만 세월과 연흔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지질학자는 층층마다 꽤 자세하고 재밌는 얘기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지질학자에게 부탁해서 표지판을 하나 만들어 세워주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가 자식들 데리고 와서 멍청하게 바위만 쳐다보게 만들지 말고. 모처럼 바닷가에 왔으니 백합죽이나 회를 배불리 먹고 돌아가는 거야 기본이지만.

채석강

달팽이로 추측되는 것들이 진흙 바닥에 새긴 궤적. 척벽강과 채석강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적벽강이나 채석강의 퇴적층에서 화석 비슷한 것을 보지 못했다.  벌써 다 파갔나?

채석강

업자가 관광용 땅굴을 판 것이 아니라면 저건 해식동굴일텐데 그 위에는 '청상어횟집'이란 처절한 난개발의 흔적이 돋보였다. 개발을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변산반도 오는 길 내내 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 어설프게 대충 되는대로 개발하다가 죽도 밥도 안되어... 내가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욕지기가 나왔다. 채석강, 적벽강에 관한 관광 지도의 설명은 '중국에 그 비슷한 것이 있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꼴사납고 바보스러운 얘기 뿐이다.

채석강이 있는 격포 해수욕장이 변산반도에서 개발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관광지같다. 근처에 군산식당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아침을 9시에 먹고 12시에 여기 도착해서 점심 먹기가 뭣해 내소사 부근이나 곰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전라 좌수영으로 향했다.  고저차 70m의 짧은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올랐다.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지인 전라좌수영은 분위기가 그럴듯했다. 가까이 가서 벽을 두들기면 얇은 베니어판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이지만. 수십차례 촬영할 꺼면(불멸의 이순신을 안봐서 어떤 드라마인지 모른다) 이왕 만드는 김에 제대로 좀 만들지 싶었다 --  그러기가 쉽지는 않겠지.

전라좌수영

앉아서  바람을 쐬며 쉬었다. 분위기가 참 좋다. 그늘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한잠 잤으면 좋겠지만, 여차하면 무너질 것 같은 세트장이다 보니 기댈 자리가 마땅치 않다.

다시 패달을 밟았다. 30번 국도변에 있는 조각공원과 촬영장은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전라 좌수영 아래쪽에 있는 분위기 좋은 궁항을 지나고 상곡 해수욕장을 지나 다시 30번 국도와 만났다.  해가 떠서 날이 점점 더워진다.

모항 해수욕장

모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항 해수욕장.  여기까지 네 개의 이름있는 해수욕장과, 여기 저기 쉬기 좋은 해안을 여럿 지났다. 흡사 제주도 남서부처럼 아기자기하고 썩 괜찮은 해변이다. 아침나절부터 날씨가 좀 괜찮았다면 해변에서 놀다 갔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모항 해수욕장도 그냥 지나쳤다.

햇볕이 따가워 강도처럼 버프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작년에 사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팔 토시를 착용했다. 여자들이나 입는 낯 간지러운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전거 타려고 쫄바지 입고 다니면서 안 그래도 남의 눈 신경쓰지 않던 패션,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신경 쓴다는게 뭣하지 싶어 맨살에 달라붙는 팔 토시를 과감하게 착용했는데 통풍 잘 되고 햇볕 차단이 잘 되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진작부터 팔 토시 입을 껄 그랬다.

모래밭이 깔린 해수욕장은 모항 해수욕장이 끝이다. 그 이후로는 주로 갯벌이 나타났다. 어쩌다보니 내소사로 들어가는 삼거리를 지나쳤다. 내리막길에서 한창 가속이 붙어 있는 자전거를 다시 되돌리기가 뭣해 그냥 지나쳐 버렸다.  내소사 가는 길에 캠핑 사이트도 있고 산장도 꽤 여럿 있다. 텐트 들고 장기 여행 중에는 하룻밤 자기 좋지 싶다. 아참, 절 통행료가 있지!

곰소 갯벌

곰소로 가는 길에 본 갯벌

내소사를 지나쳐 버리니 곰소까지 금새 다달았다. 곰소가 외변산 관광의 마지막 지점이다.  곰소에서 밥 먹기로 했으니 밥집을 찾았다. 곰소를 두 바퀴 돌아봤지만 젓갈 백반으로 유명한 '곰소쉼터'는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시장통의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시켰다. 찬 9가지에 된장국을 5천원에 내온다. 젓갈 3 종류가 식탁에 올랐다. 비싼 식사보다 차라리 이런 허름한 식당에서 백반 시켜 반찬 종지까지 박박 긁어먹는게 어쩐지 취향에 맞는다.

어젯밤 찜질방에서 봤던 사람들을 곰소에서 다시 보았다. 찜질방에서 하룻밤 자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경상도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광주나 목포, 전주 등 인근 지역 사람들보다 경상도 사람들이 유독 변산반도 관광 내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젓갈이나 사갈까 물으려다가 관뒀다. 들고 가기 귀찮다. 곰소에서 난 천일염이 그렇게 좋다면 젓갈 뿐만 아니라 된장, 간장, 김치도 다 맛있을 것이다. 사려면 소금을 사야할텐데, 소금을 푸대 단위로 파는 것 같아 그것도 관뒀다.

곰소항

곰소항에서 소화도 시킬 겸 하릴없이 놀았다.
곰소항

...
곰소항

도시 비둘기처럼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갈매기도 구경하고...

곰소 염전

곰소를 빠져나오자마자 염전이 보였다. 염전 맞은 편에 '곰소쉼터' 식당이 보였다. 한참 찾을 땐 안 보이더니만...

등짝에 와닿는 햇볕이 상당히 따갑다. 전진속도와 뒤에서 밀어주는 미풍이 서로 상쇄되어 달리는 길이 거의 무풍 상태라 더 덥게 느껴지는 것 같다. 부안으로 되돌아가는 23번 국도가 나타날 때까지 쉼없이 달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림길에서 그늘이 드리운 버스 정류장을 찾아 자전거를 세우고 쉬었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국도변 버스 정류장만큼 좋은 휴식처도 드물다. 잠시 쉴 뿐만 아니라 비를 피하거나 낮잠을 즐기기에도 좋았다. 그런데 여긴 개미떼가 바글거린다. 3면이 막힌 버스 정류장 대신 보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시원한 서풍이 땀을 식혀 주었다. 10분 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시원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했다.

좀 바보같은 짓이지만 선운사 쪽으로 빠지는 고창 부근까지 가서 정읍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이가 내일까지 아플 것 같으면 선운사로 가 민박에서 하룻밤 자던가 내장산 국립공원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정읍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아내에게 아이 간병을 맡기고 나만 재미있게 놀러 돌아다니는 것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던 개마초 남성 중심 사회가 그립다) 오늘 중으로 집에 돌아갈 생각이다.

부안에서부터 이어지던 기나긴 유채꽃 길은 고창 교차로 앞에서 끊겼다. 외변산 길은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 꽤 기분좋은 길이다. 갓길도 30~50cm로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고 팔을 스치는 유채꽃이 마치 마라토너를 반겨주는 시민처럼 정답게 바람에 흔들린다. 이 지점에서 정읍까지는 약 16km. 등짝에 쏟아지는 오후 햇살을 받고 뒤에서 밀어주는 선선한 미풍을 타고 쉬지 않고 정읍시까지 달렸다.

친구가 예전에 그런 말을 했다. 아직까지 새마을기가 펄럭이는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 촌락(village)이라고. 정읍시에 들어서자 마자 수많은 새마을기가 펄럭였다. 장관이다. 친구와는 견해가 좀 다른데, 아마 시청 구석에 열박스쯤 쌓여있을 새마을기를 딱히 처치할 방법이 없고 도심에 남는 깃대는 많으니 되는 대로 꽂아놓은 것이지 싶다. 근 2년 지난 현 정권과 새마을기는 어쩐지 어울린다.

9시에 부안에서 출발해 17시 경 103km를 달려 정읍에 도착했다. 평속은 꾸준히 20kmh를 유지했지만 여기저기 쉬엄쉬엄 놀다가 오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정읍 시내에 들어서자 마자 식당부터 찾았다. 시청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수석영양돌솥밥'이 있다. 6천원 짜리 식사를 시켜 먹었다. 꽤 괜찮았다.

6시 강남 터미널행 고속버스를 탔다.  3시간 걸려 서울에 도착. 버스에서 한 시간쯤 눈을 붙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잠수교는 왜 찍었지? 아마 오세훈 시장 욕 좀 하려고 찍어뒀던 모양. 기분 좋은 날인데 그건 나중에.

터미널에서 집까지 꾸준히 패달을 밟았다. 어젯밤과 오늘밤 고속버스 터미널을 왕복한 거리는 46km, 변산반도에서 주행한 것을 더하면 148km를 달린 셈인데  기운이 남아 돌았다. 내 저질체력을 여태까지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일까? 아무래도 세 끼를 꼬박 잘 챙겨 먹고 비교적 평탄한 도로를 바람을 등지고 달린 덕분인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치킨에 캔맥주 두 개를 먹고 마셨다. 몸이 그것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별로 피곤하지 않아 평소처럼 오전 3시30분에 잠들었다.

주행 전에 날씨와 기온, 풍향, 풍속 따위를 검토했다. 알아도 주행에 도움이 된다, 안된다 말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천상 기술자다 보니 데이터는 항상 쓸모가 있었다. 하루에 겨우 124km 달린 것으로 생색 내기는 뭣하지만, 예전에 변산반도 해안도로와 유사한 90km 가량의 동해안 도로를 달릴 때의 체력과는 비교가 안되는 그간의 질적 향상이 있었다. 주행 중간에 많이 쉬어서 그런 것인지도.

1-3 기어의 재발견: 이전 변속 패턴: 3-6, 2-6, 2-4, 2-2, 1-2. 이번 변속 패턴: 3-6, 2-6, 2-4, 1-3, 1-2. 경사도가 고만고만한 고갯길에서 1-3 기어로 케이던스를 2/3로 떨구고 약 8.3kmh 속력을 유지하면  별로 힘이 안 든다. 왜 유독 그 기어비에 그 속력에서 힘이 덜 들었는지 나중에 다시 테스트해 봐야겠다.

OSM GPS 지도는 지형도가 꽤 유용했다. 앞으로 가야할 고갯길이 몇 개이고 어느 지점에서 쉴까 흘낏 쳐다보는 정도의 유용함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떠들만한 것은 못 된다. 그런 거 없어도 잘들 자전거 타왔다. POI가 보이는 zoom level의 조정이 필요해 보이고 도로 폭이 좀 넓게 렌더링되었으면 좋겠다 정도 나중에 개선할 것들도 알았다.

트랙로그와 SportTracks로 경로 분석을 해보니 상당히 유의미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안장 높이 조절하지 않고 20km 달린 구간의 평속은 조정후 달린 속도에 비해 1.7kmh가 떨어진다.

짧은 코스를 돌다보니 교통비와 숙박비가 아깝다. 전라도에 간 김에 밥만큼은 잘 먹자 해서 밥값으로 쓴 것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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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에 깼다. 황씨가 피곤해 보여 6시에 깨웠다. 날은 흐리고 쌀쌀하다. 아침은 누룽지 탕과 어제 먹다 남은 스팸 반 통. 구수한 누룽지탕을 먹고 핫초코를 끓여 마시니 속이 따뜻하다. -- 이런 음식으로 배가 찬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원래는 2박 3일 동안 종주하려고 했으나, 어제 저녁에 종주 일정을 하루 단축해서 1박 2일로 수정했다. 그야 오늘 상태를 봐가면서 하기로. 황씨가 의외로 기운이 넘쳐 가능하지 싶다.

 
아침 먹고 출발 준비 중. 배낭에 마누라가 준 종을 매달고 딸랑거리며 다녔다. 곰의 습격을 방지해 준다나?

어제, 오늘 외국인을 네 명 보았다. 지리산 종주 코스가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사진 뒷편의 두 노인네는 트레일중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꾸준히 만났던 사람들이고 벽소령에서 함께 잤다. 악센트로 봐선 한 명은 독일인이고(독일인들은 산을 잘 탄다. 외국여행할 때 산길에서 늘 독일인들을 만났는데 한결같이 인상들이 좋았다) 그리고  한 명은 영국계같다. 두 노인네가 힘이 참 좋다. 동행하는 젊은 친구에게 짐 다 맡기긴 했지만 노인네들이 힘이 참 좋다고 말하는데 앞서가던 젊은 외국인 친구가 '먼저 가세요'라고 한국어로 말한다. 말조심하자. -_- 하여튼 저 양반들에게 영어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만나도 왠지 영어 쓰고 싶지 않다.


7:20 짐을 싸들고 선비샘을 향해 출발. 날은 흐리지만 시원한 바람 덕택에 땀이 덜 난다. 황씨는 자기 때문에 뒤쳐진다고 생각해서 미안한지 날더러 앞서 가란다. 황씨 때문에 속도가 안 난다는 생각은 안 했다. 몇 년 전에 비하면 그의 체력이 상당히 좋아졌다.

내가 앞서가봤자 기껏해야 한 두 시간 정도 빠를 뿐. 길이 워낙 좋아서 점심을 먹기로 한 장터목 대피소까지 완샷에 가서 황씨를 기다릴까 하다가 그건 좀 너무하지 싶어 쉬엄쉬엄 황씨 걸음에 보조를 맞추기로. 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좋은 풍광을 즐기러 왔다. 이렇게 한가하게 사진이나 찍으면서.
 
벽소령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5시간 거리라고 게시판에 적혀 있다. 내 걸음걸이로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셈(게시판에 기록된 평균 주행시간 곱하기 2/3하면 대략 맞는다).

시계의 기압계를 보니 기압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벽소령부터 장터목 대피소까지 꾸준히 오르막길이라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압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해도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다. 기압계의 기압 trend를 본 것이다.

해발 1500m에서 지오 포텐셜 고도는 850gpm인데 현재 GPS로 측정된 비교적 정확한 고도는 1620m(오차범위는 +-2m), 기압계에는 대략 820~830gpm쯤 나와야지 싶은데 현재 기압은 830hPa에서 815hPa로 팍 떨어졌다. 딱 비올 날씨 같다.  

지구과학은 상식 정도로만 알고 있어 정확하진 않다. 기압계는 기압차의 변화만으로 날씨 변화를 어설프게 예측할 때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 17만원이나 주고 산 비싼 시계는 조난 상황의 예보 이외의 고도계로는 그렇게 쓸모가 없다. GPS의 altimeter 역시 기압 변화에 따른 고도 변화를 출력해 주는데, 시계의 기압계로 계산된 고도와 GPS 기압계로 계산된 altimeter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고 GPS쪽이 훨씬 정밀하다. 뭐야 이 시계는?

카시오 솔라파워 나침반+기압계+고도계+온도계는 지금까지의 사용 경험상, 장난감 이상은 아닌 듯. 온도계는 체온의 영향으로 적어도 4-5도의 편차가 생긴다. 고도를 감안해서 현재 기온은 지상이 29C일 때 29-16x0.6 = 19.4C 정도가 나와야 하는데 24C가 나온다. 이 시계의 1년 누적 오차는 무려 5분 가까이나 된다. 50m 짜리 생활방수는 거진 헛소리에 가까웠다. 뭐 상당히 고가인 순토 시계도 그 지경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딱히 할 말 없다.

장터목까지 봉우리 다섯개를 넘어야 한다. 하여튼 쉬엄 쉬엄 사진 찍어가면서 천천히 걸었다. 어제 오늘 GPS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그러다가 버튼이 눌려 두 번이나 꺼졌다. 바지 주머니 말고 배낭 멜빵에 달아둬야 하지 싶다.
 
산길 사이로 살살 빗물이 떨어진다. 장터목까지 얼른 가야겠다.

능선 코스라고는 하지만 울창한 숲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어 특별히 '전망좋은 곳(vista point)'라고 할만한 곳이 나타나지 않는 한 장쾌한 전망을 내내 즐기며 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리산길이 재밌지는 않다. 암릉이 적고 너덜 지대가 많아 발 밑을 조심해야 한다.
 
 
여행중 트래킹을 수십차례 하면서 1600m의 광경이 그게 그거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치 말레이지아 정글처럼 습하고(상대습도가 거의 87%) 소똥 냄새 비슷한 것이 난다. 말라죽은 주목과 바윗결에 낀 초록 이끼, 그리고 어두컴컴한 날씨에 간간이 비바람이 숲 사이로 불어와 등산객이 없는 길을 홀로 걸을 때는 괴괴한 기분까지 났다. 사실 나는 그런 귀신나올 것 같은 한적함을 몹시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종주 코스 트레일에서 내내 보게 되는 무성한 조릿대.

 
두번째 온 지리산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축축했다. 축축하고 울창하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다양한 식물군락으로 정신없이 복잡하다.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헬기가 오락가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헬기는 바위 푸대를 나르고 있다. 비 때문에 산길이 자주 유실되어 암석으로 길을 다지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암석 길은 다 좋은데 오래 걸으면 무릎이 아프다. 저간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리산이나 북한산이나 폭신폭신한 흙길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섭섭하다.

남성적인 북한산과 달리 지리산은 비교적 여성적이다. 암릉도 적다. 하늘을 캐노피처럼 덮은 높다란 나무와 풀로 이루어진 다양한 식생대. 지리산이 백두대간의 마지막 결절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전망 좋은 곳에서 땀을 식히며 황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배낭 패킹이 엉망이지만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배낭을 자주 싸다보면 요령이 생길 것이다.

길이 비교적 평탄한데다 스틱의 도움으로 상당한 속도를 낼 수 있어 좋다. 이 좋은 스틱을 그 동안 왜 사용 안 했는지 모르겠다. 발이 둘 더 생겨 네 발 짐승처럼 걷는 것이 가능하다. 싸구려 스틱인지라(옥션에서 개당 6900원 주고 구입) 마무리가 좀 어설퍼서 카바이트 팁이 바위에 닿을 때마다 딱딱 소리가 나고 몸체가 부들부들 떨리는 단점이 있다. 좀 사용하니까 굳이 스틱의 사용법을 배우지 않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스틱은 하중의 1/3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내리막길에서는 스틱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어제 본 풍경에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하다. 외계인 엑소스켈리톤 갈빗대처럼 켜켜이 이어진 산과 골. 골짜기 마다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 수백년, 수천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세석 산장을 지나치니 슬슬 천왕봉이 시야에 드러난다. 천왕봉 앞에는 널다란 고지 평원, 제석평전이 펼쳐져 있다. 십수년 전에 이것과 똑같은 광경을 빗속에서 우울하게 쳐다보았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심지어 비옷까지 입고 간간히 내리는 빗 속에서 GPS로 앞으로 가야할 길의 궤적을 평가하고 이 광경을 디지탈 카메라에 담으며 즐기고 있다, 는 것일께다. 피로하지도 않고, 다리 양쪽에 생채기 하나 없이 말끔하다.

1600~1700 고지 부근이라 간간이 평지가 드러났다. 드러난 평지엔 어김없이 꽃이 피어있고, 날씨가 맑으면 어김없이 벌떼가 앵앵거린다.

 
천왕봉이 조금씩, 꾸준히 가까워진다. 오른쪽에 나타났다가 왼쪽에 나타났다가 오락가락하면서.

 
마녀의 산발머리를 닮은... 남미에서 보던 세이버 나무처럼 생겼다. 죽었다.

 
이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장터목 대피소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  사진 중앙에 등산객 둘이 앉아 식사 중인데 잘 안 보인다. 삼도봉에서 본 연인들 같다. 천왕봉에는 구름이 드리워져 비가 내리고 있는 듯 하다.

오후 12:00, 느적느적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 황씨는 20분 후에 도착. 빗발이 거세져서 김치국밥을 끓이다 말고 취사장으로 철수했다. 비를 피해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금새 취사장이 꽉 찼다. 황씨는 천왕봉 생략하고 바로 내려갈지 묻는다. 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정상에 굳이 올라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리산 와서 천왕봉 안 올라가는 것만큼은 바보짓이다. 더더군다나 황씨는 지리산에 볼거리가 없다고 내내 투덜거렸다. 비가 내리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꼭대기에 가야겠다.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점심으로 김치국밥과 미트볼을 끓여먹고 남은 라면도 마저 끓여 먹었다.  짜다. 천왕봉에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로 마음 먹은 이상 식량을 남길 이유가 없다. 비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내려가는 길이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소주 반 병쯤 마셨다. 비가 잦아들었다. 기압 동향을 살펴보니 한 시간쯤 후에는 비가 그칠 것 같다. 배낭을 싸고 비옷을 입었다. 출발.

 
운무가 낮짝을 간지럽히는 제석평전을 지나친다. 난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 찍어대며 룰루랄라 놀고 있지만(술도 한 잔 했겠다) 꾸역꾸역 따라오는 황씨는 힘겹고 피곤해 보인다. 어이 황씨 힘내라고.

 
제석평전의 늪지대? 언제 이런게 생겼지?

 
제석평전. 말은 룰루랄라 라지만 장터목 산장에서 천왕봉까지 300m를 꾸역꾸역 기어 올라가야 한다. 아침부터 다섯 시간을 걸어와서 밥 먹고 다시 한 시간을 걸어가려니 힘든 것은 당연하지.

 
제석평전을 지나 통천문으로 가는 길. 천왕봉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어떤 사람은 비옷을 입고, 어떤 사람은 고어텍스 오버 트라우저를 입고 있다. 고어 텍스 할아버지라도 하루 종일 폭우를 맞으면 방수성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그 때는 차라리 천 원짜리 얇은 비닐로 된 비옷이 더 낫다. 그러다보니 트래킹할 때 무거운 오버 트라우저 대신에 가벼운 비닐 비옷을 챙겼다. 몹시 폼이 안 난다는 문제가 있지만.

 
천왕봉 정상 부근에 이르자 비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

 
운무가 '춤추는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었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네팔 같아 보이기도. 중간에 5000m 급 허연 영봉 하나만 버티고 있으면 이 광경은 네팔이 된다.

 
천왕봉 꼭대기. 1915m. 저 멀리 진주행 도로가 슬며시 보인다. 맑은 날에는 바다가 보이지 않을까? 부산에서 단체로 온 등산객들이 시끌벅적하게 점심을 먹고 있다. 무척 맛있어 보인다.

 
장엄한 운무와 코딱지만한 인간. 동영상으로 찍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마음에만 담아두자. 바람이 휘휘 불고 온 천지가 안개와 구름에 휩싸여 있다.

 
인증샷. 육포를 안주 삼아 정상에서 소주 한 잔 해서 대략 알딸딸. 비도 그치고 끝까지 다와서 기쁘다. 황씨도 정상에 오른 보람을 느끼는 듯.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15:00가 다 되어서야 천왕봉에서 하산 시작. 증산리로 내려오는 길은 지루하다. 끝없는 돌계단과 미끄러운 바위 때문에 법제사를 지나 칼바위 부근에 다다랐을 때는 무릎이 슬슬 아파왔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열을 식혔다. 3일 동안 못했던 세수도 했다.

증산리에서 진주로 가는 버스 막차 시간이 19:40이기 때문에 18:00까지는 하산해야 한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황씨에게 타이레놀 두 알을 주고 먹으라고 했다. 하산길에 무릎이 들쑤셔도 한 동안은 진통제 약빨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17:40에 증산리 안내소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앞으로 30분 거리. 증산리 안내소에서 15분쯤 걷자 막걸리 파는 집들이 나타났다. 황씨와 19:00까지 하산주를 마시다가 증산리 버스 정류장에서 19:40 진주행 막차를 타기로 했다.

딱히 고생한 것이 없는, 기분좋은 산행이다. 막걸리 두 항아리에 파전과 도토리묵으로 뱃속을 채우니 기분이 많이 묘하다. 술 마시면서 북알프스와 안나푸르나 서킷에 관해 얘기했다.

버스 타러 내려가는 길에 지나가던 택시가 두당 만 오천원에 진주까지 간다고 손짓했다. 무시했다. 그 차가 손님을 하나 태우더니 내려가는 길에 두당 만 원에 진주에서 원하는 곳 어디에든 모셔준다고 말했다. 버스로 1시간 30분 길이면 차비가 4-5천원은 될터이니, 괜찮은 조건이라 두 말 없이 택시에 탔다.

기사에게 괜찮은 횟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본인도 처음 가 보는 식당에 데려다 주고 소개비 조로 식당으로부터 회밥을 얻어 먹는다. 식당 입구에 '모범음식점' 푯말이 붙어 있어 잔소리 안 하고 들어갔지만 황씨는 삐끼에게 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열 아들딸 보다 잘 키운 삐끼 한 마리가 낫다는 속담이 있다. 회밥 얻어먹는 거야 우리 돈 나가는 것도 아니고, 제값에 맛있고 싱싱하고 푸짐한 회를(스끼다시로 전복이 나오더라) 먹었으면 된거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진주 맛집'을 키워드로 찾아봤더니 '안타깝지만 진주에는 맛집이란 것이 없습니다'는 답글을 보고 황당했다.  맛집이라... 횟집은 강남의 망경식당, 중앙시장 인근의 천황식당에서는 육회 비빔밥을 팔고, 촉석루 부근에는 장어구이집들이 몰려있다는 정도만 알고 왔다. 사실 시간 여유가 좀 있으면 아예 부산이나 여수에 가서 진짜 회다운 회를 먹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쨌든 회를 먹고 바에서 맥주 한 잔 했다. 황씨는 전화기를 꺼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술이 상당히 취한 상태라 걱정스러워 주변을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싶어 바에서 NGO 활동에 관심많은 젊은 처자와 노닥거리다가 소개받은 찜질방으로 향했다.

아침에 깨어 보니 골이 아프다. 어제 이것저것 술을 섞어 마셨더니 송곳으로 머리속을 들쑤시는 것 같다. 황씨와 연락이 닿아 육회비빔밥 먹으러 가다가 귀찮아서 포기하고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GPS가 있으니 느적느적 걸어 다리를 건넜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시켜먹었다. 경주에서 돼지국밥 먹었던 것만큼이나 맛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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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식당에 배낭을 맡긴 다음 터미널에서 촉석루까지 강변도로를 따라 슬슬 걸어갔다. 카메라를 배낭에 놔두고 와, 항상 사진 찍으면 거지같은 기분이 드는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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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마루에 앉아 있으니 시원하고 삼삼하다. 누워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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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강이 도시를 휘감아 도는 형태가 춘천과 비슷해서 언젠가는 한 번 들러보겠노라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도시가 예쁘다. 진주에서 30년 살았다는 택시 기사 말에 따르면 인구 33만인 진주에는 일제 시대에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재산을 챙긴 갑부들이 많단다. 논개가 왜구 수장을 죽인 애국충절의 고장에 친일파 갑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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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대상에 맞춰 2008년 다시 그렸다는 논개의 영정. 젊은 시절의  신사임당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신사임당이 멋내고 뽐내기 좋아했다면 논개와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촉석루 인근 어디를 둘러봐도 왜장을 껴안고 강에 뛰어들었을 때 왜장이 죽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런 의문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 누구나가 한 번씩은 품어 보지 않았을까? 왜장은 물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머리가 깨져서 죽었다... 또는 사시미로 밀었다...

9월 7일 진주의 한낮 기온은 32.7도. 아침 나절부터 푹푹 쪄대서 뙤약볕 아래 관광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 같아 11시 서울행 버스를 탔다.

황씨 덕택에 매우 만족스러운 산행이 되었다. 나 혼자 였다면, 지리산에 안 왔을 것이다. 다음에 또 오겠냐면, 글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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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갔던 지리산 종주 코스가 알고보니 화대종주였다.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종주. 무척 힘들고 엿같고, 추운데다 빗물이 넘쳐 계곡길이 물에 잠겨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트레킹을 했기 때문에 지리산 종주는 생각이 깊은 사나이들이나 즐기는 레포츠라고 생각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해야지 싶어 구글에서 '지리산 종주'로 검색해보니 71만개의 문서가 나왔다. 지금은 7살 먹은 아이도 다닌다. 사실 구글 검색하고 나서야 내가 갔던 길이 보였다. 당시에는 반야봉에 오르지 않았다. 반야봉이란게 있는 줄도 몰랐다. -_-
 
이번 지리산 산행은 십수 년 전 종주와 여러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  등산 스틱도 한 쌍 구입했다. 몇 주에 걸쳐 북한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부족한 체력을 보충했다. 35리터짜리 배낭도 샀다. 그때 산장 처마에서 간신히 비를 피하며  새벽이 오길 뜬 눈으로 기다리며 서성이던 것이 생각나 침낭 커버도 구입했다.

9월 5일 새벽 3:30 기차가 구례구역에 도착. 지리산행을 계획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례구역에 내린다. 역 건너편에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배낭을 버스 짐칸에 부리고 재빨리 올라탔다. 구례공영터미널에 일단 들렀다가 4:00에 성삼재로 출발한단다. 미처 구하지 못했던 헤드랜턴을 터미널에서 구입했다. 준비하지 못한 것들은 터미널에서 거의 모두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 상인들이 새벽부터 가게를 열어 놓았는데 없는게 없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버스에 올랐다. 구례구역에서 구례공영터미널까지 버스 운임은 1000원. 10분 쯤 버스가 달려 3:40에 도착. 4:00에 터미널을 출발해서 화엄사를 거쳐 성삼재에 도착하니 4:30. 중간에 무슨 절에서 입장료 라고 몇 천원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새벽이라서인지 매표소(?)를 그냥 통과한다. 버스는 성삼재까지 헤어핀을 포함한 구불구불한 길을 잘도 달린다. 듣자하니 두당 만원이면 1100m에 이르는 성삼재까지 곡예주행을 하는 롤러코스터 택시를 탈 수 있다나?

 
성삼재. 출발 직전. 날이 쌀쌀해서 오버 트라우저 대신 옥션에서 9900원 주고 산 바람막이 옷(단체 주문용?)을 입었다. 많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어시간 후면 빗물이 질질 새는 16만원짜리 고어텍스 오버 트라우저는 아까워서 안 산다)

오리온 별자리가 하늘에서 찬란하게 반짝인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별이 쏟아지는 새벽'이다. 짐 무게가 의외로 가볍다. 며칠 전 옥션에서 구입한 35리터 배낭에 짐을 담다가 동행하기로 한 황씨에게 짐 무게를 물어보니 14kg가 넘는단다. 황씨와 식량을 나눠 가져 가려고 했지만 무게가 그렇다니 하는 수 없이 새로 산 작은 배낭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배낭 여행을 할 때마다 들고 다니던 45리터 배낭을 꺼내 짐을 다시 쌌다. 오랫만에 그 배낭을 짊어지니 옛날 생각이 났다. 짐 무게는 약 14kg 가까이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짐이 가볍게 여겨진다.

여명 무렵 성삼재에 도착. 노고단 대피소까지 올라가는데 황씨가 배낭 무게가 부담스러워 헉헉 거린다. 짐을 좀 잘못 싼 것 같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겠거니 싶어 내버려 뒀다.

노고단 도착. 황씨더러 수퍼에서 '씻어나온 쌀'을 사오랬더니 집에서 쌀을 씻어왔다. 12시간이 지난 쌀에서 쉰내가 난다. 이틀 동안 먹을 쌀인데 몇 시간 더 들고 다니면 다 쉴 것 같아 가지고 온 쌀 전부 미리 밥을 지었다. 한 끼는 아침으로 먹고 코펠 두 개에 나눠 두 차례에 걸쳐 밥을 지은 다음 내 배낭에 넣었다. 그러고보니 황씨는 산에서 캠핑 경험이 없다.
6:20. 산안개가 피어올라 여러 산을 포근히 감싼다. 지리산, 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런 류의 이미지는 대체로 신물나게 본 것이지만. 돼지령과 임걸령을 그냥 지나치고 임걸령 샘가에서 잠시 쉬며 간식꺼리로 가져온 건빵과 땅콩 캐러맬을 먹었다.

건빵의 열량은 100g당 125kcal, 땅콩 캐러맬은 100g당 400kcal, 스니커즈는 36g당 140kcal. 150g짜리 라면 하나가 520kcal니까 4개에 천원 주고 사 온 땅콩 캐러맬 한 봉지의 열량이나 3개에 천원하는 스니커즈 100g의 열량은 대단한 것이다. 지구력이 필요한 장기 산행에서 에너지 전환이 쉬운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데, 아침밥을 챙겨 먹어도 격렬한 운동을 하면 약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 지나면 절반 이상이 열량으로 소비되므로 중간중간 잊지 말고 꾸준히 먹어야 체력 손실과 저혈당에 따른 무력감을 방지할 수 있다. 해바라기씨, 육포 등 비상식과 행동식은 이것저것 준비해 두었지만 무게를 감안해 과일이나 오이 따위는 가져오지 않았다.

 
짐을 합쳐 14kg 짜리 배낭.  매트나 침낭커버, 스틱, 3일치 2인분 식량 따위 이번 산행을 위해 이것저것 산 것만 16만원 어치. 짐이란 자고로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은 거다. 매트는 폭이 워낙 커서 어깨 넓이 까지만 바닥을 커버할 수 있도록 잘라냈다. 의외로 짐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예전에 시간 관계상 그냥 지나쳐갔던 반야봉 정상에 올랐다. 이번에는 나도 산에 오르는 아저씨들처럼 상하 등산복을 사서 갖춰 입었다. 색깔이 영 꽝이라 몰골이 동네 아저씨 같다. 그래도 속건성 섬유 재질이라 발수와 통풍이 우수하다. 진작부터 입을 껄. 이리 좋은 줄 몰랐네. 색깔이나 모양이 좀 개선된 것들이 있으면 여름에 면 티셔츠 대신에 입고다니면 좋을 것 같다.

반야봉 꼭대기 부근에서 수많은 벌들을 보았다. 그래서 지리산 꿀이 유명한가 보다. 벌들과 하는 짓이 비슷한 개미도 구경했다 -- 여왕 개미의 처녀 비행을 보았다. 오뉴월 다 지나고 갑자기 개미떼들이 새까맣게 대기를 뒤덮고 있어 얘들이 철 모르고 날뛰나 싶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무성한 조릿대와 잡목림 때문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저 골짜기를 뚫고 지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멀리 보이는 저 마을까지 대략 15~20km는 될 것 같다. 족히 하루 이상 거리로, 그런 시도 자체가 엄두가 안 난다.

내년 여름엔 강원도 오지 탐방을 한 번 해볼까? 캠핑 기어를 갖추고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해 오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이야 GPS가 보편화되었으니까(오늘 산행 중에 Garmin 60CSX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봤다) 오지 탐험이 예전처럼 궁상스럽고 처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런 오지 탐험을 고생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려면 지형도가 있어야 한다. 어차피 길 따위는 없으니까.
 
 
저 멀리 천왕봉이 어렴풋이 보인다. 24km 남았다. 평지와 달라서, 정말 징하게 멀어 보인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지리산 능선길이 교묘하게 북쪽 사면을 따라 나 있어 햇볕이 많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모자 쓸 일이 별로 없다.

 
삼도봉 도착. 우연찮게 다람쥐가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올라가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하여 '지리'산이란다. 그래서인지 다람쥐 마저 똘똘해 보인다.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지만 지상과 달리 이곳 기온은 24도 안팎. 꽉 끼는 신발에 두꺼운 등산 양말을 신고 있으니 새끼 발가락이 끼어서 살살 아파온다. 이대로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짐 무게 때문에 황씨 표정이 좋지 않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간신히 연하천 대피소에서 도착했다. 아침에 한 밥을 인스탄트 육개장 국물에 말고 반찬으로 김치 꽁치 조림을 곁들였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지친 몸에 허겁지겁 탄수화물과 소금을 채워 넣었다. 캠핑은 꽤 오랫만이지만 해 보니 옛날에 혼자 돌아다니며 밥해 먹던 기억이 나서 잠시 목이 메였다. -_-

황씨가 많이 지쳐서 대피소 인근 숲 속에 짱박혀 매트 깔고 세속에 찌든 어리석은 몸을 뉘였다. 산새들이 짹짹 울고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맑은 햇살이 흘렀다. 시원한 바람이 지친 몸을 위무한다. 황씨는 금새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쉬다가 일어났다. 잠을 거의 못 잤지만 공기가 맑아서 인지 덜 피로하다. 새끼 발가락이 아파서 두꺼운 등산양말을 벗고 면으로 된 얇은 목양말을 신었다.

총각샘과 이름 없는 샘을 gps에 입력해 두었는데, 두 샘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기로 했다. 총각샘은 수량이 워낙 적은데다 주위 환경이 열악해 식수로 쓰기 부적합해 보인다. 아무튼 병목으로 물을 넣을 방법이 없다. 총각샘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하마터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 두번째 샘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헤메다가 절벽을 만나 포기했다.  이래저래 쓸데없이 죽을 뻔하며 시간을 보낸 셈.

 
17:20 미리 숙박을 예약해 둔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오는데, 샘을 찾는다는 둥 쓸데없는 짓을 하고도 1시간 30분 만에 도착. 이 속도라면 지리산 종주를 20시간 이내에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25킬로미터 종주 코스 중 첫날 10.5km 가량 걸었다.

대피소에 워낙 사람들이 많아 탁자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배수로 부근에 자리를 잡고 저녁을 준비했다. 라면 두개에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스팸을 고추장 푼 물에 볶아 황씨가 준비해온 소주에 안주 삼아 먹었다. 점심과 마찬가지로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테이블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사람들을 부럽게 쳐다보았다. 우린 그냥 거지 같았다 -- 그 이유의 대부분이 내가 옛날 캠핑하고 돌아다닐 때 워낙 거지꼴로 다녀서 그런 것 같다.

18:00 예약 체크를 한다. 구석 자리를 배정받았다. 예약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오지 않았거나, 벽소령을 통과하여 지나간 때문인지 자리가 많이 남아 대기자들이나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도 잠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8:30 좀 넘자 제법 공기가 쌀쌀해졌다. 19시 무렵에는 바깥 기온이 14도로 떨어졌다. 날이 흐려 침낭에 누운 채 별을 보며 잠들긴 글렀다. 비박하지 않고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20시부터 잠을 청했다. 황씨는 눕자 마자 곯아 떨어졌다. 그가 워낙 심하게 코를 골아서 귀마개를 빌려 귀를 틀어 막았음에도 0시 무렵까지 뒤척이다가 견디지 못해 침낭을 싸들고 침실을 빠져나와 휴게실에 자리를 피고 잠을 청했다.

어제 저녁 늦게 출발해 새벽 4시까지 기차 안에서 거의 못 자고 12시간을 내리 걸었으면 꽤 피곤할텐데 선잠이 잠깐 들다 말다를 반복했다.

지리산에서 찍은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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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 도착 소요 목적지
2008-09-04 22:57 03:20   영등포->구례구역
2008-09-05 03:30 03:40 00:10 구례공영터미널
04:00 04:30 00:30 성삼재
04:35 05:35 01:00 노고단
07:00 07:34 00:34 돼지평전
07:34 08:19 00:45 임걸령 1320
08:28 08:42 00:14 임걸령 샘
08:42 09:21 00:39 노루목 1498
09:21 10:18 00:57 반야봉 왕복
10:33 10:50 00:17 삼도봉 1550
10:50 11:25 00:35 화개재
11:29 12:19 00:50 토끼봉 1534
12:24 13:46 01:22 명선봉
13:46 14:02 00:16 연하천 대피소
14:55 15:49 00:54 오침
15:49 17:21 01:32 벽소령
주행시간     09:55  
총 소여시간   12:46  
2008-09-06 06:00     기상
07:20 08:10 00:50 선비샘 1456
08:13 08:52 00:39 칠선봉 1563
08:52 09:58 01:06 영신봉 1651
09:58 10:11 00:13 세석산장
10:30 10:45 00:15 촛대봉 1703
10:45 11:40 00:55 연하봉 1730
11:40 11:58 00:18 장터목산장
13:34 13:54 00:20 제석봉 1806
13:54 14:11 00:17 통천문 1814
14:11 14:28 00:17 천왕봉 1915
14:54 15:19 00:25 개선문
15:19 15:51 00:32 법제사
15:51 16:44 00:53 개울가 쉼터
17:14 17:39 00:25 증산리 입산통제소
17:39 18:00 00:21 막걸리집
주행시간     07:46  
총 소여시간   10:40  
19:16 20:09 00:53 증산리->진주 택시
11:00 14:30 03:30 진주터미널->남부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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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코스 (12h4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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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코스(10h40m)

교통비: 54250원

  • 영등포->구례구역: 무궁화호 기차 20150원
  • 구례구역->구례공영터미널: 버스 1000원
  • 구례공영터미널->성삼재: 버스 3200원
  • 중산리->진주: 택시 두당 10000원
  • 진주->남서울 터미널: 우등버스 19900원

지리산 종주 코스 gtm file:



Google Earth용 사진 첨부 KML 파일:
 


블로그에 올린 올린 사진은 geo coding이 되어 있으므로 EXIF 정보에 GPS 좌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준비물

  • 기본 준비물: 배낭, 등산복, 바람막이옷(오버트라우저), 캠핑매트(발포 스트리폼), 침낭, 침낭커버, 스틱, 헤드랜턴, GPS, 코펠, 버너, 가스, 우비, 반장갑, 스포츠타월, 모자, 버프, 500ml 물병 2개, 칼
  • 식량: 즉석북어국, 즉석육개장, 스팸, 3분미트볼, 김치조림꽁치 통조림, 캔 김치 2개, 핫초코 8팩, 씻은 쌀(씻어나온 쌀), 라면 4개, 볶음 고추장 20g, 인스탄트 김치국밥 4개
  • 행동식&비상식: 보리건빵, 해바라기씨, 땅콩캐러맬, 스니커즈 3개, 육포
  • 기타: 3M 귀마개, 수면안대, 두루마리 화장지, 김장용 비닐 2m, wrap 비닐봉투(쓰레기 및 물건 수납용) 5장, 여벌 긴바지+상의, 양말, 타이레놀
지리산 탐방로 정보

화엄사 --7km(4h) --> 노고단(061-783-1507)
성삼재 -- 4.7km(1h) --> 노고단 -- 2.8km(1h15m) --> 피아골삼거리 -- 0.4km(5m) --> 임걸령 -- 1.3km(1h) --> 노루목[4.5km]
 
노루목 -- 1km, 1h --> 반야봉
노루목(4.5km) --1km, 20m --> 삼도봉[5.5km] -- 0.8km, 10m --> 화개재[6.3km]
 
화개재 -- 9.2km(4h) --> 반선
화개재 -- 1.2km(40m) --> 토끼봉[7.5km] -- 2.1km(1h) --> 연하천[10.5km](063-625-1586)
 
연하천  -- 2.1km(1h) --> 형제봉[12.6km] -- 1.5km(30m) --> 벽소령[14.1km](070-7506-7771)
 
벽소령 -- 6.7km(3h) --> 음정
벽소령 -- 6.8km(4h30m) --> 대성
벽소령 -- 6.3km(3h) --> 세석[20.4km](010-3346-1601)
 
세석 -- 6.5km(4h30m) --> 백무동
세석 -- 10km(6h) --> 청학동
세석 -- 3.4km(2h) --> 장터목[23.8km](010-2833-1915)
 
장터목 -- 5.8km(4h) --> 백무동
장터목 -- 1.7km(1h) --> 천왕봉[25.5km]
 
천왕봉 -- 2km(2h) --> 로타리 대피소(010-2851-1401) -- 3.4km(2h30m) -->중산리
천왕봉 -- 4km(3h) --> 치밭목[29.5km] -- 1.8km(40m) --> 삼거리 -- 4.4km(3h) --> 유평[35.7km] -- 1.5km(40m) --> 대원사[37.2km] -- 2km(50m) --> 유평탐방지원센터[39.2km]
 
* []안의 거리는 노고단 기점으로 누적거리
* 거리 및 ()안의 시간은 예상 소요 시간 (탐방로 구간 소요시간은 일반적인 평균치로 개인별, 기상별 여건에 따라 가감될 수 있음)
* ()안의 전화번호는 대피소(shelter)의 연락 전화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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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am 기상. 숙취도 없고 말끔한게 기분이 좋다. 구름 사이로 얼핏 해가 보인다. 스프를 끓여 식빵을 찢어 넣고 아침으로 먹었다. 전에 여행할 때 어떤 여행자한테 배운건데 꿀꿀이 죽같지만 보기와 달리 맛이 그럴듯 하다.

누가 보기 전에 텐트를 걷었다.



론머맨 아저씨가 나타나 오늘 여기서 캠핑할 꺼냐고 묻는다. 이이에. 오늘 오후 부산에 갑니다. 캠핑은 유료라고 말하며 언덕으로 올라가 잔디를 깎기 시작한다. 4.40pm 배가 출항이라 적어도 3pm까지는 시간이 많아 남아 오늘은 한국 전망대에 가볼까 한다. 날이 맑으면 일찍 돌아올 생각이다. 텐트 등속을 화장실 앞 식수대 밑에 감춰두었다.



아침에 보니 해변이 더욱 맑아 보인다. 해수욕에 제격이다. 가벼운 짐만 꾸린 채 9am 출발했다.





아무 생각 없이 패달을 밟다가 '토요 포대 흔적'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발견했다. 비포장 도로로 10분쯤 올라가자 포대가 나타났다. 뭐하는 곳이지?





자전거 전조등을 뽑아 어두컴컴한 미로 같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포탄 캐리어 같은 것이 보인다. 아, 이즈하라의 하치만구 신사에 있던 폭탄이 혹시 여기 쓰이던 것인가 보구나.



이곳이 설마... 저 정도 규모면 정말 엄청난 포가 있던 자리인데.. 흡사 아발론의 포처럼.



지도를 보니 쓰시마의 이 포대에서 부산과 큐슈 지방 사이의 적 이동을 방어할 목적으로 포대를 세운 것 같다.



포대에 관한 무슨 설명이 있는데, 다른 관광지와 달리 영어나 한글 병기된 설명이 없다. 게다가 일부 문장을 지웠다. 왜 지웠을까. 알아야만 하는 내용일까. 하치만구 신사의 대포알들이 호국의 의지가 담긴 신령한 대포알이었던가? 뭐가 캥기는지 문장을 지운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국 또는 미국에 적대적인 포대였던 것 같다.

더 생각하지 말자. 조잔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금리나 주식시장,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면피하며 기다리는 비겁한 일본 정부. 일본인들조차 원숭이라 부르는 아베. 도로에서 보곤하던 아베의 사진들.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일본인들. 비포장 내리막길을 흡사(?) MTB를 타듯이 내려갔다. 비포장 도로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전방 주시. 목덜미가 뻗뻗해진다. 자전거와 온 몸이 미친듯이 떨린다. 딴 생각하다가 삐끗하면 바로 자빠링이다.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한국 전망대로 향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길의 끝에는 전복 양식 공장이 있었다. 구경하다가 사진 찍기 뭣해서 나왔다.



거진 자동차 대시보드 콘솔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핸들바 콘솔' 지도나 웹 상에 소개된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waypoint가 종종 달라 전복 양식 공장 등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GPS 덕택에 쓰시마 여행이 손쉬웠다. 전조등은 터널 주행시 필요해서 대낮에도 달고 다녔다.

카시오 손목시계(Casio PRG-70V3)는 자기 나침반, 기압계, 시계, 온도계 따위가 포함된 것이다. 터프 솔라 배터리를 사용해 배터리 교환이 필요없는 반영구적인 제품. GPS(110$)보다 더 비싼 17만원짜리. 2005년 2월 여행할 때 사용하려고 구입. 그런데 3일 동안 비를 펑펑 맞았더니 그... 알량한 생활방수가 견디질 못했다. 유리창에 낀 습기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사라졌다. 저렇게 습기가 끼어 있으니 기압계가 엉망으로 작동해 일기 예측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10.30am. 한국전망대 도착. 건자재를 한국에서 공수해와 한국풍으로 꾸몄다는 건물. 다시 휴대폰에 전원을 넣고(안테나가 만땅으로 잡혔다) 아내와 통화를 시도했다. 빙고. 이번에는 된다. 거참 통화 한 번 하기 되게 힘드네.

와니우라 마을의 이팝나무 자생지에서 오락가락했다. 봄에 왔더라면 나무마다 하얗게 핀 꽃들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맑고 작은 하천에 물고기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다. 이렇게 깨끗하고 맑은 하천이 집 앞에 있는 기분이 어떨까. 참 부럽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말았다.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VALUE에 들러 점심꺼리를 장만했다. VALUE에서 2007년 7월 7일 무슨 행사를 하나보다. 미신에 사로잡힌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은 21세기 첫 쓰리세븐 데이를 축하하거나 심지어 결혼까지 한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12pm. 날이 뜨거워 바다로 뛰어 들었다. 바다 속에서 자맥질 몇 번 하고 놀다가 텐트 세웠던 장소로 기어 올라와 맥주에 초밥(599엔)을 먹었다. 초밥이 의외로 맛있고 꽤 커서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샌달에 모래가 잔뜩 묻었다. 등산할 때 신으려고 몇년 전에 산 산악 트래킹용 샌달. 샌달의 특성상 앞 발가락들이 노출되어 산악 트래킹 중 자갈, 돌부리, 날카로운 잔가지나 풀뿌리에 취약하다. 발등을 보호해야 하므로 발등 부위는 두껍게 감싸 놓아 보통 샌달보다 통기성이 떨어진다. 꽤 애매한 제품이다. 그래도 40도 경사의 릿지에서 확실한 접지력을 보장하는 밑창 때문에 여름에 즐겨 신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젊은 남녀가 한다발인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해변에서 플랭카드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바닷가에 살짝 발만 담그고 나와 수돗가에서 발을 씻느라 부산을 떨었다.

시원한 기린 생맥주를 마시며 그 부산한 광경을 쳐다 보았했다. 한국인들이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몰려와 수다를 떤다. 자전거를 흘낏흘낏 쳐다본다. 나는 일본인이므로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수경을 끼고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빵 부스러기를 던지고 물 속을 노려보았지만 고기떼는 몰려오지 않았다. 시각이 시각인지라 물고기가 통 보이지 않는다. 스노클이 있으면 좀 더 깊은 곳까지 갈 수 있겠지만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장비도 없이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등이 탈까봐 수영복 하의에 티셔츠를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 30분쯤 놀고 바깥으로 나오니 한국인들이 떠났다.

수돗가에서 웃옷을 빨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수영복을 벗어 세면대에서 빨았다. 자리에 앉아 남은 우롱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햇빛을 쬐는 도마뱀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짐을 정리했다. 충전지에 녹이 잔뜩 슬었다. GPS의 자전거 마운트에 부착하는 뒷판은 방수 커버가 안 되어 있어 비맞는 동안 물이 새어 들어 충전지에 녹이 슨 것이다. 다음 번 여행 때는 대책을 세우자.

준비해간 충전지는 enelop 2000mAh 4알, 산요 2300mAh 2알로 완전 충전된 상태가 아닌데도 5일을 충분히 버텨줬다. 마지막 2알의 잔량이 반쯤(1000mAh) 남았다. 하긴 길어봤자 하루 8시간 정도 밖에 주행을 하지 않았으니 전지가 남는 것이 당연.

1pm. 자 이제 쓰시마에서 해 볼 마지막 관광 일정이 남았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해수욕장 위의 캠프장 화장실 옆에 자전거를 숨겼다. 그리고 여권, 지갑, 수건, GPS, 시계 등 귀중품과 수건을 챙겨 캠프장 옆에 있는 나기사노유 온천장으로 향했다.

간혹 도로의 윗쪽에 은빛으로 빛나는 구조물을 보고는 했다. 온천수를 끌어올려 아마도 열병합 발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열병합 발전이 아니라면 다만 온수라도 모아놓았을 것이다. 일본인의 온천에 대한 강한 집착. 그 구조물을 볼 때마다 꼭 온천에 가자고 다짐했다.



나기사노유 온천. 노천 온천. 1pm ~ 9pm 사이 오픈. 온천에 들어가 신발을 벗어 신발함에 넣고 신발함 열쇠를 들고 카운터에 가니 옆의 자판기에서 표를 뽑으란다. 한국인 전용 티켓이 500엔. 사람들이 시야에 없는 동안 살짝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한국의 일반 사우나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온탕, 냉탕이 있고...

창 밖으로 시원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저 창문은 단지 방충망이라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오른편에 노천 온천이 있다. 낮에는 주로 노인들이 이용하는 듯.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관광 코스로 이곳에 들렀다. 간간이 한국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건을 제공하지 않는 것 같다. 뭐, 그럴 줄 알고 스포츠 타월을 들고간 것이지만. 들어서면서 양 손으로 수건 끄트머리르 잡고 수건을 늘어뜨려 국부를 살짝 가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따끈한 거품탕 속에 들어가 근육을 풀었다. SPF 27짜리 썬 블럭 로션을 발랐는데도 의외로 살이 많이 탔다. 적당히 씻고 일본인 할아버지들과 노천 온천에 앉아 바다를 구경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들린다. 흐뭇하다.

그런데 캠핑장의 화장실이 오른쪽으로 살짝 보인다. 화장실 옆에 숨겨 세워두웠던 자전거 끄트머리가 보인다. 어? 그럼 저기서도 여기가 다 보이는 거잖아? 여탕은 엄폐가 잘 되어 안 보인다. 일본 만화책에서처럼 남여 노천탕을 대나무로 간단하게 구분지워 놓아 옆 여탕의 대화 소리나 깔깔 대는 웃음소리가 들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실망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여탕에는 할머니들이 조용히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실망할 것 없다.



적당히 씻고 한 시간 반쯤 있다가 온천을 나왔다. 엇, 그런데 GPS를 락커에 두고 왔다. 카운터에 가서 영어할 줄 모른다는 종업원에게 영어로 물어보니 락커 열쇠를 건네준다. 거기 지배인이 GPS를 알아본다. 잠깐 손짓발짓으로 서로 원숭이들처럼 대화하다가 웃으며 헤어졌다. 휴게소에서 야마네코 스티커를 한 장 챙져준다. 자전거 프레임에 붙여 놓으면 괜찮을 것 같다. 자기도 산에 갈 때 GPS를 들고 다닌단다. 첫날 히타카쓰에 떨어져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남 쓰시마를 돌지 못한 것이나 아리아케 산에 못 가본 것이 아쉽다. 다른 일본인과 달리 이 친구는 눈을 쳐다보며 말한다. 얼굴이 그을리고 다부진 체격이 스포츠맨이나 조폭 스타일이다. 마음에 든다. 웃쓰! 사요나라~

히타카쓰 항구의 2층에서 노란색 영수증을 탑승권과 교환했다. 3pm. 한 시간이나 남아 할 일은 없고 잔돈은 철렁거리고 해서 시내로 슬슬 자전거를 몰고가 동전을 털어 Life Value 수퍼에서 도시락과 환타를 샀다. 히타카쓰 항구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마지막까지 도시락을 먹는구나 -_-

환전한 10000엔 + 15000엔 중 남은 돈은 12067엔. 사용한 돈은 12746엔, 정산 중 어디론가 새버린 돈은 187엔(아마 뭔가 사 먹었을 것이다). 사용한 돈 중 숙박비는 단 돈 2000엔, 한화로 15200원. 700엔짜리 방청제 구입 및 온천 500엔을 제외하고 9733엔을 5일 동안 순전히 먹는데 사용했다. 한화로 73970원.



4.10pm. 출국수속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제일 먼저 출국수속을 마쳤다. 출입국장에서는 동작이 빨라야 한다.



4.30pm 배가 출발한다. 인구의 대다수가 노인들이라 노무원들 나이가 지긋하다.



히타카쓰 항 바로 옆은 해상자위대(또는 해안경비대; japan coast guard)의 배가 정박해 있다.



오징어 배가 일찌감치 출항한다. 쓰시마의 특산물 중에 오징어가 있었다.

6.20pm 부산 도착. 입국장에서 짐을 풀어 엑스레이 기기에 통과시키고 자전거는 별도의 문으로 뺀다. 부산항에서 중앙동 역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 검표기 앞으로 향했다. 검표원 아저씨가 친절하게 문을 열어준다. 장애인석에 자전거를 박아두고 mp3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아! 생각해 보니 집 열쇠가 없다. 아내는 내가 여행 가 있는 동안 처가에 가 있다. 서울에 돌아가면 집에 못 들어간다 -_-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텐트 등속해서 캠핑 장비가 다 있고 일요일까지 3일 남았는데 굳이 집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부산 터미널에서 바로 울진으로 가서 양양까지 자전거 여행을 계속할까? 7.30pm 노포동 지하철 역에 도착. 부산 터미널의 매표소 앞 시간표를 살펴보았다. 마땅히 갈만한 데가 없다. 게다가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캠핑하다가 또 비를 맞으면 노래가 심하게 튀어나올 것 같다. 그래 그냥 처가집에 가자. 8.20pm 표를 끊어 대구행 버스를 탔다.

대구에서 장인장모님께 인사드리고 하룻밤 자고 다음날 서울행 버스를 탔다. 남부터미널에 도착. 덥다. 집까지 자전거를 몰고 가 짐을 내팽개쳐두고 간단히 세면만 한 다음 집을 나왔다. 동네 고깃집에 가서 김치 오겹살과 소주를 마셨다. 캬... 좋다. 바로 이거다. 맛있는 도시락이나 맛있는 생맥주로는 절대로 채울 수 없는 것.

주행거리: 315km (쓰시마에서만)
평속: 의미없다. 자전거 주행이 아니라 자전거 여행이다.
주행데이터: GTM TrackMaker File, Google Earth File
여행기록 및 경비내역: 여행일정 및 경비내역(Excel)

쓰시마의 좋은 점:

* 풍경이 끝내주고 개울, 해변, 숲을 함께 즐길 수 있다.
* 도로가 텅 비다시피 해서 자전거 주행에 최적이다.
* 평균 2km마다 자판기가 널려 있다.
* 요소마다 대형 수퍼가 있어 먹거리 장만이 편하다.
* 맥주가 싼 편. 꿀맛이다.

나쁜 점:

* 사람이 적어 일본인들과의 접촉이 극히 적다
* 이즈하라를 나오면 음식점이 별로 눈에 안띈다.
* 볼꺼리가 별로 없다.

가볼만한 곳(가본 곳이 별로 없어 민망 -_-)

* 이즈하라: 반쇼인, 하치만구 신사
* 히타카쓰: 미우다 해수욕장, 나기사노유 온천
* 39번 지방도, 와타즈미 신사, 토요 포대 흔적

준비물 중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

* 양말: 맑은 날 샌달을 신었을 때 발가락에 때가 끼거나 타는 걸 막아주고 사고 났을 때 발가락을 일차적으로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죈종일 비가 와서...

* 삼각대: 핸들바에 거치해서 움직이는 동영상을 찍으려 했다. 손에 들고 찍는 것이 더 편하다. 셀카 찍을 때도 써먹으려고 했는데 귀찮았다.

* 여권 복사본: 캠핑장에 등록할 때 여권 복사본을 제출해야 한다던데 무의미했다. 하지만 해외 여행할 때 여권 복사본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여행의 기본 상식.

* 테이프: 케이블 타이와 마찬가지로 거의 만능에 가까운 수리 도구. 찢어진 옷, 비옷, 찢어진 천, 부서진 도구의 고정 등 역할이 광범위. 장기여행 때는 실과 바늘처럼 거의 필수적인 아이템.

* 읽을 책 한 권: 보통 아홉시에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정을 시작했으며 무료한 버스, 페리 이동 중 읽으려고 했는데 음악 듣고 지도 보고 계획 짜고 수첩에 메모하고 정산하기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 의약품: 여행 중 필수 의약품은 진통제(두통약), 항생제, 항히스타민제(알러지 약), 반창고(밴드). 항히스타민제가 왜 필요하나 싶겠지만 개미, 진드기 따위에 물려 피부가 가렵고 부어오를 때 이것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없다.

없어서 아쉬웠던 것: 방청제, 여분의 브레이크 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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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am 아침 일찍 일어났다. 세면을 하면서 라면을 끓였다. 이번에는 라면에 어제 먹다 남은 어묵 2장과 먹다 남은 김치를 넣고 끓였다. 김치가 달아서 먹기가 좀... 어묵을 다 먹고 면을 2/3쯤 먹다가 화장실 변기에 버렸다.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코펠을 씻은 후 찻물을 끓여 PET 병에 담았다.

정자 안에서 출발하기 전에 자전거를 손봤다.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출발해야 하나 망설여진다. 오늘은 대략 80km를 이동해야 한다.

어젯밤에 고민을 좀 했다. 밋밋한 382 도로로 가지 말고 첫날처럼 풍광이 아름다운 39번 도로로 가는게 좋지 않을까? 아니다. 그래도 382 도로로 가자. 39번 도로는 이미 가봤다. 382 국도는 가보지 않았다. 선택이 단순했다. 가본 길 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자. 여태까지 그래왔지 않았던가.

어제 하루 비를 못 뿌린 것이 억울했는지 비가 폭포수처럼 펑펑 쏟아져 내렸다. 담배를 물었다. 자전거 체인을 다시 한번 닦았다. 브레이크 이격은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만 하다. 뭐 이젠 더 조이고 싶어도 조일 수가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꽉 쥐어도 바퀴가 슬슬 미끄러진다. 그래도 어제 날이 맑았으니 망정이지.

9am.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뽑아먹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출발. 얼씨구 이젠 번개도 치네? 도로에 바짝 붙어 달렸다.



9.20pm. 비가 하도 내려 어제 지나온 쓰시마 패밀리 파크에 잠깐 자전거를 세웠다. 비닐봉투 안에 습기가 차서 지도가 너덜너덜해졌다. QAMM 가방 안쪽에도 물이 고여 있다. 져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은 완전히 젖었다. 지폐가 너덜너덜하다. 가방을 뒤집어 물을 퍼냈다. 농구대가 4개인 이 전천후 운동장은 과연 이용객이 얼마나 될까. 시설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비가 잦아들길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려고 가방을 뒤져보니, 아차, 아침에 담배를 피우고 정자 난간 위에 담배를 그냥 두고 온 것이 생각난다. 지난 나흘 동안 담배 한갑을 피우고 새로 한 갑을 뜯어 겨우 세 가치 밖에 피우지 못했는데...

다시 출발. 어제와 달리 382 국도만 타고 와서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르다. 충분히 쉬면서도 한 시간이 안되어 미네에 도착했다. 미네 시내를 지나 니타로 향했다. 우비를 입은 채 내리막길에서 상체를 둥글게 구부리는 것이 의외로 브레이크 효과가 있다. 이젠 걱정없다.

아침에 라면을 먹다 말아서인지 배가 출출하다. 10시 조금 넘어 니타에 도착. 도로가 평이하고 커브가 거의 없어 브레이크 잡을 일도 없다. 이 속도라면 12시면 히타카쓰에 도착한다. 니타에서 잠시 멈춰 자판기에서 마일드 세븐 one 100s 1갑을 구입했다. 300엔. 대체 무슨 자판기이길래 마일드 세븐만 30종류가 있는거지?

예전에 오사카에서 럭키 스트라이크를 자판기에서 산 기억이 난다. 그 독하디 독한 담배를 그저 멋으로 피웠다. 근데 라이터가 없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가 수퍼를 발견하고 들어가 삼각김밥과 삶은 달걀을 샀다. 라이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설마 하면서 주인에게 담배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며 '라이타, 도조' 하니까 라이타를 찾아준다. 캬... 짐작대로 라이타는 일본어 외래어였던 것이다.

신사 앞에서 무려 한화로 천원이나 하는 따뜻한 삼각김밥을 까먹었다. 한국의 삼각김밥에 비하면 맛이 없는 편. 역시 도시락을 사 먹을껄 그랬나? 삶은 달걀을 먹고 물을 몇모금 마신 후 다시 출발.

니타에서 줄곳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오르막길이 끝이 없어 보인다. 왠간한 업힐이라도 자전거의 앞뒤 기어비를 2:2 이하로 내리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2:1이 되었고 다시 1:2가 되다가 흔히 막장 모드라 일컬어지는 1:1까지 내려왔다. 1:1은 걷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자전거를 타면서 기어비를 3:8, 3:7, 2:6, 2:4, 2:2, 2:1, 1:2, 1:1로 차례로 다운 시프트하고 업시프트는 그 역순으로 했다. 기어비를 제대로 맞춰 하는 것인지 잘 판가름이 안되었는데 남들도 다들 그렇게 하는 것 같다. 3:8에서 최고 속도는 35kmh 가량. 소위 2단 크루즈 기어를 사용하여 주로 평지 주행할 때 사용하는 2:6에서는 보통 25~27kmh 정도가 나왔다. 요즘은 3:6이나 3:7로 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3:6 정도면 평속 28kmh가 나올 것 같은데 근육이 받쳐주지 않는 것이다. 한 사흘 주행하니까 다리도 많이 피곤해져 젖산이 어느 정도 축적된 것 같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 타는 정도론 올해에도 한 시간 동안 평속 30kmh를 유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신히 간신히 최고점에 이르렀다. 해발 136m. 쓰시마에서 이 이상 높은 고도에 다다라 본 적이 없으므로 아마도 이 지점이 쓰시마 도로의 최고점이지 않나 싶다. (무슨 소리. 44번 지방도의 가미자카 공원을 못 가봤고 아유모도시 자연공원도 못 가 보고서 섣불리 말하긴 뭣하지 않나) 하여튼 382번 국도의 최고점은 이 지점이다. 평소라면 북악 스카이웨이의 고도차 200m도 별 걱정없이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며칠 동안 업힐, 다운힐을 수백번 반복하다 보니 근피로가 누적되어 고도차 136m에서 안간힘을 쓰다시피 하다가 결국은 정상을 얼마 안 남기고 끌바를 했다. 이제 다운힐이다.

10분쯤 신나게 내려오다 보니 (평속 54kmh) 널찍한 공원이 눈에 띄었다. 미타케 공원이다. 세우자! 끼끼끼긱... 대략 70m를 미끄러져 공원을 지나쳤다. 브레이크 같지도 않은 브레이크. 다시 올라갔다. 공원에 다다르자 마자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5분쯤 멍하니 앉아있으니 비가 잦아 들으면서 관광버스가 눈앞에 멈춰섰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내렸다. 내 자전거 앞을 오락가락 하면서 핸들에 붙어있는 GPS를 보고 속도계니 뭐니 하는 말을 주고 받는다. GPS에요. 그랬더니 한 아저씨가 오, GPS! 베리 굿, 베리 나이스!를 외친다. 아무래도 내가 일본인인 줄 아는 모양. 잘됐다. 말하기도 귀찮은데 입 다물고 있자. 단체 관광객들의 가이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골이 잔뜩 나 있었다. 한 아저씨가 '열 받았나봐' 라고 중얼거린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비 오지. 볼 거 하나도 없지. 뭐 이런 거지같은 섬이 다 있어?'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재미없는 관광지에 놀러와서 재미가 없다고 가이드에게 푸념을 늘어놓은 모양. 쓰시마에 볼 꺼 없다. 자전거가 아니면. 관광버스로는, 여러분들은 절대 볼 수 없는 것이죠.

나도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쓰시마의 리아스식 해안을 카약으로 돌아보는 것. 카약을 못 탄 것이 못내 아쉽다. 쓰시마의 대다수 관광지는 5월의 이팝나무 축제를 제외하고 7,8월의 특정 시기만 성수기다. 심하게는 8월이 약 2주 동안만 성수기다. 카약을 타지 않아보고 쓰시마를 논할 수 없다 -_-

담배 한 대 피우고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가이드를 뚜러지게 쳐다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사무적인 표정. 그 여자도 나를 쳐다본다.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벤치에 앉아 자기를 쳐다보는 몰골이 처연한 남자. 씨익 웃었다. 내가 진실과 애정을 담아 웃으면 남들은 '기운내 멍청아'라고 번역했다. 그래서일까? 외면한다.

그러고보니 쓰시마에 와서 일본인들과 얘기할 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 얼굴을 쳐다보고 대화를 할라치면 고개를 공손하게 수그리거나 시선을 거두었다. 여행 중에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쓰면 상대가 내 눈을 볼 수 없고 그럼 대화가 안되니까. 대화가 되려면 눈을 쳐다봐야지. 뚜러지게 쳐다볼 것 까지야 없지만서도.

친절하게 입바른 말을 늘어놓지만 눈을 쳐다보지 않으니 그다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많은 일본인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들다.

애니웨이, 할 일이 있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자 가방을 풀어 코펠을 꺼내고 화장실에서 '이 물은 먹는 물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 코펠에 물을 담았다.



스프를 끓였다. 배 고프고 비를 계속 맞아 춥다. 물도 다 떨어졌다. 먹을 것이라곤 바나나 튀긴 과자 밖에 없는데 입안이 말라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다. 이제 라면도 다 떨어지고.



자전거와 가방으로 바람을 막아 옥수수 스프 두 봉지를 끓였다. 따뜻한 스프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살 것 같다. 후르륵 쩝쩝 입 천정과 혀가 데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비는 여전하지만, 그리고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왕성하게 노래가 샘솟았지만, 기운이 난다. 기운이 나니까 딴 생각이 들었다. 히타카쓰에 일찍 갈 필요가 있나? 관광하자.



미타케 공원 숲길 산책로. 이 길을 죽 따라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부터 산꼭대기까지 숲길이 이어진다. 정말 아름다운 길인데 비가 퍼부어대니 걷기는 좀 무리다. 아쉽지만 되돌아 나왔다.

382 국도를 5-6km쯤 달리다가 오른쪽 샛길로 빠졌다. 버드워칭 공원이 어딘지 모르겠다. 하여튼 쓰시마에는 별로 없다는 논이 주욱 이어지고 곧 해안도로가 나타났다. 해안도로를 따라 사오자키 공원으로 향했다.



해안의 끝에 도달했다. 어? 사오자키 공원이 방금 지나쳐온 자그마한 공원이었나? 그럴리가... 테트라 포트가 널부러진 전형적인 방파제와 전형적인 바닷가 풍경.



조그만 공원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에 충신 박제상에 관해 잘 적혀 있으니 설명은 생략.



해변을 빠져나오는 길에 소철이 늘어서 있는 분위기 좋은 신사를 발견.



어렴풋이 소개서에서 본 기억이 난다. 사오자키 공원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운운. 공원에는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다. 대규모 바베큐 식탁이 줄줄이 있고 아이들 놀이 기구와 작은 해변, 적당한 크기의 공원이 있다.



방향을 틀어 길을 되돌아가 다리를 건넜다. '이국이 보이는 언덕 전망대'로 향하는 길. 역시 비바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마법의 사진. 길이 흡사 제주도를 닮았다. 꾸준한 오르막길. 맞바람에 많이 지쳐서 끌바했다. 비바람에 시달리다 보니 악에 받쳐 노래가 저절로 흘러 나온다.



뭔 꽃인지 모르겠지만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색깔이 흰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다양하게 피어 있다. 간혹 미친 노란꽃도 있었다. 토양에 나트륨이나 황이라도 포함된 걸까?



전망대에 다다랐다. 전망대 건너편은 한국이다.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역시 안된다.



셀카 한 장. 해발 103m.
관광은 역시 비바람과 함께 해야 제맛이다.
맥주 한 잔 하고 싶다.



앞으로 가야 할 길. 저 산너머에 '한국전망대'가 있다. 오늘은 한국 전망대에 안간다. 이국이보이는언덕전망대에서 이쿠치하마 해수욕장까지 갔다가 히타카쓰를 거쳐 미우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면 오늘 일정은 끝이다. 지금 시각은 1.16pm



이국이 보이는 전망대. 역시 태양전지가 있다. 전력선을 여기까지 끌어쓰지 않고 자가발전을 한다니, 합리적이다.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태양전지와 충전지가 있다.



이국이 보이는 전망대 아래 해변.

다시 출발. 커다란 트럭이 자전거를 피해 위험스럽게 추월한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전거를 아슬아슬하게 스쳐가며 라이더를 공포로 몰아놓는 그 쏠쏠한 재미를 놓치고 싶어할 트럭 운전수가 어디 있겠나. 일본인의 운전 매너가 훌륭한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자기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상호 믿음이 사회적으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3pm. 382 국도를 타고 별 볼 일 없는 이쿠치하마 해수욕장을 그냥 지나치다시피 하여 히타카쓰 부근까지 왔다. 히타카쓰에 도착하여 첫 식사, 그러니까 첫 도시락 식사를 하던 바로 그 지점에 다시 도착했다. 근처 VALUE 마트에서 기린 생맥주와 닭 바베큐, 생선가스 덮밥을 사와 궁상스럽게 먹었다.



그렇게 기름칠을 정성스럽게 했건만 종일 폭우를 맞으니 체인이 다소 뻑뻑해졌다. 둘쨋날 방청제/오일 anyway를 구입하지 못했더라면 여행이 과연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비 맞으면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다.



QAMM 가방의 벨크로가 걸핏하면 벗겨져 이틀 전에 한국에서 여행준비할 때 다이소에서 산 천원짜리 튼튼한 실로 고리를 꿰어 묶어 두었다. 이제는 안심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릴 수 있다.



4.50pm. 니시도마리 해수욕장을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잘못 알아 고개를 갸웃하다가 거의 2km를 더 달려 미우다 해수욕장을 지나쳤다. 다시 되돌아와 자세히 표지판을 살펴보니 고갯마루에 미우다 해수욕장이 있다. 그런데 캠핑장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미우다 해수욕장.

짐을 일단 내려놓고 쇼핑하러 갔다. 온 길을 헤멘 것에 비해 고개 하나 넘으니 히타카쓰가 바로 나타났다. 히타카쓰 시내 중심부의 Life Value라는 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살짝 내리는 비를 맞으며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돌아왔다. 해수욕장에는 딱 한 사람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사라졌다. 쓰시마에는 왜 이렇게 혼자 노는 사람이 많은 걸까.



아무리 봐도 캠핑장 같지는 않은데. 맞은편 건물은 샤워시설. 오른편 건물은 대체 뭘까. 건물 뒤에는 화장실이 얼핏 보인다. 취사장이나 오토캠핑장이 보이질 않았다.





더 찾아다니기도 귀찮고 어차피 관리인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속 편하게 널직한 이곳에 텐트를 쳤다. 분위기가 정말 좋아 보인다.















해변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일본의 청정 해변 100선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해수욕장이란다. 동굴이 보여 찾아가보니 얕은 동굴에 누군가 변기 뚜껑을 올려 놓았다. 센스 한 번 죽여준다. 작은 자갈을 덮은 산호 시체를 발견. 이건 이 여행의 기념물이다. 아내에게 선물해 주자! 아내는 내가 맨날 길에서 주운 것만 선물해 준다고 불만이 많았다. 길에서 주운 것들 중에도 좋은 것들이 많다. 7pm이 다 되었고 하루종일 비를 맞아 노곤해진데다 바닷물이 차가워 바닷속에 들어가긴 꺼려진다. 물이 참 맑았다. 발만 담그고 해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작은 해변이다. 작고 쓸쓸한 해변이다. 혼자 와서 깡소주에 오징어 발을 질겅질겅 씹기에 제격이다.



얼씨구? 이건 뭐야? 언덕을 오르니 갑자기 캠핑장이 나타났다. 텐트를 다 쳐놓은 상태니 다시 텐트를 걷어 여기까지 올리기가 귀찮다. 에라 그냥 무시하자. 저녁이나 먹어야지.



오늘은 특별히 와인샵에서 사케 작은 것 한 병 사왔다. 일반 수퍼에서는 술을 못 팔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 VALUE처럼 매장이 크면 매장 한 구석에 술만 따로 파는 매대가 있다. 히타카쓰 시내에는 큰 수퍼가 없어 와인샵이 따로 있다. 알콜 농도 25%.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오늘 만큼은 도시락을 안 먹으려고 했는데 워낙 가격대 성능비가 좋고 마침 550엔 짜리를 100엔 할인해 450엔에 팔고 있어 낼름 집어들었다.

mp3를 들으며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나 날이 어두워졌다. 술병을 따서 병나발을 불었다. 목구멍부터 위장까지 뜨뜻해진다. 와인샵에서 가장 싼 사케를 샀더니(525엔) 맛은 영 아닌데 그렇다고 큰 병을 사자니 다 마시려면 대책이 안선다. 일단 25% 짜리 술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내리니 기분이 좋아진다. 도시락을 안주 삼아 천천히 술을 마셨다.

혼자 와서 3일 내내 비를 맞으며 이게 무슨 궁상인가 싶지만 한편으로는 아내와 아이를 데려오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술병을 다 비우고 밥도 다 먹었다. 해변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다. 기둥에 몸을 기대고 알코올에 예민해진 정신을 파고 드는 음악을 들었다. 주로 클래식. 모처럼 히트 가요 백여곡을 mp3에 담아왔지만 들어도 순 사랑타령에 신세한탄이라 재미가 없었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술에 취하니 마음 속의 별들이 빛났다. Mendelssohn, Symphony No4 in A major op90, Andante con moto

10.24pm.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섬의 해변에 가면 항상 바람이 바뀌는 때를 기다렸다.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11pm쯤 잠자리에 들었다. 4am쯤 깼다. 들리는 거라곤 파도소리 뿐. 음료 한 병을 모두 비웠다.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를 한 병 뽑아왔다. 해변을 한바퀴 돌고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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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am. 새벽에 추워서 깼다. 텐트에서 버너를 켰다. 부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의 EXIF 정보에 타임스탬프가 찍힌다. 집에 돌아가면 EXIF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디카의 또다른 용도를 개발해 낸 것 같아 흐뭇하다.



6.15am. 산 중턱에 해가 떠오르고 까마귀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어슴프레 아침이 찾아왔다. 비가 안 온다!



6.28am. 아침은 역시 라면으로. 어묵 두 장을 얹어 변화를 주었다. 어묵이 무척 맛있다. 한국에서 처럼 포장용기에 파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 두부처럼 만들어서 파는 것 같다. 어떤 것들은 가격이 상당하다. 라면을 다 먹고 설겆이를 한 후 코펠에 물을 끓이고 애플 티를 우렸다. 충분히 식은 다음 어제 다 마시고 빈 음료수 병에 담았다. 오늘 마실 물이다. 자전거를 타면 하루에 물을 2리터 이상 마셨다. 사막에서도 물을 거의 안 먹던 내가 그 정도면 보통 사람은 3-4리터 이상은 마셔야 할께다.

캠핑하면서 밥을 지어 먹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쌀은 한 주먹 반 정도가 대충 일인분이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인스탄트 국 몇 개 사고, 천원에 두 봉지씩 파는, 물에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되는 카레, 짜장 등의 소스를 사가지고 다니면 싼 값에 그럭저럭 다양한 식단을 꾸밀 수 있다. 맨밥에 고추장 비벼먹어도 되고.

여기 마트의 야채 코너에서 양파, 당근 따위를 보았을 때 야채밥을 만들어 먹고 싶어졌다. 야채밥이야 쉽지. 감자나 고구마, 버섯 따위를 쌀과 함께 끓여도 괜찮다. 사실 캠핑 음식은 간단하고 쉽다(하지만 가족, 친구들과 함께 가는 캠핑과 다르다). 카레 짜장 소스는 밥을 지을 때 둘둘 말아 코펠에 함께 넣어두고 밥이 다 되면 개봉해 밥에 부어먹으면 될 정도로 간단하다. 한두 홉 정도의 쌀로 짓는 밥은 평지에서 15~20분이면 조리가 끝난다. 밥 하고 나서 플레이트에 밥을 덜어놓고 밥알이 붙어 있는 상태 그대로 인스턴트 국거리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인 후 코펠에 밥을 부으면 간단한 국밥이 된다. 아침에 점심에 먹을 계란이나 감자 삶아 두거나 아침에 밥을 넉넉히 한 다음 남은 밥은 소금과 섞어 주먹밥을 만든다.

여행할 때 미역처럼 영양가가 풍부하면서 보관, 이동이 손쉬운 식재료도 없다. 마른 미역 한 봉지면 1-2주 동안 질리게 먹을 수 있다. 야채에 고추장 넣고 그저 끓이기만 하면 되는 고추장 찌게도 있다. 돼지갈비 고추장 볶음은 돼지갈비에 전날 저녁 먹던 소주 좀 붓고 고추장 섞고 단과일 아무거나 으께 넣고 양파, 당근, 마늘 따위를 넣어 몇 시간 잼겨 놓았다가 볶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리조또도 만들어 먹는데. 이쯤되면 생존을 위해 억지로라도 밥을 꾸역꾸역 먹는 것이 아니라 '럭셔리 서바이벌'이 된다.

그런데 아침부터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다.

7am. 이 닦고 세면 하고 텐트를 걷었다. 짐을 챙겨놓고 자전거 상태를 살폈다. 어젯밤에 체인에 기름을 듬뿍 먹여두어 체인 상태는 양호하다. 브레이크 패드의 안쪽 허브 나사 위치를 변경해 손아귀로 반쯤 브레이크 레버를 당겼을 때 앞 바퀴가 움직이지 않는 정도의 브레이크 이격을 확보했다.

뒷 브레이크 패드는 너무 닳아 이격을 좁혀도 브레이크가 잘 먹지 않는다. 오늘은 앞 브레이크만 써도 상관없을 것 같다. 뒷 짐받이에 짐을 싣고 체중을 뒤로 옮기면 뒷브레이크를 적게 잡고 앞브레이크를 잡으면 될 것 같다. 잠자가다 꿈속에서 브레이킹에 관해 좀 더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치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파라슈트가 펼쳐져 감속을 하듯이 몸을 활처럼 둥글게 구부려 공기저항을 증대시키면 비슷한 감속 효과가 나지 않을까? 우비를 걸치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8.30am 관리인 아저씨가 화장실에 들러 짐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사요나라'를 외치고 떠났다. 9am. 날이 개이니 기분이 상쾌하다. 신화의 마을까지는 거리가 얼마 안되니 점심 전에 도착할 것이다.



쓰시마는 예전에 왜구들의 전진기지였다. 일부는 쓰시마에 거주하고 일부는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비롯한 규슈 지방에 거주하며 중앙 정부의 지배력이 약해져 내외로 곪아터진 조선에 노략질을 일삼았다. 대마도에서 쌀의 재배가 어려워 노략질 말고는 여기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쌀이 있어야 초밥을 만들어 먹을 것이 아닌가! 웃음. 쓰시마 주민들은 심하게 말해 생계형 해적들의 후손이다. 쓰시마는 요즘 한국과의 선린우호, 화의와 평화를 가치있는 정책으로 삼았다. 기실 쓰시마는 일본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의 섬이고 쓸만한 부존자원이나 중대한 전략적 가치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다 대부분의 수입을 한국의 관광객을 통해 벌어들이고 있는 것 같아 보여서인지 한국과의 화의와 평화는 의미있는 정책처럼 보인다. (부정적으로 말한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왜구 후손들의 마을이라고 생각하니 풍경이 새삼스럽다. 가난한 어촌 주민들치고는 복지수준이 높다. 이 작은 섬에 병원과 소학교, 중학교 등의 교육시설이 거의 2km마다 있고 문화센터와 편의시설이 온 사방에 널려 있다. 비록 도쿄나 인근 부산 만큼의 생활수준을 유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젊은이들이 없어도, 부존자원과 개발여력이 없어도 여생을 부족함없이 살만한 환경이지 싶다. 그게 꼭 일본과 한국의 경제력 차이만큼이겠지?



오징어 배치고는 전등 수가 너무 적어 보이는데? 쓰시마는 낚시꾼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인듯 하다. 전에 어디서 보니 쓰시마에 가면 하루 배를 빌려 참돔을 수십 마리씩 낚아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낚시꾼들이 허풍이 좀 센 편이지만). 사장님을 설득해서 쓰시마로 낚시 관광을 오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그런데 젠장 여긴 대체 어디지? 개짖는 소리만 요란한데.



야마네코 조심. 야마네코=산 고양이=삵쾡이. 쓰시마의 천연기념물인 듯 곳곳에서 보이는 표지판. 게들이 도로를 건너다가 납작하게 짜부러진 모습은 많이 봤지만 삵쾡이 시체는 통 보지 못했다. 제한속도 표지판이 있지만 차들이 워낙 느리게 달린다. 도로폭이 좁고 구불구불해 80kmh를 안 넘는 듯. 삵쾡이의 개채수가 100여마리 밖에 안 남았다는 말을 거의 믿지 못하겠다. 야생 고양이들의 대단한 번식력을 감안하면...



길가에 앉아 짐을 정리하는데 꽃밭에 손바닥만한 나비가 앉았다. 앗, 이놈은... 이놈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9.40am. 담배 한 대 피우면서 길가에 앉아 쉬었다. 혹시 비가 올지 몰라 뒷짐은 쓰레기 봉투로 감싸놓았다. 앞가방은 QAMM 사에서 나온 카메라 가방인데 몇 년 전 처음 출시되었을 때 운좋게 할인가로 싸게 구매했다. 핸들이 묵직해져 조향이 잘 안되는 단점과 핸들바에 고정시키는 고리가 바엔드에 안 맞아 별도의 찍찍이를 사용하는데 힘이 약해 충격을 받으면 종종 풀어지는 것, 방수가 안되는 것 빼고는 가방 자체는 훌륭하다.

훌륭한 이유: 비를 맞아도 금새 마른다. 주머니가 많아 물건 관리가 편하다. 내용적이 크다. 만약 뒷 짐받이를 제대로 된 것을 장착하면 뒷 짐받이에도 장착이 가능하다.

QAMM 홈페이지에서 QR 레버에 장착이 가능한 뒷 페니어를 3만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뒷 짐받이는 자전거를 구매할 당시 구입한, 재질이 알루미늄으로 된 것인데 뒷짐이 무거우면 싯 포스트가 팩 돌아버려 아주 귀찮다. 싯 포스트가 돌아 싯 방향이 틀어지면 양 다리 패달링에 변화가 생겨 엉덩짝 한쪽 근육이 땡긴다. 게다가 10kg 미만의 짐만을 실을 수 있고 충격을 받으면 상하로 흔들려 여러모로 불편했다. 돈 주고 산 게 아까워서 아직 못 버리고 있다.

382에서 샛길로 빠져 고갯길을 오르락 내리락 반복했다. 땀이 뻘뻘 흘러 나왔다. 절벽이 무너져 돌조각들이 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차량 통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용하지 않는 도로인 것 같다. 빽빽한 삼림 탓에 시야가 도로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지 말고 니이(도시이름)을 거쳐 들어올 껄 그랬나? 한참 GPS를 바라보며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가(GPS에 입력한 적이 없는 소로다) 신화의 마을 입구가 나타났다. 왼쪽은 신화의 마을. 오른쪽은 니이 시내로 향하는 길.



와타즈미 신사에 도착. 신화의 마을은 작은 고개 너머에 있다. 해신을 모시는 신사로 다섯 개의 문중 두개는 밀물 때 물 속에 잠긴다. 쓰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세번째 문. 일본의 건국신화가 서려있단다. 설화 인용:


하늘의 신 니니기(彌徵藝)의 아들 히고호호데미(彦火火出見)가 잃어버린 형의 낚시 바늘을 찾아 바다를 헤매다가 용궁까지 가게 되어 용왕의 딸 도요다마히메(豊玉姬)와 결혼하여 3년간 지낸 후 낚시 바늘을 찾아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아내는 만삭이어서 같이 뭍으로 나오지 못했다. 며칠 뒤 풍랑을 타고 도요다미히매는 여동생 다마요리히메(豊依姬)를 데리고 남편을 찾아 뭍으로 나와서 바닷가에 손수 집을 짓고 들어가며 남편에게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남편은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이 약속을 어기고 안을 들여다보니 큰 뱀이 괴로워 나뒹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화가 난 도요다마히메는 낳은 아이를 해변에 그대로 버려 둔 채 용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아이가 우가야우기아에스신이고 그 신이 다시 이모벌 되는 다마요리히메와 결혼하여 낳은 사람이 신에서 인격화된 진무텐노(神武天皇)로 일본의 초대 천황이라는 건국신화가 있다.
이곳에는 바다에서부터 도리이(鳥居)가 세워져 신사에 이르고 바닷물이 신사에까지 닿아 있는데 사실은 제사를 지내던 장소로 추정되며 여기에서 내려다보면 바다 가운데까지 도리이가 직선으로 다섯 개가 늘어서 있어 가히 용궁으로 들어가는 길을 연상케도 한다. 현재 와다쓰미 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히고호호데미와 도요다마히메로서 하늘과 바다가 영합한 축복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도리이가 우리나라 쪽으로 뻗어 있어 고대 우리나라 사람이 이곳으로 온 것을 신처럼 모시지 않았을까 역사학자들은 추측하기도 한다.
신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리이 말고도 용비늘이 떨어졌다고 용비늘 비슷한 울툭불툭한 돌이 있는 곳에 종이로 금줄을 만들어 쳐 놓고, 신성시하고 있었고, 손 씻고, 입 씻고 몸을 정결히 하고 들어오라는 바위샘도 꾸며져 있었다.




와타즈미 신사. 다른 각도에서 본 첫번째, 두번째 문. 흡사... 중국 지우자이거우의 호수 한 가운데 있던 정자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바다 속에 신사의 문을 설치한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이 여자는 누굴까. 앞에 동전 접시가 놓여있다. 100엔짜리도 눈에 띈다. 욕심이 생겼지만 동전을 집어둘지는 않았다.



선착장에서 셀카. 10.30am. 아소베이 파크에서 여기까지 1시간 30분. 도로가 마르니 타이어 접지력이 좋아져서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잡을 일이 없어 좋았다. 대부분 382 국도를 따라와서 커브가 완만하고 굴곡도 적어 도로는 평이한 수준. 아소베이 파크로부터 쉬지 않고 밟으면 30-40분 이내에 여기 도착이 가능할 것 같다.

옥션에서 각각 14000원씩 주고 산 져지 상/하의는 몹시 쓸모가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살갗에 찰싹 달라붙는 져지는 민망해서 입기가 꺼려졌는데 져지를 입으니 확실히 편하다. 엉덩이의 두꺼운 패드는 안장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흡수해 주고 기저귀처럼 불알을 감싸는 쿨맥스 패드는 열과 땀의 배출이 잘된다.

져지 하의를 입을 때 팬티를 입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져지를 입기 전에는 쿨맥스 팬티를 입고 그 위에 반바지를 걸쳤는데 아무리 쿨맥스 팬티라지만 한참 자전거를 타고 가면 불알이 척척해지는 찝찝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런 복장을 장시간 착용하면 엉치뼈 부근이 살살 아파온다. 져지의 가격에 거품이 너무 많이 끼어 상하의 한 벌에 보통 10만원은 우습게 나가 하이테크 로우라이프를 추구하는 21세기 테크노거지 생활을 하던 나는 애써 져지를 외면하고 있었다. 대체 져지가 왜 그렇게 비싼 거야? 이유가 없잖아?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잘 타지도 못하는데 거진 선수복이나 다름없는 화려한 져지를 입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져지를 입으려면 자전거를 잘 타야 한다...는 생각은 한강 강변로에서 자전거를 자주 타면서 사라졌다. 잘 타는 사람들에 비하면 평속 25kmh는 별로 대단한 것이 못되지만(잘 타는 사람들은 30kmh 이상 나온다. 평지 주행 평속 30kmh 란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3년 넘게 타도 그게 안 된다. 평균속도 35kmh 이상이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간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짐승' 취급하는 것 같다) 왠만해서는 그런 '선수복장'을 추월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여겨지는 최근 상황 때문에 '내가 이제 당당하게 1~2kmh의 속도차에 연연하며 져지를 입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 것도 사실이다.



아까 왜구, 왜구 했는데 왜인들이 고기도 잡고 틈틈히 노략질도 하던 배가 와타즈미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야.. 말로만 듣던 그 배를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 농담이고, 설화의 주인공을 영접하기 위한 배일 것이다.



와타즈미 신사 내부. 건축 형태도 지진많은 나라치고 좀... 아니지 싶은...



무려 한글로 설명이 나오는 가이드 패널. 오른쪽 상단에 태양광전지가 보인다. '신화의 마을'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동네라고 말한다.



와타즈미 신사 앞. 신사 앞에 왠 스모장? 신사에 들어가기 전 형식적이나마 스모를 하고 들어가야 한단다. 누구하고? 도깨비하고?

신화의 마을 캠핑장 입구는 쇠사슬로 막혀 있었다. 아무도 없냐고 소리쳤지만 인근 산에 부딫혀 메아리가 되서 돌아올 따름이다. 거참 분위기가 신비스럽기 짝이 없군.

화장실은 있는데 샤워장이 없다. 수도꼭지는 죄다 뽑아놓았다. 즉 물이 나오는 곳은 화장실 뿐이다. 한 30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트럭이 한 대 도착한다. 자판기 음료 캔을 채운 후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황황히 사라진다.

이거야 원. 이 무거운 짐을 끌고 돌아다닐 수도 없고 해서 불필요한 짐을 풀어 상설 텐트 속에 감춰 두었다. 햇볕으로 땀에 절은 얼굴과 팔 다리에 물을 묻히고 간단한 짐만 자전거 뒷짐받이에 묶어둔 채 신화의 마을 캠핑장을 벗어났다. 니이 시내를 관통해 382 국도를 타고 잠깐 내려갔다가 39번 국도로 갈아타 엔쓰지를 거쳐 미네에 들러 미네마치 역사민속자료관 앞에서 오마에하마 공원으로 향한다는 계획. GPS의 경로 트랙백이 가능하므로 굳이 지도를 살펴보며 주행하지 않아도 된다. 햇살이 따갑다. 11.40am 출발.



1.20pm. 48번 지방도에서 미네로 들어서기 전 작은 개울에 멈췄다. 몹시 덥기도 하고 물이 맑아서 잠시 발 담그고 쉬어 가련다. 발만 담궜다가 손도 담궜고 머리도 거꾸로 담구고 에라 모르겠다 급기야 물 속에 온 몸을 담궜다. 우아! 정말 시원하다.

웃통을 벗어 젖히고 물 속에 드러누워 30분쯤 히히덕 거리며 놀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을 가로지르는 개울이란 이런 것일께다. 자전거를 멈추면 개울이고, 달리면 울창한 숲이고.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나타나고. 쓰시마 만큼 자전거 여행하기 좋은 곳이 있을까? 있긴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인제로 이어진 길. 비록 바다는 없지만 참 호젓하고 좋은 길이다. 언제 시간내서 갔다와야겠다.



판타지 소설에서 야영할 때 토끼고기와 함께 삶아먹을 때 자주 등장하는 야생 양파? 아니면 구근식물의 일종? 토마토와 아스파라거스, 로즈매리, 코리안더 등등. 버터 한 덩이, 치즈 한 덩이, 밀 한 푸대만 들고 동부에서 황금을 찾아 서부를 향해 떠났다가 굶어죽은 사람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미네에 도착. 니이보다 작은 마을. 아소베이 파크에서 관리인에게 니이에 자전가 가게가 있는지 물었다. 있단다. 미네에는? 미네에는 없을 꺼란다. 신화의 마을에서 니이 시내로 나와 돌아다녀봐도 자전거 가게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날씨도 맑으니 브레이크 걱정을 잊어 버리자. 타이어 그립이 좋아 헤어핀에서 어느 정도 고속 회전이 가능하다. 그래도 안전 운행.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평지라 자전거가 제법 잘 나간다.


Video: 쓰시마 미네에서 오마에하마공원 주행



작은 터널이 나타났다. 고갯마루에는 언제나 터널이 있었다. 터널이 나타났다는 것은 고갯마루에 이르렀다는 증거다. 흡사 무슨 법칙이라도 되는 양 항상 맞아 떨어져 신기하다. 일본 도로망의 규칙성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터널과 달리 아주 오래 전에 지은 듯한 이 터널의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천정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지고 그 소리가 이끝에서 저끝까지 낭랑하게 울렸다. 팅-잉잉, 팅-잉잉, 팅통-팅동-팅동, 팅-잉잉, 아침에 정비를 열심히 해 기름을 잘 먹여놓은 자전거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아늑하고 서늘한 터널, 위험하지 않은 터널 -- 뒤에서 차가 덮칠듯이 달려들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지 않는 터널.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아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터널. 천천히 즐기면서 통과했다. 터널이 길고 조명이 어두우면 전조등을 켜야 한다. 맞은 편의 밝은 쪽 때문에 눈 아래에 암맹이 형성되 바닥의 요철이 보이지 않는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은 자전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382번 국도도 가끔은 좁아지는 편인데, 이런 지방도나 소도로에서는 터널 폭이 좁아 차 한 대 지나가면 간신히 지전가 한 대 지나갈 여유 밖에 없다.

터널을 통과하고 잠깐 주행하니 다시 해안 도로가 나타났다. 바닷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기는 쓰시마의 북쪽, 그러니까 한국의 남부 해안과 마주보는 면이다. 아소만이나 쓰시마의 동쪽 해변과 달리 파도가 제법 쳐서 제대로 바다 분위기가 난다.



오마에하마 공원 도착. 야영장.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물이 나온다. 오른쪽의 빨간 지붕의 화장실도 정상 작동한다. 관리가 허술한지 잡초가 우거져 있지만 화장실은 깨끗하다. 쓰시마에 와서 느낀 점이지만 화장실 옆에서 자도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화장실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없고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일본 여행할 때 공원의 화장실에서 샤워도 하고 화장실 옆에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한다는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오마에하마 공원 앞 자갈 해변. 바다에서 기어 올라온 갖은 표류물 때문에 해변이 지저분하다.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 듯. 바다 앞에 자갈 무덤 쌓아놓고 소원을 비나보지? 해변이 지저분해서 물이 맑은데도 발을 들여놓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자갈밭이라 맨발로 돌아다니긴 힘들어 보인다.



공원을 빠져나와 옆길을 돌아 전망대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도 많고 할 일은 없고. 햇빛이 짱짱하니 오늘은 제대로 관광모드다.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자전거 타고 지나온 길이 잘 보인다. 여기는 해발 80m. 끌바 안하고 여기까지 단숨에 올라오니 숨이 턱에 찬다. 올라오면서 헉헉대는 비디오도 찍었다. 소리가 묘해서 나름 19금이다.


Video: 오마에하마 공원 전망대 향하는 길



야생 조류의 숲 근처에 있는 추모비. 조선에서 오던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거친 조류와 파도에 떼죽음을 당해 이 비를 세웠단다. 별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



내 관심사는 저 맞은편에 틀림없이 있을 한국땅까지 휴대폰 전파가 닿느냐, 여기서 한국까지 휴대폰이 터지나 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동안 휴대폰의 배터리를 아끼려고 꺼 두었는데 켜 보았다. 안테나가 2-3개 잡힌다. 시험삼아 아내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안테나는 잡히는데 신호가 안 간다. 휴대폰을 껐다.



추모비 옆의 NTT docomo 안테나 시설물을 둘러친 철책 문을 향해 무인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움직임을 감지하여 누군가 시설물 내부로 침입하는 것을 기록하기 위한 것일께다. 그러려면 카메라를 안 보이게 설치해야지 저렇게 뻔히 보이게 설치해 두면 옆으로 돌아 다른 쪽으로 타 넘어 들어가 카메라 선을 뽑아버리면 그만이잖아? 시험 삼아 앞에서 헤벌쭉 웃으며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카메라가 움직임을 감지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나를 쫓는 기색이 없다. 저거 전원은 들어가기나 하는 걸까? 한국의 도로 이곳 저곳에 설치되어 있는 가짜 과속 방지 카메라처럼 순전히 위협용 목업이 아닐까...



일본의 유명한 영화 촬영지였다는 곳. 하! 여기서 저기까지는 고도차가 대략 100m. 내려갔다가 샛빠지게 다시 기어 올라갈 이유가 없으니 관광지고 뭐고 그냥 지나치자! 다운힐에 헤어핀이 많다. 브레이크를 살짝 살짝 잡았다. 소똥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소똥을 밟았다. 소똥이 덜 말라 미끌미끌하다. 물컹거리면서 미끄러지자 머리털이 쭈볏 곤두선다.

이즈하라에 무료 족욕탕이 있는데 못 가봤다. 왠지 마음 아프다. '무료'인데.



어라? 이게 어떻게 된거지? 아까 안 올라가기로 한 길로 올라가야 하잖아? 헉헉 거리면서 올라갔다. 저 반대편에서 신나게 내려왔는데 탄력 한 번 못 받고 처음부터 순 패달질로 그 만큼 올라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을 구경이라도 하고 가는건데 -_- 절로 노래가 나오는군.



3pm.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피둥피둥 살찐 황소. 흡사 serious sam에 나오는...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지축을 울리며 달려올 것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뭘 먹었길래 저렇게 근육이 우락부락한 것일까. 그러고보니 아까 내가 밟은 소똥이 바로... 황소가 빤히 노려본다. 흡사, 이봐, 거긴 길이 없어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 경사가 가파르고 계속되는 헤어핀 구간이라 어쩔 수 없이 끌바.



끌바하면서 찍은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의 모습. 해수욕장에 들를 생각은 없고 저 중간에 살짝 보이는 길 모퉁이를 돌면 미네로 가는 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왠걸. 그 길은 막혔다. 끊겼다.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은 인적이 끊긴지 오래된 탓인지 수풀이 우거져 있고 길이 막다른 골목이다. 어쩔 수 없이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기어비 1:1로도 숨이 가쁘다. 오르다 말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이렇게 힘들 바엔 해수욕장에서 놀다 가자. 다시 내려왔다.



저 바다 너머는 한국이다. 바닷물이 정말 맑다.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에서 혼자 생쑈를 하며 놀았다. 벌거벗고 물 속에 들어갔다. 뭐 보는 사람도 없으니. 성년이 지난 후 벌거벗고 물놀이를 한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동해의 무릉도원 계곡에서, 중국의 창산에 말 타고 놀러갔을 때, 도미토리의 여자 샤워실에서 모르고 샤워하다가 벌거벗은 여자들과 마주친 정말 인상깊었던 기억 정도? 그래도 사진 찍을 때 아랫도리는 걸쳤다. 동영상도 찍었는데 카메라가 기울어 한참 쇼를 하고 난 후 플레이를 눌러보니 하늘만 찍혀 있었다. 거참. 다시 할 수도 없고.

해변에서 놀다보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4pm 무렵 개울가에 옷가지를 빨고 힘겹게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황소와 마주쳤던 곳에 다시 이르렀다. 왠 할아버지가 인사를 한다. 곤니찌와. 곤니찌와라니. 그거 점심 인사인데 저녁에 해도 되는건가? 부에나스 노체스가 무심결에 튀어나왔다. 워낙 이 나라 저 나라 인삿말을 배워 인사할 때면 몹시 헷갈린다. 아주 미치겠다. 옷가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겸면쩍어서 허겁지겁 지나갔다. 어쩐지 저 소새끼가 바닷가에서 나혼자 생쑈한 걸 노인네한테 일러바친 것 같은 쪽팔리는 기분이다. 근처에서 까마귀도 까악까악 울어댔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비가 올 것 같다. 도로는 끊임없는 오르락 내리락이다. 땀이 뻘뻘 흘러 내렸다. 고개 막바지에 이르렀다. 미네까지 쭉 뻗은 내리막. 신나게 내려갔다. 미네에서 쓰시마 패밀리 파크 쪽의 해변 도로를 따라갔다. 하루종일 별로 먹은 것이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배가 고프다. 자판기에서 레모네이드와 로얄밀크티로 배를 채웠다. 로얄밀크티는 인도에서 먹던 짜이와 맛이 같았다. 설탕을 덜 탄 듯 싶지만. 그리고 소로로 접어들어 줄곳 해변도로를 달렸다. 평탄해서 꾸준히 시속 25kmh가 나온다.



탄력을 있는 대로 받아 평지에서 속도가 무려 30kmh를 오락가락 한다. 저 멀리 고릴라 두상을 닮았다는 섬이 보인다. 쓰시마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유감스럽게도 구름이 많이 끼었고 5pm이니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다. 힘차게 패달을 밟았다.

다시 오르락 내리락, 산 중턱을 싸고 도는 헤어핀 코스가 이어진다. 내리막길에서 고속 주행하다가 맞은편의 차를 보았다. 내쪽에서는 안쪽으로 90도 꺽어지는 코스다. 각을 줄이기 위해 차선 중앙으로 주행하고 있었다. 순간 방심해서 자전거 방향을 튼다는 것이 오른쪽, 그러니까 차쪽으로 틀어버렸다. 한국과 달리 차량의 진행 방향이 도로 왼쪽인데 지난 3일간 익숙해졌다고 믿고 있었지만 의식과 다르게 무의식적으로 평소처럼 도로에서 위험할 때는 오른쪽 구석으로 틀어버린 것이다.

브레이크를 잡았다. 자전거가 지지직 미끄러진다. 자동차도 브레이크를 잡는 것이 보인다. 자동차 왼쪽 본넷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탄력을 회복한 자전거가 왼쪽으로 기울며 자동차와 오른쪽 길 틈새 사이로 지나갔다.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죄송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지만 참 빌어먹게도 지금 브레이크가 제대로 안 먹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완벽한 사고 케이스다. 차창을 통해 공포에 질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아줌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방금 한 것이 자전거 드리프트다. 솔직히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타이어 타는 냄새만 살짝 맡았다. 희안한 것은 저 드리프트를 맨정신에서는 성공시켜 본 적이 없다. 공포 때문에 근육이 위축되어 브레이크를 너무 일찍 밟던가 너무 늦게 밞아 자전거가 휘청대기 일쑤였다.

뒤늦게 솟구친 아드레날린으로 머리가 멍하다. 내가 미쳤구나. 아아... 터널을 통과했다. 곧 니이 시내가 나타났다. 수퍼에 들러 쇼핑했다. 아직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하다. 아줌마는 얼마나 놀랬을까? 그 자동차가 조금이라도 속도가 빨랐더라면, 그 자동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브레이크를 밟았더라면 나는 헤드라이트 모서리에 다리를 부딫히면서 (슬로우모션으로) 자전거 차체가 급격하게 왼쪽으로 틀어졌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틀어지면서 몸이 회전하여 한 바퀴 휘리릭 돌고 차체의 왼쪽 유리창에 오른팔을 부딫힌 다음(쾅!) 도로 오른편으로 튕겨 나갔을 것이다.



젤리를 샀다. 100엔이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쳤다. 정신 좀 똑바로 차리고 다니자.



생선까스도 샀다. 이제 주행 중에 mp3 귀에 꽂고 다니지 말자.



밥도 한 공기 샀다. 딴 생각하지 말자. 밥에 집중하자.



내가 정말 죽을라고 환장했지. 꽁치 간장 조림도 샀다.



아사히 생맥주 500ml. 5%, 김치 한 봉지. 김치에 어찌나 설탕을 많이 탔는지 달달해서 먹고 나면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이게 무슨 김치야... 기무치지.



아무도 없는 캠핑장에서 안주, 반찬, 밥, 생맥주를 배불리 먹고 마셨다. 6.20pm.



관리인은 안 오려나 보다. 관리사무소 근처에 차가 한 대 섰다가 내 기척을 느꼈는지 황급히 사라진다. 캠프장에 바로 붙어 있는 일본 정원과 가옥 한켠에 불이 켜졌다. 화장실에도 불이 들어왔다. 비가 올까 염려스러워 정자 안에 텐트를 쳤다. 화장실에서 땀에 절은 져지를 빨았다. 자전거에 기름칠을 다시 했다. 브레이크 패드의 이격을 좀 더 좁혔다. 이제 거의 한계다. 사고 기억은 잊어버리자. 소심해 지면 더 큰 실수를 하게 된다.



7.50pm. 밥과 맥주를 다 먹었다. 원래는 조금 남겨 아침에 라면에 밥 말아먹고 반찬하려던 것인데 긴장하고 흥분한 탓인지 김치 약간을 빼고 그 많은 양의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신화의 마을 캠핑장 전경. 뒷쪽에는 아이들 놀이기구와 캠프 파이어장. 화장실 따위가 있다. 오토 캠핑장과 함께 미리 쳐진 천막을 대여하기도 하나 보다. 천막 안에 들어가보니 냄새가 퀴퀴하고 습해서 도저히 안에서 자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저 맞은편 끝은 선착장으로 바다와 인접해 있다.

8pm. 해가 완전히 졌다. 개구리 합창 소리가 왼쪽에서 들린다. 오른쪽에는 반딧불이가 깜빡이며 날아다닌다. 반딧불이를 대체 얼마만에 보는거냐... 삭막한 도시 생활이라니... 장작을 몇개 꺼내 캠프 파이어나 해 볼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돈도 안 내고 캠핑하는 중인데 혹시라도 지나가는 사람의 이목을 끌어 좋을게 뭐 있겠나 싶다.

먹은 것이 별로 없어 그동안 완전 소화가 되었는데 오늘은 3일 만에 화장실에서 큰일을 봤다. 일 보는 동안 모기들이 엉덩이와 불알을 물었다. 거참 긁기 민망한 곳을 물어버리네.

9pm.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날이 비교적 맑아서 인지 별로 춥지 않다. 눈을 붙였다. 12시쯤 깨었다. 가랑비가 내리고 반딧불이가 좀 더 늘었다. 개구리는 우렁차게 울다 말다를 반복한다. 캠핑장을 산책했다. 2am. 폭우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깨다. 4am. 쏟아지는 빗소리에 다시 잠에서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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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잠들었는지, 밤에 깼다. 12시.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곧 이어 쏴아- 비가 오는 소리. 억수로 비가 내린다. 다시 잠들었다. 쏴아- 하는 소리에 깼다. 2am. 여전히 폭우가 쏟아진다. 버킷으로 퍼부을 듯이 쏟아지는 빗물. 물이 튀겨 목재 바닥이 젖으니 춥다. 자전거에 빗물이 튀긴다. 자전거를 여자 화장실 안으로 끌어 넣었다.

텐트 안에 버너를 들여와 물을 끓였다. 금새 훈훈해졌다. 따끈한 물을 마셔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캠핑 중에 추울 때는 물을 끓여 먹는 것이 최고다. 체온을 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체내에 따뜻한 액체를 주입하는 것이다. 체온을 올리고 버너로 텐트 공기의 온도를 높이고 이미 한번 끓었던 물이 흡수한 잠열이 천천히 방사되는 동안 텐트는 따뜻하게 유지된다. 어렸을 적에 저런 아이디어를 냈을 때는 내가 참 꾀돌이구나 싶었는데, 산악인들 대개가 텐트 속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물을 끓이고 커피, 차를 마셨다.

텐트 바깥에서 관리인이 뭐라고 웅웅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보니 어젯밤 관리인이 떠나기 전에 하치... 뭐뭐라고 그랬던 것 같다. 수첩에 일본어 숫자 발음을 적어둔 것을 어젯밤에 잠깐 읽었다. 하치는 8이었지. 잠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은 아침 8시... 좀 더 자자.

9am에 깨었다. 텐트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니 찬 바람이 휙 분다. 텐트 속으로 머리를 들여놓고 어젯밤에 코펠에 담아놓은 물을 끓여 사제 스프를 듬뿍 퍼 넣고 라면을 끓였다. 금새 텐트 내부가 훈훈해진다. 뜨거운 라면을 먹으니 살 것 같다.

새벽 내내 내리던 비는 이슬비로 바뀌었다. 간단하게 헛둘헛둘 체조를 하고 텐트를 접었다. 텐트 등속의 캠핑 장비와 오늘 주행에 필요한 장비를 제외한 나머지 물건을 바리바리 싸서 샤워실 옷장 칸 너머에 올려두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에게 텐트 등속을 저 위에 올려놓을테니 저녁 때 사정 봐서 텐트를 바깥에 치겠다고 말했다. 알아 듣는다. 햐, 거참 희안하다. 한국어, 영어로 되는대로 말하면 대충 말이 통한다. 따로 일본어를 배우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접자. 관리인이 '키요츠케테' 라고 말했다. 하핫. 아는 문장이다. 일본 애니에서 들었던 문장이다. '몸 조심하쇼'. 댕큐~



아소베이 파크를 빠져나와(9.30am) 만제키시바(시바가 다리라는 뜻인 듯)까지 단숨에 갔다. 쓰시마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는데 일본군이 배를 통과시킬 목적으로 산 하나를 박살 내어 물길을 틀고 그 사이에 다리를 올렸다. 다리가 조그맣고 별볼일 없는데 여기가 쓰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설마 고작 40여m 폭의 물길을 내고 일본인들이 파나마 운하를 만든 것 같은 흐뭇한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니겠지? 이 다리만 보더라도 쓰시마에 얼마나 볼꺼리가 없는지 알만하다.

다리 옆 휴게소에서 담배 한대 빨고 한가하게 짐을 다시 정리했다. 가랑비가 폭우로 바뀌었다. 일본 야후 기상정보를 뒤져 찾아낸 어떤 기상 캐스터는 20년 동안 기상예보만을 전문으로 하던 아저씨인데 후덕하게 생긴 미소띤 얼굴에는 프로페셔널의 자신감이 만면에 철철 넘쳐흘렀다. 그 양반의 예보에 따르면 올해 장마는 어이없을 정도로 일찌감치 끝났고 오키나와와 규슈에서 장마전선이 멀찌감치 이동했으며 쓰시마의 날씨는 한 동안 흐리겠지만 앞으로 3일 동안 비올 확률은 40%가 안된다고 했다.

분명히 그랬다. 첨단 전자기술과 훌륭한 기상과학에 세계에서 몇 대 안 되는 고성능 슈퍼 컴퓨터, 그리고 20년의 내력이면 아무리 비선형 동역학중 가장 어려운 체계라는 기상현상 예측이라지만 이제는 일기예보를 제대로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20년을 해 먹었으면 그동안 쌓인 '감'으로 찍기라도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이 왜 한국하고 똑같은 거냐?

목구멍으로 욕설이 치밀었다. 참자. 나잇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좋지 않은 상황에 부닥치면 자동사처럼 튀어나오는 욕설을 자제해야지, 애도 있는데. 이제부터는 욕이 튀어나올 때마다 노래를 부르자.

폭우를 보자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기분이 저조해졌다.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서 하늘에 고작 구름 한 조각 떠 있어도 비가 내리는 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하루종일 비가 온다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특이한 것은 이게 분명히 빗속에서 찍은 사진인데 빗자국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메라를 비롯한 작은 장비들은 집에서 음식을 쌀 때 쓰는 요리용 포장 비닐로 하나하나 쌌다. 요리용 포장 비닐은 무게가 거의 없을 뿐더러 크기가 알맞아 가방 속의 짐을 싸기에 적합했다.

텐트를 넣은 큰 배낭은 천몇백원을 주고 산 75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로 쌌다. 예전에는 김장용 비닐을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몇 군데 집 근처 문구점을 들러도 비닐을 팔지 않아 궁리 끝에 쓰레기 봉투를 생각해 냈다. 쓰레기 봉투는 그 목적상 비닐의 두께가 두껍고 튼튼하게 박음질되어 있어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가방을 쓰레기 봉투로 싸 놓으니까 정말 그럴듯 했다. 여차해서 우렁차게 노래가 튀어나올 상황이면 쓰레기통에 짐째 던져 버리고 아베 총리를 모욕한 후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노래는 그만 부르고 가자. 잘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어어...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는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어어... 흙길이나 빗물 아스팔트에서는 자전거로 드래프트가 가능하다. 고속으로 코너를 회전할 때 뒷 브레이크와 앞 브레이크를 적당히 밟아주면서 자전거 차체를 기울이면 자전거가 기운 채 움직이지 않는 타이어가 아스팔트에서 미끄러진다. 원하는 만큼 미끄러졌을 때 회전방향 반대편 패달을 강하게 반바퀴 밟으면서 브레이크를 풀어주면 코너에서 직각 회전이 가능하다. 어쩌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죽지 않으려고) 다시는 써보고 싶지 않다. 얼마만한 속도에 얼마나 미끄러질지 가늠이 안된다. '진짜' 산악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다운힐을 60kmh로 내려가는 것을 신나해 하며 이니셜D처럼 자전거로 '공도최속이론'을 완성할 생각이 전혀 없다. 멀쩡하게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관광이다.

그렇게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아내는 요 며칠전 내가 자전거 타다가 두 차례나 사고날 뻔 한 적이 있은 다음 날 왜 헬멧을 안 쓰고 다니냐고 바가지를 긁었다. 내가 죽으면 자기는 과부가 되는데 아이를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항상 감정이 앞서고 비논리적인 아내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조심하자. 아내가 여행가기 전 만원짜리 여행자 보험을 들어줬다. 보험 들기를 미룬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아내의 바가지 이후 안전 운행 하겠다고 마음 먹었고 그래서 60kmh 이상은 안 하련다.

헬멧을 썼더라면 빗속 주행이 힘들었을 것 같다. 자전거 주행할 땐 항상 캡을 썼다. 챙이 안경을 적당히 가려줘서 빗물이 안경에 덜 닿는다. 비올 때는 캡이 최고다.

폭우 속에서 내리막길을 53kmh로 미친듯이 내려가(다행히 헤어핀이 아니다) 패달링을 안한 채 오르막길 중턱에서 자전거를 자연 정지시켰다. 상황을 좀 더 살펴보려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빗줄기 때문에 안경알에 빗물이 방울져 있다. 얼마전에 6만원 주고 산 초발수 코팅 렌즈란 건데 이런 비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 브레이크 패드가 거의 다 닳아 위어라인이 사라졌다. 브레이크 레버를 끝까지 당겨도 패드가 림에 얄팍하게 닿는 정도, 림은 패드의 합성 고무(alloy면 합금일텐데 재질이 왜 사각사각하는 단단한 합성고무처럼 느껴질까?) 가 남긴 검은 띠로 시꺼멓게 뒤덮여 있다. 흠... 문제군.

체인을 살펴 보았다. 체인은 기름, 물, 먼지가 떡진 채 붙어 있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쫄깃쫄깃한 본드같은 것이 묻어나온다. 체인이 뻑뻑하다. 한 3일 비를 맞았더니 체인도 맛이 갔다. 거참... 문제야.

일단 자전거를 질질 끌고 언덕을 올라가서 T자 도로 교차로의 인도에 자전거를 세웠다. 자판기에서 청량음료를 뽑아 마셨다. 하도 비를 맞아서 이젠 머리가 다 아픈 지경인데 음료수를 마시니 목부터 위장까지 시원한게, 평안해진다. 어떻게 할까. 이즈하라에 자전거 가게가 있을꺼야. 어디 마트에 들르면 체인에 칠할 방청제나 기름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382번 국도는 비교적 평탄해서 브레이크를 심하게 잡을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비인데, 희망을 갖자.

자전거로 하는 첫 해외 여행이다. 앞으로 많은 여행이 내 인생 앞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수업료를 치르지 않고 낼름 얍삽하게 집어먹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자전거는 정직하다. 자전거는 몸의 일부같은 것이라 버리고 떠날 수 없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란 책은 주제가 여행이고 자전거는 부자재 내지는 까메오에 불과했다. 자전거이기에 가능했다는 여행에 대한 격찬과 화려한 감상적 너즈레는 넘쳐나면서도 끊임없이 손을 봐야 하는 자전거 정비에 관해선 거의 말이 없다시피 했다. 인문학적 감수성의 너저분한 나열이 자전거 여행을 이끄는 동인이 될지는 모르나, 워낙 재미가 없고 혼자 치는 딸딸이 같아 무의미해서 집어던진 책이 되었다.

회의론자의 철학적 성찰이 넘치는 zen and the art of motorbike maintenance 같은 책이나 '나는 걷는다' 같은 책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나는 걷는다의 주인공은 손수레를 끌면서 죽어라고 걷는다. 그의 손수레는 자주 고장이 나고 자주 손을 봐야 했고 손수레가 없으면 불가능한 여행이었고 그래서 손수레 때문에 여행을 멈추기도 한다. 그게 정상이다. 자전거 여행에 왜 자전거가 빠지냐?

우스개로,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속이 뭐냐'는 질문이 있다. 정답은 엔진이다. 자전거에 타고 있는 인간 엔진. 인간 엔진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 마음의 정비는 건실하고 튼튼한 뚝심과 의지, 그리고 세계에 대한 건전한 회의를 갈고 닦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공학이 세계를 유지하고 개선하며 인류에게 새로운 비전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또한 믿는다. 그래서 쓰잘데기 없는 미사여구의 허튼소리 대신 생존에 필요한 자전거 정비 기술을 배웠다. 심지어 벽을 향해 치킨런을 하며 브레이크 감각을 익히기도 했다. 아스팔트에 납작하게 죽어있는 개구리같은 모양으로 벽에 아주 많이 박았다. no pain, no gain.

급경사의 다운힐 앞에서 자전거를 끌었다. 허허 웃음이 나왔다. 어떤 아저씨가 경험한 진부령의 그 눈물나는 사연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빙고. 커다란 VALUE 상점과 100엔 샵이 연달아 붙어 있다. 쓰시마 관광 안내지도에서는 100엔 샵도 쓰시마의 관광 포인트였다. 다이소와 뭐 다를 것도 없는 100엔샵이 관공지라니, 쓰시마, 너 정말 그렇게 볼 게 없는 곳이냐? 하여튼 100엔 샵에서 마땅한 물건을 구하지 못했다. 찾는 것은 방청/윤활제다. VALUE에도 없다.

그보다는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속인 엔진의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뭣 좀 먹어야겠다. 메가 밀크와 세일중인 빵을 사서 간단히 요기했다. 단시간에 에너지로 가장 잘 바뀌는 것은 탄수화물인데, 직접적인 경험이나 여러 문서를 살펴보더라도 바나나는 가장 극찬을 받는 음식이다. 포도, 감자, 고구마 따위도 마찬가지였다. 마땅한 대용물이 없을 땐 빵과 밥이 최고다. 운동이 끝난 다음에는 탄수화물보다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격렬한 운동으로 파괴된 근육을 재생시키고 에너지를 축적해 둬야 하니까?

거리 상으로 얼마 안 남은 이즈하라에 가면 맛있는 거 많을테니 지금은 대충 때우자. 우유가 맛있다. 한국에서 지지리도 맛 없는 것으로 손꼽을만한 것이 우유와 오렌지 쥬스, 그리고 맥주다. 셋의 공통점은 물이라도 탄 것인지 맹숭맹숭해서 전혀 진한 맛이 안 나오고 특히 오렌지 쥬스는 단맛을 내려고 설탕 또는 아스파탐이라도 탄 것 같은 기분. 옆의 원예상가에 들러봐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 이즈하라에 가면 자전거 상점이 있을테니 거기서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하면서 기름칠도 하면 일석이조겠거니 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

교차로에 서 있다가 흘낏 뒤를 보니 건축용 자재를 판매하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무작정 가게로 들어섰다. 히라카나, 가타카나 조차 읽을 줄 모르면서 선반에 놓인 스프레이 캔들을 살펴보았다. 옷! 우연찮은 발견. 용도를 그림으로 설명하는데 자전거 스프라켓이 그려져 있다. 방청제인지 자전거 오일인지는 모르겠다. 소레, 도조(이거 부탁합니다) 하니까 700엔이라면서 뭐라고 중얼중얼 거린다. 까막귀라 700엔을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냥 천엔 짜리 지폐를 건네니 300엔을 거슬러주면서 나나 하야쿠 라고 말했다. 하야쿠는 엊저녁 공부하기로 100이었다. 나나는 아마 7? 그러니까 700엔. 캬. 죽인다. 일본어를 하나하나 배워가는 이 맛.

가게 처마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 장갑을 껴고 체인 횡축을 앞뒤로 비틀어 보았다. 뿌지직 뿌지직 소리가 난다. 기름에 쩔은 모래 알갱이들이 강철 체인을 마찰하면서 나는 기분 나쁜 소리다. 불과 3일 전에 등유로 깨끗이 닦은 체인인데 이 모양이다. VALUE에서 슬쩍한 수건(가게의 포장대 앞에 비닐이나 박스로 포장하고 나면 손을 씻으라고 걸어둔 수건. 어쩔 수 없었다. 타월을 팔지 않는 것 같길래...)을 1/4 찢어 체인을 한번 죽 닦아주고 방청제 캔에 노즐을 꽂은 후 아낌없이 듬뿍 뿌렸다. 가스 압력이 높아 뿜어져 나오는 액체가 기름때를 밀어낼 땐 흡족했다. 스프라켓, 디레일러, 프리휠셋에 뿜어대니 기름때가 밀려나가면서 말끔해진다. 정말 기분이 째지게 좋다. 한참 작업하는데 가게 주인 아저씨가 나와 쳐다본다. 이것저것 묻길래 체인이 빡빡해서 기름을 치고 있다고 손짓발짓을 하니 자전거를 들어주며 기름칠을 도와준다. 아저씨에게 '자전거 가게'가 이즈하라에 있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해 한다. '바이크 샵' 하니까 알아듣는다. 손가락으로 시내에 몇 개 있단다. 가서 물어보라는 것 같다. 댕큐 입니다.



드디어 이즈하라 시내 도착. 내 실수의 총합체인 이즈하라 항구에 들러 일단 눈도장을 찍었다. 오후 12.30pm.

문제 한 가지를 해결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일단 가볍게 관광이나 하자고 마음먹었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팜플렛에 다 적혀 있고 비문에도 적혀 있으니 기념물 설명은 생략. 꽃은 대체 누가 갖다 바치는 것일까? 이런 정성이라니. 결혼 축하 기념비 앞이 유적지라 한참 발굴공사가 진행중이다. 역사에 무지해 덕혜옹주는 듣도 보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비문 내용을 보니 정략결혼을 한 듯.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앞에 있는 고려문. 야자수와의 묘한 조화. 조선의 통신사들이 쓰시마를 방문하면 이 문을 지나친 것 같다.





반쇼인 신사 입구



반쇼인: 쓰시마를 지배했던 여러 군주들의 위패가 세워진 사당. 쓰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문이 닫혀 있어(휴관일?)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반쇼인



반쇼인



조선통신사비. 역시 관광사진은 재미가 없다. 조선통신사들이 오락가락 하던 시절에는 일본에 '햐쿠라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좋은 물건, 외래품을 뜻하고 어원을 살피면 백제에서 온 물건이란 뜻이란다.



1pm. 비가 잠시 그쳤다. '호카호카테' 라는 도시락 전문점에서 450엔 짜리 도시락을 사서 그 앞 공원에 앉아 먹었다. 역시 밥맛이 좋다. 일본인은 음식을 일종의 소우주라 생각하여 음식에 칸을 쳐두고(서로를 분명하게 구분짓는 선을 그어) 하나하나 서로 다른 맛을 즐긴다고 했던가? (개뻥 같은데) 오전 내내 비 맞다가 따뜻한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니 살 것 같다. 구분은 시장기 해소와 별 상관없다. 음식의 양과 질은 음식 모양과 상관 없는 한 단계 높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다! 나는 영양가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이게 기쁨이고 삶의 의미이고, 고생 끝에 맛있는 밥을 먹고 오이시 하면서 오열하는 남자의 인생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나무 젓가락(와르바시?)이 한국에서 쓰는 것과 달리 목재의 밀도가 높고 나무 젓가락을 포장한 종이 안쪽에 이쑤시개가 들어있는 점이 한국과 다른 듯.



빗속에서 노래를 멈추게 해 준 이름모를 방청제/오일 anyway. 여러 가지 공구와 자전거 스프라켓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영어로 설명되어 있으면 더 좋았을텐데.

일본에서 어설픈 일어를 쓰는 것보다 영어를 쓰면 더 대접받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을 철썩같이 믿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개화 후 물밀듯이 들어온 서양문물 탓도 있고(일종의 화물숭배) 일본어에 상당한 비율로 편입된 외래어의 사용 밀도로 보건대 일본인들이 서양 것에 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쨌거나 영 단어와 한자 사용비중이 높은 한국어를 섞어 쓰는 것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비슷한 한자문화권인 중국 여행할 땐 성조 때문에 말이 안 통해 환장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면 일본과 한국이 참 가까운 나라인 것 같다.



하치만구 신사. 쓰시마를 주행하며 길가에서 무수한 신사를 접했지만 이 정도 규모는 처음. 일본의 신사는 애니미즘의 본거지. 모든 (움직이는, 또는 움직이지 않는? 정지도 애니메이션의 여러 동태 중 하나니까) 것에 정령이 깃들어 있단다.



그런데 신사가 둘로 나뉘어 있다. 둘이 하나인지 둘이 둘인지 모르겠다.



바로 옆나라지만 일본 문화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 탑의 형태로 보건대 지배자/지도자/계급자의 신분과 지위에 걸맞는 일종의 위령탑이 아닐까 싶다.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구분하는 것일까? 둘이 둘이라면 하나는 실존했던 인물의 기념비가 되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민간 정령신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아닐까? 하치=8이니까 8신을 모시는??



뭐 일본의 정령신앙 체계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 신사 입구 양 편에 여우 상이 많고 여우가 재물을 상징한다는 얘기 정도를 알 뿐. 사진의 해태 같이 생긴 짐승은 고마이누라 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 뜻이 '용감한 고구려개'라고 들었다. 말 타고 달리는 고구려인을 쫓아다니는 사납고 충직한 그... 맛없어 보이는 강아지구나.



왼편에 말이 보인다. 사람이 안 타고 있다. 그럼 혹시 대마도에 전래된 우수한 외래말에 대한 숭배...?



아. 이건 안다. 물을 떠서 왼손을 씻고 다시 오른손을 씻고 그 다음에 손바닥에 물을 담아 살짝 맛을 보고, 저 타월에 물 묻은 손을 닦는 것이지? 한국의 절간에서처럼 지나가는 과객의 목을 축이는 우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사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한... 인간의 방법과 신령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겠지. 손은 씻는데 발을 안 씻는 것은 신령이 하도 신령스러워서 신전에 범접하지 못하게 아예 사전에 차단한다는 뜻이겠지. 같은 만신을 섬기는데 인도는 내부신전까지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는 반면 일본은 내부 신전에는 사람이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고 사제만 접근하게 되어 있는 듯. 일본인들이 만신숭배에 관해 인도에 친숙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렇게 알만했다.



돌로 만든 위패인듯. 돌은 영원하니까. 그런데 순 김씨네. 하하



솔직히 말해 예술적인 감각은 좀...



허걱. 신사에 왠 폭탄들이지? 일본산 극우 원숭이들이 불현듯 생각났다. 이 사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저기 어디야.. 교토의 몇몇 건물들 빼고는 일본건물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다. 그런데 왠 새끼줄일까... 새끼줄의 보편적인 의미는 차단과 금지 였던 것 같은데(한국의 경우) 저건 무슨 의미일까. 일본인의 상징 체계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바로 옆나라인데 아는게 전혀 없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하치만구 신사에 마리아를 섬기는 사당이 있다던데 혹시 저것 아닐까?



하여튼 쓰시마(시마는 아마도 섬이란 뜻일께다. 다께시마, 쓰시마 등등) 여행중 여러 신사를 보며 느낀 점은 을씨년스럽고 괘괘하여 인간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 머무르거나 쉴 공간이 없어 보인다는 것. 저 나무는 아마 녹나무인 것 같다.

관광은 적당히 접고 자전거 가게를 찾았다. 근처 어딘가에 쓰시마 관광물산협회(visitor center)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찾아가 봤지만 보이지 않고 공사중인 건물만 보인다. 옆에 향토민속관에 들어가 비지터 센터가 어딘지 물으니 공사중인 건물을 가르킨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안 인부들이 제지하지 않는다. 나와서 조선통신사 비석 옆 건물로 가니 문이 닫혀 있다. 뒤돌아서자 향토민속관에서 관광물산협회를 물어보았던 아가씨가 서 있다. 서로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보니 이즈하라 항에 관관안내소가 있다고 가르쳐 준다. 예쁜 아가씨다. 아리가또 하니 활짝 웃는다. 얼기설기한 이빨이 보인다. 이빨이 그래도 친절이 예쁜 아가씨다.

이즈하라 항에 가니 수많은 한국인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관광 안내소의 할머니에게 바이크 샵을 물으니 항구 앞의 가게를 가르쳐 준다. 빗속을 달려 항구 앞의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진열된 가게로 갔다. 브레이크 패드를 보여주며 부품이 있는지 물으니 없단다(이이에). 그러면서 다른 가게를 가르쳐 주었다. 그 가게에 가니 일본의 전형적인 생활 자전거를 수리하는 곳이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내 자전거에 맞는 브레이크 패드는 자기 가게에 없단다. 친절하게 지도를 보여주며 382 국도에 면한 한 가게를 짚어 주었다. 가게에 들르니 역시 부품이 없단다.

여기저기 자전거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오후나에나 가미자카공원 등에는 들르지 못했다. 시간이 꽤 되어서 유타리랜드 쓰시마나 쓰시마후루사토 전승관, 가네다성유적지도 방문하지 못할 것 같다. 이즈하라 시내만 바둑판 훑듯이 샅샅이 쏘다녔다. 시내 구경도 할만하다. 쓰시마에 지진이 있던가? 건물이 나즈막하니 2층 이상 가옥이 아주 드물었다. 쓰시마에 별장 한 채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

무가저택(사무라이 저택; 부케이시키) 부근을 두리번 거리며 배회했다. 자전거 가게가 통 보이지 않는다. 이즈하라 시내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다. 시내 중심부에는 모스 버거 매장이 있다. 배가 불러서 모스 버거를 맛보긴 좀 그렇고. 3.30pm.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가다가 마트에 들러 저녁꺼리도 준비해야 한다. 아쉽지만 쓰시마 특산물이라는 메밀소바(이리야키소바)를 못 먹어봤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실망한 채 가게 앞에서 브레이크 패드의 허브 암나사와 브레이크 와이어의 긴장 정도를 조절해(이미 브레이크 레버의 앞 나사를 돌려 패드의 압박 정도를 조절하는 범위는 지났다) 어느 정도 브레이크가 말이 듣게 손봤다.

브레이크가 이 모양인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382국도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 또는 날씨가 개이기만 해도 문제가 안 된다. 내일 신화의 마을 까지는 아소베이 파크에서 30km 안팎의 거리다. 브레이크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상황인데 마음은 그지없이 평화로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패달을 밟아 이즈하라 시내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VALUE에 다시 들러 저녁꺼리를 흡족하게 장만했다. 대형마트의 카운터 앞에는 식수대가 있다. 식수대에서 빈 물병이 판매된다. 빈 물병에 물을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 물은 찬 물과 뜨거운 물이 모두 나온다. 그런데 물은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대신 음료수만 마셨다.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른 쓰시마 그린 파크. 저 멀리 미쓰시마마치 해수욕장이 보인다. 쓰시마 그린파크 자체가 훌륭한 캠핑장이다. 여기저기 엄폐물을 잘 이용하면 돈 안 들이고 캠핑이 가능할 것 같다.



인구중 대다수가 노인과 어린이들 뿐이고 청년이 드문 쓰시마의 복지시설은 정말 훌륭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길래 이렇게 훌륭한 공원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인구도 별로 없으면서.



이건 뭐지? 애들 놀이기구 같은데?



한국 같았으면 사람들도 거의 방문하지 않는 저 작은 폭포의 수도꼭지를 잠궈 놓았을 터인데... 아내한테 전화하려고 전화기를 찾았지만 domestic 전용. 공중전화에 ISDN 외부 연결 포트가 달려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일본도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FTTH가 도입된 상태인데 ISDN을 쓰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쓰시마 그린 파크에서 아소베이 파크까지는 30분이 채 안 걸렸다. 관리사무소의 문은 걸려 있다. 관리 사무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소만 전경. 섬의 침강에 의해 리아스식 해변이 형성되었다. 제주도와 달리 섬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다. 날이 궂지 않으면 아소만에서 대여 카누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었다. 두어 시간에 6900엔이나 하는 값비싼 투어지만 카누를 타본 적이 없어 한 번 쯤은 타 보고 싶었다.

십여분 관리인 아저씨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6시가 안 되었는데 벌써 퇴근한 모양이다. 캠핑장 화장실에 도착하니 어떤 중년 부인이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있다. 개가 날 보더니 반가운 나머지 미친듯이 짖는다. 중년부인이 던진 공을 줏어서 갔다주다가 중간에 꾀를 부린다 -- 공을 줏어 화장실 뒤편에 슬쩍 숨어 공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헉헉 숨을 몰아쉬다가 충분히 쉬고 나면 다시 공을 물고 부인에게 뛰어간다. 자식. 지능은 있어 가지고.

오늘도 아무도 캠핑하러 오지 않았다. 중년 부인은 캠프장이 문을 닫는 6시 무렵 강아지를 자동차에 태우고 떠났다. 어제, 오늘 가끔 공원에서 자전거를 세우면 거기에 차 한 대씩은 꼭 있는데 주로 남자나 여자 혼자 차 안에 앉아서 뭔가 멍하니 있다가 내가 나타나면 곧 차를 몰고 사라졌다. 일본에 혼자 노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그것 때문일까? 왠지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

나야 뭐, 나를 따라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조히즘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렇지 혼자라서 외롭다는 등의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되레 예전에 장기여행 때 사람들이 날파리떼처럼 꼬여 귀찮아 한 적이 많았다. 숙소나 술집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한 잔 하는 것에는 별로 거리낌이 없다. 하여튼 사람 만나는 것은 귀찮다. 세네카 말대로 아무리 여기저기 사방팔방 돌아다니고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봤자 끝끝내 맞부닥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오늘은 쇼핑을 좀 과하게 했다. 라면 두 개, 어묵 한 봉지. 12가지 차 세트, 스프 4봉, 바나나 과자, 안주용 햄, 그리고 사뽀로 맥주 draft one.

'남자라면 입 닥치고 사뽀로 맥주를 마시자' 라는 옛날 광고문구 때문에 훗카이도에 가고 싶어졌다. 훗카이도에는 어쩐지 제대로 된 일본식 선술집이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재밌게 본 '마구로와 일본인'도 일본의 최북단 근처다. 눈 내리는 어느 추운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 가기 전 얼핏 불을 밝힌 선술집에 들러 따뜻하게 데운 사케에 어묵 한 점 먹고 낯 모르는 사람들과 간빠이를 외치며 껄껄 웃어보는 것. 박여사는 예전에 말하길, 훗카이도에 가려면 꼭 겨울에 가란다. 눈이 30cm씩 올텐데 자전거는 어쩌라고?



500엔짜리 도시락. 이것만큼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식사가 있을까? 한화로 3700원 가량. 먹으면 배부르다. 다만 나물 등의 야채 식단에 익숙한 만큼, 부실한 야채와 국이 없어 먹어도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식단. 끓는 물을 부으면 즉석으로 먹을 수 있는 미소된장국을 팔았지만 정작 수퍼에서 찾아 헤멨던 것은 어묵국이었다.



깨끗이 비웠다. 짜장면을 먹고 나면 다꾸앙으로 짜장면 소스를 긁어 깨끗이 먹어치웠다. 일부분은 절 음식 먹던 버릇 때문이고, 일부분은 음식을 남기면 안된다는 옛날 교육 때문이기도 하고, 일부는 그렇게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였다. 그런 습속을 다른 사람들은 다소 변태 취급해 주셨다.



7pm. 비가 멎어 소화도 시킬 겸 아무도 없는 캠핑장 주변을 배회했다. 앞 건물은 집회장.



호숫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닷물. 아소베이 만의 복잡한 해안선 구조 때문에 바다임에도 파도가 거의 없다. 흡사 호숫가 같다. 바다인데 마치 호수처럼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색적인 모습.



선착장. 물고기가 가끔 튈 뿐 적막하기 그지 없다.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뭍과 바다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들 중 하나.



밤에 출출할 때 라면에 넣어 끓여먹으면 어떨까. 아서라. 뒷발로 지긋이 밟아 게를 잡았지만 곧 놓아주었다.


Video: 아소베이파크 캠핑장 게



을씨년 스러운 화장실. 이층은 2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객사 또는 관리인 숙소.



7.20pm.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 전경.



해가 졌다. 왠일인지 비가 안 온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햄을 볶아 맥주 안주로 먹었다. 일본 맥주들은 저녁 식사나 목욕 후 한 잔 가볍게 마시는 용도, 어느 음식에 곁들여도 그다지 튀어 보이지 않는 연한 깔끔함과 시원함이 특징인 것 같다. 한국 맥주의 몰개성함/특색없음에 질린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한국 맥주가 베트남, 중국, 심지어 태국 맥주만도 못하게 느껴졌다. 브류어리 기술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일까? 왜 그렇게 '상대적으로' 맛이 없는 걸까.

일본 맥주 가격이 의외로 싸서(환율 때문이지만) 여행 기간 내내 마셔주기로 했다. 어제도 마시지 못한 것이 사뭇 안타깝기만 하다. 5% 500ml짜리니 대낮에 마셔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중국 여행할 땐 하루에 서너잔씩 끼니때마다 7%짜리 500~1000ml의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 세상이 아름답고 정말 좋았다. 그래서 노래가 절로 나왔다. 윌 아이 비 핸섬? 윌 아 비 리치? 아 텔 뎀 텐덜리. 케쎄라쎄라, 왓에버 윌 비 윌 비. 더 퓨쳐스 낫 아우워스 투 씨, 케쎄라 쎄라~ 당시 중국 여행은 말이 전혀 통하질 않아 될대로 되라 여행이었다.



8.30pm. 텐트의 플라이를 벗겼다가 다시 덮었다. 밤에는 쌀쌀할 것이다. 날이 어두워져서 뭐 할 것도 없다. 슬슬 잘 시간이다.

mp3를 들으며 가져온 얇은 소설을 한두 페이지 읽어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김씨 아저씨한테 빌린 James Hogan의 1977년 작품인 Inherit the Stars인데 쌔근한 최신기술과는 거리가 먼 구리구리한 70년대 스타일의 SF다. 투과성이 좋은 뉴트리노를 이용한 스코프는 아직 개발되지도 않았고 또, 여전히 앞으로 등장할 최신기술에 속하는 것이긴 하나... 인류가 즐겨하던 취미생활인 전쟁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세계 정부 구성을 목전에 둔 채 우주로 막 진출할 무렵, 5만년전의 우주비행사 시체가 뜬금없이 발견되는 것으로 얘기가 시작된다.

부산에서 비록 50여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이 괘괘하고 적막한 캠핑장에 나 혼자 앉아 기분좋게 취해 있으니 한국과의 거리가 거진 안드로메다 성운과 지구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듯하여, 분위기가 얼추 SF스러워 굳이 SF소설이 주는 실세계와의 주관적 거리감(소격화)의 확보가 필요없을 정도였다.

바르는 모기약을 팔 다리 여기저기 발랐음에도 집요하게 달라붙는 모기떼와 스르륵 스르륵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강산의 적막감. 하루종일 비를 맞아 머리를 맑고 투명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내, 딸아이, 일 등은 굳이 생각해야지만 머리 속에 떠오른다.



디지탈 카메라에 PC로 옮기다 만 아이 사진이 남아 있었다. 이 아이가 자라면 제 부모처럼 여행을 다니게 될까? 말 타고, 옆에 맛 없어 보이는 강아지를 데리고. 여행은 재테크, 노후설계에 도움이 안된다.

아무 생각없는 머리로 텐트로 기어들어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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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 휴가를 냈다. 2년만에 휴가인 셈인데 그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했다. 뭔가 머리를 식힐 것이 필요했고 휴가계를 내라길래 6월초에 낼름 제출했다. 금요일 미팅은 장시간 이어졌다. 끝날 때쯤에야 오늘이 환전 가능한 마지막 날이란 것을 깨달았다. 은행 마감 직전에 도착해 간신히 돈을 환전했다.

씨티은행이 날이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환전 수수료 할인을 받으려고 전날 인터넷으로 환전 예약을 해놨더니 환전하려는 돈이 거의 쓰지도 않는 외환거래 통장으로 들어갔다. 어안이 벙벙. 시티은행의 홈페이지에는 그런 내용에 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고 아침에 찾으러 갔을 때 외환거래 통장이 없으면 인출이 안된다고 해서 되돌아왔다. 하루가 지나고 외환거래 통장을 들고가서 은행 마감 시간 전에 환전을 하려니 적지않은 환전 수수료를 내란다. 휴...

6/30 격주 휴일

여행 전 준비물: 여권, 여권 복사본, 캠프장 예약 복사본, 카메라, 미니삼각대, AA 충전지 4알, AAA 충전지 4알, 휴대폰, 작은 수첩, 볼펜, 테이프, 모포, 휴지, 얇고 큰 비닐 봉투, 읽을만한 작은 책 한 권, 사제스프.

의약품: 마데카솔 연고, 반창고 4장, 타이레놀 몇 알, 항생제 몇 알

구매한 물건: 1인용 텐트(35000원), 얇고 부피가 작은 은박 깔개(7000원), 튼튼한 실(1000원), 바르는 모기약(5000원), 선 블럭 크림(6800원), 여행용 세면 도구 세트(4200원), 미니 버너(17000원), 1인용 코펠(23000원), 가스 1통(?원), 쓰레기 봉투 75리터(?원), 100리터 (?원)

옷가지: 져지 상하의(28000원), 쿨맥스 반팔 상의, 수영복 하의, 비닐비옷, 양말 2켤레, 장갑, 모자(캡).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 케이블 타이, WD-40 조그만 것.

오전에는 자전거를 정비했다. 비 맞을 것에 대비해 양 바퀴 베어링에 그리스를 듬뿍 발라 주고, 주요 구동부에는 테프론 오일을 듬뿍듬뿍 쳐줬다. 야후 일본 사이트의 일기예보를 읽어보니 규슈 쓰시마의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일요일 비, 월,화,수 흐림, 목 비. 첫날과 마지막 날에 비를 맞을 것 같다. 적어도 한국의 일기예보처럼 엉터리는 아니겠지? 아쉬운 것은 업무 때문에 시간에 쫓겨 구입하지 못했던 방청제(WD-40)와 테프론 오일.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경로 설정을 시간 내에 하지 못했다. 다음의 GPSGIS 동호회 자료실에 얼마 전에 대마도 DEM 지도가 올라왔다. 그것과 월초에 대마도 부산 사무소의 게시판에서 주문한 지도를 참조해서 간략한 경로 정보를 일단 구성했다. 구글맵과 GPS Trackmaker를 오가며 대강의 도로 윤곽을 만들었다.

아내는 휴가여행 간다고 오랫만에 고기 먹으로 가잔다. 준비할 것들이 아직 많은데...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눈치라 나가서 소불고기에 밥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오후 8시가 넘었다. 밤 10시 30분에는 출발해야 시간을 맞출텐데 뭐 준비해놓은 것이 있어야지. 일단 허겁지겁 전지를 충전기에 걸었는데 10시가 다 되어도 충전이 덜 되었다. 일단 빼내서 가방에 물건들을 우겨넣고 자전거에 실었다. 밤 10시 40분 무렵 황망히 출발.

강변 도로에 이르자 비가 살살 오기 시작한다. 뒷 잔차 두 대가 추월한다. 상대속도는 1~2kmh. 여행만 시작했다하면 다짜고짜 비를 맞는 것은 무슨 징크스일까? 라고 생각하며 한가하게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능력도 안되면서 괜히 추월해가는 잔차를 보니 약이 올라 비 때문에 거의 인적이 없는 도로를 고속주행하기 시작했다.

두 친구는 쌔근하게 잘 빠진 값비싼 자전거와 자기 몸뚱이 뿐이지만 나는 15kg짜리 유사 MTB에 7kg짜리 짐을 얹어 상당히 중량감있게 움직인다. 하지만 시속 23kmh로 달리는 상대를 27kmh로 추월하는 것은 자전거 3년 탄 자존심과 관련이 있다. 쫓아오지 못한다. 하하하. 이런 부질없는 만족감이라니... 강남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비를 흠뻑 맞았다. 1시간 35분 걸렸다. 경부선 버스 타는 곳을 찾느라 좀 헤멨다.

가만, 비상식량과 커피믹스를 챙기지 못했군. 아참, 집 열쇠도! 서두르다 보니 실수 투성이다.

창구에서 이틀 전에 예약한 표를 찾으려고 씨티은행 카드를 내미니 은행 사정으로 서비스가 중단되었단다. 씨티은행이 한미은행과 합병된 후부터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어 3-4개월에 한 번은 민원을 냈다. 예를 들면 기차 시간 임박해서 예매한 기차표를 뽑으려니 은행 전산망이 다운되어 차시간을 놓치거나, 서비스가 지금처럼 일시 중지되거나, 외국에서 거래하려고 보니 불법거래로 의심되어 카드 사용을 중단시키거나, 심지어는 현금이체를 하려는데 은행 전산망이 세 차례나 다운되었다.

예전에 장기 여행을 할 때 씨티은행의 현금카드가 외국에서 현금인출할 때 꽤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만든 적이 있다. 도움은 커녕 국제 현금 카드로 돈을 뽑을 수 있는 ATM을 찾느라 일정을 변경하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했다. 환율이 일반 VISA 신용카드보다 나쁘면서 수수료는 수수료 대로 빠져나가 실질적인 이익이 없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주거래은행으로써 내가 받은 이익이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작년에 아시아나 마일리지 카드를 발급 받으려고 할 때는 주거래은행임에도 카드 한 장 만들려고 생쑈를 다 했다.

오전 12시에 간신히 백업용으로 가지고 있던 현대카드 동양종금 CMA 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아 심야우등 표를 구매했다. 32300원. 이틀에 걸쳐 씨티은행으로부터 엿먹고 나니 월급 통장을 갈아버리자는 결심이 섰다. 우대고객은 무슨 얼어죽을 우대고객이냐.

7/1

자전거를 버스에 실었다. 출발했다. 새벽 3시 버스가 휴게소에 멈춘다.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휴게소로 뛰는 동안 비를 흠뻑 맞았다. 오뎅 하나 사서 먹었다. 저녁이 부실해 배가 고프다. 다시 비를 흠뻑 맞으며 버스에 올랐다.

잠에서 깨니 오전 5시 30분. 부산에 도착. 비가 퍼붓고 있다. 도저히 자전거를 몰고 부산국제여객터미널까지 갈 엄두가 안 난다. 버스에서 내려 자전거를 빼내는 그 잠깐 동안 퍼붓는 비를 맞으니 몸이 으실으실 떨린다. 자판기에서 평생 거의 먹지 않던 따뜻한 커피 한 잔 뽑아 마시고 버스 터미널에 붙어 있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무거운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차곡차곡 내려갔다. 정말 무겁다.



자전거를 지하철에 싣는 것이 아직 법제화된 것 같지는 않지만, 검표기 앞에서 역무원이 제지하지 않는다. 자전거는 장애인석에 실으면 된다. 장애인석은 보통 지하철 마지막 차량 칸(주행 방향의 마지막 칸)에 설치되어 있다. 지하철역의 계단을 어떻게 내려가라는 것인지 몹시 의문이 생기지만 지하철 차량에는 잊지않고 장애인석이 설치되어 있다.

버스터미널과 인접한 노포동 지하철 역에서 부산국제페리터미널이 있는 중앙동 역까지 대략 40여분이 걸린다. 비 때문에 선로가 미끄러워 지하철이 서행한다는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이왕이면 걸죽한 부산 사투리로 안내방송이 나왔으면 좋으련만.

차량 진동이 심해 자전거가 쓰러졌다. 콰당 하는 듬직한 소리가 차량내에 울려퍼지자 자다 깬 사람들이 놀라 흠칫한다. 히히 웃다가 바퀴 사이에 가방을 괘어놨다.

지하철 역 바깥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짐을 비닐로 싸고 우비를 입은 다음 역 바깥으로 나왔다. 국제 페리 터미널이 역에서 몇 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놈에 비.

대아고속해운(부산-대마도간 페리를 운행하는 회사) 에 며칠 전에 대마도행 편도 배편을 예약했다. 그들 홈페이지에는 부산->이즈하라 편도가 65000원으로 나와 있고 왕복이 13만원인데, 히타카쓰->부산 편도는 6900엔으로 적혀 있다. 최근 환율을 고려하면 왕복 배편을 끊지 말고 엔화로 계산해 돌아오는 배편을 히타카쓰에서 끊으면 훨씬 이익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무슨 착각을 했는지 창구 직원더러 왕복 배편을 달라고 했다.



3년 전에 자전거를 산 이유가 일본 여행 때문이다. 여러 나라 여행자들에게 듣기로는 뉴질랜드 다음으로 일본이 자전거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란다. 몇 개월 자전거 사서 연습 좀 해보고 일본에 가려던 계획이 3년이나 미뤄진 셈이다.

첫번째 목표는 대마도, 두번째는 후쿠오카를 기점으로 한 규슈 원점 회귀 코스, 세번째는 후쿠오카에서 오사카/도쿄까지, 네번째는 훗카이도 일주 코스다. 나름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맞은편에 후쿠오카 행 페리 창구가 보인다. 언제쯤 저 곳에 가볼 수 있으려나...

출입국 관리 직원이 자전거 타고 대마도 가냐고 묻는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히죽히죽 웃었다. 괜찮아요. (늘 있는 일인데요 뭐) 짐 엑스레이 검색 중 가방에서 가스통을 발견한 직원이 claim tag를 끊어준다. 가스통은 따로 선적하고 이 claim tag를 내리기 전에 배 승무원에게 보여주면 가스통을 돌려줄 꺼라고 한다.



출국 카운터를 거쳐 배에 올랐다. 십수 년 전에 전국일주를 한 적이 있다. 부산에서 돈이 떨어져 부산역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꿔 기차를 탔다. 하여간 그때는 돈 없이 잘 돌아다녔는데, 대학생 형들 흉내를 냈던 것이다. 그들에게 무전여행은 일종의 자랑스러운 무공훈장이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이후 여행씬은 완전히 달라졌다 -- 국내에서 하던 거지짓을 해외로 확장한 것이다. 나는 그 10년 후에야 간신히 거지(또는 구도자)여행 대열에 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부산 방문은 무척 오랫만이다. 부산에 관해 기억 나는 곳이라야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 자갈치 시장, 그리고 항구 부근의 러시아 간판이 전부지만.

생각해 보니 해운대 해수욕장(?)에 김씨 아저씨와 단 둘이 내려온 적이 있다. 해수욕장에서 썬텐을 해보자는 계획이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썬텐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해변에 누워 비를 맞았다. 암울했다.

아무튼. 예전과 비교해 보면 부산이 엄청나게 큰 도시가 된 것 같다. 저렇게 많은 아파트가 있었나? 저 크레인은 독에서 배를 건조할 때 쓰는 것 아닌가? 아니면 컨테니어 하적용?



8.40am. 배가 출항한다. 빗물이 창가를 적신다. 바깥 풍경이 흐릿하다. 직원들 대화를 들어보니 손님은 모두 150명. 자리가 꽉 차지는 않았다. 그중 자전거를 끌고 온 사람은 나 혼자다. 직원이 좌석 뒷전의 물통을 쌓아둔 곳에 자전거를 거치하면서 원래 자전거는 못 싣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 빗 속에 어떻게 다닐꺼냐고 되레 걱정한다. 완전 무장한 아저씨 둘이 대마도로 낚시여행을 간단다.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단체 관광객인듯 하다.

가이드가 단체관광객들에게 귀미테를 나눠준다. 내 뒷좌석의 아줌마는 배멀미로 혼쭐이 났다. 아이고, 윽, 아이고 하는 작은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배가 상하로 크게 흔들렸다. 뭐 나야 배멀미를 안 하니까 배가 크게 흔들릴 수록 재밌어 했다.

아침에 먹은 커피 때문에 정신이 말똥말똥 한 것이 영 안 좋다. 버스에서 잠을 좀 자두는건데.

멍하니 앉아 있었다. 1시간 40분이 지나 흐릿한 빗속에 섬의 윤곽이 드러났다. 왜 이렇게 빨리왔지? 2시간 40분 걸린다더만. 배가 정박하기 전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카운터에 가서 클레임 태그를 보여주니 가스통을 돌려준다.

너무 일찍 도착해 약간 어리둥절한 가운데 이즈하라 항에 닿았다. 비가 내린다. 자전거가 걸리적거려 짐이 많은 낚시꾼 아저씨 둘과 함께 마지막으로 내렸다. 평소 입출국할 땐 다람쥐처럼 빨리빨리 움직였는데 이번에는 안하던 실수를 한 셈 -- 입국수속에만 40여분이 걸렸다.

입국장이 달랑 건물 한 동으로 두 명의 입국 심사관이 참 꼬치꼬치 살핀다. 건물이 허름하고 영어가 안 통해 흡사 제3세계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입국심사관이 어디서 묵을꺼냐고 묻는다. 프린트해 둔 '캠핑장 예약 신청서'를 꺼내 보여줬다. 손짓 발짓으로 미우다 캠핑장은 지금 문을 열지 않았단다. 이이에, 나이. 젠장. 일어 공부를 좀 해뒀어야 하는데.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없잖아. 결국 고개를 끄떡인다.

입국장 바깥으로 여전히 비가 내린다. 짐을 비닐로 잘 싸고 우비를 챙겨 입었다. GPS를 켜니 아직 위성 신호를 잡지 못한다. 3-4분 빗속에서 기다렸지만 여전하다. 간신히 시그널이 잡혔다. 뭔가 좀 이상하다. 집에서 GPS Trackmaker로 입력한 waypoint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즈하라 항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내 중심쯤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져지로 갈아입고 우비를 걸친 후 짐을 다시 챙겼다. 지도를 살펴 이즈하라 항의 시내 윤곽을 그려보았다. 자전거로 시내를 서너바퀴 돌아봤지만 알만한 지명이 눈에 띄지 않는다. 뭔가 좀 이상한데?



다리에 올라 이즈하라 항을 쳐다 봤다. 시내가 지나치게 작다. 적어도 남북으로 1km 이상되고 시내를 관통하는 382번 도로와 몇몇 지방도가 겹쳐야 하는데...



이렇게 작은 항구가 이즈하라 항이란 말인가? gps에 aziro가 찍힌다. 아, 아는 지명이다. '아지로의 연흔'이구나. 일단 오늘은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까지 갈 예정인데, 이즈하라 시내에서 30km 가량 떨어져 있고 자전거로 한두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니 이즈하라에서 관광 좀 하며 빈둥거리다가 천천히 가도 되겠지 싶어 일단 아지로의 연흔을 찾아갔다.



신선한 삼나무숲 한가운데 억수로 쏟아지는 비 때문에 범람한 작은 개울이 흙탕물을 튀기며 흐르고 있다.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원시 천연림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내음. 하늘을 가린 숲 속을 가로지르며 아기자기하게 이어진 구불구불한 도로가 꽤 재밌다. 재밌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아지로의 연흔. 화강암에 새겨진 파도의 흔적. 멀리 항구를 떠나는 배(타고왔던 배)가 보인다.



파도가 약해 바닷가를 첨벙거리며 걸었다. 파도의 흔적이라고? 흠... 암석의 한층에 난입된 다른 층이 켜켜이 쌓이며 압축되다가 조산작용으로 일부분 바닷가에 노출되 약한 층이 파도에 깎인 것이 아닐까..



거대한 통짜 바위에 조가비 껍질이 다닥 다닥 달라붙어 있다. 물이 몹시 맑다.

이즈하라 항을 중심으로 지형지물을 파악하기 위해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도무지 알만한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쯤에는 반쇼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쯤에는 하치만구 신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네? 혹시 내가 GPS Trackmaker로 작업하는 도중에 waypoint가 엉뚱한 곳으로 옮겨가 버린 것이 아닐까?



골목길 사이를 헤메다 빗 속에서 찍은 사진. 바다로 향하는 저 작은 개울에 물고기들이 오락가락한다.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어 흡사 유령도시 같다.

한 시가 좀 넘어 시장기가 돌았다. 어젯밤부터 먹은 것이 거의 없어 배가 고프다. 이즈하라에서 헤메는 것은 관두고 이제 슬슬 아소베이 파크로 향해야겠다. GPS가 쓸모가 없으니 일단 382번 도로를 따라가보자. 그래서 시내를 뺑뺑이도는 짓을 그만두고 북쪽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가다보면 뭔가 나오겠지.

가는 길에 'VALUE'라는 커다란 할인매장이 나타났다. 아직 환율이 익숙치 않아 계산이 잘 안되지만 100엔을 대략 760원으로 계산해서 매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물가와 비교했다. 의외로 한국의 물건 가격과 큰 차이가 없다. 파 한단에 140엔 즉 1000원 가량. 서울에서는 700원 정도. 인스탄트 라면 한 봉이 80엔 가량(600원). 도시락 500엔(3800원). 반찬이 대략 200-300엔. 밥 한 공기가 100엔 가량. 반찬 두어가지와 밥을 사느니 도시락 하나 사 먹는 것이 가격대 성능비가 좋아 보인다. 과일은 몹시 비싼 편이다.

음료와 도시락을 하나 사들고 카운터에 가니 계산해 주면서 예쁘게 포장 해주고 얼마얼마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계산대에 가격이 표시되니 굳이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다. 사실 준비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내가 아는 일본어는 몇 개 되지 않았다. 딴지일보에 따르면, 일본어는 '도조' 한 마디만 알아도 여행이 가능하단다. 그보다 약간 더 많은 단어를 알았다.

스미마셍 (실례합니다)
이쿠라 데스까? (얼마에요?)
이치,니,산 (1,2,3, 그 다음은 모른다. 안 외웠다 -_-)
오하이오/곤니치와/곰방와(아침,점심,저녁 인사)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혼또니 아리가또[고자이마스] (매우 감사합니다)

도조 (뭘요)
도조 (괜찮습니다)
라멘, 도조 (라면 주세요)
고레, 도조 (그거 부탁합니다 -- 뭔가 주문할 때)
이즈하라, 도조 (이즈하라가 어디에요?/이즈하라로 부탁합니다 -- 어딘가 가고 싶을 때)

사실 아는 일본어라고는 웃쓰, 야메떼, 이이에, 오네상, 이따이 정도였다.

근처 한적한 공터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일본에 대해 배운 상식 중 한가지는 콘비니(편의점)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뭘 사든 바깥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도 다 그렇게 하니까 거지같아 보여도 기죽을 것 없다. 그런데 아무도 공터에서 음식을 까먹지 않았다. 왠지 거지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꿋꿋이 밥을 먹었다. 이게 바로 문화적 차이란 거야.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문화에 적응해야지.

이즈하라 시내를 배회하다보니 왼쪽 차도로 가는 것도 대충 익숙해진 것 같다. 2년 만에 해외여행이라 기분이 달뜨기도 했고 점심 먹는 내내 마치 축복이라도 해주듯이 비가 멎어 아, 이제는 날이 개이는구나 싶어 앞으로의 4박 5일 여행이 기대되었다. 도시락이 아주 맛있다. 일본인들은 쌀밥을 참 정성들여 지었다. 이런 싸구려 종합선물세트 도시락의 밥맛이 평소 한국의 왠간한 음식점에서 먹는 밥맛보다 좋다니 참 어이가 없다.

밥도 다먹고 기분도 좋아 이제 슬슬 출발하려고 주위를 둘러봤다.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에는 내가 빠져 나온 곳이 'Hitakatsu'라고 적혀 있다. 히타카쓰 라니? 말도 안되잖아? 하하하. 그러다가 등골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혹시...? 지갑에서 배표를 꺼내보았다. 배표에는,


Busan -> Hitakatsu


라고 크게 적혀 있다.

허걱. 그럼 여태까지 헤메던 저 곳이 이즈하라 항구의 완전 반대편인 히타카쓰란 말이냐? 가슴이 철렁했다. 때마침 극적으로,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다시 VALUE의 처마 밑으로 허겁지겁 자전거를 몰고가 벤치에 앉아 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인지 되집어 보았다.

나흘 전, 인터넷으로 대아해운고속 사이트에 접속해 이즈하라행 토요일(6월 30일) 배편을 예약하려고 했다. 대마도행 배편은 아직 인터넷으로 예약이 안된다. 그날은 만석이란다. 그럼 일요일은요? 일요일엔 배편이 있단다. 오케이 그럼 그걸로 예매해 주세요. 몇 시에 출발이죠? 오전 8:40분입니다. 이즈하라행 배편은 보통 오전 10:40에 떠나는데 홈페이지에 적힌 스케쥴이 틀린 거였군. 아마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배가 증편된 것이리라. 그보다 급한 것은 닷새 전에 예약한 캠핑장 3곳의 도착 일자를 수정해 다시 국제 팩스를 넣어야 한다.

1주일 전 대마도 부산 사무소에 문의해 보니 캠핑장에서 숙박하려면 캠핑장에 예약이 필수란다. 속으로 그럴리가, 하다가 어떤 여행기에서 캠핑장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을 때 관리인이 퇴근하고 없어서 캠핑을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인은 집요하게 룰을 중시해 룰에 어긋나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일본 문화 특유의 괴상한 풍속에 관한 글을 읽기도 했다. 문화적 차이니까 괴상하다고 말하지 말자.

사무실에 팩스가 없어 팩스를 보내려면 근처 문방구에서 한 장에 500원씩이나 하는 팩스를 보내야하는데(500원은 국내용 단가다. 해외는 단가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인터넷 여기저기 검색해 인터넷으로 국제 팩스를 보내는 사이트 몇 군데를 알아뒀다. http://fax.empas.com

그런데 그날 공교롭게도 국제팩스 보내는 사이트를 비롯한 다수의 사이트가 중국의 개떼같은 해킹 공격에 당해 사이트가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팩스를 보내는데 4시간이 걸렸고 그나마도 실패해서 그 다음날 다시 간신히 팩스를 보낼 수 있었는데(업무 시간에 이런 짓 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이제 그렇게 예약한 것을 취소하고 다시 팩스를 보내야 한다.

팩스를 보낸 후 confirm fax를 그쪽에서 보내주는데 팩스를 받을 형편이 안되니 대마도 부산 사무소로 컨펌 팩스를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대충 컨펌이 났는데, 어제 예약을 취소하고 예약 일자를 하루씩 미룬다는 것을 일본어로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 캠핑장 예약 신청서의 비고란에 영어와 일어를 뒤죽박죽 섞어 다시 작성한 것을 인터넷 국제 팩스 사이트를 통해 보냈다. 부가세 포함해 장당 220원이다. 그런 팩스질을 3차례에 걸쳐 3군데에 보내고 다시 컨펌받는 복잡한 절차를 거친 것이다. 이런 간단한 일거리인데도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팩스 보낼 걱정 때문에 배편이 이즈하라 도착인지 히타카쓰 도착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배표를 받아들었을 때도 확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도착하면 어떻게 되겠지, 뭐 준비한 것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GPS에 입력한 좌표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을 때도 내가 좌표점들을 잘못 입력했거니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젯밤부터 줄기차게 쏟아지는 재수없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기억이 맞다면 히타카쓰에서 아소베이 파크까지는 고저차를 고려하지 않고 대략 80km다. 하루에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만약 여행일정을 변경해 히타카쓰에서 이즈하라로 역순으로 내려간다 해도 마지막 날에는 히타카쓰로 되돌아와야 한다. 차라리 그보다는 하루 일정 까질 각오로 아소베이 파크로 가서 히타카쓰로 올라오는 편이 낫다.

결심이 서자 자전거에 올랐다. 오후 2시다. 멍청하게 히타카쓰 시내를 한가하게 배회하지 않고 상황판단을 제대로 했어도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여행 나와서 기분이 좋아 헤벌레 하고 있다보니 이런 이런...

어차피 gps보고 미리 설정해 둔 경로를 트랙백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도를 보고 히타카쓰에서 아소베이 파크까지 가는 가장 편한 길로 보이는 39번 해안도로를 타기로 했다. 주욱 가다가 382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382번 국도를 타고 조금 진행하다보면 아소베이 파크가 나타난다. 출발했다.

비가 참 살벌하게 내린다. 쓰시마의 여름철 7,8월 평균 강수량이 350mm란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 속에서 사실 걱정꺼리는 하나 밖에 없었다. 자전거의 체인과 구동부에 스며든 물이 녹을 만들어 체인을 뻑뻑하게 해서 주행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39번 해안도로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비가 이렇게 억수로 퍼붓는데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삼나무 숲과 도로에 연접한 개울이 졸졸 흐르는 1차선(한국에서의 1차선 개념이 아니라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도로폭 정도의 1차선) 지방도는 제주도의 1100 도로, 516 도로를 연상시켰다. 아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로는 처음 봤다. 해안선을 타고 가다가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해안으로 나오는 길이 계속 반복된다. 표고차가 40m 이내라 주행이 쉽다. 흡사 자전거 여행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로같다. 10분에 한 대 꼴로 간간히 지나가는 차량들은 친절하게도 속도를 늦추거나 물을 안 튀기려고 크게 우회해서 자전거를 지나친다. 일본인들의 운전 매너가 훌륭하다.


Video: 쓰시마 39번 국도

이렇게 훌륭한 도로가 있는데 어째서 한국의 자전거 동호회에서 대마도 원정 자전거 여행이 드문 것일까? 쓰시마의 39번 도로에 비하면 제주도의 12번 해안도로나 한국의 동해안 해안 도로는 고개를 수그려야 할 판이다.

잠시 쉬면서 개울에 손과 발을 담궜다. 비가 하도 내려 우비 속까지 척척하게 젖었다.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에 시간내에 도착하긴 글렀다. 벌써 6pm. GPS의 sunset 타임을 보니 7.30pm에 해가 진다. 비가 잠시 그쳤다. 1km만 달리면 항상 나타나는 자판기 앞에서 잔돈을 꺼내 음료수를 뽑아 먹었다. 500ml짜리 탄산음료 한병에 150엔. 한국돈으로 1200원 가량. 물은 120엔. 그렇다면 누가 미쳤다고 물을 사먹나? 30엔만 더내면 비타민씨가 듬뿍 든 기능성 음료를 마실 수 있는데.

배는 고픈데 먹은 건 없고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니, 그야말로 서바이벌 분위기가 물씬 난다. 작은 어촌 마을에 멈춰 어느 창고 처마 밑에서 오늘 예정은 가볍게 관광이나 하고 즐기다가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텐트치고 누워 mp3나 들으면서 스르르 잠드는 것이 일정 아니었나? 내 팔자에 그런 로또같은 하루가 있을리가 없지 신세한탄 하다가 흘낏 옆을 보니, 수퍼가 있다. 빙고. 이것이 바로 서민의 5천원짜리 로또 당첨이 아니고 뭐겠나. 알맞은 때에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되다니. 하하. 수퍼에서 롯데 크런치 초콜렛 2개를 사서 하나를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빗물 때문에 쫄닥 젖어 이건 뭐...

자전거 앞에 트럭이 멈춘다. 트럭 짐칸에 아무 것도 실려 있지 않다. 운전수에게 부탁해 자전거를 싣고 아소베이 파크까지 직행하는 방법이 있다. 자동차로 가면 얼마 걸리지도 않고 돈을 받아봤자 몇푼깨나 하겠나? 어쩌면 불쌍한 나머지 공짜로 태워줄 지도 모르지. 태워 달라고 해, 말어? 천둥번개가 콰과광 울렸다. 트럭이 떠났다.

아무리 빈둥빈둥 관광을 부르짖어도 지난 십수년간 써바이벌 아닌 관광은 해본 적이 없다. 빌어먹을 빗물과 함께 운명을 받아들이자. 히치하이킹은 관두고 그냥 가자.



비가 잠시 멎은 틈에 전봇대에 매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쓰시마에 온 후로 온 사방에 매와 까마귀 투성이다. 평생 매 울음소리는 몇 번이나 들어보게 될까? 어린 시절에는 시골에 살아 병아리를 채가는 매를 자주 보았다. 그후로 주욱 못 보다가 안데스의 산악 지방에서 매와 흡사하게 움직이는 콘도르를 보았다. 천미터가 넘는 절벽의 틈새에서 활강하는 콘도르. 매, 콘도르 따위가 상승기류에 저항하며 공중에서 stance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날개를 살짝 살짝 틀어가며 제자리에 멈춰선 채 지상을 기어다니는 먹잇감을 뚜러지게 노려보다가 갑자기 날개를 비틀어 쏜살같이 땅으로 쳐박히듯이 빠른 속도로 활강한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떠오르면 어느새 발톱 사이로 꿈틀대는 무언가를 낚았다. 그러고서는 석양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 이건 내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보곤 하던 광경이다. 서울 도회 촌뜨기들은 그런 우아한 모습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매의 눈에는 내가 땅 위를 꿈틀꿈틀 기어가는 조금 큰 지렁이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제 좀 날이 개려나? 기지개를 펴고 자전거에 올랐다. 왠걸. 다시 퍼부어 대기 시작한다. 10분 쉬고 50분 퍼붓는게 참, 학교수업마냥, 또는 군바리 훈련처럼 주기적이다. 해안에 인접한 39번 국도는 비록 고저차가 40m 내외지만 급격한 헤어핀 구간이 많다. 차가 거의 안 다니니 날이 맑으면 평속 40~50kmh로 다운힐에서 브레이크 감속 안하고 주행이 가능하지만 빗길이 미끄러워 여지없이 브레이크를 잡게 된다.

쓰시마에 오기 전에 브레이크 패드 걱정을 했다. 뒷 브레이크의 패드가 거의 다 닳아 wear line이 거의 사라진 상태인데 이렇게 계속 브레이크를 밟아대면 나중에 브레이크가 듣지 않을 것이다.

시험삼아 평지에서 앞/뒤 브레이크를 끝까지 당겨 보았다. 빗물 코팅이 된 아스팔트 도로에서 주아악 미끄러지며 30m 이상 나간다. 그러고도 완전히 정지하지 않는다. 허걱. 이거 좀 위험한데? 여분의 브레이크 패드를 챙겨오지 않았다. 진부령에서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신나야 할 다운힐 구간에서 끌바(자전거 끌고가기)를 해야만 했던 눈물겨운 사연을 자전거 동호회에서 본 적이 있다. 비지땀을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꼭대기 휴게소까지 올라가서 자전거를 끌고 내려와 봐라. 그저 허허 웃음 밖에 안 나오지.

382 국도로 들어섰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382 도로로 들어서자 길이 넓어졌다. 갓길도 제법 있고 차량 소통량이 늘었다. 하지만 길은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졌다. 흐린 날이라 금방 어둑어둑 해 졌다.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 입구에 다다랐다. 7pm. 대략 5시간쯤 달린 셈이다. 비가 안 왔더라면 더 일찍 도착했을 것이다. 이즈하라에서 히타카쓰까지 대략 100km 가량, 자전거로 하루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물론 그렇게 달리면 정말 재미가 없을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온거지 자전거 '주행'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관광이란 말이다!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 입구는 쇠사슬로 막혀 있다. 통행 금지. 6pm에 캠핑장이 문을 닫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예약을 했고 예약을 했으니까 관리인이 기다려주거나, 캠핑장 안에 들어가 캠프를 하는 것이 워낙 당연하게 여겨져 자전거를 쇠사슬 너머로 넘겼다. 일단 캠핑 후, 저간 사정을 빌자. 옆 샛길에서 짐차가 나타나더니 백밀러로 흘낏 보고 올라간다. 아, 저 아저씨가 관리인이구나. 저 트럭을 쫓아가면 되겠구나! 고개를 한 두 개 넘어 헉헉 거리며 올라가니 캠핑장 관리 사무소가 나타난다.

아저씨가 반겨준다. 일본어로 인사했다. 곰방와! 굿 이브닝! 자랑스럽게 캠핑 예약 신청서를 내밀었다. 말은 안 통하지만(나는 영어로, 그 아저씨는 일어로 서로 유려하게 말했다) 팩스, 레저베이션, 예야꾸(예약), 캠핑, 투데이, 투모로우 정도는 서로 대화가 통해 내가 여기서 2박을 머무를 예정이라는 것을 아저씨가 알아 들었다. 그런데 컨펌까지 받았는데 예약된 것이 없다. 다시 신청서를 작성했다. 뭐 예약에 무슨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캠핑장 예약 신청서'는 떳떳한 부적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1박 캠핑이 1000엔이란다. 600엔으로 알고 있는데요? 600엔은 없고 차량용 캠핑 코너가 1000엔이란다. 떨떠름하지만 오케이. 2박 2000엔을 건넸다. 아저씨가 차를 몰고 캠핑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더니 화장실을 보여준다. 샤워 오케이. 토이레(toilet) 오케이. 레인?, 레인!, 뭐 이런 제3세계 스러운 대사를 주고받았다. 아저씨 말은 비가 오니까 지붕이 있는 화장실 구석에 텐트를 치란다. 그러면서 비가 그치면 내일은 저기 오토캠핑장으로 텐트를 옮기라는 것 같다. 오케이. 하이. 예스.

빌어먹을. 제대로 된 일어 공부 좀 하고 오는 건데... 도서관에서 기초 일어회화 책을 빌려왔는데 '와따시와 한코쿠진 데쓰', '와따시와 나마에 산돈데쓰' 같은 하등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대사 밖에 없다. 시계가 있는데 시간은 물어서 뭣하고 뻔히 아는 물건 더러 '고레와 난데스까?' 하는 바보스러운 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 회화책, 하루 봤다. 하룻동안 외운 것은 아이우에오, 카키쿠케코의 히라카나 글자 모양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것 정도다. 비를 많이 맞으니까 이젠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니까 일본어 글자도 못 읽는다 -_- 그동안 업무에 시달리느라 바빴고 밀린 책들 읽느라 바빴다. 어떻게 되겠지 하고 왔는데 정말 어떻게 되긴 된다. 하지만 독도, 위안부, 일본의 최근 우경화 성향에 관한 현지인과의 진지한 토론은 못 하잖아?



노심초사 끝에 옥션에서 3만 5천원 주고 구입한 1인용 낚시 텐트. 15만원짜리 비박용 텐트가 있긴 하지만 누에고치처럼 안에 들어가면 꼼짝 달싹도 못하는 바보스러운 텐트에 눕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정적으로 그런 텐트는 1kg이 넘는데 비해 이 텐트의 무게는 750g 밖에 안 된다. 750g인데 내부는 한 사람이 충분히 눕고도 여러 짐들을 안에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다. 폴대만 밀어 넣어 교차시키면 모기장 텐트가 완성되고 그 위에 플라이를 씌우면 방수 커버가 된다. 텐트의 방수 성능을 순진하게 믿지는 않아서 넓고 얇은 비닐을 함께 들고 왔다. 여러 모로 흡족한 텐트다.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 기본적으로 오토캠핑장이다. 자동차 들여놓고 저 나무판 위에 텐트를 설치한다. 사이트 하나 마다 장작을 지필 수 있는 바베큐 그릴이 있고 그 옆에 110V 아웃렛이 달려 있다. 220V->110V 컨버터 플러그만 있으면 얼마든지 충전이 가능하다. 공동 취사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쓰시마가 그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서 이용객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관리 상태는 상당히 좋다.



무려 23000원이나 주고 구입한 1인용 산악 코펠. 달랑 냄비 하나, 플레이트가 전부인데 무게가 가볍고 길죽하게 생겨 짐을 챙길 때 용적을 덜 차지한다. 수저와 젓가락, 버너 등을 코펠 안에 넣을 수 있어 좋다. 군대에서 라면 끓여먹을 때 쓰는 짬빱통이 더 싸고 훌륭하지만 시장통 돌아다닐 시간이 없어 인터넷으로 값비싼 것을 구입했다. 물론 철밥통보다는 무게가 현저하게 가볍다.

그 위에 17000원 짜리 초소형 미니 버너가 있다. 이건 잘못 샀다. 히타카쓰에 도착해 여기저기 수퍼에서 가스통을 찾아 봤는데(없을꺼라 짐작하고 한국에서 가스통을 구입해 오긴 했지만) 한국에서 휴대용 렌지에 쓰는 가스통은 많이 있지만 버너를 돌려 나사로 결속하는 형태의 저런 둥근 가스통은 두 가게를 돌아보는 동안 보지 못했다. 낚시점은 안 가봐서 모르겠다. 차라리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형태의 가스통에 장착이 가능한 버너나, 일반 가스통을 장착할 수 있는 어댑터가 포함된 버너를 사는게 나았을 것 같다. 작은 크기임에도 화력이 꽤 좋아 성능에 불만은 없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도시락이 전부라 라면을 끓였다. 예전에 일본의 인스탄트 라면을 여러 종류 먹어봤는데 도저히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희안한 맛의 라면들이라 라면 맛은 기대하지 않았다. 공동 취사장의 그릴에는 장작을 뗄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장작들이 젖어 있고, 보통 캠핑장에서 장작은 공짜가 아니니 그냥 가스 버너로 해먹는게 낫지 싶다. 밥을 해 먹을 때는 가스버너보다 장작 쪽이 훨씬 맛있게 밥이 된다. 거기다가 소세지, 옥수수, 감자, 통 돼지고기 따위를 구워 먹으면... 츄릅.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오네... 여행 중에 주방을 빌려 밥을 해먹은 적은 많지만 캠핑을 해 본 지가 십 년이 넘어서 캠핑용 기어를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요즘 캠핑 장비는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좋아진 것 같은데...



워낙 가난한 캠핑만 해봐서(어린 시절에도 혼자 다녔다. 얘들을 몇번 데리고 태백산맥을 헤메고 나면 다시는 같이 안 가려 들었다. 늘 비를 몰고 다녔고 늘 여지없이 개고생을 한 탓도 있다) 당시에 들고 다닌 음식이라곤 쌀 한 주머니, 고추장 한 덩이 정도가 고작이다. 나중에 생활이 펴서 라면도 들고 다니고 인스턴트 카레 따위도 들고 다녔다. 다 어린 시절 얘기다. 이건 사제 스프다. 멀쩡한 라면 뜯어서 스프만 챙겨 들고갈 수는 없고, 예전에는 라면 스프만 따로 팔았는데 요즘은 안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라면 스프를 만들었다. 마늘가루 있으면 넣고, 다시다 가루, 멸치, 다시마, 새우 약간, 소금 왕창, 후추 약간, 고춧가루 왕창 넣고 블랜더에 함께 갈아낸다. 거기에 마른 오징어, 표고버섯, 다시마 따위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으면 완성이다. 일종의 천연 조미료인 셈이다.



일본 면발에 사제 스프로 끓인 라면. 삼양라면 맛이 난다. 신라면같은 칼칼한 맛을 내려면 청양고추를 냉동 건조시킨 다음 바짝 말려서 블랜더에 같이 갈아야 하는데 뭐 그럴 시간은 없고 적어도 일본의 인스탄트 라면 같이 느끼하고 한 입 먹으면 괜히 먹었다 이 닦고 그냥 잘 껄 하는 기분은 안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 나는 라면이 완성되었다.

라면 끓여먹고 젖은 옷을 빨아서 짰다. 9pm.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한 이틀 제대로 잠을 못잤더니 피곤하다. 잠이나 자자 누웠지만 말똥말똥. 평소 새벽 2-3시에 자던 사람이 9pm에 자려니 잠이 오겠나.

아소베이 파크에 오기 전에 마땅한 수퍼가 보였으면 술이나 몇 병 사오는 건데. 너무 늦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왔더니 달랑 라면 하나와 먹다 남은 크런치 초콜렛 밖에 먹을 것이 없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구한 지도. 요점 정리가 잘되어 있어 원작자에게 감사하다. 하타카쓰는 맨 위, 아소베이 파크는 중간 아래 '대산'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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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 무렵인데도 찌는듯이 덥다. 반포대교를 건너 터미널로 진행, 평속 22kmh로 밟아 대략 1시간 안에 도착. 평창 여행할 때 봐두었던 개구멍으로 잔차를 몰고 버스 스탠드로 진입. 휴가철이라 창구마다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얼른 예매한 표를 끊고 십여분 시간이 남아 롯데리아에서 저녁으로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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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차를 버스 짐칸에 밀어놓고 예약한 1번 자리에 가니 아줌마가 앉아 있다. 멀미 때문에 그러니 자기 자리로 가 줄 수 있겠냐고 한다. 설렁설렁 고개를 끄떡이고 그 자리에 가니 사람이 앉아 있다. 표를 보여준다. 그 자리가 맞다. 원래 내 자리에 앉아 있는 아줌마는 그럴리가 없다며 자기 표를 보여준다. 다음날 표다. 보통은 내렸다가 자리가 남으면 차에 오르는데 원래 자리 주인을 통로에 세워두고 자기는 자리에 앉아 승객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린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그만큼 야만스럽다.



전라도에 들어섰다. 해가 지고 있다. 용광로에서 방금 꺼낸 동전처럼 새빨간 해가 산허리에 걸려 있다. 떠나온 서울의 최고 기온은 34.7도. 여러 차례 관찰한 결과 하늘에 해가 떠 있을 때는 해가 있는 방향에서 맞은편으로 바람이 분다. 그러니까 해를 향해 페달질을 하는 것은 도발적이다. 원래는 강진에서 내려 하룻밤 묵고 해남으로 가서 하룻밤 묵고 목포로 가는 코스를 생각했으나 해와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서 순리대로 해남에서 출발해 강진에 도착하는 것으로 바꿨다. 대략 90km 가량이니 5시간 주행거리인데 아침에 나서서 정오가 되기 전에 땅끝을 통과한다. 그렇게되면 해를 등지고 한 두시간 더 가면 강진에 이르게 된다는 계산이다.

iSilo로 강진 정보를 담은 텍스트 파일을 열어보려고 애썼다. 잘 안된다. 파일을 UTF-8로 저장해 놓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십여분 삽질하고 나서 간신히 읽게 되었는데 휴대폰의 여분 배터리를 챙기지 않은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그런데 숙소정보가 없네? 휴대폰의 배터리는 절반쯤 남았다. 아껴 써야지. 이번 여행에는 pda를 들고 오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일정관리를 하고 정보를 담고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런데 별 정보를 담지 않았다. 읽을꺼리 역시 챙겨오지 않았다. 장마 동안 내가 준비랍시고 한 일이 그렇지 뭐.

해남에 도착. 서울과 달리 선선하다. 맛집이라는 청운정이 버스 터미널 옆에 붙어있다. 터미널 옆에 찜질방도 보인다. 하지만 해남군 외곽의 녹주 맥반석 싸우나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으므로 잊어버리고 군 외곽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녹주 사우나에서 묵으면 아침에 7km를 세이브할 수 있다. 다, 계산한 것이다.

군 바깥으로 나오니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 야트막한 산 밑으로 가열된 대지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수증기가 안개처럼 펼쳐져 있다. 불빛 하나 없는 고적하고 어딘가 음산한 1차선 도로를 달리니 나도 모르게 심박수는 물론 패달질이 빨라진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도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기다란 빛의 경로가 새겨진다. 안개가 낀 밤, 노란눈을 한 늑대가 먹잇감을 잡으려고 달려오는 듯한. 키가 크고 음침한 가로수, 안개처럼 피어난 수증기 속에서 거뭇거뭇 보이는 숲. 녹주 싸우나는 시내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민박촌에 있다. 길이 잘 안 보여 도움이 안되는 전조등을 깜빡이며 컴컴한 길을 위태위태 달려 싸우나에 도착해보니 내부수리중이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낭패다. 아니 계산상 착오다.

근처에 민박집이 여럿 불을 밝혀놓고 있지만 몇만 원씩 하는 민박집에서 묵기는 좀 버겁고, 핸들을 돌려 시내로 향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가 건 안부 전화다.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컴컴한 도로 한 복판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시내에 도착해 터미널 맞은편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 옆 찜질방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네 대의 자전거가 서 있다. 짐받이에 침낭 따위를 묶어놓은 것을 보니 여행중인가 보다. 들어가서 아는 척 해 봐야지. 하룻밤 자는데 6천원, 간단히 샤워하고 찜질방 안에 들어서니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다. TV 뒷편에 자리잡고 눈을 붙였으나 애들이 PC에서 인터넷과 게임을 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담배 피우러 찜질방 옥상에 올라왔다.

7시에 일어났다. 간신히 두세 시간 잔 것 같다. 찜질방에 올 때마다 매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찜질방 주인 아저씨에게 근처 먹을만한 밥집을 물었다. 식당에서 5천원짜리 백반을 시키니 13가지 반찬과 재첩국을 갖다준다. 반찬이 너무 많은데... 반찬이 약간 짜다. 단백질이라고는 조기 한 마리와 재첩국 달랑 둘 뿐. 생선젓 마저 보이지 않는 잔디밭 식단. 반찬 가짓수만 많아 남은 음식 쓰레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걱정되는 밥상이다. 남도의 한상 가득한 밥상이 있는 그대로 즐기기엔 부담스럽다.

밥 먹고 8시 출발. 어젯밤 찜질방을 찾으러 갔던 으시시한 그 길을 따라갔다. 그늘이 거의 없어 아침해가 옆얼굴에 그대로 햇살을 쏟아부었다. 아침나절부터 땀이 난다. 논밭이 즐비하게 펼쳐진 별로 인상에 남을 것이 없는 길을 달렸다. 가끔 습지가 보였다. 낚시 채널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와 남도의 제 고향을 방문해 논밭 사이로 갈대와 억새가 무성한 습지에서 어린 시절에 하듯이 낚시질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가 하룻밤 동안 잡은 물고기는 붕어 서너 마리, 팔 다리에는 모기에 물어뜯긴 상처가 즐비하게 돋았고 아침해에 얼굴은 쾡하니 초췌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추억을 곱씹으며 고향에 돌아와 낚시하니까 좋았노라고 웃는다. 낚시 채널은 늘 그랬다. 개고생하고 성과는 쥐꼬리만하지만 낚시꾼들은 웃는다.

이번 주행 복장 역시 수영복이다. 수영복에 상의만 져지를 입었다. 작년에 옥션에서 산 2만원짜리 싸구려 져지 상의인데 색깔이 등산복처럼 어둡고 탁해서 마누라는 영 없어 보이는 복장이라고 말한다. 방수가 잘되고 땀이 잘 마른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해외 여행을 가기도 하는데, 그깟 없어 보이는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있어 보이려면 30-40만원 든다. 정말 있어야 입는 제대로 된 져지 말이다.

느적느적 갔다고 생각했지만 평속은 꾸준히 23-25kmh를 넘나들었다. 채 10시가 안되었는데도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10시 조금 넘어 청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해변으로 용감하게 걸어갔다. 상의를 벗어 모래밭에 던져두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물이 맑다. 자맥질을 하며 몸의 열기를 식혔다. 아, 좋다.



30여 미터를 걸어도 물이 허리께까지 밖에 차지 않았다. 어젯밤에 통통한 반달을 보았다.



짐을 풀기 귀찮아 휴대폰의 130만 화소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영 구리다. 지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표정 곳곳에서 야만스러움이 넘치는 한국인 같다.

그늘에 앉아 몸에 묻은 물기를 말렸다. 즐겨먹는 폴라포를 하나 샀다. 관광지 스럽지 않게 제값(500원)에 판매한다. 들고갔던 MP3P에 새로 산 AAA 전지를 넣고 라디오 방송을 잡아보려 했지만 잡음이 심하다. 어쩔 수 없이 MP3를 틀었다. 가뿐하다.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출발.

청호 해수욕장을 벗어나자 마자 해발 0m에서 55m까지 올라간다. 땀이 비오듯이 쏫아졌다. 아침부터 그늘 한 점 없는 도로에서 직사광선의 위력을 체감 중. 하지만 아직은 기온이 30도를 넘기지 않은 듯하다. 허덕허덕 헐떡이다가 기어비가 1:1까지 내려간다. 땅끝 까지 산 하나를 넘는 것이다. 1년여를 자전거를 탔어도 이런 언덕 하나 가뿐하게 넘지 못하다니 자괴감이 생긴다.

땅끝에 도착. 도로에 차가 밀려 서행 중. 이 더위에 땅끝 전망대에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싶어 차량 진행 관리 하는 사람에게 물어 완도쪽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비오듯 땀을 흘리는 내 얼굴에 안타까운 듯이, 여기서 내려 오신 길을 다시 올라가 중턱의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됩니다 라고 말한다. 중턱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왔다. 잠시 땀을 식히고 싶은데 그늘이 없는게 문제지.



도로를 따라가면서 '전망 좋은 곳 앞으로 300m' 같은 게시판을 자주 보았다. 땅끝 전망대 밑의 바글거리는 주차장과 달리 여기서도 남쪽 바다를 쳐다볼 수 있다. 뜨거운 날씨에 증발한 해수 때문에 어차피 먼 바다를 보기는 글렀다.



물론 여기도 땅끝이다.

완도쪽으로 방향을 틀어 보통 해발 20m에서 45m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햇살이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그늘 한 점 없는 도로에서 본격적으로 쏟아붓는 열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니 냄비 속에서 황기, 대추, 마늘, 밤 등 갖은 양념과 함께 팔팔 끓고 있는 닭 한 마리가 생각난다. 어디 좀 쉬어갈 곳 없을까...

12시 조금 넘어 사구미 해수욕장 팻말이 나타난다. 갯펄과 흡사한 해변, 고운 모래 때문에 물이 탁해 보인다. 여기저기 수초가 돋아있고 바닥은 잔 진흙층으로 미끌거린다. 하지만 시원한 바닷 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살 것 같다. 아까 송호 해수욕장에서 입고 있던 수영복 속으로 모래알이 박혀 엉덩이가 들쑤신다. 천원 주고 샤워장에서 옷을 빨고 샤워했다.



근처 가게 앞 시원한 그늘 평상에 앉아 담배 한 모금 빨았다. 휴대폰이 열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땅끝에서 사진을 찍은 후 계속 액정이 켜져 있어서인지 전지가 다 소모되어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셧다운되었다. 휴대폰을 사 놓고 충분한 튜닝을 거치지 않아 아직 불안정하다.

다시 출발해야지? 해가 하늘마루에 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지나가는 차량을 제외하고 거리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도로 갓길에서 생태계의 놀라운 다양성을 목격할 따름이다. 뱀, 참새, 까치, 다람쥐, 청살모, 고양이 등등 다양한 짐승들이 배가 터져 죽은 후 가죽만 남은 채 말라가고 있다. 특히 장마 탓인지 말라서 바삭바삭해진 지렁이가 무척 많다.

사구미를 거쳐 완도 다리 앞 삼거리까지 가는 길이다. 태양은 진행방향에서 100도 무렵 위치, 등 뒤를 따뜻하게 가열한다. 기온이 얼마까지 올라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표상의 온도는 대략 40도 가량 되지 싶다. 이 정도의 기온은 방콕 시내를 걸어다닐 때 일상적으로 경험한 수준이다. 다만 다리를 계속 저어야 하므로 땀으로 손실되는 체액이 상당하달까. 벌써 140ml 폴라포 1개와 500ml 물병 1.5병을 비웠다.

시간이 되면 완도에 들러보고 싶지만, 해남에서 강진까지는 대략 93km, 하룻동안 주파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더위로 인한 체력 손실을 감안하면 완도는 지나치는게 낫겠다. 연료가 바닥이 나서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점심을 먹을 때가 된 것이다. 여차하면 배낭 속의 비상식량인 건빵을 먹는다. 건빵이라니... 생각만 해도 입안이 바싹 말라온다.

완도대교 앞 3거리 앞에서 자전차를 세웠다. '김가네 식당'이 보인다. 오후 1시 30분. 이 집 백반이 유명하다길래 점심을 반드시 거기서 먹자 해서 일부러 들렀다. 별다른 메뉴는 없고 5천원 짜리 백반이 디폴트. 반찬이 너무 많아 커다란 쟁반에 2층으로 쌓아왔다. 세어보니 모두 16가지, 어이가 없군. 거기에 시레기 국과 밥, 돼지불고기를 싸먹을 쌈용 채소를 가져다 준다. 명불허전이다. 아침 식사와 달리 단백질 덩이 반찬이 많다.

온 몸에 열이 펄펄 나니 물부터 두 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장이 뜨겁고 허기진 상태라 밥을 허겁지겁 먹기 십상이지 싶어 부러 밥을 꼭꼭 씹어먹었다. 하지만 찬의 절반도 채 먹지 못했다. 여전히 음식이 내 입맛에 약간 짠 편. 그런데 특별히 놀랍고 감동적인 반찬이 하나 있다. 고동 무침. 얼추 백여개는 됨직한 한 접시의 고동 무침을 내기 위한 정성과 노동력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식당 앞에 나와 잠시 쉬었다. 건너편 도로에서 이글이글 아지랭이가 피어오른다. 끔찍스럽다.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어.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다산초당이다. 별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목표를 정해둬야, 이 더위에 만사가 귀찮아져서 줄곳 패달만 밟으며 여기저기 지나치지 않을테니까. 담배 한 대 피우고 폴라포로 내장을 식히고 화장실에서 얼굴에 물을 뿌린 후(거울을 향해, 정신이 좀 드냐?) 출발.

등짝을 지지듯이 퍼붓는 광포한 햇살 때문에 출발하자마자 기가 꺽였다. 땀은 그야말로 비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작년 동해 주행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도로에서 어지럼증을 느꼈다. 어지럼증이 찾아오고 피부에서 땀이 마르면 그대로 쓰러진다 -- 일사병. 김가네 식당을 기준으로 불과 10킬로미터가 안되는 거리를 주행하면서 500ml 물병을 다 비웠다. 그늘 한 점 없다. 그저 벼들이 열심히 잘 자라고 있는 막막한 평야다. 등짝에 물을 쏟아 부었으나 찜통에서 익어가는 만두처럼 등짝이 뜨끈뜨끈하다. 이래선 도저히... 약 15km를 달린 후 부터는 눈을 두리번 거리며 그늘을 찾았다. 온 몸이 너절하다.

20km좀 넘어서자 건너편으로 숲 그늘이 있는 초등학교가 보인다. 방향을 틀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어째 심상찮다. 아, 국내에 이런 학교가 남아 있었나 싶다. 무성한 숲, 아기자기한 건물들, 그늘마다 지역 주민들이 돋자리를 펴놓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학교 분위기가 참 좋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수돗가에서 웃통을 벗고 물병에 물을 담아 온 몸에 연거푸 퍼부어 등목을 했다. 지나가는 참새들처럼 아이들 몇몇이 다가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빨아 먹는다. 정겹기 그지없다. 등목을 해도 달아오른 몸뚱이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다. 고작 한 시간을, 그것도 해를 등지고 달렸는데 햇살이 이다지도 사람을 기운 빠지게 만들 수 있다니... 죄 없는 나그네를 튀겨버릴 것 같은 더위, 마치 길섶에서 말라죽은 지렁이라도 된 것 같은 심정.



열기가 좀 가라앉아 근처 대나무 숲 앞에 앉아 쉬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정말 살 것 같다. 뱀 한 마리가 한가하게 기어간다. 잡아서 껍질을 벗겨 구워먹기엔 좀 작은 크기다. 아, 자리가 너무 좋아서 자전거 그만 타고 열기가 누그러지는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가고 싶다.

그럴 수는 없지. 벌써 오후 3시 30분. 조금 있으면 다산초당에 입장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GPS를 살펴보니 다산초당까지 앞으로 4km. 여기서 푹 퍼져있지 말고 일단 다산초당까지 가서 쉬자.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학교를 조금 지나니 강진 / 다산초당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꺽어 열지옥의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올라갈 때 무척이나 힘들어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GPS로그를 보니 23m에서 64m까지 올라가는 마치재라는 길이다. 표고차가 40여미터 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언덕길인데 왜 그리 힘들었을까. 한참 기승을 부리는 더위 때문이었지 싶다. 마치재 마루에서 잠깐 쉬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등을 돌리자 시원한 바람이 언덕을 넘어와 내 품에 안겼다. 좋아.

다산초당까지 순식간에 주파했다. 길섶에 배낭을 맨 젊은이가 보인다. 도보여행중인가? 버스를 기다리는 듯.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때문에 강진, 해남을 찾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었다(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책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은 아니다. 하루 코스로 딱히 갈 데가 마땅치 않아서 온 거지.

다산유물 전시관 앞에 자전차를 세우고 그늘에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입장권을 어디서 사야 해요? 아저씨가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강진에서는 말이요, 표 사서 들어가는 곳이 없어요. 나도 웃었다. 강진은 아직 관광산업에 오염되지 않은 것일까? 마음에 든다. 여름에는 오후 6시까지, 겨울에는 5시까지가 관람시간이다.

다산초당은 여기서 800여 미터 거리에 있다. 기운이 없어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었다. 차나무가 꽃을 피웠다. 다산초당에 훈장 선생님 같은 분이 앉아 힘들게 올라온 아이들에게 선생님과 아버지는 하늘같은 존재라서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가르침 대로 어른들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도로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해 무척 난감해 한 적이 있다. 정약용 선생도 제자들을 그렇게 가르쳤을까? 아닐 것이다.

여기 물 마실 데가 어디 있어요? 처자에게 물으니 뒤로 돌아가면 마실 물이 있다고 한다. 약천이다. 정약용 선생이 이백년전 찻물로 사용하려고 만든 조그만 샘. 물맛이 맹숭맹숭하다. 이게 차 우리기 좋은 물인가? 퇫마루에 멍하니 앉았다. 울창한 숲속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살던 정약용 선생은 이곳에서 몹시 고독하게 지냈을 것 같다. 사위가 음침하고 우중충하여 상상과 많이 달랐다. 그야말로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다'고 그가 말한대로의 유배지였던 것이다.

이곳에 앉아, 또는 동암에 앉아 차를 우리거나 책을 쓰고 가끔가다 헤장선사를 만나러 백운사를 간 것 빼고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음울한 유배지다. 기운이 빠진 상태고 어두컴컴한 숲속을 흔들거리며 걸어와 주저앉아서 남인의 한 선비가 이곳에서 느꼈을 적막감을 상상하니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게다가 다산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사나 찬양은 집어치우고 내가 쓴 글이나 한 줄 더 읽어라' 그는 실학파의 거장이다. 김정희의 글씨는 여전히 아름답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관뒀다. 약천에서 받은 물을 떠마시고 전혀 경건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다리를 여러 차례 식혔다. 나도 실학한다.

그대로 내려와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속을 식히고 다산 유물 전시관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얼마전 '정약용 살인사건'에서 본 내용 그대로의 다산의 일생을 요약하는 비디오를 두 번 보았다. 그의 지난한 삶에 대한 감동 때문이라기 보다는 에어컨이 무척 시원해서 그냥 죽치고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애들이 저그 떼처럼 오락가락 해서 계속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고, 바깥에 나와 해가 기울기를 기다렸다. 머리속으로 태양의 입사각에 따른 광량과 조사거리를 계산하며 졸았다. 6시가 되면 빛의 강도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계산이고 나발이고 필요없다. 지랄같이 날 더운데 그냥 6시에 해 기울면 출발하자. 수돗가 건너편 숲으로 적송이 보인다. 졸다가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싶어 눈을 껌뻑였다. 나는 상상한 것을 생생하게 보는 특이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적송 세 그루가 맞다. 아, 적송이구나. 궁궐짓던 나무지 라고 중얼거렸다.

여섯 시다. 해가 기울자 하늘은 새파랗고 높아 보인다. 유물 전시관에서 조금 내려와 수퍼에서 폴라포를 사다가 마룻머리에 앉아 건너편의 동네 노인네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한가하게 바라보았다. 침을 꿀꺽이는 할아버지들이 쳐다보고 있어서인지 폴라포 맛이 평소보다 두 배는 맛있다. 눈치 빠른 주인 아줌마가 아이스 바를 꺼내 할아버지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아줌마가 묻는다. 민박 안 해요? 강진가서 찜질방에서 자려고요. 땜질방? 찜질방이요. 혼자 자전거 타고 왔어요? 네. 왜 동무랑 함께 오지 않고 혼자 왔어요? 혼자 다니니까 좋기만 한데요, 내킬 때 서고 내킬 때 가고. 잘 먹었습니다.

강진까지는 순식간에 도착했다. 역시 더위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간 것이었다. 다리 근육이 생생하게 잘 움직인다. 아까 길섶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며(아마도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일 서울행 버스를 예매하려고 줄을 섰다. 내 앞의 아줌마가 창구의 아줌마에게 말한다. 아니, 그래도 말은 좀 곱게 하시지 않구선. 내 차례가 되자 창구 아줌마가 변명한다; 혼자 표를 팔래니 바빠서요. 신경질이 나네요. 아침 9시 30분 차는 사람이 꽉 찼단다. 그 다음 차는 우등이고. 그 다음 차는 오전 11시. 오전 11시 차로 주세요.

강진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숙소를 눈에 박아두고 군청 근처의 강진 맛집을 가자. 모텔이나 여관은 눈에 띄지만 찜질방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강진에는 찜질방이 없단다. 근처에도 없어요? 없어요.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내일 서울행 버스표를 오늘 광주행 버스표로 바꿨다. 남도 음식은 두 끼면 충분하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남도 음식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맛없는 비타500을 사먹었다. 암, 비타민을 보충해야지.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7시 좀 넘어 출발해 8시 30분에 광주에 도착했다. 광주에서 묵을까? 광주에서 묵으면 내일 오전 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때는 오후다. 이 지랄맞은 더위에 또 자전차를 몰고 가야 한다. 밤 9시 출발하는 버스를 끊고 휴대폰을 충전시키면서 터미널 식당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밥'을 주문했다. 터미널 식당의 그 맛없는 음식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맛 좋은 비빔밥이다. 아쉽지만 5분 동안에 허겁지겁 해치우고 버스에 올랐다. 피곤한 나머지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서울 남부 터미널에 도착. 오전 12시 30분. 느적느적 강변도로를 따라 집에 도착했다. 한 시간 반 걸렸다. 샤워하고 잤다. 온 몸이 후끈거린다.

평속 17.2kmh, 최고속 52.7kmh, 순수 주행시간 5h16m, 주행거리 92.9km(gps), 99.074km(지표 길이). 터미널에서 집까지의 23km는 제외.

해수욕장 두 군데 들러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상 다리가 휘어질 것 같은, 눈이 휘뚱그레지는 점심을 흡족하게 먹고, 다산초당에 들러 관광유적지는 안 들러봐도 괜찮다는 실학의 깊이를 체험하고, 도암 초등학교의 대나무숲 그늘에서 선선한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보낸 시간이 다 합쳐 거의 다섯 시간에 이른다. 주행시간과 얼추 균형이 맞다. 야밤에 찜질방 찾아 돌아다닌 것으로 삽질은 딱 한 번 밖에 안 했다. 최근 들어 가장 보람찬 여행이 된 것이다.

조사한 식당 리스트:

* 해남 청운정: 061-533-6633. 해남 버스 터미널 옆. 아침식사 가능.
* 김가네쉼터: 061-535-2680. 완도로 들어가는 길목. 백반.
* 강진 둥지식당: 강진 군청 앞 작은 골목길 안에 위치. 강진 사람들이 자신 있게 권하는 맛집. 홍어 삭힌 것과 함께 나오는 한정식이 일품.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연중무휴. 061-433-2080
* 강진 동해회관: 짱뚱어탕. 푹 고아낸 구수한 영양탕. 전남 강진군 강진읍 프린스모텔 옆 061-433-1180

주행 로그:

* 해남, 강진 트랙로그 gtm file
* Google Earth Map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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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 대부분 다 잡았고 기능 하나만 더 추가하면 된다. 한참 일하다 말고, 충동적으로 금요일 오후에 평창에 가기로 했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6.55pm 출발 12300원, 3h20m.

자전거 가방에 자전거를 넣어보니 들고 다니기가 참 뭣하다. 어쩔까 망설이다가 자전거를 타고 동서울터미널까지 가기로 했다. 간단한 옷가지 정도만 챙기고 집을 나섰다. 나서자 마자 비를 맞았다. 훗. 어련할라고. 항상 비님이 호들갑을 떨며 마중나와 주셨지.

쇼핑몰 처마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태우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칠 기미가 안 보여 할인마트에 들어가 쵸코바와 우유 둘을 샀다. 30분 동안 내린 비 덕에 도로가 많이 젖었다. 물이 튈 때마다 출발 전에 기름을 먹여둔 체인에 물때가 끼고 녹이 슬까봐 걱정했다. 녹이 슬면 자전거가 안 나간다.

에라 모르겠다. 신나게 물을 튀기면서 강변도로를 질주했다.

출발 30분을 남기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배가 고프다. 매번 터미널에 들를 때마다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 음식이 형편없어서 안 먹는다, 안 먹는다 하다가도 먹게 된다. 떡볶이를 시켰더니 고작 한줌에 2천원씩 받는다. 배가 덜차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를 사먹었다.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쑤셔넣고 버스에 올랐다. 졸다 깨다 하면서 pda로 음악을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휴게소에서 내리는 바람에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갔다. 휴게소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훗. 그럴 줄 알고 비옷을 준비해왔지.

장흥을 거쳐 대화, 평창에 도착했다. 해가 져서 사방이 깜깜한데 보슬비가 살짝 내린다.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잠자리를 찾아 시내를 배회했다. 출발 전에 민박집을 좀 뒤져보다가 관뒀다. 펜션이나 민박이나 평창읍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들 있는 듯 하다. 비가 올 지도 모르는데 한밤중에 가로등이 들어오지 않는 도로를 달리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찜질방을 찾아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나 듣는 종류의 사투리로 응답한다. 아줌마가 청소하다 말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대체로 여자들이 알려주는 길은 방향 외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무척 친절하게 설명해주려고 애쓴다. 이 도로를 따라 읍 외곽으로 나가면 무슨 호텔이 하나 있는데 그 옆 샛길로 가다보면 있단다. 이름이 뭐에요? 그건 모르겠고... (정말 막연하지?) 어두컴컴한 도로를 달렸다. 비는 그쳤다.

청성애원 건강센터라는 곳이다. 사슴농장인데 골프장과 찜질방을 지어놨다. 자전거를 세울데가 마땅치 않다. 밤에 비가 내릴 것 같은데... 산등성이 너머로 번개가 번쩍인다. 경비실 앞 나무에 매어놨다. 들어가보니 손님이 거의 없다. 나를 포함해 일곱명의 남자. 사우나에서 간단히 샤워하고 맥주를 찾아서 이리저리 헤메다녔다. 냉장고에 맥주가 있긴 했다. 마시고 싶은데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그래 마시지 말자. 스카이라운지의 해먹에 누워 빈둥거렸다. 춥다.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색이 안 나오는 TV에서 월드컵 개막식을 한다. 여자들을 끈에 묶어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마치 공중 부양 하듯이) 월드컵의 신화를 이룬 역사적인 인물들이 입장한다. 입장이 꽤 오래 걸렸다. 호리병처럼 매달린 여자들은 14개의 각기 다른 대륙을 상징한단다. 좋은데, 그만 내려줬으면 좋겠다. 개막 행사가 끝날 때까지 매달아 놓았다. 마치 월드컵은 여자애들 목 매달아놓고 벌이는 마초 행사다, 뭐 그런 의미인 것 같다. 독일 친구들 유머감각이 별난 것 같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한산한 찜질방 구석의 어두컴컴한 땅굴 같은 곳에서 잠이 들었다. 경주의 이름모를 황토찜질방 생각이 난다. 거기도 아무도 없었지. 흡사 외국 여행지의 도미토리 같았달까. 새들이 짹짹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어? 모두 어디 간거지? 시계를 보니 8am. 목욕탕에 아무도 없다. 깜빡 잊고 칫솔을 안 챙겨왔다. 제길. 체중을 쟀다. 67.5kg. 샤방하게 꽃단장 하고 출발준비를 마쳤다.



아침이 밝아온다. 찜질방 스카이라운지.

자전거 여행 중 들었던 곡: Gravy Train, Ballad Of A Peaceful Man, Alone In Georgia (4:33)

gps를 켜고 평창읍으로 달렸다. 흘낏 현수막을 보니 평창읍내의 장은 5일, 10일 열린단다. 오늘이네? 터미널 주변에 짐보따리를 내려놓은 장꾼들이 보인다. 규모가 작다. 평창읍에 상설시장이 생기면서 장 역시 규모가 작아진 듯 싶다. 시장에서 메밀부침을 지지고 있다. 식욕을 돋구는 고소한 냄새가... 안 난다. 올갱이 국수와 메밀부친개를 먹을까 하다가 편의점에 들러 그냥 삼각 김밥 하나와 우유, 그리고 컵라면으로 때웠다. 출발이다.



9.30am 평창강을 끼고 달리는 도로. 영월까지 내내 이렇다. 분위기 몹시 상쾌. 저 멀리 빌립보 환경친화 어쩌구저쩌구 단지의 흰 돔이 보인다. 풍력 발전기가 돌아간다. 풍력발전기가 소음이 요란하고 지나가는 새들 회 치는 것으로 악명이 높던데... 요즘은 많이 좋아졌으려나?

며칠 전에 눈 다리끼가 났다. 벌써 세번째다. 병원에 들르니 피곤해서 생긴 거란다. 피곤했지. 여의사가 눈이 에쁘시네요 하며 안심시키더니 갑자기 눈두덩을 잡고 있는 힘껏 고름을 짜낸다. 어어...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신음을 삼켰다. 정말 징하네. 그리고나서 내 생애 맞았던 주사 중 순위권 안에 들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엉덩이 주사를 맞았다. 언제 바늘이 들어갔는지 모르겠고 빠질 때도 느낌이 없다.

주사가 정말 좋았는데 한 30분 지나고 나서부터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면 엉덩이가 쭈볏거리며 쑤셨다. 이틀 내내 그 모양이라 자전거 탈 때 걱정했다. 그보다는 밥 먹고 이틀 동안 먹는 항생제가 골칫거리였다. 아직 부어오른 눈두덩이 덜 가라앉아 약을 먹는데, 먹을 때마다 머리가 핑 돌았다. 위궤양약, 진통제, 항생제, 안약, 연고. 의사들이 원래 상상력이 부족한건가? 세상에 약이란 것은 원래 저 다섯가지 뿐인건가?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가끔 차가 지나다닐 뿐 한적한 도로. 있으나 마나한 갓길. 그 옆으로 언제든지 뛰어들어도 괜찮은 지방 1급수 하천 평창강. 이번에도 역시 수영복만 입고 자전거를 탔다.

한가하게 관광하듯 자전거를 설렁설렁 몰았다. 도로교통 표지판에는 '천천히'라고 쓰여 있었다. 천천히 즐기면서 갈만한 길이다. 우거진 신록에서 향긋한 풀내음이 난다. 십오년 전에 이 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때는 gps가 없었다. gps도 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길이 나타나면 내려서 걸었다. 걷다가 지치면 주저 앉았다.



이쯤에서 빠지는 길이 있을텐데... 있다. 십오년전 그 도로다. 오른쪽으로는 새로 뚫린 영월, 제천행 도로가 이어진다. 핸들을 꺽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리로 비포장길을 한참 가면 길이 끊긴다. 길이 끊기는 지점에 나루터가 있고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도로가 있겠지?



간만에 나타난 포장길. 비포장길을 한 시간쯤 달렸다. 비포장 오르막길은 아스팔트 오르막길보다 1.7배 가량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비포장에 이르러서야 MTB의 진가가 드러났다. 내 자전거의 두꺼운 타이어가 늘 마음에 안 들었는데 비쭉비쭉 튀어나온 자갈길에서 펑크 나지 않고 잘 나간다. 내리막에서 속도를 낼 때는 이를 악물었다. 안 그러면 도로의 요철 때문에 턱이 으덜덜덜 떨린다. 길가에 나비가 앉아 있다가 자전거가 지나가면 훨훨 날아간다. 나비가 참 많다. 그러고보니 오랫동안 나비 구경을 못했다.

길이 끊긴 곳에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새로 도로를 내려는지 아스콘을 치기 전 도로 토목 작업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었다. 평창의 도시 구호가 해피700이던가? 인간이 생활하기 가장 좋은 고도가 700m인데 그 고도에 평창이 있다고 주장한다. gps에 찍힌 평창읍의 고도는 280m였다.

여기저기 메밀밭이 보인다. 늙은 농부들이 기도하듯이 고개를 숙인 채 김매기를 하고 있다. 자전거가 지나가면 농가에서 개가 짖는다. 개들은 사람을 닮아 말을 아낀다. 컹~ 컹~~ 하고. 마치, 왠일로 여기 왔대요? 그냥 가나요? 하듯이. 강가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고기를 잡거나, 물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술을 마시고 있다. 평균 2km 간격으로 놀이팀이 있다. 누가 옆에 붙어 있는 걸 못 견디는 편이라 여름의 동해안 해수욕장에는 한 번도 놀러간 적이 없다.

강변의 몫 좋은 곳에는 여지없이 팬션이 보인다. 강가에는 수영금지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유속이 느리고 물이 얕아 수영이 가능하다. 자전거를 세우고 물가에 앉아 발을 담궜다. 차다. 어쩔까. 물에 몸을 적실까. 땀이 거의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날이 흐려 상대적으로 물이 더 차게 느껴진다. 신발을 도로 신었다. 그냥 가자.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사람들이 얍삽하고 성질 더러운 큰 도시에 옮겨온 지 십년이 넘었다. 여행은 나를 다시금 문명이 그다지 필요없는 생활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비누와 치약, 컴퓨터 정도만 있으면 나름대로 살만하다.

간간이 감질맛나게 보슬비가 내렸다. 최종병기인 비옷을 입을까 말까 망설이게끔 하는 정도만.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서울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온단다. 그러길래 토요일에 출발했으면 엿될뻔 했지. 나만 괴롭히는 것 같은 날씨신을 엿 먹이려고 하루 땡긴 것이다. 그래서 눈 다리끼로 탱탱 부은 눈을 하고 항생제로 찌든 몸임에도 일찌감치 출발한 것이었지.

비야, 왜 안 오니? 이럴 땐 ㅋㅋㅋ 하고 웃어줘야지.

책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언젠가 영월 책 박물관의 홈페이지에서 책 박물관 인근 마을을 헤이온와이같은 고서 마을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본 기억이 난다. 게다가 가는 길에 책 박물관이 있다니 꼭 들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가는 길에 없다면 안 들러도 무방하지만. 길을 잘못 알아서 오르막길을 두번 오르락 내리락 하고 나서야 박물관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마땅히 세워둘 곳이 없어 계단 참의 난간에 매 두고 올라갔다. 왠 폐허가 나타났다. 흔히 폐교라 불리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책 박물관은 폐교를 수리해서 만든 것이구나. 분위기 좋아 보인다.

담배 한 대 빨고 입장권을 사려고 건물을 빙 둘렀다. 주인 아줌마가 차 닦다 말고 2천원짜리 표를 끊어준다. '철수와 영이'가 그려진 표다 -_- 신발을 벗고 달랑 교실 세 개짜리 분교 건물로 들어섰다.



정약용이 쓴 한글 언해본. 근데 제목이 뭐였지? 얼마 전에 소설 정약용 살인사건을 읽었는데 꽤 재미있어서 자전거 타고 해남에 갈 생각이었다. 며칠 전에 소설의 저자와 중국집에서 쿄코님이 극찬하던(?) 연태고량을 연거푸 퍼마셨는데(34도짜리 순한 술로 향과 맛이 일품인데다 뒷끝이 깔끔하다) 저자는 정작 책이 잘 안 팔려서 시무룩한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연태고량은 가을 저녁 길가에서 슬며시 잡아본 여인의 허벅지 아니 팔똑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지는 술이다.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되는군. 쩝쩝

3개의 전시실을 둘러 보았지만 별로 볼만한 것이 없다. 서종이 논리적이거나 치밀하거나, 다양하거나, 재밌지 않았다. 아직 두서가 없는 편. 그런데 영월책마을 프로젝트의 로드맵은 어딨는거야? 물어봐야지.

갑자기 애들이 저그 떼처럼 밀어 닥쳐서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황급히 나왔다. 아! 책박물관을 나와서 한참 업힐을 낑낑거리며 오른 다음에야 주인장에게 직지 프로젝트 홈페이지 알려준다는 걸 잊어버렸다 -_-



한창 도로를 건설 중인 자갈길을 오르락 내리락했다. 원래 가려던 길이 아닌데 gps를 보니 가는 길인 듯 하여 선암마을이라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강굽이가 기이하게 틀어져 내려다보면 한반도 지형처럼 보이는 곳이란다. 저 멀리 이 지방 토박이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는 현대시멘트의 공장 건물이 보인다. 현대시멘트 가동 후 마을의 대기중 미세먼지 농도가 서울의 무려 4배 수준에 이르렀다. 묘하게도 중국 위치쯤이 되어서 중국에서 날리는 황사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한국처럼 보였다. 지도의 서해안 부분은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고통받고 신음하는 갯펄처럼 보이지 않나? 사진의 동쪽은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오지 마을 중 하나(였)다.



한반도 지형은 그저 그런데 조망대가 아름답다. 시원한 솔바람도 불어오고. 올 봄 조망대 밑에 무궁화 묘목을 심어놨다. 옆에는 '일본 독도망상을 규탄한다' 라고 적혀 있다. 말 뜻 그대로 해석하면, 누가 망상이나 공상을 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것처럼 보인다. 또는, 이념이 다르면 확 죽여버리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냥 '맨날 회나 쳐먹는 빌어먹을 원숭이 놈들아 독도는 우리 꺼야!' 라고 적어놓는게 훨씬 직관적이고 호소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플랭카드 한 장에도 센스를 담자 님들아.

공사한다고 길을 막아놨다. 길이 없고 요즘 생기는 중이다. 생기는 중인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자의 로망이지 싶어 턱이 으덜덜덜 떨리는 비포장 도로를 마구 달려갔다. 사우나 마다 설치되어 있는 벨트식 허리 진동기는 허리에 낀 지방을 제거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 상하로 흔들어댄다고 지방이 분해될 리가 없지. 체지방이 분해되는 경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소화된 탄수화물-당분이 다 분해되어 더 태울 것이 없어지면 체지방을 연소시키는 것. 그러니까 물과 공기만 마시며 허기져서 쓰러질 때까지 운동하면 된다.

땀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소금끼가 까칠한 맨살에서 먼지 알갱이처럼 굴러 떨어졌다. 체지방 연소도 좋지만 배가 고파서 어제 비올 때 편의점에서 사둔 초코바를 꺼내 씹어먹었다. 영월에 도착하면 그때나 밥을 먹자고 마음 먹었다. 어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다. 지나가는 덤프트럭 때문에 먼지 풀풀 날리고 포크레인이 삽질하고 있는 길을 달리는데 현장감독쯤 되 보이는 아저씨가 승용차를 멈춰 세우고 '아저씨 저 길로 돌아가는게 좋을 겁니다' 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 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힐탑까지 올라가 도로를 탔는데 뒤에 경찰차가 따라 붙었다. LA라면 악셀을 밟아 뺑소니 치겠지만, 자전거를 갓길에 세우고 경찰차가 옆에 설 때까지 기다렸다. 경찰만 보면 왠지 캥겼다. '아저씨 여기 자동차 전용 도로라서 이리 가면 안되요.' 라고 말씀 하셨다. 열나 업힐해서 장마비처럼 땀을 흘리며 올라왔는데 내려가라니 억울하잖아요? 좀 가다가 옆길로 빠질께요. 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지만, 얌전하게 네. 하고 대꾸하고 핸들을 틀었다.

강원도에서는 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녹색 신호등이 점등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한다. 법이 광의적인 의미에서 사회적 합의라면, 사회라 부를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라면 굳이 규칙을 지켜야 하나? 오래 전 배낭여행자들이 숙소에 모여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싱가폴에서는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거나 술을 마시면 즉결로 넘어가 곤장을 맞고 추방당하는데, 이색체험이랍시고 태형을 한 번 당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여행자로서 색다른 관록 하나를 만든다? 할 짓이 없어서 자기 몸을 혹사하는 그런 일을 할까? 그런데 나는 그 세 가지를 다 해 봤다. 사귄 여자애가(물론 싱가폴 아가씨다) 가게에서 나오길 기다리며 가가 맞은 편에 놓여있는 오처드 로드의 한 벤치에 앉아 근처 수퍼에서 산 맥주를 홀짝이며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었다. 내 옆에는 경찰관이 서 있었다. 잡혀가지 않았다. 그날 밤 보트키에서 한물 간 디스코 리듬에 춤을 추고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떡이 되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이국의 거리를 헤메며 비틀거렸다.

곤충박물관이 나타났다. 역시 폐교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입장료 2천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다양한 수집물과 정성어린 표제가 눈에 띈다. 잘 봤습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나왔다. 음료수를 마시며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비가 올듯 올듯 하다가 오지 않는다. 해가 보일듯 말듯 하다가 구름 속에 숨었다. 어린 시절 즐겨 튀겨먹던 저것이 노린재 중에 하나였구나. 호랑나비보다 제비나비를 더 좋아했다. 어렸을 적에 번역된 존 파울즈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 미란다, 마구스, 콜랙터, 꾀뜨미네의 사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그중 콜랙터는 몹시 인상에 남는 소설이었다. 박제를 볼 때마다 그 소설이 생각났다. 이제 출발해야지. 몇 안되는 업힐이지만 길고 지루해서 지친다. 평창강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업힐에서 자전거가 취한 것처럼 비틀거렸다. 앞뒤 기어비는 1:1. 입술을 핥았다. 짜다.



다 오르니 선돌이 100m 앞에 있단다. 오로지 주행만 할 생각이었는데 오늘 볼꺼리가 이것저것 꽤 되는 편. 선돌 앞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한다. (어딘들 안 그렇겠나) 소원을 빌었다. 통일 되게 해주십쇼. 개마고원 함 달려보게. 남자가 순진한 여자애 꼬시는듯한 모습이네?

시원한 내리막이다. 오후 4시다. 여기저기서 길을 헤메지 않았더라면 좀 더 빨리 왔을텐데. 내리막 끝에는 유배 생활하다가 사약 받고 승하한 단종을 모신 단종대가 있다. 충절의 고장 영월이라고 하더라. 모형 관광의 출발지 영월이라고도 한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구경하다 갈까, 하다가 영월->서울행 버스 시간을 모르고 허기져서 영월에서 밥 한끼 먹는 것이 정서적 안정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영월로 발길을 돌렸다. 어린 시절 대인관계와 성정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는 애착 이론에 따르면 나는 non-secure attachment 타잎의 삶을 살았다. 생후 일년 이내에 부모와 아이 사이에 형성되는 애착 형성이 훗날 대인관계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긴데, 비안정애착이 마치 안 좋은 성장 장애처럼 묘사하는 아동심리학을 약간 희안하게 여기는 편이다. 대인관계와 리더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라고 말하면 나같은 놈을 dismissing avoidant attachment type이라고 불러 주신다. 대부분의 정치형 리더는 조직과 집단에서 공개된 희생양 내지는, 신성한 공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안정애착형 대부분은 대인관계가 몹시 좋을진 몰라도 리더는 평생 못해 먹는 잡초같은 인생을 살아간다(잡초가 비아냥은 아니고 내 인생의 중요한 지향점이긴 하다). 대인관계는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우주의 크기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공상을 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왜 애를 안정애착형 만들려고 전전긍긍하나? 타인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읽고도 대충 무시하고 살아가는 비안정집착 또는 자유방목형에는 나름대로 장점이 꽤 많다. 말은 못하겠군.

영월에는 김삿갓 박물관이 있고 동강이 평창강과 만나고 고씨 동굴이 있고 한겨울에 벌벌 떨면서 타오르는 화성을 구경했던 별마로 천문대도 있다. 그럼 먹을만한 밥집은?

오기 전에 곤드레 나물밥을 먹을 수 있는 청산회관과 평창식당(김인수할머니 순두부집)을 점찍어 두었다. 청산회관은 입구가 영 식당틱하게 생기지 않아 평창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반찬 14가지에 순두부 찌게 한 그릇. 밥맛은 훌륭한데 14가지 찬은 그저 그랬다. 하여튼 7가지 이상이 반찬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더 드릴까요? 아네요 이것만 해도 너무 많은데요. 배불리, 맛있게, 잘 먹어서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나왔다.

강변에서 벌어지는 마을 잔치 구경하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를 우겨놓고 좌석에 앉으니 승객 수가 11명 뿐이다. 토고 감독이 보따리 싸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다소 황당한 뉴스를 보았다.

차에 타고 좀 가다가 창밖으로 비가 퍼부을 기세로 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갈아 입었다. 비옷도 꺼내 놓았다. 강남 터미널에 도착하니 비가 멎었다. 자전거를 타고 반포대교를 건너 빗물이 척척하게 고인 강변로를 따라 달렸다. 비 때문에 아무도 없다. 어두워지고 있다. 신나게 밟으며 집에 가서 뭘 먹을까 오직 그 생각만 했다. 두 시간 반 전에 배불리 먹었는데도 이틀간 워낙 먹은 것이 없어 여전히 배가 고프다. 살갗을 스치는 이 스산한 바람에 통닭과 맥주를 마시기는 그렇고, 고깃집에 혼자 가서 땟국물 좔좔 흐르는 이 복장으로 소주에 삼겹살 먹는 것은 청승맞고... 아내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고 없다. 자고 오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부대찌게를 만들어 소주 한 잔 곁들였다. 반 병도 채 마시지 못했다. 강가에서 찬 바람 쐬다가 뜨덧한 것이 목구멍에 들어가니 살 것 같다. 누워 노트북으로 영화 아르센 루팡을 보다가 그대로 뻗었다. 루팡이 의외로 재밌다. 루팡 2탄 꿈을 꾸었다.

점심 무렵 일어나 어제 먹다 남은 부대찌게로 밥을 해먹고 빗물과 먼지로 엄청 지저분해진 자전거를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분해하고 정비했다. 기름때가 잔뜩 묻었다. 목욕탕에 가서 정성껏 때를 밀었다.



주행기록을 살폈다. 평창-영월 구간만 68km. 최대속력 51.7kmh. 주행시간 7h36m, 그리고 평속 9kmh(당연하지. 핏발 세우며 주행에 전념한 것이 아니라 거의 빈둥거리면서 갔으니까). 아닌게 아니라 정말 기가 막힌 길이다. 줄곳 내리막인 경관 수려한 자전거 관광 전용 도로라 할만 하다! 평창,영월군은 이 코스 필히 개발해야 한다.

* 평창->영월 GPS Trackmaker file
* 평창->영월 Google Map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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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이다. 5년 만에 제주 자전거 일주를 다시 한다.

여자 또는 인간의 어리석은 습성 중 하나는 학습 수준의 고저, 지성의 개발 과정에 상관없이 시시한 것에 쉽게 매료된다는 것이다. 잘나지 않아도 되고 잘 생기지 않아도 되고 가난해도 상관없다. 굳이 멋있어 보이지 않아도, 뭔가 설명하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미쳤다고 봐야지. 이런 관점은 천박하고 한심해서 씨알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굳이 말할까. 심지어 모험조차 하지 않는 여자(인간)를 비웃고 싶어서다. 인간에게는 호기심도, 상상력도, 모험에 대한 열정도 거의 없다.

이틀 전, 황씨더러 자전거를 우리 집에 놔두고 가라고 했다. 아니면 그의 집에서 가까운 강변 터미널까지 잔차를 몰고간 후 버스를 타고 인천에서 내려 인천항까지 가라고. 후자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기, 북악 터널을 넘어 힘겹게 자전거를 끌고 왔다. 언젠가는 그 혼자서 강변 터미널에 자전거를 싣고 가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통과해 해남 땅끝 마을까지 투어를 기획했으나, 강화도 여행에서 익히 드러난,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 달 정도 부족한 황씨의 적은 연습량으로 감당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가 제주 할인 배편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해 아무래도 죽어라고 달리기만 하는 서해안보다는 제주도가 나을 것 같다. 일단은 황씨를 강하게 키워야 갖은 악조건 속에서 벌어지는 내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마조히즘 투어가 가능하니까.

그래도 수요일에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무늬만 그렇지 직장인과 다를 것이 없어 지난 2년 동안 적어도 동업하는 직장인들과 만나고 연락할 수 있는 시간대에 일하는 생활이 되었다. 적당한 핑계를 궁리하다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작년에 돌아가신 처가집 큰할아버지의 장례에 다녀온다고 말할 것이다. 아내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 뿐이다.

계획은 이틀 전에 짰다. 마침 GPS Trackmaker에서 불러다 쓸 수 있는 비트맵 지도를 자동으로 캡쳐해 GDI+ API로 이어 붙이고 좌표를 제시하는 알맵의 플러그인을 완성했다. 기반 지식이 없어(없다기 보단 업무도 아닌데 귀찮아서) GDI+로 팔레트를 만드는데 애먹었는데 vs.net 2005 베타버전의 preliminary help를 보면 GDI+ API에서 이미지를 다루는 함수들이 대폭 추가될 전망이고 그것들을 활용하면 프로그램을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알맵 사이트에 무료 플러그인 등록을 했지만 감감 무소식 -- palm의 Pathaway나 GPS trackmaker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데 아쉽다. 망할 정부는 세금을 그렇게 뜯어가면서도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세납자에게 공개한 적이 없듯이(그건 학자들 책임도 크다. 왜 목숨을 걸고, 평생의 과업으로 만들 생각을 안 하는가? 그러고도 인문의 위기 어쩌구를 말한단 말인가?) 아직도 '제대로 된(말하자면 공짜)' 국가 표준 좌표 지도가 없다.

gps trackmaker에서 지도를 불러와 좌표와 비트맵 지도를 맵 매칭하고 네 개의 트랙과 하나의 루트를 짰다. eTrex 시리즈는 루트를 하나만 지정할 수 있어 아쉽다. 황씨는 제주의 관광지 좌표를 별도로 제작해 메신저로 내게 파일을 건네주었다.

황씨가 제주도에 가면 한라산에 반드시 오르겠다고 해서 나흘 일정 중 하루를 할애하고 남은 3일 동안 자전거로 해변도로를 완주해야 하는데, 소위 '마의 중문 코스'를 포함한 120km를 첫날 달리게 되었다. 계획대로 라면 둘째날은 63km, 세째날은 56km.

이번에 웨이 포인트를 입력하는 방식을 바꿨다. 대분류는 일자, 소분류는 위치순열, 마지막 postfix는 교차로에서 방향지시다. 예를 들어 D1-20R은 제주 투어 첫날 20번째 포인트, 진행로의 500m 후방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의미한다. V,E,S등의 문자도 부여했다. D1-V1은 뷰포인트#1(관광지), D1-E1은 eat place#1, D1-S1은 sleep(lodging)을 의미.

작성된 트랙에 주요 관광지 좌표를 병합하고 코스를 그에 맞춰 좀 더 수정해 루트 포인트 61개, 트랙포인트 541개, 웨이포인트 75개 짜리 거의 완전한 제주도 자전거 여행용 트랙로그 (3.2MB)를 완성했다. 그러나 알맵의 지방도는 갱신이 늦어 신뢰할 수 없다. 12시쯤 황씨가 집에 왔다. eTrex에 트랙로그와 루트 정보를 입력했다.

아내가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챙겨갈 것들 중 몇 가지를 빼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응암역 자전거도로를 지나 성산대교를 건너 강변남로 자전거 도로를 타고 가다가 안양천으로 들어서서 1호선 구일역 앞 다리에서 일반 도로를 타서 온수 - 부천 - 부개 - 부평 - 간석 - 주안 - 도화 - 제물포 - 도원 - 주안 사거리 - 인천항 사거리 - 인천항 연안 여객 터미널에 이르는 코스다. 성산대교 기점으로 트랙의 총 길이는 34km, 집에서부터 거리는 45km이다.

짐은 간단하다. 옷가지는 상의 한 벌, 반바지 하나, 팬티 하나, 입고 있는 수영복 하나(항상 피에르 가르뎅의 수영복처럼 생기지 않은 수영복에 감사한다), 스포츠타월, 작은 등산 손수건 한 장. 음식: 점심 주먹밥, 사과 하나, 진통제, 먹다 남은 견과류 봉투. 전자기기: GPS, PDA, PDA 충전용 어댑터, 충전지 4개, 디지탈 카메라. -끝- 영원한 여행의 벗인 칫솔과 때수건, 스카치 테잎을 챙기지 못했다.



성산대교 앞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건다. 자기는 누군가 안장을 훔쳐가는 바람에 안장 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세상에는 희안한 사람들이 참 많다. 황씨가 좌판에서 장갑을 하나 샀는데 썩 괜찮아 보여 5천원 주고 내 것도 샀다.



안양천 자전거 도로. 일반도로로 진입하기 전에 잠시 쉬다.

한산한 안양천 자전거 도로에서부터 평속 25-30kmh로 힘차게 밟았다. 부평역 부근에서 싸온 도시락을 까먹고 잠시 쉬며 땀을 식혔다. 이어폰을 안 챙겨와서 pda에 기껏 챙겨놓은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섭섭하다.

인천시내에서 한두 번 헤메고 속도차 때문에 각기 다른 길로 가다가 바람과 먼지 회오리를 일으키는 거대한 컨테이너 트럭과 나란히 달려 인천항에 도